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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4년 기도제목(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행 19:12 날짜 2013.12.31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3-2014년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이 복된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전국 및 전 세계 각지에서 오신 주의 종들과 성도님들께 감사드리며, GCN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예배에 동참하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13년 한 해 동안 각 분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3년은 시작부터 발해진 근본의 소리로 인해 많은 변화의 열매를 맺은 참으로 의미 있고 뜻 깊은 한 해였습니다.

성도님들도 참 열심히 달려온 한 해였고, 저 역시 그 어느 해보다도 진액을 다 쏟아 부었던 한 해였지요. 그 열매가 지난 12월 25일에 믿음의 분량으로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다.

또한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오늘도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신앙을 점검받게 되지요. 고전 3:12에 말씀한 대로 일 년 동안 각 사람이 쌓은 공력을 각각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 이렇게 여섯 가지로 분류하여 평가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 비록 지난 12월 25일에 믿음의 분량을 점검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내가 올 한 해, 하나님 앞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 앞에 펼쳐진 책들에 정확히 기록이 되지요. 하지만 그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은 새로운 시작점입니다. 새로운 한 해의 첫 단추를 꿰는 시간이지요. 그러니 얼마든지 새로운 마음, 새로운 각오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그 첫 시간을 멋지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시간 만민을 통해 이루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우치심으로 이 복된 ‘사역(使役)’에 꼭 함께 동참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송구영신예배에는 신년기도제목 네 가지 중에 두 번째 제목인 ‘사역’에 대한 말씀을 증거합니다. ‘사역’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시킴을 받아 어떤 작업을 함’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는 다릅니다. 영적으로 사역이란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는 것’인데요, 이때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은 사람의 생각과 뜻,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하나님의 방법대로, 중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요.

지난 32년간의 만민의 사역을 되짚어 보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영적인 사역이 어떤 것인지가 이해되실 것입니다. 본 제단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섭리대로 순종했습니다.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 맡겨드렸지요.

또한 억지로 힘들게 사역한 것도 아닙니다. 현실을 보면 너무 막막한 상황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달려왔지요. 뿐만 아니라 저는 오직 아버지의 마음에 맞춰 하나하나 일들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오늘날 전 세계에 우뚝 선 만민의 제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세우셨지요.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이 정도까지가 아니셨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그 이상의 더 큰 계획을 품고 계셨지요.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원대한 사역에 함께 동참할 수많은 영의 장수들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에 동참하려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아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서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자원하여 순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바로 영의 사람 즉 영적 장수가 되어야 하지요. 영이 아니고서는 이 마지막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품으신 이 크고 놀라운 뜻과 섭리를 온전히 이루어드릴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아시는 예지예정의 하나님께서는 저를 먼저 만나 주셨고 32년 전 만민 제단을 세우게 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이 제단으로 불러 주셨으며 그중에 고르고 또 골라 연단하셔서 바로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이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 이 제단을 통해 그리고 바로 여러분을 통해 이루시려는 섭리는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이미 아시다시피 세계 교구화입니다. 즉 지구 상에 살아가는 수많은 영혼들, 그들 중에 한 영혼이라도 더 어떻게든 구원의 대열에 동참하도록 하시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무기가 필요했고, 그 무기란 영적으로 ‘말씀’과 ‘권능’입니다. 죄악으로 관영하여 빛을 찾아보기 힘든 이때에 온 세상을 비출 성결의 말씀이 필요했고, 이 증거되는 말씀이 참임을 증명해 줄 놀라운 권능이 필요했지요.

막 16:20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하신 바로 이 말씀을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도무지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하나님을 부인하려는 시도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이때에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말로만 되지 않습니다.

오직 영적인 권세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무한한 영의 세계를 본 듯이 만진 듯이 밝히 알려 줄 수 있는 말씀이 필요하지요. 이와 함께, 이 말씀이 참이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오늘날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시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하는데 그 증거가 바로 권능입니다. 그것도 보통 권능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그 권능의 역사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경천동지할 놀라운 권능이 필요하지요.

그렇다면 누가 과연 이 마지막 때에 이런 사역을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느 교회가 과연 이 사역을 감당하겠는지요? 돈이 많다고 해서 될까요? 성도 수가 많다고 해서 되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알아주는 권세자들, 세상에서 인정받는 학자들이 많다고 될까요?

고전 4:20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능력이란 영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이지요.

그런데 이 능력은 육적으로 권세 있고 지식과 학문을 많이 쌓아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오직 이 능력은 아버지 하나님을 닮은 만큼 즉 성결되어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온 만큼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제단과 성도를 택하셨고 지난 32년의 세월 동안 그 준비를 시켜오신 것이지요. 그리고 최근 3년여 간을 통해서는 막바지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며 급속한 영의 흐름을 주도해 오셨습니다.

성결 된 자녀들이 필요하셨기에 그래서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온 영적 장수들이 반드시 필요하셨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죄성을 근본 뿌리에서부터 뽑아낼 수 있도록 때로는 혹독하리만큼 강하게 몰아치셨지요. 그렇게 하셔도 여러분이 능히 믿음과 사랑으로 그 과정들을 통과하여 결국 반석으로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올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수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영의 열매들이 곳곳에 맺히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지난 32년을 사역해 오면서 물론 성도님들이 변화되어 열매로 나올 것을 믿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언제 저들이 변화되어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오게 될까’ 하며 홀로 전전긍긍할 때도 많았습니다.

때가 급한 것은 너무나 잘 아는데 성도님들의 믿음의 수준이 아직은 제가 바라는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지요. 제가 원하는 영적 장수는 정말 제 마음을 알고 저와 하나 되어 저에게 주신 권능을 가지고 전 세계로 나가 마음껏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분들이었습니다.

물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도를 보장하사 많은 분들이 기도받은 손수건을 들고 세계로 나가 권능을 펼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지요. 아직은 영의 사람이 아니라도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의 기도를 받고 나가 권능의 사역을 펼쳤던 제자들이 있었지요. 그들이 아직 온전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기도로 보장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이 이 땅에 오시고 성령의 사역을 통해 권능을 베풀게 되면서 부터는 바로 성결된 제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권능의 사역이 펼쳐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복음이 온 세상으로 널리 전파될 수가 있었고요. 앞으로 우리가 이룰 사역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권능을 이제는 성결되어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온 영적 장수들을 통해 온 세상 가운데 펼치기 원하시지요.

그래야 사단도 송사하지 못하는 것이고, 짧은 시간 안에 동시다발적으로 세계 복음화를 이루며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교구화시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역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영과 온 영의 종들이 저에게 기도받은 손수건을 가지고 나가 권능의 사역들을 펼쳐나가고 있지요. 성결의 복음으로 무장되어 권능의 손수건을 들고 나아가니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라 할지라도 능히 그 앞에 무릎 꿇게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민의 성도님들이라면 이제 대부분이 저에게 기도받은 손수건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미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성도님들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체험하셨지요.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는 것은 물론 죽어가던 동물과 식물도 살려내었습니다. 생명이 없는 기계라도 손수건에 담긴 권능 앞에 순종했지요. 질병과 균으로 인한 웬만한 질병은 우리 일꾼들이 손수건으로 기도해 주어도 치료받아 깨끗해집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 정도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셨지요. 여러분이 사실 기도받은 손수건에 담긴 권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아신다면 놀라실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손수건에 담긴 권능의 10~20프로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지요. 왜 그럴까요? 아직 영으로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오면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활용하는 정도가 육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커집니다. 물론 영으로 들어와서도 얼마나 더 깊이 영으로 들어오느냐에 따라 그 정도는 또한 달라지고요.
더 나아가 온 영으로 들어오면 그만큼 권능을 활용하는 정도는 이전에 영에 있을 때와는 확연히 차이납니다.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주 커다란 댐이 있습니다. 서울시에 사는 시민들이 몇 년을 먹어도 남을 만큼의 물이 이 댐 안에 담겨 있지요. 그런데 물을 끌어오는 파이프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끌어올 수 있는 물의 양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댐에 물이 많아도 그 물을 끌어올 수 있는 파이프가 작으면 그만큼만 물을 끌어 올 수가 있지요. 파이프가 커지는 만큼 더 많은 물을 끌어올 수가 있는 것이고요. 여러분의 믿음이 반석을 지나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는 만큼 여러분이 댐에서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는 파이프가 커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온 영에 해당하는 파이프가 되면 이때는 원하는 만큼 마음껏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차원이 되지요. 물론 온 영도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갈수록 또 더 큰 역사를 베풀 수 있지만 일단 온 영으로 들어오면 이때는 권능의 1단계부터 4단계까지를 다 활용할 수 있는 차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가령 영으로 이제 막 들어온 사람을 직경이 1미터 정도되는 파이프에 비교하면 이때 비록 열 사람이 똑같이 1미터 정도 되는 파이프라고 해도 모두가 똑같은 양의 물을 끌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파이프의 직경은 똑같아도 누구는 그 파이프를 꽉 채워서 물을 끌어 올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누구는 파이프의 반쯤 채워서 물을 끌어 올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마치 같은 굵기의 파이프라도 수도꼭지를 얼마나 여느냐에 따라 나오는 물의 양이 달라지듯이 같은 영이라도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가 난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능력의 차이는 기도의 양에 달렸지요. 얼마나 불같이 많은 기도를 쌓았느냐에 따라 같은 분량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온 영으로 들어와도 마찬가지이지요. 같은 온 영의 분량에서도 누가 더 기도를 많이 쌓았느냐에 따라 권능을 활용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성도 여러분, 이 권능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제가 손수건에 기도하여 담았고 여러분은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끌어내어 사용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때 손수건을 사용하는 분이 그 안에 권능을 불어넣어 준 목자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따라 손수건을 통해 나타나는 권능의 사역이 차이 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영 이상으로 인정받은 분들은 일단 목자에 대한 신뢰를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입니다. 반면에 육에 있는 이상 아무리 입술로는 목자를 사랑하고 신뢰한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사단이 이에 대해 송사하기 때문에 육에 있는 이상은 아직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사용하는데 한계가 따릅니다.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부자인 사장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버지에게 아들이 있지요. 이 아들은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꼭 닮아서 아버지의 마음과 뜻에 맞추어 일들을 이룹니다. 그러니 아버지도 아들을 신뢰할 수 있지요. 이럴 때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 되었을 때 아버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아들이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가져다가 쓰도록 허락할 것입니다. 아들이 함부로 돈을 허비할 리도 없고 돈을 사용할 때도 아버지의 마음에 맞추어 가장 필요한 곳에 쓸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아들이 굳이 일일이 허락받지 않아도 아버지의 돈을 마음껏 가져다 쓰도록 사장인 아버지는 전권을 위임한 것입니다.

반면에 아버지인 사장에게는 다른 여러 부하 직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하 직원들과는 앞서 말씀드린 아들과 같은 그런 신뢰로 하나 된 관계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 필요한 재정을 그때마다 청구하여 사장으로부터 결재를 받고 타서 써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부하 직원이 사장의 결재도 없이 임의대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가져다 쓰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주변으로부터 제재를 받게 되지요. 사장의 결재 도장이 없으니 원하는 만큼 재정을 줄 수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바로 목자와 하나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영적으로는 이러한 상황과 비슷합니다. 바로 목자와 신뢰로 하나 된 사람이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마음껏 사용하고자 할 때는 사단도 거기에 대해 송사를 못합니다.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처럼 사용할 수 있지요.

반면에 목자와 신뢰로 하나되지 못한 사람은 손수권에 담긴 권능을 마음껏 사용하고자 해도 사단으로부터 송사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아직 신뢰로 하나되지 못한 저 사람이 저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어떻게 저렇게 크게 쓸 수 있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쉽게 말해 아직 자격이 안 된다는 말이지요. 요15: 5 전반절에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된 만큼 많은 과실을 맺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런 원리는 목자와 여러분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목자와 신뢰로 연결되어 하나 될 때 목자에게 주신 권능이 여러분을 통해 많은 열매로 맺힐 수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지난 32년간, 좀 더 실제적으로는 지난 3년 여 간 목자와 여러분 사이의 신뢰 관계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폭적으로 키워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목자를 믿고 신뢰하여 결국 반석을 지나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도록 역사해 오신 것이지요. 이제 이렇게 준비된 여러분이 바로 201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저와 함께 이 제단에 주신 섭리를 이루기 위한 ‘사역’을 펼쳐나가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신년기도제목을 통해 지금 바로 이것을 선포하고 계신 것이지요. 이미 준비된 분이라면 불같은 기도를 통해 2014년 마음껏 목자의 권능을 펼치십시오. 아직 준비가 좀 덜 된 분이라도 금년 초를 넘기지 말고 신속히 준비를 마쳐서 이 사역에 멋있게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때가 다 되었음을 아실 것입니다. 사 6:8에는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저 또한 이 시간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저와 본 제단에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제가 누구를 보내야겠습니까? 누가 가겠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나를 보내소서” 고백하기를 원하는 마음이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고백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결을 이루어 준비된 자만이 이 고백을 담대히 이룰 수 있지요.

저는 지금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 모두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 고백을 담대히 이룰 수 있는 그날을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해 주지 않으시렵니까? 저와 함께 멋지고 창대하게 이 귀한 ‘사역’에 동참해 주지 않으시렵니까?

올해 2014년 여러분의 멋진 활약을 기대합니다. 꼭 손수건을 들고 나가는 분들만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있는 곳 가정, 일터, 사업터에서 이 권능의 사역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결의 말씀과 권능의 손수건으로 무장한 전 세계 만민의 주의 종과 일꾼, 성도님들! 우리 모두 힘차게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으로 온 세상을 가득히 덮어 갑시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이 아름답게 임하기를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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