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요한일서 강해(3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일 3:17-19 날짜 2012.03.11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미움을 버리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사랑을 이뤄야 할 것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처럼 생명까지 내어주는 온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상대를 위해 다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을 이루어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하나뿐인 생명을 주신 온전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받고 사랑을 깨달은 우리도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지요. 그런데 상대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실제로 목숨을 내어놓는 것만이 아니라 범사에 자기가 죽어지는 것입니다. 자존심도, 사심도 버리고 상대의 영혼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죄악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상대를 “사랑한다.” 고백해도 자기 마음에 악이 있는 만큼 변질되고 자기 유익을 구합니다. 사랑한다면서 상대에게 성낼 수도 있고 은근히 무시하거나 시기 질투하며, 배신할 수도 있지요. 결국 자기 마음에 악을 버리지 못하면 참된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까지 내어주는 온전한 사랑을 이루려면 우선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기억하면서 부지런히 마음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변질되지 않는 진실함과 크고 넉넉한 마음 곧 상대를 위해 다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야 하지요. 여기까지는 온전한 사랑을 위해 이뤄야 하는 마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2. 사랑의 마음을 실질적인 행함으로 나타내야

요한일서 3장 17절에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말씀한 대로 영적인 사랑의 마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사랑의 행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지 행동적인 측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5~17절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에 대한 설명이지만 믿음만이 아니라 사랑도 행함이 없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것처럼 사랑도 행함이 있어야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국의 어떤 유명한 선교사님이 가난하고 병든 어머니와 젖먹이 아기를 심방하러 갔다고 합니다. 이들의 딱한 형편을 보니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은 가득하지만 자신의 수중에 가진 것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의 생활비뿐이었지요. ‘내가 지금 2만 원만 있어도 그중에 만 원은 이분에게 줄 텐데’ 하면서 차마 구제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말로만 위로하기를 “성도님 낙심하지 마세요.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세요.” 하는데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에게 내 돈을 움켜쥐고 돕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다니 내 입술은 얼마나 위선적인가?’ 이런 마음의 소리가 계속 들려서 견딜 수가 없었지요.

결국은 주머니에 있던 돈을 다 털어 주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장 끼닛거리가 없었지만 마음은 너무나 행복했지요. 다음 날 아침, 굶을 처지에 있던 선교사님에게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선교비 4만 원이 우편으로 전달된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채워 주심도 감사하지만 자신의 행함을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때 얼마나 감격적이고 행복했겠습니까.

성령께서 마음에 주관하시는데도 재물이 아까워서 어려운 형제를 돕지 못하면 그 마음에 사랑이 있다 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가진 것이 없고 형제를 도울 만한 힘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분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에게 한 끼 먹을 양식뿐이라 해도 거기서 한 입이라도 덜어 굶주린 사람에게 나눠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 해도 자기 자녀가 주리고 고통 받는다면 자신이 먹고 쓸 것을 아껴서라도 도와주겠지요. 이렇게 상대의 입장과 마음이 되어 필요한 것을 나눠 주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금은 나도 쓸 데가 많으니까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남을 도와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계속 쓸 데가 있고 구제할 마음의 여유는 생기지 않습니다. 비록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 해도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여 열심히 형제를 돌아보고 베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채워 주시지요.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했고, 9~10절에는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했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행함으로 나타내면 하나님께서 더 풍성히 채워 주셔서 더 많이 구제할 수 있게 됩니다.

3. 사랑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최고의 법

성경에서는 사랑의 행함 중에서도 특히 구제의 실천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와 믿음을 심어 주는 행함이 가장 크고 중요한 사랑의 실천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육의 몸을 입고 살아가기 때문에 육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도 절실한 문제입니다. 또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구제와 섬김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을 때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서 사는 동안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라고 거듭 당부하십니다. 신명기 15장 10~11절에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하셨지요. 추수할 때나 기쁜 일이 있어 잔치를 벌일 때도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여 대접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응답받기 위해 금식할 때도 가난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라 하시지요. 선지자들이 타락한 이스라엘에 장차 임할 재앙을 경고할 때도 여러 가지 악행과 더불어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며 학대하는 악함에 대해 심히 책망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각자의 재산을 팔아 물질을 서로 통용하였던 것도 교회 안에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이 없게 하려는 것이었지요.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도들도 “항상 가난한 자들을 생각한다.” 했고 성도들을 독려하여 구제하기에 힘썼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형제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항상 기도제목’에도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뿐 아니라 구제가 포함되어 있지요.

제가 초신자 때 가졌던 기도제목은 부유한 장로가 되어서 어려운 성도가 없도록 구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의 종이 된 지금도 제 소망은 우리 교회 성도 중에 춥고 배고픈 이가 없고, 학비가 없어서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자신이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고 최선을 다해 구제해 왔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넘치게 축복을 주셨고 선교와 구제도 더 많이 하게 하셨습니다.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척 당시부터 도움을 청하는 교회들을 힘껏 지원했지요. ‘우리 교회도 아직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데… 우리 성도들만 구제하기도 벅찬데’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기쁨으로 최선을 다해 지원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점점 더 축복하셔서 더 많은 구제와 선교를 할 수 있었고, 지금도 세계 곳곳의 교회와 선교사들을 힘에 넘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4. 구제할 때에 기억해야 할 점

우리가 힘써 사랑으로 구제하되 몇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구제를 해도 진리 안에서 해야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갚아 주실 수가 있지요.

먼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으로 징계를 받아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은 도우면 안 됩니다. 요나를 도와준 뱃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 명하셨지만 요나는 그 말씀에 순종하기 싫어서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이 배는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나 모든 짐을 바다에 던져야 했습니다.

뱃사람들은 풍랑을 만난 것이 요나 때문이며, 요나를 바다에 던지면 풍랑이 잔잔해 질 것을 알았지만 인정 때문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참 동안 풍랑과 싸우며 고생하다가 생명이 경각에 이르러서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요나를 바다에 던졌지요.

이처럼 하나님 뜻을 거역하고 범죄하여 시험 환난 중에 있는 사람은 먼저 그 죄에서 돌이키게 도와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상대가 계속 범죄하는데도 누군가가 물질로 도와준다면 도와준 사람까지 연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은 아니라 해도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불쌍하다고 무조건 돕는 것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는 상대로 하여금 계속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도록 방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이처럼 우리가 좋은 마음으로 구제한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지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구제할 때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 하고, 사람 앞에 생색내기 위해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6장 2절에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했지요.

이런 구제는 참된 사랑의 구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제할 때 자신의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을 전달하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행함이 있는 영적인 사랑에 대해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하겠습니다.

아랫글 : 요한일서 강해(45)
윗글 : 요한일서 강해(3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