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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을 척량하시니(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겔 47:1-5 날짜 2011.05.15
지난 시간에는 이 설교를 하는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가나안성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격을 갖추었는지, 축복받을 준비가 되었는지 점검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오늘은 주의 사자가 일천 척씩 척량하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 마지막 때 영의 흐름과 육의 흐름

다니엘 12장 10절에 보면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 중에서도 세상 끝 날이 심히 가까운 때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급속한 ‘영의 흐름’ 가운데 이 제단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성도들이 신속히 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신의 죄를 발견케 하시되 근본의 죄까지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이 죄들을 버릴 수 있도록 지극한 사랑과 신령한 은혜를 부어 주셨지요. 뜨겁게 충성할 수 있도록 천국 소망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흐름을 타고 가면 영으로 들어가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이 영의 흐름은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더 급속해집니다. 동시에 세상 ‘육의 흐름’도 점점 거세집니다. 교회에 다닌다고는 하지만 그 숱한 말씀을 듣고도 악을 버리지 않고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육의 흐름을 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육을 취할수록 점점 더 육으로 빠집니다. 또 온갖 죄를 범하게 되므로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은 죄의 담이 점점 더 높아지지요. 스스로는 자신을 어찌하지 못하기에 거센 육의 흐름에 힘없이 휩쓸려 갑니다.

그런데 단에서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심판, 지옥에 대한 말씀이 끊임없이 선포됩니다. 혹여 마음이 찔리는 분이 계십니까? 만에 하나 그렇다 해도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마음에 찔림이 되는 말씀은 바로 나에게 내미신 하나님의 손입니다. 거센 급류에 휩쓸려서 죽게 된 사람을 건지는 마당에 그 손을 살며시 잡을 수 있나요? 그 팔을 살살 잡아당길 수가 있습니까? 온 힘을 다해 손이 아플 정도로,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세게 잡아당길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고 물에 빠진 사람이 “아파요. 놔주세요!”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뿌리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 그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써야지요. 그 손을 잡고 급류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 쳐야 합니다. 즉 말씀을 들으면 순종하려고 노력해야지요. 돌이켜 이제는 영의 흐름을 타야 합니다.

영의 흐름을 잘 타고 가는 분들도 아차 하는 순간 육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도록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장성한 믿음을 이루어 육의 흐름에 휩쓸려 가는 영혼들을 건져 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주의 사자가 일천 척씩 척량하는 이유

본문을 보면 에스겔이 물을 건너기에 앞서 주의 사자가 매번 일천 척씩 척량합니다. 이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정확하게 각 사람의 믿음을 측량하시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지요. 주의 사자가 일천 척을 척량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넓고 공의로운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어느 일면(一面)만 보지 않으시고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보시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깊은 곳까지 두루 살피십니다. 또한 편벽이 없으십니다. 누구에게만 각별히 너그럽고 누구에게는 더 엄격한 법이 없으시지요. 오직 말씀이라는 잣대로만 분별하십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을 예로 들어볼까요?

김(金) 성도님과 이(李) 집사님이 주일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김 성도님은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새신자이고 이 집사님은 10년 동안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예배드리는 동안 잡념에 빠지기도 하고 ‘피곤하다. 예배가 빨리 끝나면 좋겠다.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나마 김 성도님은 ‘이제 열심히 신앙생활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런 반면 이 집사님은 주일마다 습관적으로 잡념에 빠지고 피곤해하면서도 별 느낌이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 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두 사람 모두 주일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실까요? 하나님은 외모만 보고 모두를 똑같은 잣대로 재지 않으십니다. 신앙 연륜, 직분,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뿐 아니라 깊은 마음까지 다 감찰하신 후 판단하시지요. 신앙 연륜이 있고 직분을 가졌다면 그만큼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하여 믿음을 측량하십니다. 그러므로 김 성도님은 주일을 지켰다고 인정하시고 이 집사님은 지키지 않았다고 하실 수도 있지요.

하나님은 심판 날에만 아니라 경작을 받는 동안에도 매 순간 믿음을 측량하십니다. 한 단계, 한 단계 믿음이 성장할 때마다 성경 66권 말씀에 의거하여 정확하게 감찰하신 후 “이 영혼의 믿음이 성장했다”고 인정해 주시지요. 적당히 대충 ‘합격’ 판정을 내리시는 법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믿음의 2단계에서 3단계로 올라갈 때는 육체의 일을 확실히 끊어버렸는지 지켜보십니다. 확실히 끊어버렸다는 증거가 있을 때 합격을 시켜주시지요. 어떤 응답이나 축복을 주실 때도 믿음을 정확하게 측량하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기쁨, 기도, 감사, 계명, 믿음, 충성, 사랑’ 이렇게 일곱 가지 항목을 측정하시지요.

어떤 사람은 ‘내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믿음의 1단계쯤이야 거뜬히 통과할 수 있으니 구원은 문제없어’ 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지요. 어떤 성도들은 ‘나는 이 정도면 몇 단계는 되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매우 정확하게 각 사람의 믿음을 측량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반드시 자신의 믿음을 정확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최소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졌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하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언제 불러 가실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진정 천국 새 예루살렘을 소망한다면 자신의 믿음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자신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를 알아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침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때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거하여 믿음의 분량을 분별해야 합니다. 주관적인 생각이나 느낌으로 분별해서는 결코 안 되지요. 물론 여러분도 나름대로 말씀에 자신의 말과 행실을 비추어 믿음을 분별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단계는 겉모습만 보고 칼로 자르듯이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요.

따라서 말씀에 자신의 말과 행실, 생각을 비춰보되 동시에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의 중심은 하나님만 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누구보다 우리 중심을 잘 아시지요. 성령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십니다. 천국 소망을 주시고 영적인 희락과 담대함을 주시지요. 성도들은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졌는지, 믿음의 몇 단계에 속하는지를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3. 각 사람의 행위와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을 판단하시기에 앞서 넓고 크고 깊은 마음으로 무수한 사람의 행위와 마음을 동시에 살피시지요. 이를 바탕으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믿음을 측량하십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참으로 믿는 사람은 매 순간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모든 면면을 감찰하고 계심을 증거합니다.

예를 들어, 천국에는 구원받은 자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에 예수님께서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말씀하셨지요. 천사들은 자신이 맡은 영혼의 말과 행실을 기록하여 하나님께 보고합니다. 이 기록은 장차 백보좌 대심판 때 증거 자료로 제시되지요. 하나님 앞에서는 말이나 행동뿐 아니라 깊은 마음까지 환히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과 네 생물은 사람의 깊은 중심까지 감찰합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 후반절에 보면 사도 요한이 어린양 곧 주님을 보고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했습니다. 여기서 일곱 영을 ‘일곱 눈’에 비유했는데 이는 일곱 영이 ‘감찰하고 측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네 생물도 하나님을 호위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행위와 마음을 감찰하는 역할도 합니다. 특히 독수리 생물은 각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심비에 잘 새겨 마음에 이루었는지를 감찰합니다. 독수리는 시력이 매우 좋아서 멀리 있는 작은 먹이도 정확하게 포착하지요. 이처럼 독수리 생물은 한 치의 오차 없이 각 사람의 마음을 살핍니다. 깊은 중심까지 정확하게 분별하지요.

전도서 12장 14절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했고 마태복음 12장 36절에 예수님께서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하셨습니다. 여러분을 지키는 천사와 천국에서 말과 행실을 기록하는 천사, 하나님의 일곱 영과 네 생물 앞에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또 ‘이것쯤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쉬운 말이나 행동도 모두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어찌 믿음 없는 행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들 앞에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늘 당당하고 떳떳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께서 정확한 측량에 심혈을 기울이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흠을 잡아 믿음을 깎아내리고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회를 주시고 더 나아가 상을 주실 마음으로 정확하게 측량하시는 것이지요. 어찌하든 더 높은 점수를 주려 하시되 편벽됨이 없이 정확하게 측량하십니다. 그러므로 분발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하셨으니 장성한 믿음에 이르러 상 받기를 바라는 분들은 최고의 믿음을 목표로 힘껏 달리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여러분이 구원의 선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구원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 신약과 구약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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