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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계명(7)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출20:13 날짜 2006.09.24
오늘은 십계명 중 제6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하신 말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살인하지 말라' 하신 말씀의 의미

남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이 중한 범죄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치는 자살 역시 살인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의 생명에 대한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이라 해서 자신이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낙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모태에 있는 태아라 할지라도 그 또한 하나의 사람이기에 부모의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생명에 대한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며, 살인 자체도 무서운 죄인데 더구나 낙태라는 것은 부모가 자녀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니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출 20:13) 하신 것은 단순히 문자적인 의미로 사람의 육의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것만이 아니라 '영적인 살인' 또한 금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살인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2. 영적인 살인이란?

1) 진리에서 벗어나는 말과 행동으로 상대의 영혼을 실족시키는 것
실족(失足)이란 '발을 잘못 디딘다'는 뜻인데 신앙 안에서 누군가를 실족시킨다는 것은 상대를 진리에서 벗어나게 하여 그 영혼을 해롭게 하는 것을 말하지요. 예를 들어, 머리된 일꾼이 양 떼로부터 "주일에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는데 예배에 빠져도 될까요?" 하는 질문에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주일을 어겨도 어쩔 수 없지요." 하고 가르쳤다면 이는 상대를 사망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이니 영적인 살인이 됩니다.
혹은 "개인적으로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교회 재정을 잠깐 쓰고 채워 넣어도 될까요?" 하는 질문에 "다시 채워 넣기만 하면 상관없다."고 가르친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을 정반대로 가르치므로 상대를 실족시키는 것이지요. 이렇게 비진리를 가르쳐 주므로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다 영적인 살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신앙 상담을 받았을 때 그 상황에 맞는 답을 모르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잘못된 답을 해 주거나 엉뚱한 상담을 해 주어서 양 떼의 형편을 어렵게 하고 연단받도록 하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결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며 바른 상담을 해 줄 자신이 없다면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하고 기도해서 정확한 주관을 받든지 혹은 답을 알 만한 분에게 질문해서라도 정확한 답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입 밖에 내면 안 될 말, 악한 말을 전하여 상대의 영혼을 실족하게 하는 것도 영적인 살인입니다. 악한 말로 남의 허물을 판단 정죄하고 사단의 회를 만들어 수군수군하는 것, 이간질하는 것 등이 다 여기에 해당되는데, 이로 인해 형제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게 하거나 악을 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이 직접 본 것도 아니면서 주의 종이나 교회에 대해 비방하는 말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실족시킨 경우도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계수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상대가 실족시킨 것이 아니고 자신의 악으로 인해 스스로 실족을 당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로만 행하셨지만 악한 유대인들이나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은 빛이신 예수님을 인해서도 실족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실족시킨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악으로 인해 실족한 것입니다.
혹여 상대가 허물이 있다 해도 그 허물을 보고 실족한다면 자기 안에 악을 깨달아야 하지요. 예를 들어, 신앙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구습을 버리지 못한 사람을 보고는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저런가? 저런 사람 때문에 교회 안 나가겠다." 하며 스스로 실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상대가 실족시킨 것이 아니라 판단 정죄하는 자신의 악으로 인해 스스로 실족한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는 자신이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비진리를 행했다고 해서 실망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를 믿고 보증을 서 주었는데 그로 인해 어려움을 당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결국 자신의 믿음이 참믿음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보증을 서지 말라고 항상 단에서 가르치고 믿음의 형제간에는 금전 거래를 금하라 했는데 상대가 말씀에 불순종하고 보증을 요청한다면 여기서 벌써 진리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분별도 못하고 자신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보증을 서서 피해를 입었다면 이는 실족할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회개할 내용이지요.
또한 사람을 보고 판단 정죄하여 실족했다면 그는 자신의 악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실족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녕 선한 마음이요, 참 믿음이 있다면 만약 상대의 부족한 모습을 보았다 해도 오히려 긍휼히 여기고 기도해 줄 뿐입니다. 사람 때문에 교회에 나오거나 나오지 않는다면 이것이 어찌 믿음이라 하겠습니까? 하나님과 주님을 바라보고 믿었다면 실족할 이유가 없는데 사람을 보고 신앙생활했으니 실족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걸림이 되므로 실족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단에서 죄를 지적하는 말씀이 나올 때 "목사님이 내 말씀을 하시네, 나를 찌르시네." 하고 마음이 상해서 교회를 떠나 버리는 것입니다.
참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교양과 세상 지식 등에 맞지 않는다 해서 실족하는 경우도 있지요. 예를 들어, 성경에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요, 온전한 십일조를 해야 축복받는다 하셨는데 이런 말씀을 증거하면 교회에서 물질을 강조한다며 불편해하고 실족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역사들을 말하면 자기 육신의 생각 때문에 믿지 못하므로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 하면서 마음에 걸림이 되고 실족하기도 하지요.
마태복음 11:6에 보면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셨고, 요한복음 11:10에는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안에 진리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다면 빛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 실족하지 않을 것인데, 자신이 어둠 가운데 거하므로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걸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실족하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연약하고 마음에 악이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형제를 실족시키는 사람 편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그 말씀이 진리라 해도 상대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 지혜롭게 전해야 합니다. 이제 갓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구원받으려면 술 담배를 끊으세요." 한다거나 "주일에는 절대로 가게를 열면 안 됩니다."라고 가르친다면 이는 마치 젖먹이 아기에게 고기를 먹인 것과 같지요. 억지로 순종한다 해도 마음에 짐이 되고 "신앙생활은 어려운 것이구나." 하면서 자칫하면 교회에 나오기를 포기해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7에 보면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하셨습니다. 상대를 위해 말했다 하지만 상대의 믿음에 맞지 않는 말로서 상대를 실족시키게 되고 영적으로 살인을 하게 되니 그에 따른 보응으로 여러 가지 연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정녕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한다면 말 한 마디를 해도 삼가 절제하여 상대를 실족케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은혜와 덕이 될 수 있어야 하지요. 똑같이 진리를 가르친다 해도 상대에게 짐이 되고 찔림이 되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주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되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2) 형제를 미워하는 것
요한일서 3:15에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했지요. 단지 마음에 미워하는 것뿐인데 살인과 같은 죄라고 하시는 것은 살인이라는 죄악이 근본적으로 미움이라는 뿌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마음으로만 미워했다고 해도 그 미움이 점점 발전하면 행함으로도 상대에게 악을 행하게 되고 결국 살인까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로 살인죄를 범한 가인도 그 죄의 뿌리는 미움이었지요.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사랑하지 못하므로 아벨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을 심히 시기 질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순종한 아벨의 제사는 기뻐 받으시자 아벨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하게 되었고 결국 죽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5:21-22에 보면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렇게 여러 가지 악을 행하게 됩니다. 욕하고 다투거나 시기 질투하기도 하며 판단 정죄하여 상대의 허물을 전하게 되지요. 거짓으로 속여 손해를 입히기도 하고 원수를 맺음으로 상종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미움으로 인해 악을 행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영적으로 살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에 스스로 마음에 할례하여 성결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우리 마음에 성령이 오셨고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버릴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지요. 그러니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행함으로 살인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움이라는 죄의 뿌리까지 마음에서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서 죄악들을 벗어 버리고 사랑으로 온전히 채워나갈 때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하며 그 사랑의 증거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일서 4:11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했습니다. 상대를 사랑하면 어떤 티도 허물도 보이지 않습니다. 혹여 큰 허물을 발견한다 해도 오히려 상대를 긍휼히 여기며 변화될 것을 바라봄으로 잘 할 수 있도록 힘을 주게 되지요. 바로 주님께서 죄인되었던 우리에게 이런 사랑을 주셨기에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런 여러분을 기뻐하셔서 장차 새예루살렘까지 인도하시고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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