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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장(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고전13:4 날짜 2007.09.02
사랑장 아홉 번째 시간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영적인 온유함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넓고 온유한 사람을 보면 온갖 더러운 것들도 다 수용하고 정화시켜 나가는 바다를 비유하여 바다와 같은 마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바다처럼 넓고 큰 마음, 곧 온유한 마음을 이루어 마태복음 5:5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하신 대로 천국에서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은 내면의 온유와 외면의 덕 중 먼저 내면의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온유함의 기본 조건인 ‘성결’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악을 벗고 성결되어야 합니다. 온유한 마음은 솜털과 같은 마음이어서 누가 부딪혀 온다 해도 소리가 나지 않고 많은 사람을 감싸서 품어 안습니다. 그러나 마음 안에 미움, 시기, 질투처럼 뾰족한 마음이나 자기 의, 틀과 같은 단단한 마음이 있으면 솜과 같이 상대를 품어 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상대의 허물을 보았을 때 이해해 주고 덮어 주는 것이 아니라 판단, 정죄하고 더 나아가 수군수군하며 남들에게 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은 너무 작아서 무엇을 담으려 해도 이내 넘쳐 버리는 그릇과 같습니다.

따라서 온유한 마음이 되려면 이런 작은 소인배의 마음을 벗어 버리고 모든 영혼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성결되어 마음에 악이 없는 것이 온유함의 기본 조건이 됩니다. 그 이유는 마음에 악이 없어야만 상대를 오직 선과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상대를 판단과 정죄의 시선이 아닌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봐 주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온유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실까요? 예레미야 29:11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유다 왕국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지 않고 심히 범죄하여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을 때 하신 말씀이지요. 이처럼 자녀들이 죄악 가운데 거한다 할지라도 어찌하든 생명과 평안, 소망을 주려 하시는 것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시편 103:8-14을 보면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사랑하시되 우리가 흙으로 지어진 육을 입고 있음도 생각하셔서 깊이 이해하시며 오래 참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들도 마음의 악을 모두 벗고 성결되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대로 닮게 되므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어 악으로 나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선과 사랑으로 이해하고 상대에게 맞춰 주려 하게 됩니다.

2. 온유한 마음을 이루는 데 있어 반드시 성결되어야 하는 이유

온유한 마음을 이루는 데 있어 반드시 마음의 악을 벗고 성결 되어야 하는 이유는 마음에 악이 없을 때라야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께서 ‘참으로 온유하다’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온유함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아직 온전하지 않은 가운데서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다’ 하고 들은 말씀을 바탕으로 진리의 틀을 만들기도 하지요.

민수기 12장에 보면 ‘사람 편에서 온유하다’는 것과 ‘하나님 편에서 온유하다’는 것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모세의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이 모세의 행함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므로 모세를 비방하는 장면이지요. 민수기 12:2에 보면 “그들이(아론과 미리암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했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과 누이인 미리암은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것을 비방하였는데 모세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며 모세를 비방하는 것을 합당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하시며 오히려 아론과 미리암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아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의 대언자로 세우신 인물이었고, 미리암도 선지자로 일컬음을 받았기에 자신이 옳다 하는 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히 성결되지 않음으로 마음에 악이 있으니 자신의 의가 발동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판단하는 큰 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모세가 잘못한 것으로 보였다 해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모세에게 어떤 잘못도 없었던 것입니다.

민수기 12:3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말씀한 대로 모세는 당시 온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다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또한 온 집에 충성됨으로 여호와의 형상을 보며 대면하여 말할 수 있을 만큼 사랑과 신뢰를 받았지요. 모세는 그만큼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자비와 긍휼, 곧 영적인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암이 자신을 비방함으로 저주를 받고 문둥병이 들었을 때에도 미리암을 고쳐 주시라고 중심의 간절함으로 부르짖어 기도했던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과정 중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밖에 없는 모세의 온유함과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3. 마음에 악이 없는 모세의 온유함

출애굽한 이후로 백성들은 거듭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범죄하였습니다. 조금의 어려움을 만나기만 해도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원망했는데 이는 결국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고통 속에 부르짖던 자신들을 건져주었는데도, 애굽 군대가 추격해오자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하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러다가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홍해가 갈라져서 자신들은 건너편까지 무사히 건너고 추격해 오던 애굽의 군대는 홍해에 수몰되는 것을 본 후에야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지요.

그러나 이런 감사도 잠시 잠깐일 뿐 먹을 양식이 없다, 마실 물이 없다 해서, 번번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대적하며 돌로 치려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매번 자비와 긍휼로 용납하였고 어찌하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더디 내려오자, 모세가 없는 사이 백성들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방탕히 먹고 마시며 뛰놀았지요. 하나님께서 이런 백성들을 멸하겠다 말씀하시자 모세는 출애굽기 32:32에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고 간절한 중보의 기도를 올립니다. 주의 기록하신 책이란 바로 구원받은 자녀들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인데, 이 책에서 이름을 지워 달라는 것은 곧 이 백성의 죄를 사하지 않으시면 대신 지옥에라도 가겠다는 고백입니다. 모세는 이처럼 자신의 생명과 맞바꿔서라도 백성들을 구원하기 원하는 마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히브리 사람, 곧 이스라엘 자손이었지만 애굽 공주의 아들로 자라났기 때문에 육적으로 많은 것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왕자라는 고귀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식과 부와 명예를 누리는 등 육적인 조건을 볼 때 부족함 없이 살았지요. 따라서 그만큼 자존심, 자기 의 등 ‘자기’가 살아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런 자기 의 가운데 히브리 사람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쳐 죽였는데, 이 일로 인해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고 양을 치는 목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세가 애굽의 왕자가 아닌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겸비해졌습니다. 그만큼 모세는 마음에 자기라는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 해도 늘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낮출 수 있었고 이러한 겸비한 마음이었기에 장정만도 6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연단을 통해 자신을 비우고 낮출수록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게 와 닿으므로 아버지 하나님을 점점 닮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겸비하느냐에 따라 온유함이 승한 정도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영적인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처럼 악은 모양도 버림으로 성결되어야 할 뿐 아니라 덕을 갖추어야 한다 했습니다. 사람이 좋은 옷을 단정하게 잘 갖춰 입을수록 다른 모습이 되듯이 이 덕을 얼마나 갖춰 나가느냐에 따라 온유함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주의 종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이런 모세 선지자의 마음을 충분히 느껴볼 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았기에 ‘내가 대신 지옥에 가더라도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영혼들을 인도해 올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악은 모양도 없고 선과 사랑이 가득하여 모든 영혼을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소유함으로 이 마지막 때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장차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거하는 참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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