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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의 물결을 타자(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2:10 날짜 2003.05.18
오늘은 급속한 영의 물결을 타고 온 영을 이루며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서 믿음의 시험을 통해 더 좋은 천국으로 인도하신 한 영혼의 예

작년 직원 종무식 때 제가 여러분 앞에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모두 다 같이 살아서 주님 만났으면 좋겠는데" 했고, 또 "얼마 있으면 제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도 했었지요. 그리고 지난 4월에는 참으로 열심히 충성하던 장로님 한 분이 소천하셨습니다. 장로님은 아직 수명이 다할 만한 연세도 아닌데 그처럼 믿음도 있고 열심히 충성하신 분을 하나님께서 불러 가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 가신 것이 그분에게는 가장 큰 위로와 축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곁에서 이 장로님을 지켜보셨던 분들은 그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목자와 양 떼를 사랑하셨는지 아실 것입니다. 어떤 욕심이나 사심도 없이 오직 천국에 대한 소망 가운데 이 땅의 모든 것을 버리며 살아가셨지요. 그러나 사실 그분에게는 이 땅에 사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큰 짐을 지고 가는, 참으로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성결되어 새예루살렘에 가야 한다는 것도, 온 집에 충성하여 열매 내야 한다는 것도, 이런 하나하나가 무거운 짐이 되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할 정도였지요.
우리가 죄를 버리고 성결되는 것이나 충성하여 사명감당하는 것도 우리 자신의 의지와 능력만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가운데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하는 것이며, 그럴 때 마음에 항상 기쁨과 평안이 넘치므로 모든 것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되지요.
죄를 버리고 사명감당하기 위해서 기도할 때도 참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진동하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불같은 기도를 해서 능력을 끌어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틀 속에서 기도할 때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기도한다 해도 성령의 역사 가운데 능력의 기도를 하는 것이 쉽지 않지요. 이분은 기도하여 위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은혜에 비해 자기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도 앞선 가운데 자신을 힘들게 묶어 나갔으며, 늘 마음이 눌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분에게 질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치료해 주실 수 있었지만, 그분은 치료받아 생명을 연장받는다 해도 스스로 짊어진 짐을 내려놓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불러 가시되 마지막으로 그분의 믿음을 테스트하심으로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주셨습니다. 곧 3천층으로 인도하여 들이신 것입니다. 새예루살렘에 비길 수는 없지만 3천층 역시 온전히 성결된 사람들이 들어가는 영광스러운 천국이지요.
그런데 사실 이분은 아직 온전히 성결된 것이 아니므로 3천층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의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에 너무나 간절하였던 천국의 소망과 목자와 영혼에 대한 사랑과 성실한 행함 등을 인하여 마지막으로 축복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생명이 걸린 상황 앞에서도 끝까지 순교의 믿음을 내보일 수 있는가 하는 믿음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이었지요.
예전에 믿음의 단계와 천국의 처소를 설명할 때 아직 죄악을 온전히 벗어버리지 못했을지라도 믿음으로 순교한 영혼들은 능히 3천층에 들어갈 수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0에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지요. 믿음을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고 육의 생명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인하며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릴 수 있는 중심인 것입니다.
이분의 경우에도 시간이 더 주어지면 결국 성결을 이루어 낼 중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일찍 부르시어 마음의 짐을 덜어 주시는 쪽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3천층에 들어갈 수 있도록 생명까지 드리는 순교의 믿음을 내보일 기회를 주셨지요. 결국 이분은 마지막까지 사람이나 세상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전혀 갖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서만 주관하시도록 온전히 맡겨드렸습니다. 이렇게 현재에 이룬 믿음으로 갈 수 있는 천국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심으로 이 땅의 힘든 삶을 위로해 주셨던 것입니다.

2. 급속한 영의 물결을 타기 위해 돌아보아야 할 사항

하나님께서는 이분의 소천을 통해 그분 자신에게 축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귀한 축복의 계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로 급속한 영의 물결을 타고 새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몇 가지 사항들을 돌아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의 물결을 타기 위해 돌아보아야 할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내 안에 임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깊이 깨닫는 사람이라야 능히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고생할 때는 그 고생이 힘들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보람이 새록새록 넘쳐납니다. 또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한겨울 혹독한 바람이라도 두렵지 않고 서로 사랑을 속삭이면서 걸어갈 때는 험한 산길이라도 마다하지 않지요. 아무리 추운 곳이라도, 아무리 험한 길을 걸어 갈 때도 조금이라도 더 함께할 수 있다면 그런 환경을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길 또한 사랑이 없이는 걸을 수 없는 길입니다. 죄를 버리는 것도 충성하는 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독생자 아들을 내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마음에 넘치게 되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가 자신도 너무 싫어지므로 철야를 하고 금식을 해서라도 뽑아 나가게 되지요.
이러한 사람이라면 죄를 발견한다 해서 그 죄의 짐에 눌려서 어두운 얼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소망으로 충만하여 영적인 빛이 납니다. 요한일서 4:18에 보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버리지 못한 죄를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버리는 만큼 하나님 앞에 더 담대할 수 있다는 행복과 기쁨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나 심방, 충성을 하는 것도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소망과 영혼들을 살리는 사랑 가운데 할 때 더욱 충만하게 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럴 때라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율법의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을 느끼게 해 줄 수 있고 신앙생활의 행복을 전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누구보다 험난한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도 바로 사랑의 힘으로 모든 고난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8:38-39에 보면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자신의 마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이 있었기에 능히 이 땅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하여 새예루살렘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가득 느끼며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을 받을 때라야 능히 그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지요.

둘째로, 영의 급물결을 타기 위해서는 '내가 과연 새예루살렘을 사모한다고 말할 만한 믿음의 행함을 보이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 당시, 믿음으로 순교한 선진들을 볼 때 그들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가족과 부귀 영화는 물론 이 땅에서의 어떤 행복도 다 포기했습니다. 핍박을 피하여 어둡고 습한 지하 묘지 카타콤에 살다가 붙잡히면 여러 가지 고문과 형벌을 당하며, 결국은 맹수의 밥이 되거나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주의 복음을 위해 담대히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다 새예루살렘에 간 것은 아니며 많은 경우, 거기에 이르지 못하므로 3천층에 들어갔지요.
소천하신 장로님은 자기 것을 바라는 마음이나 이 땅에서 무엇을 누리고자 하는 욕심이 없었습니다.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오직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목자를 위해 생명을 다했지요. 말씀에 비추어 자신에게 부족함이 느껴질수록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여 기도의 양을 늘리고 더 많이 심방하고 충성하려 애썼으며 심지어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예배와 기도 시간에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는 그분보다 더 성결되고 충성하여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새예루살렘에 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으신지요? 과연 여러분은 얼마나 아버지의 마음을 이뤘으며 영적인 사랑을 이루고 계십니까? 죄악을 벗어버리기 위해 어떻게 싸워 왔고 성결을 이루어왔으며, 심히 악을 행하는 상대에게도 선으로 대하고 그를 위해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주님의 사랑을 마음에 이루셨는지요?
깊은 영계의 비밀을 아무리 많이 듣고 안다 해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지 않으면 3천층에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해 말하면서 "나는 분별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비진리를 포장하거나 지시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등 화평을 깨며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을 할 때 이는 아버지의 마음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에 헌신하기보다는 사람들 앞에 칭찬들을 수 있는 일을 좋아할 때, 잘한 것은 내 공로라 주장하고 잘못한 것은 상대의 부족한 탓으로 돌릴 때 이 또한 성결과는 동떨어진 마음이지요.
만약 여러분이 행함으로 짓는 죄도, 마음으로 짓는 죄도 스스로가 발견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성결을 이루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정녕 육체의 일, 육신의 일뿐만 아니라 본성 속의 비진리까지 버렸다면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에 대한 증거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권능으로 그를 보장해 주시며, 주변에서 지켜보는 가까운 사람들도 그가 온전한 것을 중심에서 인정하며 칭찬하게 되지요. 사람들이 그를 볼 때 윗사람이니까 억지로 순종하거나 부딪히기 싫어서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그 말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을 점검해 보면서 불같이 기도하는 가운데 영의 물결을 잘 탐으로 신속하게 모든 죄를 벗어버리고 온 영을 이루어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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