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위로부터 난 지혜(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약3:17-18 날짜 2008.11.02
우리가 누구를 만날 때나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편벽되지 않은 마음으로 봐야 진실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난 참 지혜는 편벽과 거짓이 없는 것이라 한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편벽이 있으면 결국 거짓의 열매를 내게 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벽이 없어야, 범사에 진실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편벽됨 없이 생각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편벽과 거짓이 없으려면

먼저, 약한 자에게 치우치는 것도 진리 안에서는 편벽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3장 3절에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 했습니다. 강자와 약자가 다툴 때, 사람들은 흔히 약자의 편을 드는 것이 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힘이 있는 사람의 편을 들면, 자기 유익을 구하기 위해 편을 들어 주는 것이라거나 비겁한 자세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강자나 약자 어느 편에도 기울어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정확하게 옳고 그름을 분별하되 사랑과 긍휼의 눈으로 분별하기를 원하십니다.

다음으로,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면 남의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진 대상에 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이라도 진실을 정확하게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물며 남의 말만 듣거나 추측만으로 남을 판단하거나 섣불리 단정한다면 더욱 큰 잘못을 범하게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업에 투자를 한다면, 먼저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거래하는 상대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사업은 수익성이 있는지 등을 조사하며 꼼꼼히 따져 봐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전 조사도 없이 남의 말만 듣고 큰 돈을 투자했다면, 사기를 당하거나 큰 손해를 봤더라도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비단 육적인 사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보고 듣고 판단하는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해야 마음을 더 반듯하고 공정하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보고를 받을 때 한쪽의 말만 듣고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허물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해도, 당사자에게 들어보면 그 내용이 또 다르기 때문입니다. 양쪽의 말을 모두 들어봐야 정확한 상황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분명히 잘못을 저질러 놓고 자신의 잘못을 숨기거나 변명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럴 때도 그의 말을 그냥 믿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한 사람이라도 그의 말을 믿어줌으로 그 사람이 마음에 쉼을 얻게 되고, 힘을 얻어 변화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편벽과 거짓이 없으려면 감정과 사심을 버려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나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는 좀 더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합니다. 예를 들어, 친하지 않은 사람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교만하여 질서를 어긴다, 불의하다"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원칙을 지키지 않을 때는 무슨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자녀가 맞고 들어오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감정부터 올라오는 부모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아이가 때린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맞은 상처만 보면서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하거나 무엇을 생각할 때, 자기 안에 감정이나 사심이 느껴진다면 늘 자신을 근신하여 다시 한 번 살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과 관계된 일이라면 더욱 더 공의 속에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양순의 항목에서도 설명했지만, 능히 취할 수 있는 것도 취하지 않아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도 안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직분상 많은 사람들의 눈앞에 드러나는 경우는 더욱 근신하며 절제해야 합니다. 내가 어느 정도 마음의 의를 이뤘다거나, 이 정도는 내게 충분히 가하다 하여 취한 것이 남들에게는 정과 욕심이라고 느껴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것까지도 상대를 위하여 취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2. 화평케 하는 자

야고보서 3장 18절에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했는데 17절에 나온 지혜의 말씀을 결론짓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성결하면 두루두루 화평을 이루게 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한 사람은 관용과 양순 속에 행하게 됩니다. 또 긍휼하고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 그런 사람은 편벽과 거짓이 없습니다. 이렇게 17절의 항목들을 다 이루었을 때, 18절 말씀처럼 화평케 하는 자가 되고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1) 하나님과의 화평을 먼저 이루어야
17절에서의 화평은 주로 사람과의 화평이고, 18절의 화평은 하나님과의 화평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눈에 보이는 사람과의 화평만을 생각하여 하나님과의 화평을 깨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리를 어기고 불의와 타협하면서 "이것은 화평을 이루는 지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혹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 마음이 약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한 예가 바로 보증이나 재정의 문제입니다.
성경 말씀에 결코 보증을 서지 말라 했고,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떤 빚도 지지 말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믿음의 형제간에 재정 거래를 하지 말라, 그로 인해 실족하는 일이 생긴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막상 가까운 사람이 "보증을 서 달라" 하거나 "사업 자금을 빌려 달라" 하면, 이 말씀을 잊어버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형제가 "어렵다, 도와 달라" 한다고 해서 보증을 서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는 지혜가 없는 것이고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아예 거저 줄 수 있을 만큼 사랑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그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며 결국은 원수를 맺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덕이 되지도 못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으니 사단이 역사해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과의 화평보다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항상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 유익을 구하여 타협하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화평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숭배를 거부하여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왕과 화평을 깨뜨리지 않으려면, 우상 앞에 한 번만 절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앞에 너무나 큰 범죄이고, 하나님과의 화평을 심히 깨뜨리는 일입니다. 그들은 왕과 화평이 깨어짐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과의 화평을 택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의를 크게 드러내셨습니다. 풀무불에 던져지고도 온전히 지킴을 받아 왕과 백성들 앞에서 영광을 돌리게 했던 것입니다. 그 기적을 본 왕과 백성들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화평을 지켰을 때, 다니엘의 세 친구는 자신들이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화평케 하는 자"의 역할도 감당한 것입니다.
많은 경우, 사람이 생각하는 의와 하나님께서 보시는 의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로운 쪽을 택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을 가하다 합니다. 이것은 귀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미풍양속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하거나, 혹은 믿지 않는 가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말합니다. 우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가정복음화의 길이 막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안목으로 보면 이와 반대입니다. 믿는 사람이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이 깨어지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으니 가정복음화는 더욱 더디게 이루어집니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과 먼저 화평을 이룰 때 사람과도 화목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과의 화평을 깨뜨리고 사람과 화평을 이룬다 면 그 화평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것이고, 아무 유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2) 선의 지혜 속에서 화평을 이루는 방법
물론 똑같이 우상 앞에 절하지 않는다 해도, 그 방법론에 있어 얼마나 지혜롭게 행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선하고 지혜로운 말로 믿지 않는 가족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면 차라리 잠잠한 것이 낫습니다. 잠잠히 기도하면서 빛과 소금이 되고 꾸준히 하나님 앞에 선을 쌓아 나갈 때, 때가 되면 가족복음화의 기회가 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 성급함 속에 행하여 형통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강한 말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거나, 감정 섞인 말로 다투는 등 가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가정복음화가 더디게 이루어진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길을 빙빙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은 역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사람이 잡혀와 취조 받는 장면을 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심문받을 때나 재판정에 섰을 때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좋은데, 이때 순사의 얼굴에 침을 뱉거나 욕을 하고 판사를 모욕하는 말을 하는 등으로 더 큰 고난을 자초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대 맞을 것을 열 대 맞기도 하고, 1년 선고받을 것을 3년 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아무리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해도, 자기 의 속에서 불필요한 악을 행하여 더 큰 연단을 불러온다면 이것은 결국 지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일상생활을 할 때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쪽을 택할 뿐 아니라, 그 방법론에 있어서도 선한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속히 응답과 축복을 받고, 모든 사람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는 공의가 성립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화평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일 뿐 아니라, 온 집에 충성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섬김과 희생, 사랑과 덕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도 화평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면, 하나님 앞에 영적인 담대함을 얻어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가는 곳마다 축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들
아담 이후로 죄인이 된 인류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되어 주셨고,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써 의인이라 칭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 해도,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일단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이제 행함이 있는 참 믿음으로 자라야 합니다. 죄악을 벗어버리고 성결과 관용, 양순과 긍휼, 이러한 의를 마음에 이뤄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여전히 죄 가운데 살면, 그만큼 하나님과 화평이 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희생하여 우리와 화평을 이뤄주셨는데, 우리 편에서 그 화평을 깨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속히 모든 죄악을 벗고 항상 하나님과 화평할 뿐 아니라 점점 더 깊은 신뢰관계를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하나님의 벗이라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은 다른 영혼들에게까지 하나님과 화평케 하여 축복을 줄 수 있는 공의를 이루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화평하므로, 아브라함과 함께한 롯도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였던 모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용서와 긍휼을 입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영혼들까지 하나님께 인도하여 화평하게 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참 자녀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뉴스를 보면 세상이 참으로 어수선합니다. 들려오는 소식마다 어렵고 힘들고 삭막합니다. 여기저기서 "힘들다, 못살겠다" 합니다. 그런데 고센 땅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열 재앙 속에서도 지킴 받았습니다. 요셉은 큰 기근이 7년이나 계속되었어도 자기가 섬기는 왕을 부하게 했고, 자기 민족을 풍요롭게 돌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는 힘들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여러분을 위로하고 평안케 하며, 축복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란 하나님의 66권 말씀 자체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악을 버리는 것이며, 성결을 이룬 마음에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 설교에서는 그것을 다시 몇 가지 항목들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예를 들었습니다. 성결과 화평, 관용과 양순, 긍휼과 선한 열매, 편벽과 거짓이 없는 것, 이런 하나하나의 항목들을 여러분의 마음에 깊이 담으시기 바랍니다.
혹여 내가 어느 정도 진리로 이루었다 해도, 더욱 깊이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여 내가 정녕 옳으니이까? 지금 내가 생각한 것이, 말한 것이, 행한 것이 정녕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나이까?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늘 돌아보며 온전함을 이뤄 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평안과 축복 중에 거하며 무수한 영혼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므로 천국에서도 영원히 빛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윗글 : 위로부터 난 지혜(8)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