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요한계시록 강해(98)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22:14-15 날짜 2009.05.29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영적으로 신랑 되신 주님의 신부입니다. 장차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시면,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흠도 점도 없으신 신랑을 맞아 혼인 잔치에 들어갑니다. 이러한 혼인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땅히 예복을 갖춰야 하며, 영광스럽고 거룩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그에 맞는 거룩한 단장을 해야 합니다.

1.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14절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했습니다.
두루마기는 주님의 신부들이 입어야 할 예복을 의미합니다. 예복을 입으면, 자세가 반듯해지고 행실도 평소보다 품위 있게 변합니다. 마음가짐도 달라집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 예복, 곧 두루마기는 우리의 행실을 뜻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기 전에는 두루마기가 검은 색입니다. 온갖 죄악에 찌들어 새까맣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고 나면, 맑은 물로 부지런히 두루마기를 빨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할례하며, 거룩한 행실로 신부단장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거룩한 행실을 가지려면, 먼저 그 마음부터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루마기를 빤다는 것은 결국, 죄악으로 더럽혀진 마음을 정결하게 할례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이렇게 두루마기를 빠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했습니다.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했는데 생명나무에 나아간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이때 문들을 통하여 간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서 더 좋은 천국으로 침노해 들어가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낙원의 문으로 들어가 1천층으로, 다시 2천층으로, 3천층으로, 이렇게 문들을 통과해서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러 단계의 천국 문들을 통과하면 마침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즉, 문들은 새 예루살렘의 열두 진주문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단지 구원받은 성도들을 얻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낙원이나 1천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에 거할 참된 자녀들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들이 이 진주문을 통과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이 문들을 아무나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 왕정시대에는 왕이 사는 도성의 문을 지키는 군병들이 있었습니다. 성에 들어가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그 문을 통과할 수 없었고, 궁전의 문을 당당히 통과하려면 그만큼 더 큰 권세와 지위가 필요했습니다. 천국의 문을 통과할 때도 그에 합당한 자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가 있어야 하며,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더 큰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려면, 낙원이나 1천층, 2천층, 3천층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권세보다 더욱 큰 권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권세는 하나님을 닮은 만큼, 즉 두루마기를 빨아 성결을 이룬 만큼 위로부터 임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열심히 두루마기를 빨아서 문들을 통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권세를 얻었다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영혼이 잘되는 만큼 가정과 일터에서 영육 간에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가 불같이 따르며, 어둠과 질병의 세력들이 물러갑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신 말씀처럼, 참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권세와 능력이 따릅니다. 두루마기를 온전히 빠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도 뱀과 전갈을 밟으며 악한 영들의 능력을 제어하는 등 표적을 나타낼 수 있는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두루마기를 빨지 않는 자들은 성 밖에 있으리라

반대로 두루마기를 빨지 않는 자들은 너무도 복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생명나무에 나아가지도 못하고,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가지도 못하므로 성 밖에 남겨지게 됩니다. 성령을 받고 직분이 있다 해도, 두루마기를 빨지 않으면 구원조차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고백했던 사람이라 해도, 여전히 세상의 더러움 가운데 머물러 있었으므로 결국 성 밖으로 버림받는 것입니다.
15절에는 두루마기를 빨지 않는 자들의 대표적인 유형이 나옵니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했는데 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개들
베드로후서 2장 22절에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했습니다. 개는 더러운 배설물을 먹기도 하고, 자기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러운 죄악을 버린다 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지키기 못하여 다시 취하는 사람을 개에 비유합니다.
어떤 사람은 연단을 크게 받으면 좀 변화된 것 같다가도 얼마 후에 보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또 시험 환란이 오면 잘못을 회개했다가도 얼마 지나면 또 같은 죄를 짓고 회개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도 나름대로 기도생활을 하며 마음의 할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에 변화가 없습니다. 두루마기를 빨았다가 더럽히기를 반복하므로, 결과적으로 볼 때는 아예 빨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더럽습니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초신자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안 그럴게요, 버릴게요. 기도해 놓고, 반복해서 어겼으니 번번이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때 열심히 마음의 할례를 했다 해도 현재는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고 멈춰 있다면, 이 역시 자칫하면 구원받기가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열심히 노를 저어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노 젓기를 멈추면 배는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떠내려갑니다. 마찬가지로, 미지근하고 정체된 신앙은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세상 정욕과 불의가 틈타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떨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지 못하니 뭔가 허전하고 적적합니다. 결국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처럼 다시 육을 찾아 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장 16절에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했습니다. 차가운 신앙도 문제지만, 미지근한 신앙도 차가운 신앙과 마찬가지로 버림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술객들
이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서 설명한 적이 있는데, 더 자세한 내용은 [요한계시록 강해 87번]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술객은 점을 치거나 악한 영과 교통하는 사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다 하면서도, 사단의 역사를 단호히 차단하지 않고 계속 받아나가는 사람들도 술객입니다. 사단은 비진리의 생각을 통해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역사하는 악한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사단의 역사를 차단하고 진리의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비진리의 생각을 통해 사단의 역사를 계속 받아나가면, 점점 더 깊은 어둠의 역사를 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단의 역사를 받지만, 나중에는 마귀의 역사를 받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여 귀신의 역사를 받기도 합니다. 신접하는 술객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가증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3) 행음자들
행음자의 경우도 육적인 행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행음도 경계해야 합니다. 영적인 행음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성도들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세상을 취해 나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한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도, 세상에 마음을 하나씩 내어주기 시작하면 그 하나가 둘이 되고 또 셋이 됩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어지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런 사람들은 혼자서만 세상을 취해 나가지 않습니다. 주변의 성도들까지 미혹하여 함께 세상 것을 맛보게 하고,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마음이 식어지게 합니다.
육의 부부라 할지라도 서로 사랑할 때는 다른 이성에게 한눈을 팔지 않습니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적인 신랑이 되시는데, 이처럼 거룩하고 존귀하신 신랑을 두고 어떻게 신부가 세상에 한눈을 팔 수 있습니까? 창조주이자, 만유의 주가 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티끌 같은 인생들을 향해 사랑을 주셨습니다. 범죄 한 우리를 위해 사랑하는 독생자를 참혹한 십자가 형벌에 내어주셨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변화되게 하시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또, 말할 수 없는 천국의 영광을 예비해 두시고, 그곳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런 사랑을 알면서, 성령을 받았고 은혜를 체험했으면서 어떻게 주님을 배신할 수 있겠습니까?
명예와 권세, 물질이나 정욕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고 예배를 멀리한다면, 그는 주님의 사랑을 떠나 행음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원수 마귀 사단이 우는 사자같이 달려들어 자기의 밥으로 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대충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다해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지혜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우리 삶의 전부를 하나님을 위해 드리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되,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시는 쪽을 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살인자들
육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큰 죄가 됩니다. 영적인 살인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미움을 드러내지 않고 마음으로만 미워했다 해도, 영적으로 보면 이는 살인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육적으로 살인하는 것과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은 동일한 근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진리를 잘못 가르쳐서 형제를 실족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양 떼를 가르칠 때, "사람은 죄를 다 버릴 수 없습니다, 그냥 믿습니다 고백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설명했다고 합시다. 죄를 벗어버리기 힘들다, 좀 편하게 신앙생활하고 싶다 생각하던 사람은 얼른 그 말을 마음에 받아들입니다.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함께 사망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사망의 길로 가게 된 책임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물으십니다.
만일 교회의 머리 되는 일꾼들이 성전 안에서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나 세상 사업에 대한 대화를 했다고 합시다. 진리를 모르는 초신자들이 이런 장면을 보면,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따라할 수 있습니다. 혹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 성도들도 머리 되는 분들이 그러는 것을 보고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비진리를 행한 당사자들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머리 된 입장에서 본이 되지 못하고 실족하게 만든 사람들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9장 42절에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했습니다.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분들은 더욱 더 이런 말씀들을 기억하여 삼가 절제하며 근신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주의 종이나 일꾼의 입장에서 맡은 영혼을 잘 돌보지 못하여 잃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자신이 맡은 양 떼는 항상 영적인 꼴을 먹여서 믿음이 성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쉼 없이 영혼들을 돌아보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지켜 주고 축복을 받도록 늘 기도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양 떼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할 때는 그가 맡은 양 떼가 파리해지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럴 경우, 하나님 앞에 살인한 것과 같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나 선생 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책임이 중하다고 해서, 사명을 사모하지 않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양 떼를 맡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렇게 양 떼를 맡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진 것과 같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감당했을 때는 큰 영광이 됩니다.

5) 우상숭배자들
일반적으로, 우상숭배는 어떤 형상 앞에 나가 절하거나 미신적인 행함을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점을 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미삼아 한 번 해봤다" 하면서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또는 "가정의 화평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 하면서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결과적으로 악한 영과 접하며 숭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심히 가증한 일이며, "별 생각 없이 그랬다" 변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영적인 의미의 우상숭배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의미의 간음도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우상숭배와 영적인 간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는 그 사람의 믿음 수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비유를 들어, 남녀가 사랑하여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남편 외에 다른 이성을 사랑하여 마음을 내어주었다면, 이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영적인 의미의 간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며 믿음도 있고 체험도 있는 일꾼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이것이 바로 영적인 간음입니다.
그런데 아직 믿음이 연약한 초신자는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사랑하던 세상 것들을 한번에 다 버리기가 힘듭니다. 여전히 그대로 취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남아있고, 실제로도 버리지 못하여 계속 취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믿음이 연약하여 아직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초신자가 물질에 집착하여 아직 주일을 성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골로새서 3장 5절 후반에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한 대로, 물질이 그에게 우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상들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수록 점점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만큼 더 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합니다. 결국에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천국을 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까지 팔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주님을 영접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믿음이 자라지 않고 여전히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자라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우상을 섬김으로 인해 믿음이 계속 성장하지 않고 있다면, 결국은 그 안에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7년 환란 때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도 우상숭배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도 있고, 핍박 때문에 두려워서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결국 짐승에게 경배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이 됩니다. 그러므로 7년 환란에 떨어진 사람이 어찌하든 구원을 받으려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6) 거짓말을 좋아하고 지어내는 자
육적인 거짓말도 벗어버려야 하는 죄이지만, 영적인 거짓말은 더욱 중한 죄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것,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면서 어둠 가운데 행하는 것 등은 거짓말에 속합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마귀에 대해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라 했습니다. 거짓말을 좋아하고 지어내는 자들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크고 작은 거짓말 속에 파묻혀서 살지만, 성도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새 예루살렘을 사모하는 여러분이라면, 거짓의 근본 뿌리까지 뽑아버려야 합니다. 거짓말과는 좀 다른 종류처럼 보이는 비진리 중에도 그 근본을 살펴보면 거짓이라는 큰 뿌리에서 나오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약속을 임의로 어기는 것, 한 번 정했다가도 자기 유익을 좇아 변개하는 것, 정도를 걷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는 것, 외식하는 것, 동문서답하는 것 등은 결국 진실하지 않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이렇듯, 거짓이라는 큰 뿌리 하나만 뽑아내도 많은 비진리들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7년 환란 동안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미혹하는 세력들도 거짓말을 좋아하고 지어내는 자에 포함됩니다. 이는 곧 적그리스도와 짐승을 돕는 거짓 선지자의 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종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을 속여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게 합니다. 이들은 결국 유황 못에 들어가게 되고, 이들의 미혹을 받은 사람들도 성 밖 어둠에 버려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개들, 술객들, 행음자들, 살인자들, 우상숭배자들,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이 성 밖에 있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사소한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혹은 미움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믿음의 분량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는 회개하여 용서받을 수 있지만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직분을 받아가면서도 계속 죄성들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 상황이 다릅니다. 이럴 때는 구원을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미지근한 신앙에 머물다가 결국 구원받지 못할 상황에 처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구원을 받고, 어느 정도까지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궁금해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을 사모하는 분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까지 죄성을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성을 온전히 다 벗어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랑하면 어떤 죄악도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는 축복은 개척 이후 계속해서 받아왔습니다. 2009년에는 이 축복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가나안성전에 들어갈 때쯤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했습니다. 이 은혜의 때를 결코 놓치지 말고 꼭 붙잡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와 능력을 물 붓듯이 부어 주시는 2009년, 여러분 모두가 반드시 두루마기를 깨끗이 빨아 큰 권세를 얻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랫글 : 요한계시록 강해(100)
윗글 : 요한계시록 강해(97)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