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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장(10)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고전13:4 날짜 2007.09.23
사랑장 말씀은 사랑이란 무엇이며, 사랑의 참된 의미와 개념에 대해 밝히 알려 주고 있으므로 잘 양식삼으면 참된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은 덕을 겸비한 온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마음의 온유함을 이루려면 마음의 악을 벗고 자기를 깨뜨려 성결되어야 합니다. 마음에 악이 없어야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 영혼들을 바라보며 용서하고 이해하며 포용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의 밝은 음성을 들어 영혼들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성결을 이룰 때라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지요. 그런데 성결되어 내면이 온유한 것만으로는 온전하다 할 수 없고 외면의 덕도 겸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옷을 잘 갖춰 입지 않으면 격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옷이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듯이 덕은 내면의 온유함이 겉으로 드러나도록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마음에 악이 없고 온유해서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댈 수 있어도 말과 행실에 덕이 없으면 그 온유함이 온전히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내면의 온유함과 외면의 덕을 겸비했을 때 온유하다 하며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내면의 온유함과 외면의 덕을 겸비했던 애굽의 총리 요셉

이스라엘 자손으로서 이방 나라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애굽을 치리하였던 요셉이 바로 온유함에 덕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온유하고 겸손하여 말과 행실에 흠이 없었고, 위정자로서 지혜와 위엄도 있었습니다. 왕 다음 가는 권세를 가졌으나 결코 남용하지 않았고, 자신한테는 엄격했어도 상대에게는 너그러워 누구와도 걸리거나 화평을 깨지 않았지요.

설령 상대가 악을 행한다 해도 넓은 마음으로 상대를 용서하고 포용했습니다. 요셉은 말 한 마디, 작은 행동 하나에도 항상 상대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해 주는 덕이 있었기에, 왕이나 신하들은 그가 이방인임에도 경계하거나 시기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고 신뢰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덕은 자신이 반듯한 언행을 갖추었다 해도 그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 정죄하지 않는 넓고 큰 마음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애굽에 종으로 판 형들이 기근으로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 그동안 당한 고난을 갚으려 하지 않았고 형들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허물 수 있도록 회개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알아보고 두려워하는 형들의 마음을 헤아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며 오히려 안심을 시켰지요(창 45:5). 요셉은 성결되어 마음에 악이 없으므로 원수라도 용서하는 온유한 마음과 원수까지도 감동시킬 수 있는 마음씀씀이와 행함 곧 외면의 덕을 갖추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덕을 겸비한 온유는 기근에 처한 애굽과 그 지경의 많은 생명을 건져내는 힘이 되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섭리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덕은 마음의 온유함이 외면의 적극적인 행함으로 나와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2. 덕을 겸비하려면

1) 악을 벗고 성결되어야 합니다
내면의 온유함은 마음의 성결을 통해 이루어지며, 덕 또한 악을 벗고 성결되어야 갖출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결되지 않았어도 잘 훈련된 교양이나 타고난 마음 그릇이 커서 덕스런 행함이 나올 수도 있지만, 진정한 덕은 악이 없고 선한 마음, 진리를 좇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참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덕스런 행함에 자신만의 틀을 만들어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덕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결되어야 하며 성결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어서 덕스런 행함이 무엇인지 각 상황 속에서 주관을 받아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덕이 있는 말과 행실을 온전히 이루려면 단순히 마음의 크고 굵직한 악의 뿌리들을 뽑아 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면에 악이 없을 뿐 아니라 말과 행실, 몸가짐 등 외적인 모습도 흠이 없을 때 많은 사람이 깃들일 수 있는 온유함을 이루게 됩니다(살전 5:22, 마 5:48). 단순히 미움, 시기, 질투, 교만, 혈기 등 악을 벗어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고 불같이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주관을 받아, 세세한 몸의 행실들까지도 온전히 벗고 진리의 행실들로 채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13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말씀하셨듯이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여기서 몸은 단순히 사람의 신체가 아닌 영적인 의미의 몸으로서 영, 곧 진리가 빠져 나가 버린 비진리로 물들어 썩어질 육적인 몸을 말합니다. 이처럼 사람이 육으로 변질된 후에 몸 안에 가득 담겨 있는 비진리를 좇아 나오는 것을 몸의 행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 말하는 습관을 볼 때도 농담 같은 가벼운 말을 잘하고 쉽게 반말하는 사람과 말을 주의하고 존댓말로 상대를 높여 주는 사람과는 큰 차이가 납니다. 성결되어 악이 없을수록 상대를 사랑하고 섬기는 언행이 나옵니다. 이때 몸의 행실에는 명백한 죄를 범한 것뿐만 아니라 온전하지 않은 행실들도 모두 포함됩니다.

가령, 악의는 없지만 말투가 딱딱하고 퉁명스러운 사람이 있는데, 이는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의 악은 버렸다 해도, 육에 거했을 때의 흔적이 남아 있으므로 다정다감하기보다는 무뚝뚝한 성격이 말투에 나타납니다. 또한 세상 풍조에 젖은 옷이나 단정치 못하고 때와 장소에 부적절한 차림도 있는데 이런 사람은 외모와 옷차림에 관심을 두지 않거나 육에 있을 때의 습관을 고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사소해 보이지만 똑같은 온유한 사람이라도 이런 세세한 분야까지 잘 갖추어진 사람은 “참 단정하다. 기품이 있다.” 등 칭송과 신뢰를 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온전치 못한 분야에 대해 “날 때부터 그런 기질을 타고 났고 자라나면서 몸에 배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합니다. 그러나 덕을 갖추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주님의 교양을 이뤄 가는 것이며, 주님의 교양을 이룬 사람이라면 말 한 마디를 해도 상대에게 감동을 주게 됩니다. 에베소서 6:4에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하신 대로 책망할 때도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면서 선한 지혜로 깨우쳐 줘야 하는 것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이런 작은 분야들까지도 놓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깃들이게 되고 안겨오게 됩니다.

2) 마음 됨됨이를 좋게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마음 됨됨이는 마음 그릇의 크기를 의미하며, 마음 됨됨이가 좋을수록 그릇이 크다 할 수 있습니다. 마음 됨됨이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것 이상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인이 할 일만 잘하는 사람이 있고, 당연히 해야 할 것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은 마음 그릇을 가졌을지라도 각 상황에서 얼마나 마음을 넓혀 사용하는가에 따라 마음 됨됨이는 달라집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마음을 크고 넓게 쓰기 때문에 자신이 당연히 할 그 이상을 해내는 마음 됨됨이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2:4에 보면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일도 돌아보고 살펴야 하지요. 이런 마음 됨됨이는 모든 상황에서 얼마나 마음을 넓혀 쓰는가에 따라 달라지므로 꾸준한 노력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만 돌아보기에도 급급한 좁은 마음을,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다른 사람들의 일과 형편까지 고려해 주는 넓은 마음으로 바꾸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선교회 안에는 많은 기관장이 있고, 지역 안에는 조장, 구역장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맡고 있는 기관이나 조, 구역의 일만을 잘 감당해 나갑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자기 기관이나 조, 구역의 일을 잘 살필 뿐 아니라, 선교회 전체, 지역 전체를 염두에 두고 살펴 나가며, 때로는 전체를 위해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보다 양보하고 희생하지요. 그러므로 악이 없는 온유한 마음에 좋은 마음 됨됨이를 이루면 다양한 사람이 속해 있는 큰 조직도 능히 살피고 다스릴 뿐 아니라 주변까지도 두루 살피는 적극적인 선을 행함으로써 사람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3. 온유한 사람이 될 때 받는 축복

마태복음 5:5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하시고, 시편 37:11에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하신 대로 온유한 사람은 땅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땅을 받는다는 것은 이 세상의 땅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의 땅으로서 천국의 처소를 뜻합니다.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은 장차 천국에서 큰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권세가 있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이 따르는 것처럼 온유한 사람은 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사모하고 따르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에게 힘을 주고 은혜를 끼치며 구원으로 인도하므로 온유함이 승할수록 더 많은 영혼들이 깃들게 되고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차 천국에서 큰 권세를 누리게 되며, 그만큼 넓고 큰 땅, 곧 천국의 처소를 기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큰 부와 명예,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권세가 따르고 많은 사람이 따르기도 하지만,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면 대부분 권세도 잃게 되는 것을 봅니다. 온유한 사람에게 따르는 권세는 이런 세상 권세와는 달라서 사라지거나 변하는 일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송을 받으며, 영혼이 잘된 만큼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게 될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세세토록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으며 무수한 영혼들에게 존경과 칭송을 받게 되고 사모함의 대상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되어 내면의 온유함과 외면의 덕을 겸비한 영적인 온유한 자가 될 뿐만 아니라, 소자라도 용납하고 섬기는 큰 자가 됨으로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이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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