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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로부터 난 지혜(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약3:17 날짜 2008.08.03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야곱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꾀가 있어 자신의 방법과 지혜를 동원해 많은 것을 얻게 되지만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장자권을 빼앗긴 형 에서가 죽이려 하므로 급히 집을 떠나야 했고, 20년의 긴 세월 동안 타향살이를 하며 어머니의 임종조차 곁에서 지키지 못했습니다. 추위와 더위를 견디면서 밤낮으로 일하는 동안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지요. 보수 없이 일할 때도 있었고, 삯을 받게 된 후에도 외삼촌이 품삯을 속여 변역한 것이 열 번이나 되었습니다. 얹혀사는 처지였기에 아무리 억울해도 불평조차 쉽게 할 수 없고, 눌러 참아야 했을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고향을 향해 떠났지만, 20년 동안 원한을 품고 있던 형이 4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이끌고 달려옵니다. 그동안 자신의 지혜와 성실로 쌓은 모든 소유와 가족, 자신의 생명까지도 잃어버릴 상황이 온 것입니다. 아무리 지혜를 짜내도 벗어날 길이 없자 그제서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자신의 방법, 지혜, 능력과 의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철저히 낮아져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니 모든 것이 극적으로 해결됩니다.
형 에서의 마음이 순간에 녹아 동생을 죽이려 하던 에서가 야곱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순간, 야곱은 자신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철저히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렁이 같은 야곱이 되어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낮아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승승장구하여 두려울 것이 없었는데, 어느 한 순간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사고나 불치병, 사업의 부도나 가정의 문제 등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철저히 낮아지니 해결을 받았습니다. 자기 힘으로 아무리 극복해보려 해도 안 되던 것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니 해결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여 살아간다고 간증을 합니다.
이처럼 크고 작은 모든 일 속에서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과 위로부터 난 지혜를 구하면 가정이나 학교, 직장에서도 항상 사랑받고 하나님께 영광만 돌릴 수 있습니다.

1.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기 위한 첫 번째 비결 - 성결

지난 시간에는 위로부터 난 지혜의 첫 번째 비결인 성결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를 초월하며 세상의 지혜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오직 선한 방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도 깨달은 대로 선을 행하기 위해서도 먼저 마음에 성결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에 악이 있으면 선한 지혜가 떠오르지도 않고, 선을 행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악하고 간교한 것도 지혜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미련하다 말씀하십니다. 악한 꾀를 써서 얻은 열매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므로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겉으로 봐서는 악한 꾀를 쓴 사람이 평안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형통하게 보여도, 그 삶의 내면에는 얼마나 많은 고민이 숨어 있는지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혹여 세상의 지혜로 일생동안 편하게 살았다 해도, 중요한 것은 마지막 결론입니다. 사후에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할 때 비로소 그가 지혜롭게 살았는지, 어리석게 살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길어야 80년 인생 중에 부귀영화를 누렸다 해도, 그 후 영원한 세월 속에 고난을 당한다면 분명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37장 10절에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말씀합니다. 이 땅의 썩어질 것을 취하고자 악한 지혜를 동원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명심하여 짧은 이생의 일들만 아니라, 길고 영원한 세상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2.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기 위한 두 번째 비결 - 화평

1) 타인과 화평
영적인 화평은 모든 사람과의 화평입니다. 어떤 사람과는 잘 지내고 어떤 사람과는 불편한 것이 아니라, 넉넉한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과 화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화평한 것이 지혜라고 하는 이유는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뛰어난 두뇌와 능력을 가졌지만 화평을 이루지 못해 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한 예로 조선시대의 조광조라는 인물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왕과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낡은 정치의 폐단을 없애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과감한 개혁 정책을 실행하려 했습니다. 왕은 소신이 뚜렷하고 열정이 있는 그를 힘껏 밀어주었고, 백성들도 그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조광조는 너무 급진적으로 일을 추진하여 다른 신하들의 반발과 미움을 샀고, 반발 속에서도 자기 의견만 강하게 주장하다가 점차 왕의 감정까지 상하게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모함을 받아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덕스럽게 주변을 포용했다면, 자신의 꿈을 펼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옳은 것만 주장하여 화평을 이루지 못하면서, 오히려 큰 해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해도, 또 나름대로 지식과 확실한 방법론이 있다 해도 결국 그것이 쓸모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일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공을 많이 세우고도 주변 사람에게서 좋은 평을 듣지 못합니다. 독불장군처럼 자신의 능력과 지혜만 앞세워,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형편은 무시하고, 자기 고집과 스타일대로만 밀고 나갑니다. 아랫사람들과도, 다른 부서의 사람들과도, 심지어는 상사들과도 부딪힙니다. 이런 일이 계속 쌓이게 되면, 이 사람은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그의 능력까지 무시됩니다. 회사 안에서 외톨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열매를 내었다 해도, 화평을 깨면서 그랬다면 결과적으로 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과 화평
더구나 하나님의 일에서는 화평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데,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좋은 것을 이룬다 해도 그 과정에서 화평이 깨어지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똑똑하고 기술과 재능이 뛰어나도, 화평을 깨는 사람은 쓰임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들이 부모를 사랑하여 온갖 좋은 것으로 섬기고 공경합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서로 미워하고 다툰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 해도 부모의 마음은 상하기 마련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일을 잘 하는 것보다 화평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화평이 지혜라고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불화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을 계획하고 직접 뛰는 것은 일꾼들이지만, 열매를 맺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일하는 과정에서 화평이 깨지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송사거리를 내어주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길이 막힙니다. 이럴 때는 사람이 아무리 지혜를 동원하고 열심히 일해도, 영적으로는 실한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육적으로 재능도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열정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일을 맡기면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이것이 더 좋다", "이렇게 해야 더 열매가 난다" 하면서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물론 본인은 잘하기 위해서 그런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주변에서 "저 사람과는 일하기 힘들다"는 불만이 나오게 됩니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그 영혼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그나마 그 사명이라도 맡겨서 힘을 내어 신앙생활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고 입으로 불평을 쏟는다면 상급을 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쌓은 상급마저 없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화평을 이루는 것이 큰 지혜입니다. 능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하나 되고 화평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을 더하시고 열매를 보장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당회장이라 해도, 교회 일을 제 마음대로 한 적이 없습니다. 직접 관계된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일꾼들이 한 마음으로 모아질 때까지 설득하며 기다립니다. 만약 제 믿음대로, 제 뜻대로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보다 훨씬 크고 창대하게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모두가 하나 되어 이루는 것임을 알기에, 제 의견을 고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답답해 보일 때도 있고 더디 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도록 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 결국은 더욱 큰 지혜입니다.

3) 신앙생활에서의 화평
신앙생활을 할 때도 화평하는 지혜는 아주 중요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핍박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화평의 지혜를 발휘하면, 핍박이 떠나고 사랑을 받게 됩니다. 반면에, 불필요한 연단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경우도 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여성도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남편이 "일요일마다 당신이 나만 두고 나가는데도 내가 계속 양보했으니까, 이번 일요일은 교회에 가지 말고 나와 함께 집에 있으면 좋겠다" 합니다. 이럴 때 어떤 아내는 "또 남편이 억지를 쓰는구나" 하고 한숨을 쉽니다. 그러면서 "주일은 교회 가야하는걸 알면서 왜 또 괜히 그러세요? 혼자 있기 싫으면 같이 교회 가면 되잖아요" 하면서 나가 버립니다. 나는 당연히 교회를 가야 하니까,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 남편의 투정을 받아줄 수 없다는 태도인 것입니다. 이렇게 남편을 서운하게 하면서 가정복음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주일 예배는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아내라면 남편과 최대한 화평하면서 주일을 지킬 것입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도 하고, 집안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상냥하게 남편의 기분을 맞춰줍니다. 주일 하루만 그런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그러면 더욱 좋습니다. 그리고 나갈 시간이 되면, "당신이 항상 양보해주니 너무 감사해요. 저도 같이 있고 싶지만, 그래도 주일은 꼭 예배를 드려야 해요. 토요일과 휴일에는 꼭 같이 있을게요. 오늘은 혼자 있게 해서 너무 죄송해요. 금방 다녀올게요, 조금만 참으세요." 최대한 온유하고 사랑스럽게 말할 것입니다.
이처럼 정말 남편을 사랑하고 화평을 이루고자 하면, 성령께서 그 순간 가장 적절한 화평의 말을 주관해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 속에 화평과 선으로 쌓아나갈 때, 가정의 복음화도 빨리 이뤄지게 됩니다. 남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후자를 더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는 남편이 혈기가 나서 눈을 부릅뜨고 윽박지릅니다. "하나님을 택하든지 나를 택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해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아내가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지 생각하면서, 남편에게 "지금 원수 마귀 사단이 당신을 주관하는 거예요. 계속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면 지옥가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원수 마귀 사단아 물러가라!" 한다거나 "당신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나는 결코 하나님을 버릴 수 없어요" 한다면, 이는 불난 곳에 물을 붓는다 하면서 기름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핍박이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마음이 더욱 강퍅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과 상대에 따라, 어떤 말로 대답할 것인지는 달라집니다. 성령의 주관이 강하게 올 때는 아내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줘야 남편이 변화될 때도 있지만, 사실 이런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유순한 말로 남편의 분노를 달랠 수 있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잠언 15장 1절에도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을 떠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당신도 포기할 수는 없어요. 제가 당신을 잘 섬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서운하셨던 것이 있으면 제가 앞으로 더 잘할게요. 우리 이 땅에서도 행복하게 살고 같이 천국에 가요." 하면서 간곡하게 말하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하지만 말만 부드럽게 잘한다고 해서 남편의 마음이 녹아지고 화평이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에 진심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정말 남편을 사랑하고, 화평하기 원하는 마음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남편이 혈기를 내니 나도 속이 부글부글 끓고, 나를 핍박하는 남편이 원망스럽고 밉다면 화평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려니, 선하고 지혜로운 말이 잘 떠오르지 않고 남편의 마음에도 감동이 오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의 마음이 선으로 변화되어야, 악을 발하는 상대에게도 선으로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화평한다 하면서 비진리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핍박하는 남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오늘 하루는 주일을 어겨야겠다 한다면, 이것은 화평이 아니라 타협입니다. 이렇게 육적인 화평을 좇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상대는 물론, 자칫하면 자신조차 사망의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평을 이룸에 있어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사람과의 화평이 아닌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마음에 성결을 이루고 하나님과 온전히 화평을 이루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말씀하셨으니 지혜롭게 하나님과도, 모든 사람과도 범사에 화평을 이루어 날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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