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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말3:7-10 날짜 2008.12.28
지난 시간에는 십일조의 축복에 대한 영적인 원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부터는 방법을 잘 몰라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십일조를 통해 축복 주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 십일조를 하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기복적인 신앙, 즉 복을 받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많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행할 때,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는 복, 머리가 되는 복을 받게 해 주신다고 굳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야곱, 요셉, 다니엘과 세 친구 등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모델로 세우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축복은 하나님을 믿을 때 맺히는 열매입니다. 말라기 3장 1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 했습니다. 이 약속대로 주일성수와 더불어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질병이나 사고 등 각종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일터와 사업터도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물론,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되 반드시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방법

1) 총 수입에서 십일조를 떼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애초에 수입 자체를 적게 잡아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한 달 월급이 100만 원인 사람이 있는데, 급여에서 세금, 연금, 보험료 등이 공제되어 실제로는 80만 원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래서 80만 원을 수입으로 잡아 8만 원을 십일조로 드렸다면 이는 바르게 계산한 것이 아닙니다. 총 급여액인 100만 원을 수입으로 계산해서 드려야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제된 각종 세금은 수입에서 나가는 지출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총 수입이란, 현금 수입뿐 아니라 각종 현물 수입을 포함합니다. 식사를 대접받거나 선물을 받은 경우에도 이에 대한 십일조를 드려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 과일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았다면, 과일 한 상자의 시가를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물건의 시가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수입에서 십일조를 뗄 때 넉넉히 떼어 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비정규적인 수입도 총 수입에 포함됩니다. 어떤 분들은 현금 수입에 대해서만, 또한 월 급여 등 정기적인 수입에서만 십일조를 드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정기적 수입과 현금 수입 외의 현물 수입 등 공급받은 모든 것에 대해 십일조를 드려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2) 십일조는 다른 예물과 구별하여 별도로 드려야 합니다
어떤 분은 수입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 액수만큼 제외하고 나머지 금액에서 십일조를 드린다고 합니다. 감사, 건축, 구제, 선교 헌금 등 각종 헌금과 심지어 회비까지 제한 후에 나머지 금액에서 십일조를 계산하여 드린다는 것입니다. 또는 수입에서 십일조만큼의 액수를 떼어 그것을 다른 헌금으로 나누어서 드리거나, 십일조 드리면서 “이 십일조 중에 일부는 구제로 써 주세요.”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어떤 명목으로 드리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반드시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다른 예물과 구별해서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헌금으로 드렸다고 해도, 십일조로 드려야 할 것을 다른 헌금으로 드리면 내가 하나님의 것을 임의로 한 것이 됩니다. 또한 십일조로 이미 드려진 것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출합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에 대해 사용 명목을 내가 지정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각종 헌금은 십일조를 제외한 나머지 수입에서 믿음대로 정성껏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각종 헌금은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쌓이며, 특히 건축 헌금은 천국의 집을 짓는 재료가 됩니다. 그런데 십일조는 반드시 상급으로 직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건축헌금이나 감사헌금은 많이 드렸으면서도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면, 이는 하나님 것을 도적질한 것이 되므로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3) 십일조는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출석하는 교회와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교회가 같은 경우도 있지만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십일조는 단순히 출석하는 교회에 내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곳에 드려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이 있는 곳, 영적인 말씀의 꼴을 공급하여 믿음을 심어 주고 생명을 주는 곳이 영적으로 내가 속한 제단이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들어 죽을 병에 걸린 어떤 사람이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극적으로 살아났다면, 그 치료비를 어디에 낼까요? 자신의 동네에 규모도 작고 시설도 열악한 병원이 있는데, 가깝기도 하고 사정도 안돼 보이니 이 동네 병원에 치료비를 대신 내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치료비는 자신이 치료받은 병원, 생명을 얻게 해 준 병원에 내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감사나 건축 등, 기타 헌금은 자신이 주관을 받는 대로 드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교회의 부흥성회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 받았다면, 감사 등 기타 헌금을 그곳에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자신의 영혼이 속해 있는 교회에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십일조는 각자의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원칙적으로, 십일조는 가족 이름이나 부부의 이름 같이 공동 이름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가 가사를 전담하고 남편만 직장에 다니는 가정이 있다면, 아내에게는 특별한 수입이 없다고 생각하여 부부의 이름으로 십일조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각자의 이름으로 각자의 수입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남편의 수입이라면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의 수입이라면 아내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천국에서는 부부나 가족이라고 해서 한 집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별로 땅과 집이 주어지며, 각자의 행위에 따라 상급도 다 각각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심는 것도 반드시 각자의 이름으로 올려야 합니다. 물론 이 땅에서 영적인 부부, 영적인 가족이었다면 천국에서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함께 기도도, 충성도, 십의 일조도 열심히 할 것이므로 동일한 천국에, 또 서로의 집 가까이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부부나 가족은 천국에 가면 아무 상관없는 사이가 되고 맙니다.

간혹 믿지 않는 남편의 십일조를 아내가 대신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내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라면, 이런 정성을 통해 남편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더 주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주님을 영접하여 믿음을 갖도록 해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스스로 십일조도 하고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부부 공동의 수입이 들어오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아들 부부에게 두 사람 공동 명의로 유산을 상속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두 사람 공동의 수입입니다. 또 부부가 사업체를 함께 운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그 수입은 부부 공동의 것이므로 두 사람의 이름으로 십일조를 드려도 가합니다. 또는 수입을 똑같이 반으로 나누거나 합의 하에 특정 비율로 나누어 각각의 이름으로 십일조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계속해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 십일조를 드리는 마음

미국의 한 교회의 주일학교 예배시간에 있었던 일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헌금시간이 되어 모든 아이가 헌금을 하는데, 한 아이만은 거의 매주 헌금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담임선생님이 그 이유를 묻자, 아이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헌금을 드리는 대신 헌금시간마다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께 제 몸과 생명과 일생을 바치겠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동을 받은 담임선생님은 아이에게 얼마의 돈을 주고, 그것을 잔돈으로 바꿔서 매주일 1달러씩 헌금하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그대로 순종하여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몇 주 동안 꼬박꼬박 헌금하던 아이가 언젠가부터 더 이상 헌금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다시 아이를 불러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이는 “선생님 말씀대로 잔돈으로 바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헌금을 했는데, 사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어요. 사먹으면 죄를 지을 것 같아서 지난 주일에 전부 헌금을 드리고 이제는 다시 기도만 하기로 했어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1884년 복음을 들고 조선 땅에 상륙한 언더우드 선교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진실한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그의 기도대로, 그의 삶은 황무지 같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마음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마음의 향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다면 드릴 것이 없는 현실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후서 9장 10절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보고라도 심을 것을 주시고 심은 대로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기쁨이요, 드릴 것, 쓸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평안과 기쁨이 가득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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