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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공의(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출34:6-7 날짜 2004.05.30
오늘은 성경 속의 사례들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속에서 응답이 지연되는 경우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예레미야 29:11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하신 말씀처럼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재앙을 물리쳐 주시고, 어려움을 면하게 하시며 평안과 소망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며 열심히 기도하고 작정하여 믿음으로 행하는데도 응답을 주시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본인에게 사랑이 없거나 치료받을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속에서 응답이 지연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곧 누군가와 "영적인 끈"으로 묶여 있으므로 연결된 사람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응답이 올 수 있는 경우이지요.

1. 축복과 재앙에 있어서 영으로 묶여진 경우

예를 들면, 조상이 우상 숭배를 심히 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여 후손이 고통받는 경우입니다. 또, 아기와 부모의 관계에서도 부모가 하나님 앞에 범죄했을 때, 열심 내던 것이 식어지고 미지근한 신앙이 되었을 때 아기의 질병을 통해 연단이 오기도 하지요.
그런데 혹자는 '자기 잘못으로 인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조상이나 다른 사람의 잘못이 자기에게 영향을 주는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상과 후손이라는 관계의 끈으로 연결되어 아비의 행함이 후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은 영계의 법칙에 의한 것입니다(출 34:7).
열왕기상 21장에는 엘리야를 통해 아합 왕이 패역한 범죄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식솔들과 후손들까지 하나님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에 하나님의 저주를 두려워한 아합이 지극히 겸비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니(왕상 21:27)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회개를 들으시고 재앙을 감해 주셨습니다(왕상 21:29). 그런데 아합 자신은 저주를 면했지만 그와 연결된 후손은 여전히 아합으로 인한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지요.
이처럼 연결된 끈으로 인해 재앙이 임할 뿐 아니라 은혜와 축복도 다른 사람과 끈으로 연결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과 함께하므로 조카 롯이 복을 받은 것과 하나님께 사랑받은 다윗 왕으로 인해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크게 입었던 것도 영계의 법칙에 의한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그러나 후손의 운명이 무조건 부모나 조상에게 달려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너무나 선하고 진실하여 재앙을 입지 않을 만한 사람이 부모 때문에 무조건 재앙을 당해야 한다거나 하나님을 대적한 흉악한 범죄자가 부모의 믿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결론적으로, 최종적인 구원의 문제는 반드시 자기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다만 영적으로 사단의 훼방을 더 크게 받는다거나, 혹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입을 수 있는 분야들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조상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큰 악을 행했다면 후손이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사단이 송사할 수 있는 여지가 남보다 더 큰 것이지요. 또한 후손의 심성도 조상을 닮아 강퍅하기 쉬우므로 구원받고 은혜받을 만한 마음이 되기가 비교적 쉽지 않은 것이지요.
반면에 하나님 앞에서 계명을 지키고 사랑스럽게 행한 사람들의 자손이라면 후손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그 후손이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멀리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모를 생각하사 그 후손에게 돌이키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주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은 유다 왕들이 하나님께 심히 악을 행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생각하사 그들을 멸하시기까지 오래 참으셨습니다(대하 21:7). 또한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하나님을 서운케 하여 나라가 갈라지게 되었을 때도 다윗을 생각하사 그에 대한 보응이 솔로몬의 다음 시대로 미뤄지는 것을 볼 수 있지요(왕상 11:34). 또 앗수르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공격할 때 유다 왕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습니다(왕하 19:34).
이처럼 후대의 왕들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할 때, 다윗으로 인해 은혜의 기회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로 보아 철저한 공의 가운데서 상벌이 주어지지만, 어찌하든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부모를 생각하사 자녀에게 은혜의 기회를 많이 주셔도 자녀가 그 기회를 잡지 않고 끝내 믿지 않는다면 당연히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다윗을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많은 긍휼을 베푸셨지만 끝내 하나님을 멀리한 유다의 왕들과 나라들이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2. 영적인 저주로 묶여 있더라도 구원을 받는 경우

영적인 저주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 원수 마귀 사단은 그것을 빌미로 끊임없이 송사를 합니다. 그러면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그 송사를 받아주실 수밖에 없지만 부지중에 끈으로 연결되었다 해도 당사자가 하나님을 믿게 되고 공의의 법칙을 알게 되면, 믿음과 사랑 가운데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상이 하나님 앞에 중한 죄를 지어 후손에게 재앙이 임한 경우 그 해결책이 나오지요(겔 18:19-20). 조상으로 인해 후손에게 저주가 임한 것이 영계의 법칙에 의한 공의인 것처럼, 후손이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계명을 지키면 저주가 풀어지는 것 또한 공의입니다.
열왕기하 22장에 보면 유다의 요시야 이전에 있었던 왕들이 심히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므로 유다에는 큰 저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왕이 된 요시야는 자신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계명을 버렸으므로 재앙을 크게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요시야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 해도 이전 유다 왕들의 죄가 너무 중하였기에 유다 전체에 임한 저주가 풀어질 수는 없었지만, 이전의 왕들로 인한 저주가 요시야의 시대에는 임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신 적도 있습니다(왕하 22:19-20).
또한 하나님을 거역했던 여로보암 왕의 아들 아비야가 중한 병에 걸렸을 때 여로보암의 아내는 아들이 어떻게 될 것을 알기 위해 선지자 아히야에게 나갔습니다. 당시 선지자 아히야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웠고 여로보암의 아내는 왕비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변장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리 여로보암의 아내가 변장하고 올 것과, 그에게 어떤 말씀을 하라는 것까지 아히야에게 알려 주셨습니다(왕상 14:5). 즉, 여로보암의 범죄가 중하므로 그의 일족과 후손이 다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 것과 그 아들 아비야도 죽게 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 죽음이 오히려 아비야에게는 복이 되었습니다.
장차 여로보암의 범죄로 인해 그 집안이 다 비참한 죽음을 당할 상황이었기에 하나님 앞에 합당한 마음을 가진 아비야만은 재앙이 임하기 전에 죽으므로 백성들의 사랑 가운데 평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지요(왕상 14:12-13). 이 또한 자신의 마음과 행함으로 인해 아비로부터 묶인 저주가 벗겨져 나갈 수 있는 사례가 됩니다.

3. 입술의 말이나 서원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묶이는 경우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서원으로 인해 묶여진 경우입니다. 물론 이는 선한 기도로 묶은 것이기에 어머니와 아들 양쪽에 다 유익이 되었지요. 비록 사무엘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서원으로 인한 것이지만 사무엘 자신도 하나님께 드려지므로 영적으로 존귀한 사람이 되었으며 한나 또한 서원을 지킴으로 더 큰 축복을 받았지요(삼상 2:21).
이와 반대로 입술의 말로서 자신들 뿐 아니라 그 후손들까지 재앙의 끈으로 묶어 버린 경우도 있는데 바로 예수님을 죽게 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죄한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했지요(마 27:25). 이 고백이 그대로 임하여 그 후로 유대인들은 참혹한 수난의 역사를 겪었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들이 어떤 말을 내었을 때 입술의 열매를 먹게 되는 것이 영계의 법칙이요, 공의입니다(잠 18:21).

4. 교회의 머리와 양 떼로 묶인 경우

소속된 교회로 인하여 영적인 끈이 연결되므로 축복과 재앙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양 떼의 목자인 주의 종이나 교회의 머리된 일꾼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들일 때는 그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영육간에 하나님의 은총이 더욱 크게 임할 수 있습니다. 주의 종과 일꾼들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교회와 양 떼를 위해 기도할 때 넘치는 축복으로 응답해 주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주의 종이 심히 범죄를 했다거나 일꾼들이 분란을 일으키는 등, 하나님을 서운케 하는 일들이 있으면 교회가 부흥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성도들의 영혼이 잘되기도 어렵고, 가정과 일터에도 시험환난이 떠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왕이나 제사장이 범죄하면 나라 전체가 전쟁이나 기근 등의 재앙을 당하므로 백성들까지 심히 고통을 당했던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연결된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거나 복이 임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서 이뤄지는 일들이라 했지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과 행함입니다.
아무리 부모로 인해 은혜를 주신다 해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게 살아간다면 결국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또한 아무리 다른 사람과 저주의 끈이 연결되었다 해도 내 자신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살면서 남보다 더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구원받을 수 있지요. 더 나아가 선과 진실과 사랑을 이루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만 하면 어떤 문제들도 해결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밝히 깨닫고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며 빛 가운데 살아감으로 자신만이 아니라 가정과 일터, 교회 등 모든 분야에까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수 있는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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