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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옥(17)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마 12:31-32 날짜 2009.11.08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성령을 훼방하여 아랫음부에 간 영혼들이 받는 형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중에는 더 이상 하나님께 이런 슬픔을 드리는 일이 없도록 오늘 말씀을 마음에 굳게 새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1. 한때 주의 종이었던 사람이 교만해지면서 하나님을 대적한 경우

이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 연약함과 질병을 치료받고 갖가지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 후 금식하고 불같이 기도하며 마음에 할례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심방하고 전도하며 뜨겁게 충성했지요.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따라 일하므로 열매도 내었습니다. 뭇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사랑받는 일꾼이었다가 결국 주의 종이 되었지요. 그런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을 듣기 시작하니 마음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게 되었지요. 매사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할례하기를 멈추어 버린 것입니다. 아직 마음에는 혈기와 시기 질투가 자리 잡고 있는데도 더 이상 버리고자 애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롭고 옳은 사람을 보고도 판단 정죄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마음에 감정을 쌓아 두었지요. 사람이 교만에 사로잡혀 악이 발동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큰 악이 나옵니다. 결국 자신 스스로도 통제할 수가 없고 어느 누구의 권면도 듣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맙니다. 악을 쌓고 또 쌓아가다가 결국 사단의 올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시험이 오자 마침내 미혹받아 하나님을 대적하기에 이르렀지요.

우리의 구원은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갈 때까지 온전한 구원을 이뤄 나가야 합니다. 즉 온전히 성결될 때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근신해야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만난 후 변함없이 생명을 다해 충성한 사도 바울조차도 늘 겸손하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보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백하지요.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권면합니다. 지금 설명하는 영혼은 마음에 아직 악이 많은데도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여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아랫음부에 떨어진 이 영혼은 지옥사자 형상의 기계에 의해 고문을 받습니다. 이 기계는 그 크기가 보통 지옥사자의 몇 배나 됩니다. 지옥사자에게서 느껴지는 음산함 위에 차가운 기계의 재질이 더해져서 섬뜩한 느낌을 주지요. 이 기계의 손에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손톱이 있는데 얼마나 긴지 고문받는 영혼의 키를 넘을 정도입니다. 이 기계는 오른손으로 영혼의 목을 잡아서 들어올린 후에 왼손의 손톱으로 머리를 잡아 비틀어 돌립니다. 이때 날카로운 손톱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지요. 머리를 쑤시는 아픔에 이 영혼은 기계의 손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칩니다.

그러고 있노라면 눈앞에 스크린 같은 화면이 펼쳐집니다. 그 화면에는 그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 생생하게 재현됩니다. 맨 처음 은혜받고 성령 충만하여 밝은 얼굴로 감사의 찬양을 올리던 장면, 행복한 웃음이 가득한 얼굴, ‘주의 종으로서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리라’ 하고 열심히 달려가므로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았던 장면들이 하나씩 하나씩 눈앞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예전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종이었는데 새 예루살렘의 영광 중에 거할 소망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이처럼 지옥에서 형벌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구나.’ 과거와 현재가 뚜렷한 대조를 이루므로 이전에 행복했던 기억들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이 영혼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에 정신적인 고통까지 더해지는 것이지요.

고통을 견디다 못해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피땀으로 범벅이 되고 산발이 된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다고 고통이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눈을 가린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것도, 귀를 막는다고 해서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다가 잠시 고문 기계가 이 영혼을 바닥에 내려놓으면 구경하던 지옥사자들이 몰려옵니다. “네가 무슨 하나님의 종이었더냐? 네가 무슨 교회의 일꾼이었더냐? 너는 사단의 사도가 되었고 결국은 이렇게 사단의 밥이 되었도다.” 하고 낄낄거리며 조롱합니다. 이렇게 조롱하는 소리를 들으며 처절하게 울부짖을 때 고문 기계의 오른손이 다시 내려옵니다. 두 개의 손가락으로 영혼의 목을 쥐고서 다시 허공으로 들어 올리지요. 기계의 목 즈음 높이에 이르면 날카로운 손톱으로 머리를 비틀고 쑤셔대면서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고문 과정이 심판받아 지옥의 유황못에 들어갈 때까지 멈추지 않고 거듭거듭 반복되지요.

2. 열심히 충성하다가 마음의 할례를 멈추고 하나님을 대적한 경우

이 사람도 주의 종으로서 성도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고 크고 중한 직분들을 많이 맡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사명은 열심히 감당한다고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도를 쉬어 버렸고 마음의 할례를 멈춰 버렸지요. 본래 그의 마음에는 명예와 재물에 대한 탐심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 안에 이런 악이 있음을 깨닫지 못했지요. 이런 가운데 마음의 할례를 멈춰 버렸으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죄성들이 독버섯처럼 점점 더 크게 자라났습니다. 그러던 중에 시험을 만나자 가장 앞장서서 교회를 지켜야 할 일꾼이 교회와 성도들을 배신하고 떠나 버렸습니다. 사단의 역사를 받아들임으로 교회를 훼방하는 큰 죄를 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교회의 머리급 일꾼이었던 만큼 그의 행동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부 일꾼과 성도들까지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훼방하게 만들었지요. 이로 인해 그의 죄과가 더 무거워졌습니다.

앞으로 그가 아랫음부에 이르게 될 때는 가룟 유다처럼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아니지만 나무 기둥에 묶인 채로 형벌 받게 됩니다. 손발도 까딱하지 못하도록 묶여 있는 그에게 지옥사자가 어떤 화면을 보여 줍니다. 바로 그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할 때 가장 행복하고 충만했던 시절의 모습, 주의 종으로서 뜨겁게 열심 내는 모습들을 보여 주지요. 계속 그처럼 충만하게 달려갔다면 큰 영광과 축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탐심과 거짓을 버리지 않고 범죄해 나가므로 이런 소중한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지요. 이처럼 화면을 보여 주는 이유는 예전과 달리 비참해진 처지를 상기시킴으로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 바로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는 것이지요.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이 한 컷 한 컷 지나갈 때 지옥사자가 이 영혼을 향해 “너의 욕심이 이와 같은 열매를 맺었도다.” 말합니다. 그러면 위쪽에서 그를 향해 검은 열매 하나가 ‘툭’ 하고 떨어집니다. 그가 묶여 있는 곳의 천장에는 시커먼 주머니 같기도 하고 둥그런 열매 같기도 한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이 열매들이 무엇인가 하면 묶여 있는 이 영혼을 추종했던 영혼들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에 동조하여 이 영혼과 같이 아랫음부에 떨어진 이들이지요. 고문 중에 팔, 다리, 몸통이 잘려서 머리만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면 전도의 열매를 맺습니다. 즉 함께 천국에 갈 영혼들을 맺지요. 이런 것처럼 나무에 묶여 있는 영혼은 함께 지옥에 갈 영혼들을 열매로 맺은 것입니다. 자신의 탐욕을 좇아 이 영혼들을 꾀어 자신의 추종자로 만들고 함께 악을 행하게 하여 지옥에 오게 했지요. “네 욕심이 이처럼 열매를 맺었구나.” 하는 지옥사자의 말이 떨어지면 이것이 하나의 신호가 됩니다. 이 말을 뱉음과 동시에 시커먼 주머니 같은 것이 터지면서 그 안에서 머리가 ‘툭’ 떨어져 나오지요.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었고 얼굴은 피투성이에 입술은 부르텄으며 고통으로 눈을 부릅뜬 경우도 있습니다. 머리가 천장에서 떨어지면 굴러가다가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묶여 있는 영혼에게 딱 달라붙습니다. 먼저 떨어진 머리가 우선 다리를 물고 늘어집니다. 그다음 떨어진 머리는 독기 어린 기세로 팔을 물어뜯습니다.

이렇게 화면에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지옥사자가 말을 내뱉을 때마다 머리가 하나씩 떨어집니다. 나중에는 팔이며 다리며 온몸에 머리들이 주렁주렁 달리지요. 그러면 이 묶여 있는 영혼은 주렁주렁 열매 맺은 나무 같은 모습이 됩니다. 그를 물고 있는 날카로운 이에서 강한 독성이 나와 피부는 물론 뼈 속까지 침투합니다. 물린 부위는 단단해지면서 검푸른 색으로 변합니다. 그 독이 얼마나 강한지 벌레나 짐승에게 물리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이지요. 묶인 자를 물어뜯는 영혼들은 자기가 악해서 하나님을 대적했으면서도 끊임없이 남을 탓하고 원망합니다. “저 때문에 내가 아랫음부에 떨어졌다.”며 묶인 자를 탓하며 원망하지요. 그 원망이 얼마나 깊겠고 머리만 남기까지 찢기고 잘린 고통은 또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렇게 말도 못할 고통과 원망으로 인해 독기를 품고 물어뜯으니 치명적인 독성이 나오지요. 나무에 묶인 영혼은 자신과 이 영혼들이 자신의 탐욕 때문에 이렇게 끔찍한 형벌을 받는 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러나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의 고통으로 악에 받쳐서 오히려 선하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자신을 물어뜯는 머리들을 저주하지요.

3. 성령 충만해도 마음의 할례하지 않으면 결국 변질

초대교회가 왕성하게 일어나던 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나니아는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 앞에 가져갑니다. 그런데 이때 원래는 전부를 드린다고 했는데 막상 드리려니 아까워서 일부는 숨겼지요. 이때 성령의 주관을 밝히 받던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도행전 5장 3절에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절 후반절에는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이 말을 들은 아나니아는 엎드러져 혼이 떠났지요. 사도들을 속인 것은 단순히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속인 무서운 죄이기 때문입니다. 혼이 떠났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했음을 알려 줍니다. 세 시간쯤 지나서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도 사도들 앞에 갔는데 남편과 마찬가지로 성령을 속이므로 비참한 죽음을 맞고 말지요.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처음에는 성령을 받고 충만하여 뜨겁게 충성하는 일꾼들이었을 것입니다. 자기 소유를 팔아 교회를 섬긴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차츰차츰 충만함이 식어 갔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어 버리면서 마음의 탐욕이 눈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거짓말을 하기까지 그 마음이 죄를 짓는 데에 담대해졌지요. 이렇게 저주를 받아 즉사했다는 것은 그동안에도 성령을 속이는 큰 악들을 짐짓 지으면서 죄의 담을 쌓아 왔음을 알려 줍니다. 이들은 결국 성령이 소멸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지요.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누구든지 충성하고 봉사할 수가 있습니다. 직분도 받을 수 있지요. 그러나 마음에 할례해 나가지 않으면 처음 마음이 변질되어 충만함이 식어 버리기가 쉽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세상이 틈타고 그러다 사단의 미혹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으로 돌변하기도 하지요. 결국 성령이 소멸되어 구원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 중심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금 어떤 직분을 맡고 있나? 어떤 일을 하고 있나?’가 아니라 ‘내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을 닮았나?’ 이것을 척도로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정녕 결단하여 더럽고 추한 죄로 물든 마음 가죽을 베어 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해도 담대히 주님 품에 안길 수 있는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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