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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장(1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고전13:4-6 날짜 2008.02.10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영원한 생명과 영광이 되는 영적 사랑을 이루길 무엇보다 원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소유하려면 불의를 미워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1.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우리가 영적 사랑을 이루는 만큼 악한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상대가 잘못 되기를 바라거나 판단 정죄하지도 않지요. 나아가 이 사랑을 온전히 이루면 하나님 뜻에 위배되는 생각 자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모든 뜻이 선하시므로 그 뜻에 위배되는 것은 다 악입니다. 이러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때에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마음을 닮아 선한 생각만 하게 됩니다.

본문에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은 5절에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하신 말씀과 영적인 의미가 다릅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행위로 드러나는 어떤 불미스런 일을 기뻐하지 않고 거기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에 악은 모양도 품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잘사는 친구를 보면 질투가 나고 미워지거나 ‘친구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면 이는 악한 것을 생각하는 차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친구에게 사기를 쳐서 하루아침에 회사가 부도나고 말았습니다. 이때 ‘잘산다고 뽐내더니 속이 다 후련하다.’ 하며 즐거워한다면 불의를 기뻐하는 것이지요. 나아가 자신이 이 일에 동조하고 가담했다면 더 적극적으로 불의를 기뻐한 것입니다. 그러면 불의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1) 일반적 의미의 불의
세상 사람이 볼 때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반적 의미의 불의’가 있습니다. 가령, 옳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재물이나 이익을 기뻐합니다. 정직하게 돈을 모으지 않고 속이거나 힘으로 위협해 남의 것을 빼앗습니다. 또 나라의 법과 정당한 절차를 어기고 자신의 이익을 취합니다.

레위기 19:35에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했습니다. 즉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리는 등 자신의 권세를 이용해 법을 어기고 불의의 재물을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 정직해야 할 사람이 재물을 탐하여 불의를 행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서 도량형은 길이, 무게, 부피 등을 말합니다. 예컨대 장사할 때 분량을 속여 팔거나, 질 나쁜 값싼 원료를 써서 부당한 이윤을 챙깁니다. 이는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불의한 재물을 기뻐하여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역대하 19:7에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불의가 전혀 없으십니다. 사람의 눈은 가려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지요. 그러므로 여호와를 두려워함으로 항상 정직하고 성실하게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은 결코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나라 법을 어기면서까지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기뻐하는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하나님 자녀라면 불의를 볼 때에 오히려 애통해 해야 합니다.

2) 진리 안에서의 불의
주 안에서 불의와 일반적인 불의는 차이가 있습니다. 법을 어기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온갖 죄가 다 불의입니다. 이는 마음의 악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온 죄 곧 육체의 일에 해당됩니다.

고린도전서 6:9-10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불의를 행하면 구원받는 것도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불의를 행하는 형제를 보면 애통해 하고 사랑으로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만일 ‘나도 적당히 신앙생활하면서 편하게 살고 싶다.’ 하며 불의를 기뻐하거나 동조하여 가담한다면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3:18에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불의했던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2.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다음으로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말씀합니다. 영적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그러면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1) 복음을 기뻐하는 것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복된 소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진리를 찾습니다.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삶은 어떤 것인가?’ 이런 물음의 답을 얻기 위해 사상과 철학 등 학문을 탐구하고 갖가지 종교 교리에 심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신 대로 진리는 구주되신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듣고 기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죄 사함 받아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고, 삶의 목적을 깨달아 가치 있는 인생을 삽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기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그들도 구원받는 것을 기뻐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기뻐하지요. 디모데전서 2:4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처럼 구원받는 영혼이 날마다 더해 감을 기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남이 전도해서 많은 열매를 내면 시기 질투합니다. 다른 교회가 부흥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과연 마음에 참 사랑이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지요. 영적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 나라를 창대히 이루어 부흥하고 사랑받는 교회를 볼 때에 함께 기뻐합니다. 나보다 더 충성하여 열매 맺는 사람에 대해 감사해 합니다. 이것이 곧 복음을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2) 진리에 속한 모든 것을 기뻐하는 것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선, 사랑, 공의 등을 보고 듣고 행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가령,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듣다가 감동하여 눈시울을 붉히고, 작은 선행에도 함께 기뻐합니다. 하나님 말씀 듣기를 기뻐하니 모든 말씀이 송이꿀처럼 달다고 말합니다. 늘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 보기를 즐기며 말씀대로 행하기를 기뻐한다면 곧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섬기라, 이해하고 용서하라.” 하셨으니 기쁘게 순종합니다. 상대를 미워하고 시기, 질투, 판단, 정죄하는 것이 너무 싫고 상대가 잘되면 함께 기뻐합니다. ‘상대가 잘못 됐으면’ 한다거나 상대의 불행을 기뻐하는 것은 상상조차 못합니다. 이처럼 진리를 기뻐하는 사람은 변개하지 않고 진실과 정직 등 선의 마음을 좋아하므로 선한 말과 행실이 나옵니다.

‘사랑의 사도’라 불리던 사도 요한은 요한삼서 4절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영적인 사랑이 마음에 가득 채워지는 만큼 아버지 하나님 마음을 닮아 진리에 속한 모든 것을 기뻐하며 그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3) 말씀대로 행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런데 혹여 이러한 말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는 아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 부족하구나’ 하면서 낙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노력하는 자체도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라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육이 있을 때에는 악한 것을 생각하거나 불의를 기뻐합니다. 우리가 비진리를 벗고 온전히 진리만 기뻐하는 마음이 되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누구나 “예배드리는 것이 아주 행복합니다.”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새신자나 초신자의 경우, 피곤해하고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곧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 2:10을 보면 하나님께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변함없이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은 결국 생명을 버리기까지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진리만을 기뻐하며 진리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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