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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을 척량하시니(1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겔 47:1-5, 갈 5:19-21 날짜 2011.09.18
오늘은 구원받지 못하는 죄 다섯째, ‘간음을 비롯한 갖가지 음행’에 대해 보충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음행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중 ‘더러운 것’이나 ‘호색’은 음행 중에서도 그 정도가 심한 부류에 속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오늘날 이런 일이 너무나 널리 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호색하는 사람들의 경우 더러운 일을 얼마나 거침없이 행하는지요. 한 예로 부부가 합의 하에 다른 부부와 배우자를 교환하여 성관계를 맺은 일도 있습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남편 또는 아내 몰래 외도를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아내를 다른 사람의 아내와, 자신의 남편을 다른 사람의 남편과 맞바꾸어 관계를 했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했는데 세상에는 의외로 이런 더러운 일이 많이 퍼져 있다고 합니다. 이미 이런 행위를 가리키는 명칭도 있을 정도입니다. 사전에는 ‘스와핑(swapping)’이라고 나오지요. 이는 원래 경제용어로 쓰이지만 속어로는 ‘두 쌍 이상의 부부가 배우자를 바꿔 가며 성행위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드러나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바 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이런 죄악이 얼마나 더 만연했을까요. 이는 세상의 성 도덕이나 결혼 관념에 비추어 보아도 심히 패륜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떠하겠습니까?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끔찍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런 느낌을 가지셔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너무 싫어하시는 악행이며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적 타락이 물질만능주의와 맞물리면서 더러운 음행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비단 윤락가에서만 이런 더러운 음행들이 성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평범한 가정의 어린 자녀들에게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요.

한 예로 요즘, 청소년들이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를 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고 합니다. 사전에 따르면 ‘원조교제’란 ‘성인이 청소년에게 금품이나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성행위를 요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최근 신문 기사들에 따르면 외국의 아홉 살짜리 여자 어린이가 인터넷에 원조교제 대상을 찾는다는 광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에 20명이나 모집되었다고 하지요. 이 어린 여자 아이가 이런 충격적인 일을 벌인 이유는 우리 돈으로 3만 7천 원 정도 되는 ‘놀이카드’를 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를뿐더러 이에 반응한 어른들이 그처럼 많았다는 사실이 듣는 이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지요.

최근, 용돈을 벌어서 예쁜 옷을 사기 위해, 가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원조교제를 하는 청소년들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각종 언론들에 따르면 남학생들이 가출한 또래 여학생들을 잡아다가 강제로 성매매를 시키는 범죄도 예사로 일어나고요. 여대생들이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또는 ‘명품’이라 말하는 사치품을 구입하기 위해 성매매 업소를 전전하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요. 이런 현실을 통해 많은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의 성 관념이 너무나 잘못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 대다수가 이런 행위가 얼마나 큰 악행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처음에는 두려움을 가졌다가 한 번 두 번 반복되면서 점점 양심이 무뎌져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지요.

자녀들은 가정의 거울이며 젊은이들은 그 사회의 거울입니다. 이런 슬픈 단면들은 우리 사회가, 이 세상이 성적으로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말해 주지요. 우리 성도님들과 학생들이 속히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굳건히 서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을 지키고 더 나아가 이웃의 자녀들, 학교 친구들을 진리의 울타리 안으로 인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음행’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영적인 의미의 음행은 신랑이신 주님 이외의 대상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 성경의 선지서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영적 음행을 책망하시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이사야 54장 5절에 보면 “너를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아내라 칭하고 계시지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대표적인 음행은 우상 숭배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은 이를 아내의 부정, 곧 음행으로 간주하셨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우상을 섬기는 것만이 음행은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세상 것을 더 사랑하여 마음은 물론 자신의 힘과 시간, 물질을 쏟는다면 이는 영적으로 음행입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마음에 세상을 두면 점점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구원과도 멀어지지요. 그러므로 이런 영적 음행이 싹트지도 못하도록 근본 뿌리를 속히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음행을 죄로 여기지 않을까요? 또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엄히, 또 간절히 음행을 경계하고 계신데도 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조차 음행을 하며 살아갈까요? 워낙 죄로 관영한 세상에서 죄 가운데 나고 자랐기 때문이지요. 또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진리 그대로 가르침 받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 초기에는 그래도 사람들의 양심이 선했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음행이 큰 죄임을 대부분 알고 느낄 수 있었지요. 그러나 인류 역사가 수천 년간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양심이 점점 죄에 물든 결과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말았지요. 오늘날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밥 먹듯이 음행을 하면서도 음행이 죄라는 의식도 없고 가책도 느끼지 않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이지요.

한 예로 TV를 비롯한 각종 매체들은 죄를 사랑인 양 미화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들이 두루 퍼지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즐기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없다.’ 이런 사고에 젖어들게 했지요. 음행을 하고 약간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내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하나님도, 천국, 지옥도 허구일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다 참이며 모든 사람은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전도서 8장 11절에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하신 대로 사람들이 지금 당장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므로 담대하게 악을 행하지요. 물론 세상 사람들은 죄로 인해 징벌이 임해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하여 쾌락을 취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과 갖가지 어려운 일을 당할 뿐입니다. 그때그때 즉시로 징벌이 임하지 않는다 해도 갈수록 마음이 곤고하고 공허해집니다.

쾌락이 행복을 준다면 왜 사람들이 갈수록 더 강한 쾌락을 추구하겠습니까? 정욕적인 것을 아무리 취한다 해도 순간적인 쾌락만을 줄 뿐이며 이는 안개처럼 순간에 사라집니다. 참 행복을 주지는 못하지요. 세상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이 쾌락의 사슬을 끊어 버리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그 결말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이지요.

유다서 1장 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이처럼 성적 타락의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따름을 역사가 증명합니다. 고대 로마의 휴양 도시 폼페이도 갑작스런 화산 폭발로 인해 멸망했지요. 그 유적지를 둘러보면 그곳의 문화가 성적으로 얼마나 문란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 보면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명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처럼 말씀하신 것이지요. 주님의 능력을 힘입으면 어떤 죄든 버릴 수가 있습니다.

간혹 밤을 새워가며 생사를 넘나드는 위급한 환자를 돌보는 선한 의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도 죄로 인해 신음하는 영혼들, 생명이 꺼져 가는 영혼들을 살려내시기 위해 끊임없이 치료하며 돌보십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 쉽지 않은 대수술도 감내하시지요. 즉 죄를 낱낱이 드러내시고 심판에 대해 거침없이 선포하십니다. 죄를 뉘우치고 변화될 수 있도록 사랑의 징계를 허락하시기도 하지요. 이런 사랑의 손길을 믿고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매주, 매일, 매순간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말씀을 양식 삼고 불같이 기도하심으로써 날로 거룩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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