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믿음을 척량하시니(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겔47:1-5,출20:3,말3:8 날짜 2011.06.19
‘육체의 일’은 행위로 짓는 죄를 가리킵니다. 육체의 일을 버리지 않고 계속 행하면 결국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으며, 구원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육체의 일을 범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상 숭배에 대해 증거했고, 오늘은 ‘안식일을 범하는 죄’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0장 8~10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는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을 어긴 사람을 즉각 처형했습니다(출 31:15 후반절). 안식일을 범하는 죄는 구원받지 못하는 죄에 해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어기는 행위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3절에 하나님께서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말씀하신 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행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는 ‘표징’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안식일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이들은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안식일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능히 지킬 수 있는 분야도 지키지 않는다면 이는 이 시대에 맞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타협’에 불과하지요.

이사야 58장 13~14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안식일에는 ‘네 길로 행치 말라’ 하셨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안식일에도 일을 합니다. 잠깐 예배에 참석했다가 세상일을 하러 가지요. 산으로 공원으로 야유회를 가거나 영화나 운동경기를 관람하러 갑니다. 교회 형제자매들과 함께 어울려 세상 유흥가를 전전하는 일도 다반사지요. 그러다 보면 당연히 매매도 뒤따릅니다. 정욕을 좇아 불법을 행하기도 하구요.

이렇게 행하면서도 예배를 드렸으니 자신은 안식일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인정해 주실까요? 이사야 1장 13절에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라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탄식하십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렸다 해도 안식일에 세상일을 하거나 오락을 즐긴다면 그 자체로 이미 안식일을 어긴 것이지요. 또 예배 후에 일할 생각, 놀러갈 생각이 가득하니 어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안식일에 세상 오락을 즐긴다면 하나님께서 그 모임에 함께하시겠는지요? 함께하시기는커녕 얼굴을 돌리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모습으로 안식일을 보낸다면 어찌 안식일을 지켰다 할 수 있고 구원받을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어떤 교회들은 앞장서서 안식일을 폐합니다. 그러나 시대를 막론하고 안식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하신 계명은 출애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규례이지요.

물론 오늘날에는 안식일을 어겼다고 해서 구약 시대처럼 즉각 심판하지는 않으십니다. 믿음의 1단계나 2단계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함을 잘 모르거나 믿음이 연약해서 종종 안식일을 어기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징치하시지는 않습니다. 신약 시대는 행위보다는 마음으로 율법을 지켜야 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행위가 온전치 못하다 해도, 안식일을 지키려는 마음을 가졌다면 긍휼히 여기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다만 용서하실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구원받을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을 온전히 지켜야 함을 알고 또 결단하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데도 거듭 안식일을 범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행위라 할 수 있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도, 경외한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셔서 구원의 테두리 안에 온전히 거하시기 바랍니다. 혹 안식일 하루를 온전히 거룩하게 보내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 보십시오.

마가복음 2장 27절 전반절에 예수님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물론 하나님을 섬기는 날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위해 제정하신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복 주기로 작정하신 날이지요. 이를 믿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보내면 하나님께서 한주 동안 지켜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또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참 안식, 곧 쉼을 누리라고 주신 날입니다. 이를 믿고 안식일을 지켜보십시오.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며 영의 양식을 배불리 먹고, 기도와 찬양을 드리며 성령 안에서 희락을 누리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런 축복과 안식을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신명기 14장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곧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보면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때 그 죄를 얼마나 엄히 물으시는지 알 수 있지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죄이며 이로 인해 저주를 받았다고 말씀하시지요. 따라서 이는 구원받지 못하는 죄에 속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죄가 왜 구원받지 못하는 죄에 해당하는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지요.

첫째,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에는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한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이 세상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학개 2장 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신 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고 소유하는 모든 것은 사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시 말해 10이라는 소득을 얻었다면 그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를 인정한다면 그중에서 1을 드리는 것이 왜 어렵겠습니까?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을 받고 천국에서 풍성한 상을 얻게 하시려고 십일조와 각종 헌물을 드리라고 명하셨지요.

말라기 3장 10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십일조나 헌물을 드리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지요.

둘째,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죄는 결국 물질에 대한 탐심을 버리지 않는 데서 비롯되지요. 어떤 사람들은 드릴 것이 없어서, 또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십일조를 드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소득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소득이 없을 리는 만무하지요. 먹을 것, 입을 것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하나 둘 채워진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소득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탐심과 인색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드릴 마음만 있다면 어떻게든 드리고자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드릴 수 있도록 응답해 주실 것이구요. 어떤 분들은 당장 손에 있는 물질이 아까워서 형편이 좀 더 나아지면 드리겠다고 하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누가복음 12장 19~20절에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면서까지 물질을 귀히 여긴다면 이는 결국 하나님보다, 또 자신의 영혼보다 물질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지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지금 영혼을 불러 가신다면 입은 있으나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물질에 대한 탐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즐겨 예물을 드리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대부분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는 기쁨으로 십일조를 드리십니다. 소득이 생기면 가장 먼저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시지요. 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 한 달 급여에서 정확히 10분의 1만 계산하여 인색하게 드리지 않으십니다. 선물이나 식사 대접을 받은 일까지 생각해서 넉넉히 드리지요. 그래야 누락되지 않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 아직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설령 그렇다 해도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다면 ‘내가 혹시 구원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말씀을 들어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할 믿음인데도 여전히 결단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은 오늘 말씀으로 경계를 삼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는 이 땅이 아닌 천국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표가 바로 주일 성수와 십일조 신앙입니다. 구원받을 믿음을 척량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척도가 되는 계명들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이 기다려지는 믿음, 하나님께 모든 쓸 것을 공급하심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랫글 : 믿음을 척량하시니(24)
윗글 : 믿음을 척량하시니(5)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