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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옥(1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마 12:31-32 날짜 2009.11.01
성령은 우리 주님과 함께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훼방, 모독, 거역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성령을 훼방, 거역, 모독한 영혼들이 받는 형벌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가족이 함께 성령을 훼방함으로 받는 형벌

아랫음부에는 일가족이 함께 형벌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딸이 성령을 심히 대적할 때 함께 범죄한 부모와 오라비가 함께 형벌 받는 경우이지요. 나름대로 봉사도 하고 충성한다고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꾼의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권세를 휘두르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지요. 마음을 할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에 가득한 혈기, 탐심 같은 악이 이런 악한 행함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들 가족의 악행에 대해 징계가 임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중한 병에 걸려 사망의 문턱에 이르렀지요. 그제야 가족들은 눈물로 회개하면서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간절하게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단 가족들의 회개와 주의 종의 중보 기도를 받으시고 그 아버지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뜻밖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 이 아비의 영혼을 불러 가면 간신히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겠지만 지금 생명이 연장되면 나중에는 구원조차 받을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이었지요. 얼마 후 이 말씀처럼 ‘이 영혼이 차라리 아팠을 때 천국에 가는 것이 더 나았겠구나.’ 싶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교회의 큰 일꾼이었던 딸이 사단의 역사를 크게 받아 교회를 배신하고 떠나 버렸지요. 그러자 가족들도 다 함께 떠나 버렸습니다. 그냥 떠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성령을 훼방하며 용서받지 못할 죄들을 범했습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의 은혜로 수명이 연장되었던 아버지는 끝내 죽고 말았습니다. 예전에 지극히 적은 믿음으로나마 주 안에 있을 때 죽었더라면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서는 믿음을 팔아 버렸으니 어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가족들 또한 각자의 죗값에 따라 아랫음부에 떨어집니다. 그중 어머니와 오라비의 영혼은 아버지의 영혼과 같은 곳에서 함께 형벌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이 형벌 받는 장소에는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이 있습니다. 탁하고 피비린내 나는 공간에 귀신이 흐느끼는 듯한 신음 소리와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까마득히 높은 절벽 한복판에는 마치 세 개의 점과 같이 세 영혼이 붙어 있습니다. 거의 90도로 경사진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지요. 거칠고 단단한 절벽을 맨손과 맨발로 올라갑니다. 손발과 무릎 같은 데는 마치 거친 사포로 문지른 것처럼 살갗이 벗겨지고 헐어서 피가 낭자합니다. 이처럼 이들이 살갗이 너덜너덜해지는데도 쉼 없이 절벽 위쪽으로 올라가는 까닭은 뒤쪽에서 날고 있는 지옥사자 때문입니다.

지옥사자가 손을 드는 순간 지옥사자의 분신 같은 벌레들이 절벽 위에 흩뿌려집니다. 마치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온 작은 물방울들이 바닥에 무수히 흩뿌려지듯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벌레들이 절벽 표면을 새까맣게 덮지요. 이 벌레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세 영혼을 뒤쫓기 시작합니다. 절벽을 타고 재빨리 위로 기어 올라가지요. 만약 여러분이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는데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 수백 마리가 거실 바닥을 뒤덮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등골이 오싹할 것입니다. 독거미나 전갈 등 치명적인 독을 가진 벌레라면 더 그럴 것이구요. 그 수많은 벌레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사각거릴 때 그 소리를 듣고 있자면 온몸에 소름이 끼칠 것입니다. 더구나 이 벌레들이 여러분에게 달려들어 발과 다리를 타고 기어올라 온몸을 뒤덮는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아랫음부에서는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도 아니고 수천인지, 수만인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벌레들이 먹이로 주어진 영혼들을 향해 달려듭니다. 절벽에 붙은 세 영혼은 이 벌레들을 보고 기겁을 하여 미친 듯이 절벽 위쪽으로 기어 올라갑니다. 벌레들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려고 안간힘을 쓰지요. 혼비백산 달아나는 와중에 이들은 자기가 더 빨리 올라가기 위해 서로 짓밟고 짓누릅니다. 아들이 부모였던 두 영혼을 짓누르기도 하고 부부지간이었던 두 영혼이 서로를 짓밟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서로 욕하고 다투지요. 이렇게 악을 발하며 절벽을 올라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벌레들에게 따라잡히고 말지요. 벌레 떼는 발과 발가락은 물론 손, 머리 어디 할 것 없이 온몸을 뒤덮고 물어뜯기 시작합니다. 이때 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니 손사래를 치지도 못하지요. 자기 몸을 갉아 먹도록 놔둘 수밖에 없습니다. 벌레에 뜯기는 고통으로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어찌할 바 모르고 몸을 뒤틀며 더욱 큰 악을 발합니다. 서로를 욕하고 저주하지요.

이처럼 자기 유익을 위해 서로를 짓밟고 욕하면 그 근처의 지옥사자들이 이 비참하고 추악한 모습을 보며 희희낙락합니다. 그러다가 이들의 고문을 주관하는 지옥사자가 손을 내밀어 순식간에 벌레를 다 거둬들입니다. 그렇다고 절벽에 오르는 일을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잠시 후면 지옥사자가 벌레를 다시 풀어 놓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파른 절벽을 맨몸으로 오를 때 살이 헤지는 고통이 결코 작지 않지만 벌레 떼가 언제 달려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크지요. 그래서 손발과 무릎이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공포와 정적 속에 끝도 없이 절벽을 기어 올라갑니다. 또한 이 절벽 위밖에는 딱히 벌레를 피해 달아날 곳도 없습니다. 물론 절벽 위로 올라간다고 해서 벌레를 따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코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지만 “이 절벽을 올라가면 언젠가는 그 끝이, 정상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 보는 것이지요.

2. 입술의 말로 성령을 심하게 대적한 영혼이 받는 형벌

성경을 보면 곳곳에 말조심을 강조하는 구절이 많습니다. 잠언 18장 21절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했지요. 입으로 진리의 말, 선한 말만 내는 사람은 그 입으로 좋은 열매를 먹게 됩니다. 반면에 악한 말을 하고 믿음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그 입으로 악한 열매를 먹게 되지요. 이처럼 말의 열매는 정확하기 때문에 경솔하게 내뱉은 몇 마디 말로도 큰 환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가족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가족이 사고를 당해서라도 회개하면 좋겠다.” 하고 말하거나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 말이 즉각 사단의 귀에 들어가고 사단은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송사하기 시작합니다. “저가 그 입술에서 낸 말대로 해야 한다.”고 송사하지요. 이 송사가 공의에 맞을 경우 그 말대로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불구가 되는 등 가지가지 고통을 받지요. 만약 이렇게 해서 가족이 회개한다고 해도 굳이 이런 고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족들을 더 좋은 방법으로 구원하실 수 없겠습니까? 얼마든지 더 좋은 방법, 선한 방법으로 가족들을 구원하실 수 있지요.

어떤 사람들은 비진리의 말을 하여 연단을 자초하고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회개해야 연단이 빨리 끝날 텐데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지도 못하지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입술의 말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입술에 늘 파수꾼을 세워서 근신하고 절제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름대로 선한 의도로 말했다고 해도 그 말이 진리의 말, 선한 말이 아니면 이처럼 그 말로 인해 연단이 따르기도 합니다.

하물며 고의로 거짓말을 지어내어 주님의 몸 된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훼방하고 악한 말로 모독한다면 그 보응이 얼마나 크겠는지요? 더구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받는 종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것은 곧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장차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때 그 말에 대해 반드시 심문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6절에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말씀했지요. 말로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는 사람은 사단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다가 어둠에 속한 자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지금 말씀드릴 사례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이 영혼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직분을 맡아 봉사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하나님과 목자를 지극히 사랑하며 교회와 양 떼를 사랑하는 성령 충만한 일꾼이었습니다. 가족 중에는 불치의 병으로 불구가 될 상황에서 기도를 받고 치료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가 기도를 받고 살아난 경우들도 있었지요. 하나님의 사랑받는 제단의 양 떼로서 그와 가족들이 받은 은혜와 축복의 체험들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으니 겉으로는 충만하여 여러 직분을 맡아 열심히 봉사했지만 정작 중요한 마음의 할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시험이 오니 미혹을 받아 교회를 떠나고 말았지요. 자녀들이 먼저 사단의 역사를 받았고 이 영혼은 자녀들에게 미혹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받은바 은혜를 저버리고 떠나 버렸지요. 교회를 나간 후에는 교회를 훼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몇 마디 말을 내뱉은 정도가 아니라 마치 심방하는 것처럼 성도들을 찾아다니며 생명의 제단을 떠나도록 미혹했습니다. 심지어 멀리 지방에 있는 성도들에게까지 전화하거나 찾아가서 미혹하기에 이르렀지요. 그가 믿음이 작은 연고로 교회를 떠났다 해도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불분명한 사실을 무턱대고 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간을 두고 잠잠히 지켜보았을 것이고 무엇이 진정 참인지 분별하려 했겠지요. 그랬다면 그나마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기회라도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혼은 자기 악을 이기지 못해 입술로 너무 많은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한 보응으로 장차 아랫음부에서 참으로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지요.

이 영혼이 아랫음부에 가면 지옥사자는 가장 먼저 말로 성령을 심하게 대적한 그 입을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 버립니다. 입의 형태는 사라지고 입이 있던 자리에 인두 자국이 찍히지요. 그리고 그 영혼을 한 사람이 딱 들어갈 만한 크기의 유리관 속에 집어넣습니다. 유리관의 양 끝, 곧 머리 쪽과 발 쪽은 마개로 막습니다. 그 마개에는 쇠로 된 손잡이 같은 것이 꽂혀 있지요. 샴페인 병마개에 박혀 있는 손잡이를 생각하시면 좀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손잡이 하나는 유리관 속 영혼의 머리와 또 하나는 다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유리관의 양 끝에 지옥사자들이 서서 마개에 달린 손잡이를 하나씩 잡고 돌리면 안에 있는 영혼은 꽈배기처럼 꼬입니다. 꼬이고 또 꼬이다가 어느 순간에 가면 눈, 코, 입을 비롯하여 몸에 난 구멍마다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마치 걸레를 쥐어짤 때 구정물이 나오는 것처럼 온몸의 피와 진액이 쏟아져 나오지요.

뼈는 으드득 소리를 내며 뒤틀리고 으스러지며 근육과 피부는 투둑투둑 찢어집니다. 내부 장기들은 부서지고 터져 버리지요. 유리관은 포도주 병처럼 그 몸에서 짜낸 벌건 체액들로 가득 찹니다. 비틀어 짜고 또 짜서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 상태가 되면 지옥사자들은 그를 잠시 내버려 둡니다. 원래의 몸으로 회복되게 놔두지요. 그러나 그 몸이 원래대로 회복되는 것이 이 영혼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회복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다시 온몸을 비틀고 쥐어짜기를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회복되는 그 시간도 결국은 다음 고문을 준비하는 시간일 뿐이지요. 성령을 훼방한 영혼들이 받는 또 다른 형벌들에 대해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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