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8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21:15-18 날짜 2009.02.06
요한계시록 21장은 사도 요한이 새 예루살렘 성을 보고 기록한 내용입니다. 15절에 "내게 말하는 자가(곧 천사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했습니다. 금 갈대는 천국의 측정 도구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을 금 갈대로 척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새 예루살렘 성을 금 갈대로 척량하는 이유

금의 영적인 의미는 변함없는 믿음입니다. 금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습니다. 금덩어리를 작게 부서뜨린다 해도, 그것을 다시 모으면 덩어리일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또 순도가 낮은 금을 불로 단련하면, 불에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도가 높은 정금이 됩니다. 영적인 믿음도 이러한 금과 같이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종종 시험 환란을 통해 성도들에게 연단을 허락하시는 것은 변함없는 영적 믿음을 갖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변함없는 금으로 만들어진 갈대로 새 예루살렘을 척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측정이 정확하며 변개함이 없음을 뜻합니다.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심판이 이뤄진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갈대의 영적인 의미를 설명하기에 앞서 갈대의 특성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갈대는 물가나 습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서, 그 키가 1미터 이상이며 3미터까지도 자랍니다.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곧게 돋아나는 잎사귀는 날카롭고 청아합니다. 활짝 핀 갈대의 꽃은 흰 털이 많아서 부드러운 솜뭉치 같이 보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모습은 연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갈대의 특성 때문에 새 예루살렘을 척량하시되 금 갈대로 척량하시는데, 이러한 갈대의 특성과 연관된 영적인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갈대의 줄기에는 일정한 간격마다 마디가 있습니다. 마치 자의 눈금과 같이 마디가 있어서 길이를 측정하는 잣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갈대에 마디가 지어진 것은 일한 대로, 또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했고, 요한계시록 2장 23절 후반에는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했습니다. 갈대가 자라면서 마디가 더해지듯이, 각 사람의 믿음이 자라고 행함이 쌓이는 대로 각각 천국의 처소와 상급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분량이 합당하게 채워질 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믿음과 행함을 측정할 때, 대략적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공의에 따라 엄밀한 측정 기준을 두고 측정하십니다. 앞에서 이 갈대가 금으로 된 것은 변치 않는 금처럼 하나님의 측량이 정확하고 변개함이 없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갈대의 마디에 담긴 의미도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은 변함이 없고 틀림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일점일획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뤄집니다. 아무리 교회에 다닌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세상과 짝하고, 불의와 불법 속에 살면서 주여 주여 부른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18장에는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했습니다. 육으로 보면, 이미 장성한 여러분이 다시 서너 살 먹은 아이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신 이상, 반드시 어린아이가 되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천국에 가려면,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변치 않는 말씀으로 믿음과 행함을 척량하시듯 금 갈대로 척량하여 합당한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둘째로, 갈대는 땅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어 쉽게 뽑히지 않습니다. 갈대는 키가 크고 곧게 자라지만, 부드럽고 바람에 쉽게 흔들리기 때문에 연약해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주로 습지나 물가의 부드러운 흙에 살기 때문에 잘 뽑힐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쉽게 꺾이지 않으며,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어서 잘 뽑히지도 않습니다. 벼 같은 것은 태풍이 한번 쓸고 지나가면 쓰러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갈대는 늘 물가에서 바람에 흔들리지만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도 여전히 그대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갈대의 부드러운 면만 보고 지조가 없거나 변개하는 사람의 마음을 갈대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부드러우나 단단히 뿌리내리고 잘 꺾이지 않는 갈대의 좋은 점을 높이 평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갈대의 특성은 이스라엘 민족과도 유사합니다. 이스라엘은 국토의 면적도 좁고, 환경과 자원이 열악하며, 강수량도 적습니다. 인구도 얼마 되지 않고, 주변은 온통 적대국으로 둘러 싸여서 항상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 나라들이 마음먹고 연합하여 공격하면 당장이라도 망할 것같이 보이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는 그 신앙의 뿌리가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이후 이삭과 야곱, 모세, 다윗 등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그 뿌리를 하나님께로 깊이 내리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 설교를 들으신 분들은 이와 관련해서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에 담긴 섭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군병들이 겉옷은 네 깃으로 찢어 나누었으나 속옷은 나누지 않고 제비 뽑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섭리가 담겨 있다 했습니다. 군병들이 겉옷을 찢은 것과 같이, 이스라엘 국가는 로마에 의해 멸망하고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통으로 짠 예수님의 속옷과 같이, 아브라함 이후로 이어져 온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만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때가 되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도 다시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선 나라이기에 아무리 연약해 보여도 멸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금 갈대와 같이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주님 위에 뿌리를 단단히 내린 성도들은 시험 환란의 비바람이 몰아쳐도, 태풍이 덮쳐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시험 환란에도 굴하지 않고 승리하여 마침내 그곳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셋째로, 갈대는 심히 부드럽습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부드럽게 흔들리며, 그 꽃은 포근한 솜털과 같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성도들도 능히 시험환란의 풍파를 이겨낼 힘이 있지만, 동시에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면 이런 성품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큰 권능으로 기사와 표적을 행하시며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바람과 파도도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했고, 원수 마귀도 두려워 떨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위엄과 권세가 있으셨지만, 언제나 온유하고 부드러우셨으며 핍박을 받을 때도 다투거나 대적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낮고 천하여 멸시받던 사람들도 예수님 안에서 포근함과 위로를 얻었고 고통 받던 사람들도 쉼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 이사야 53장 2절에는 연한 순 같다고 비유했고, 마태복음 12장 19절에는 "그가 (곧 예수님께서)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한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굳건하고 강하면서도 솜털 같은 마음입니다. 육체가 강하고 힘이 세다고 해서, 영적으로 강하고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갈대처럼 단단히 뿌리내린 사람은, 곧 진리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사람은 그 마음이 너무나 온유하고 선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에도 마음의 평안함을 잃거나 요동하는 일이 없습니다. 아직 마음밭이 개간되지 않아서 길가밭이나 돌짝밭인 경우는 마음이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단단하고 억셉니다. 이는 가시 떨기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옥토와 같은 마음밭을 이루면, 솜털같이 부드러운 마음이 됩니다. 부딪히거나 걸릴 것이 없는 온유하고 착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크게 화평을 깨는 일이 없다 해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요동을 통해 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잘못을 지적받고 책망을 듣는다면, 진리를 들어서 알고 있으니 겉으로는 웃으면서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화되겠습니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깊은 중심에서 기쁨과 평안이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겸손한 자세로 책망을 되새겨보며 명심해서 변화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라도 나는 그런 것이 아닌데, 상대가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낙심하거나 억울한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 또는 꼭 그렇게 여러 사람 앞에서 나에게 무안을 줘야 했는가 서운한 마음은 아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평안을 잃는 만큼, 마음이 부드럽지 못하며 겸손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자아가 살아 있는 마음, 단단한 마음입니다. 자아가 전혀 없어서 부드럽고 솜털같이 온화할 때라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넷째로, 위로 곧게 피어나는 갈대의 잎사귀는 환상적이고 청아한 자태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대의 청아하고 멋진 모습은 믿음의 반석에 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가는 곳마다 발하며 멋진 삶을 사는 것을 나타냅니다. 갈대의 멋진 모습 속에는 가냘픔과 예리함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부드러움과 함께 칼날 같은 날카로움과 강함도 겸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을 사모하는 성도들의 믿음은 피어오르는 갈대의 잎사귀와 같이 천성문을 향해 곧게 올라가야 합니다. 또한 갈대의 청아한 자태와 같이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손이 베어질 듯 날카로운 잎처럼, 때로는 예리하게 날이 선 검과 같이 단호한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예리하고 칼날 같은 마음이라 해서 남을 베어서 아프게 하거나 상처를 입힌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 단호한 마음, 우유부단하게 주저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굳건한 마음이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풀무불에 던져진다 해도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던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죄와 타협하지 않고 의롭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렇게 작은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는 모습은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고 성공하기 어렵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융 업계에서 영업을 하는 분들은 접대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님들은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습니다. 또 주말에는 부지런히 사람들과 어울려서 인맥을 쌓아도 부족할 것 같은데, 주일이 되면 교회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것 하나하나가 답답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또 남들이 악으로 행할 때 악으로 맞서지도 않으니 너무 연약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곧은 절개로 진리를 지킬 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과 함께하시므로 결코 연약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꺾어지고 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풀무불 속에서도 온전히 살아난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오히려 멋지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삽니다.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으며,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다 하면서도 원수 마귀 사단의 송사를 받아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자신이 진리를 어기며 불의와 타협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은 나름대로는 진리 안에서 행한다 했지만, 실상은 자기의 의와 틀 속에서 행하여 참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에 연단이 따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진리를 굳게 지키며 바른 신앙생활을 했다면, 결코 연약하지 않으며 범사에 영광 돌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 새 예루살렘 성의 규모

이어지는 16-17절에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가로 세로 높이가 똑같은 정육면체입니다. 성이 네모반듯하다는 것은 천국의 질서와 정확성을 나타냅니다. 또한 공평함과 공명정대함도 나타냅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열두 개의 문이 있는데 성벽의 한 면마다 똑같이 세 개씩 있습니다. 이는 금 갈대의 측정에 합하기만 하면 누구나, 또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공평하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성의 모양이 네모반듯하다 해서, 성 안의 모든 구조가 직선으로만 된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곡선도 있으며, 아름답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취향은 다양하기 때문에, 집 안을 꾸민다 해도 각자 마음에 맞는 모양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곧고 반듯반듯한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부드러운 곡선이나 둥근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성 안에 있는 집들을 그곳에 들어갈 성도들의 취향대로 다양하게 꾸며 주십니다.
성벽은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1만 2천 스다디온이라 했습니다. 1스다디온은 대략 1,500마일이고, 이는 대략 2,400킬로미터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성의 가로와 세로가 같을 뿐 아니라 높이까지도 같다는 것입니다. 만약 서울과 같은 크기로 네모반듯한 도시를 만들고 또 가로 세로와 같은 높이의 벽을 쌓는다면, 그 벽의 높이는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그처럼 높은 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답답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아무리 성벽이 높아도 답답하지 않습니다. 그 벽이 유리처럼 다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에서는 밖이 투명하게 다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넓이를 평면적으로만 계산하면 남한 면적의 약 58배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의 공간 활용은 이 육의 세상과는 다릅니다. 성벽이 높은 만큼, 바닥에 접한 아랫부분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장 높은 곳까지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면적으로는 같은 넓이라 해도 이 땅의 공간보다 훨씬 넓게 쓸 수 있습니다. 평면적으로 계산한 것보다 수천 배 이상 늘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높이가 이렇게 높다고 한다면, 성벽의 두께도 당연히 그에 맞춰 두꺼워질 것입니다.
성곽을 척량하니 144규빗이라 했습니다. 1규빗은 약 45센티미터이므로, 144규빗은 약 65미터가 됩니다. 성벽의 두께만 해도 약 65미터라면, 이 얼마나 거대한 성입니까? 물론 천국의 측정기준이 이 땅과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런 숫자들을 기록해 놓은 것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대략적으로나마 그 성의 규모를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17절에 이 척량이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한 것은 경작의 결과에 따라, 곧 각각의 인생들이 믿음의 단계를 통과한 만큼 천사들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그의 처소를 예비한다는 뜻입니다.

3. 새 예루살렘 성벽

18절에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1장 11절에도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하여 이와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새 예루살렘의 성곽은 외성과 내성의 이중 구조입니다. 그런데 외성과 내성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종이 두 장이 겹쳐진 것 같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 밖에서 성벽을 보면 벽옥으로 쌓여 있고, 성 안에서 보면 정금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성벽은 벽옥과 정금을 밋밋하게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조각과 문양들로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천국의 보석들에는 저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러한 영적인 의미는 그 빛깔과 결합하여 보석들 각각의 위엄과 자랑을 나타냅니다.
벽옥의 영적인 의미는 믿음입니다. 이는 곧 믿음의 빛깔을 내는 보석이 천국의 벽옥이라는 말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성이기에, 이러한 의미를 가진 벽옥으로 성곽을 쌓은 것입니다. 금도 영적으로 믿음을 상징하는데, 본문에 나오는 "정금"에는 소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천국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이 땅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소망으로 인해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으로 쌓아 가는 모든 행함이 천국의 집과 상급으로 쌓이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열두 보석으로 이뤄진 성의 기초석과 진주로 만든 성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아랫글 : 요한계시록 강해(100)
윗글 : 요한계시록 강해(88)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