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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밭을 개간하자(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마 13:3-9 날짜 2010.01.3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각 사람의 마음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해 주셨습니다. ‘길가밭’보다는 ‘돌밭’이 좀 낫고, ‘돌밭’보다는 ‘가시떨기밭’이 조금 더 낫지만 사람의 마음을 네 가지로만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네 가지 밭의 속성이 조금씩 섞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밭을 꼼꼼히 점검해 보고 신속히 옥토로 개간하시기 바랍니다.

1. ‘길가밭’의 마음이란 ?

농부가 씨를 뿌리면 간혹 밭 옆의 길가에 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오늘날처럼 길이 잘 닦여 있지 않아서 밭과 길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씨를 뿌리다 보면 씨가 밭을 벗어나서 길가에 떨어지기도 했지요. 길가는 사람들이 늘 밟고 지나다니기 때문에 밭과는 달리 단단하지요. 씨앗이 이 길가에 떨어지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흙 속에 묻히지도 못하기 때문에 아예 싹이 나지 않지요. 새들이 와서 그 씨앗을 먹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길가밭’은 바로 단단한 마음, 곧 강퍅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 믿지 못하는 마음이지요.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각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우리 아버지가 되심을 알려 주시지요. 또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통해 깨우쳐 주시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도 알려 주십니다. 자연 만물을 통해, 또는 전도자의 전도를 통해 각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시는 것입니다.

길가밭의 마음은 이처럼 주님이 두드리셔도 마음 문을 굳게 닫고 잘 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전도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런데 지금 말하는 길가밭의 마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요.

2.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길가밭의 마음을 가진 경우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와 앉아는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고, 모든 성경 말씀이 참임을 증거해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지요.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영적으로 깨닫지 못합니다. 저 말씀은 이래서 안 맞고 저건 이래서 틀리고, 이렇게 자기 생각에 막혀서 말씀을 마음에 받지 못하지요. 오히려 의심하거나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임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어도 역시 믿지 못합니다. 즉 하나님만이 나타내실 수 있는 기사와 표적 수많은 권능의 역사를 보고도 의심하지요. 심지어 자기 가족이 불치병을 치료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는데도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강퍅한 마음의 대명사로 불리는 한 인물이 나옵니다. 출애굽 당시 열 재앙을 보고도 하나님을 믿지 않은 바로 왕입니다. 바로 왕은 애굽에 큰 재앙이 임할 때마다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재앙이 멈추면 번번이 약속을 어겼지요.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에 급급했을 뿐 마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입니까? 더 안타까운 것은 길가밭의 마음을 가진 경우 믿음을 가지려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데도 대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만 되면 졸고 의심과 판단, 잡념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 수년, 또는 수십 년간 교회에 다녀도 은혜의 체험도 없고 어떤 변화도 없지요. 이 길가밭의 경우 성령 체험이 없는 가운데 교회에만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많지요. 씨 곧 말씀이 마음밭에 떨어져도 전혀 싹이 트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새가 날아와서 씨를 먹어 버리고 말지요. 새가 씨를 먹어 버린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사단이 말씀을 빼앗는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3장 19절에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했습니다. 천국 말씀, 곧 하나님의 영적인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 곧 원수 마귀 사단이 말씀을 빼앗아 버립니다. 사단이 어떻게 말씀을 빼앗는지 예를 들어 보지요.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나오는 등 그래도 주일에는 교회에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루는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면 축복받는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집에 돌아오자 마치 대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나 이웃 등 가까운 사람이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교회에는 무엇하러 다녀요? 고생스럽게… 교회 가면 뭐 주나요? 교회 갈 시간 있으면 잠이나 더 자겠다.” 또는 “다음 주부터는 같이 등산이나 갑시다. 운동경기 보러 갑시다. 휴일이라도 좀 즐기면서 편하게 보내야지요.” 이렇게 미혹하면 길가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넘어가고 말지요. 말씀을 들었을 때는 ‘열심히 주일성수 해 볼까?’ 하고 마음 문을 열려고 했다가도 이내 다시 마음 문을 굳게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생길 틈이 없지요. 사단은 이처럼 가까운 사람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을 주관해서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만 이렇게 ‘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단의 주관을 받아 ‘새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꼭 매주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일이 있으면 못 갈 수도 있지요. 그 교회는 너무 유별나게 믿더라구요.” 하면서 오히려 진리를 변질시켜서 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 속에서도 다시 교회에 나간다면 그나마 언젠가는 믿음을 갖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에 안 나가 버리는 경우입니다. 심지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다른 가족들을 핍박하는 경우도 있지요. 물론 길가밭에는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3.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가밭의 마음을 가진 경우

바로 자기 유익을 위해 교회에 나오는 경우이지요.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목적은 영적인 믿음을 갖고 구원받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업을 위해, 또는 사교생활을 위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봅니다. 봉사하면서 자기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나 도덕적으로 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 혹은 공인으로서 이미지 관리를 하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런 경우, 수년간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도 갖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따라 마음 내키는 대로 신앙생활 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았다.’ ‘문제를 해결받았다.’ 해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하지요. 영적인 눈과 귀를 닫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천국에 대한 참 소망이 있을 리도 없지요.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 율법학자 등 종교지도자들이 바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참 믿음을 갖고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지요. 육으로 똘똘 뭉쳐진 길가밭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영적인 말씀을 듣고 영적인 일을 보아도 깨우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4. 길가밭의 마음을 개간하려면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하고 말씀합니다. 세상에서 입력시킨 지식이나 가치관들 중에는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습니다. 진화론 같은 것이 한 예이지요. 이런 지식, 이론들을 깨뜨려야지만 생각의 문을 열 수 있고 더 나아가 마음 문을 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있지요. 길가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살아오면서 입력한 지식, 가치관 이런 것들이 너무 단단하게 굳어 있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지요.

그런데 이런 의와 틀을 깨뜨리려면 자기 마음의 악을 먼저 깨뜨려야 합니다. 교만, 자존심, 고집, 거짓 등 이런 악들이 있으면 자기 의와 틀을 깨뜨리기가 어렵습니다. 또 마음의 악이 자꾸만 육신의 생각을 발동시켜서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지요. 예를 들어 마음에 거짓을 많이 쌓아온 사람은 마음에 거짓이 많기 때문에 상대가 아무리 참을 말해도 자꾸 의심이 틈탑니다. 로마서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한 대로 하나님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게 합니다. 물론 이런 악을 깨뜨리고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깨뜨리는 작업이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매우 완고하지만 은혜를 받고 한 번 와장창 깨지면 그 누구보다 뜨겁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는 겉마음은 단단해도 마음 속 중심은 부드러운 경우이지요. 그런데 길가밭은 이런 마음과는 다릅니다. 깊은 마음까지 단단하게 굳은 마음이지요. 겉은 단단한 것 같은데 속은 부드러운 마음을 살얼음, 또는 얇은 얼음에 비유하면 길가밭은 속까지 두껍게 꽝꽝 얼어 있는 얼음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비진리로, 악으로 굳어진 길가밭의 마음은 단기간 내에 완전히 깨뜨리기는 어렵습니다. 깨뜨리고 또 깨뜨리기를 반복하면서 지속적으로 개간 작업을 해 나가야 하지요.

예를 들어 말씀이 내 생각에 부딪힐 때마다 ‘과연 내 생각과 지식이 정말 옳은가?’ 하고 스스로 궁구해 보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수 있도록 열심히 선한 행함을 쌓아야 합니다. 가끔 저에게 나오셔서 믿음 좀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큰 권능을 보고, 수많은 말씀을 들어도 믿음이 안 온다고 하니 답답하기는 하지만 이런 분들은 그나마 희망적인 편에 속합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요. 길가밭의 경우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가족이나 일꾼들이 옆에서 끊임없이 기도해 주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어느 순간에는 말씀의 씨에서 싹이 트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씨앗을 심었을 때 열매를 얼마나 맺느냐를 떠나서 일단 싹이 튼다는 것, 즉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제단에서는 놀라운 권능의 역사가 망치처럼 사람의 이론과 지식을 깨뜨립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을 통해 무한한 긍휼을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많은 영혼들을 변화시켰지요. 마지막 날이 가까울수록 길가밭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점점 많아질 것입니다. 영의 흐름이 급속해질수록 육의 흐름도 더 거세지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런 세대의 사람들까지도 깨뜨리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 주셨으니 길가밭의 마음을 가진 영혼이라도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 능히 녹일 수 있는 능력의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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