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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장(1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고전13:4 날짜 2007.12.02
오늘은 사랑의 속성 중"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하신 말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보다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며 행복해 하듯이, 갓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또한 성령을 받으면내가 죄인이었구나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구나하고 깨달으면서 마음이 겸손해지며 범사에 오직 주님만을 자랑하고 늘 겸손하지요.
반면에 자신을 자랑하려 하거나 교만한 사람이 있다면 이는 그만큼 영적인 사랑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처럼 한결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셔서 시편 44:8 전반절에"우리가 종일 하나님으로 자랑하였나이다"한 고백처럼 겸손히 하나님만을 자랑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전을 찾아보면 자랑이란,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이나 물건, 일 따위가 썩 훌륭하거나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것임을 드러내어 말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자랑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자기를 드러내는 것,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남보다 더 나은 분야가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드러나 인정받으며 칭찬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집, 좋은 차 등 자신의 부유함을 과시하려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학벌이나 지위, 외모 등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랑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잘한 것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데에는 몹시 인색한 것을 봅니다. 남이 드러나는 만큼 자신이 가려지기 때문에 어찌하든 상대를 깎아내리려고 하지요.
그러다 보면 자랑이 다툼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랑하는 마음은 진정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이렇게 자랑하면 높아지고 인정받을 것 같지만 진심어린 존경이나 사랑을 받기는 어려우며, 저 사람은 저렇게 자기 자랑만 한다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얕보며 시기 질투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데 주 안에서의 자랑은 해도 마땅한 자랑입니다. 고린도후서 10:17에"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하신 대로 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은 얼마든지 해도 좋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랑입니다.
간증은 대표적인 주 안에서의 자랑입니다. 갈라디아서 6:14 전반절에 사도 바울이"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고백한 것처럼 구원해 주시고 천국을 주신 주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십자가에서 죄 값을 치러 주신 주님으로 인해 영생을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또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일을 간증합니다. 잠언 8:17에 하나님께서는"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말씀하십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함과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행함을 보였을 때 질병을 치료해 주시고 물질의 축복을 주시며 화평한 가정을 이뤄주신 하나님을 간증하십니다. 이처럼 주 안에서 자랑을 하면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게 되고, 형제 자매들에게는 은혜를 끼쳐서 믿음과 생명을 심어 주게 될 뿐 아니라, 하늘나라에 상급이 쌓이게 되고 마음의 소원도 더 신속히 응답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 안에서의 자랑도 잘 분별해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같은데 사실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어떤 큰 축복이나 응답을 받았다며 겉으로는"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고 말하지만 은연중에내가 선하고 똑똑해서 이렇게 행했기 때문에 응답받고 축복받을 수 있었다고 으쓱해합니다. 어떤 일꾼들은 하나님의 일을 이룬 후에 말로는"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룬 일입니다."하고 고백하지만 은근히나는 이처럼 성령의 음성, 주관을 밝히 듣는다.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의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겉으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듯 보여도 성령의 역사는 속일 수가 없기 때문에 때가 되면 그 열매가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사단이 송사하기 때문에 자신을 자랑한 결과가 열매로 드러납니다. 충성되고 성령의 음성을 잘 듣는다고 하던 일꾼이 이런 저런 시험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으면 주님을 떠나기도 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이처럼 사람이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면 결국 부끄러움만 남는다고 해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이생의 자랑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이생의 자랑이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랑하는 속성입니다. 요한일서 2:15-16에"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말씀하십니다. 곧 이생의 자랑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자랑하는 마음에는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참 사랑을 이루려면 마음에서 이생의 자랑을 뽑아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길어야 몇 십 년인 삶이 다 지난 후에는 천국 또는 지옥에 가게 되지요. 예를 들어 아무리 이 땅에서 많은 재물을 가졌다 해도 천국에 가면 발로 밟고 다니는 길조차 금이니 천국에서 누릴 풍요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천국에 못 가고 지옥에 간다면 이 땅에서 아무리 큰 부와 지식과 명예와 권세를 누렸다 한들 그것이 무슨 자랑이 되겠는지요?
우리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6:26에"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말씀하십니다.이처럼 세상의 자랑거리는 결코 영원한 생명도 영원한 만족도 줄 수 없고, 오히려 헛된 욕심을 불러일으킴으로 멸망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을 절절히 깨닫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마음 가득히 채워나가면 이생의 자랑을 뽑아버릴 수 있는 힘이 옵니다. 이는 바로 이생의 자랑을 다 벗어버리면 오직 우리 주님만을 자랑하게 되며, 이 세상의 것들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영광이 더 자랑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천국을 주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면서 날마다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전에는 몰랐던 기쁨이 날마다 흘러넘치지요.

2.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교만이란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 내가 모든 면에서 남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위에는 사람을 두지 않습니다. 곧 자기 자신을 제일로 여기므로 매사에 상대를 무시하고 얕잡아보며 가르치려 합니다. 보통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상대에게 이렇게 교만한 태도를 취하기가 쉽지요. 그런데 교만이 심한 경우에는 자신을 가르쳐주고 이끌어 준 사람이나 질서상 자신보다 높은 사람까지 무시합니다. 윗사람이 어떤 권면이나 지적을 해주어도 잘 들으려 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권면하는 상대를 가르치려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대와 대화를 하게 되면 곧잘 변론이 일어나고 더 나아가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변론에 대해 디모데후서 2:23에는"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말씀합니다. 이처럼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고 선하지 않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양심이 다르고 지식도 다릅니다. 각자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체험하고 가르침 받은 것이 다 다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입력되는 지식들 중에는 잘못된 것도 많고 스스로가 엉뚱하게 입력해버린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단단하게 굳어지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자신만의의와틀이 만들어집니다.
사람의 생각은 대개 이의와틀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각 사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들 중에는 옳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도 마음이 교만하면 자신이 틀려도 그것을 선뜻 인정하지 못하고 변론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설령 자신의 주장이 맞고 상대가 틀리다 해도 변론하지 않으며 굳이 상대를 누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의 마음에는 그만큼 상대를 높이기 원하는 영적인 사랑이 임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진정 사랑하면 어찌하든 상대를 높이려하고 아껴 주려고 하지 결코 남을 무시하거나 이기려들지 않습니다. 가난하든 배움이 적든, 자신 보다 힘이 약하든 진심으로 상대를 자신 보다 낫게 여기며, 상대가 어린 아이라 해도 그 마음을 배려해 줍니다. 모든 영혼은 주님이 피값으로 사신 존귀한 영혼이라는 사실을 마음 중심으로 깨달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적인 사랑을 이루는 만큼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을 그대로 닮게 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낮아짐과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주님의 모습을 마음 깊이 새기셔서 빌립보서 2:3에"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하신 말씀대로 모든 일에 누구를 대하든지 겸손히 행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눈에 띄게 자신을 드러내고, 뽐내고, 남을 무시하는 등 비진리의 행함들이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교만은 쉽게 발견됩니다. 이런 교만을 육적인 교만이라고 하는데, 이 육적인 교만은 주님을 영접하고 진리를 알게 되면 대부분 빨리 벗어버립니다. 그러나 교만이라는 죄성을 마음에서 온전히 뽑아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다시 교만이 틈타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많은 말씀을 들어 압니다. 직분이나 사명을 받기도 하고 머리가 되다 보면 말씀을 많이 들어서 아는 것을 마치 말씀을 마음에 다 이룬 것처럼 착각함으로나는 이만큼 이루었다. 나는 옳다생각합니다. 그래서 들어 아는 말씀으로 상대를 지적하고 판단, 정죄하면서도 자신은 진리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일꾼들은 마음이 높아져서 자신의 유익을 좇아, 꼭 지켜야 할 교회 규범이나 반드시 밟아야 하는 절차 등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이는 명백히 교회 질서를 파괴하는 행동인데도나는 이만한 위치에 있으니 괜찮다. 나는 예외다생각하지요. 이처럼 높아진 마음을 영적인 교만이라 합니다. 이런 교만은 비교적 발견하기가 쉽지 않지요. 이처럼 높아져서 하나님의 법과 질서들을 무시하면서하나님을 사랑한다하면 이는 참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는 마음 또한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라 할 수 없으며, 진리는 상대에 대해 오직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 4:11에"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하고 상대를 비방하지 말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상대의 부족한 모습을 보았을 때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앞서는지 아니면 상대가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마음이 앞서는지 점검해 보면 얼마나 겸손과 사랑을 이루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만큼 이루었다 안주하지 말고 항상 어린아이처럼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시며, 모든 영혼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고, 생명 다해 섬기는 최고의 사랑을 이루기까지 변함없이 달려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중에는"나 자신을 믿고 삽니다."말하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태풍이나 지진 등 큰 자연 재해나 갑작스런 재난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으며 또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으로 고통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 자신의 생각, 경험, 지식 등 세상 방법을 의지하다 일이 불통하고 갖가지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던 사람도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교만함 때문인데 이로 인해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겸손히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오해하기도 하며, 더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자신과 세상을 더 의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자녀들이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 편에서 교만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려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억지로 그 사람에게 간섭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원수 마귀로부터 지킴 받을 수가 없고 형통함을 입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잠언 18:12에"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말씀한 대로 실패나 멸망을 자초하는 것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사람의 교만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잠언 22:4에"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말씀하셨으니 늘 겸손히 사랑의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차라리 어리석은 자라 말씀하십니다. 하늘을 보좌삼고 땅을 발등상으로 두시는 광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생들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들로 높고 낮음이 없는 동등한 존재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자랑할 것이 많다 해도 이 땅의 삶은 잠시잠깐일 뿐입니다. 이 짧은 삶이 다 지난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결국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한 만큼 천국에서 높은 사람이 됩니다. 야고보서 4:10에 보면"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하신 대로 주님께서 높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도 날이 갈수록 더 낮아짐으로 오직 주님만을 자랑하고 모두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 아버지 보좌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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