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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을 척량하시니(1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겔 47:1-5, 갈 5:19-21 날짜 2012.06.10
앞서 구원받지 못하는 죄 중에 대표적인 다섯 가지 곧 우상 숭배, 안식일을 범하는 죄,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죄,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는 죄, 간음을 비롯한 갖가지 음행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구원받지 못하는 죄 중에 여섯째 ‘현저한 육체의 일들’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정확무오하게 측정되는 믿음의 분량

에스겔 47장을 보면 이상(異像) 중에 에스겔 선지자가 성전에서 물이 나와 성전을 두루 흐른 뒤 성전 밖으로 흘러나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는 성전에서 선포된 하나님 말씀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감을 상징하지요. 이 물은 점점 깊어지다가 강을 이루었습니다.

에스겔이 이 물을 처음 건널 때는 물이 발목까지, 다음에는 무릎까지, 다음에는 허리까지 찼습니다. 마침내는 헤엄칠 만큼 물이 차고 넘쳐 강을 이루었지요.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따라서 몸이 물에 잠긴 정도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정도 곧 믿음의 분량을 나타내지요.

이때 에스겔이 물을 건너기에 앞서 매번 ‘주의 사자’가 일천 척씩 척량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정확무오하게 각 사람의 믿음을 측량하시는지를 나타냅니다. 각 사람은 정확하게 측정된 믿음의 분량에 따라 최후의 심판대에서 상 또는 벌을 받습니다. 이 땅에서 인간 경작을 받는 동안에는 이 믿음의 분량을 바탕으로 공의에 따라 응답을 받지요.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이 계속 성장하도록 인도하십니다. 물이 발목까지 차오른 상태, 곧 1단계의 믿음은 구원받기 위한 최소한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이 죄악으로 심히 관영하면서 1단계 믿음조차 갖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많지요.

그러므로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자신의 믿음을 잘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구원받지 못하는 죄’가 있음을 기록해 두셨습니다. 또 구원받지 못하는 죄 중에는 결코 사함 받을 수 없는 죄, 곧 ‘사망에 이르는 죄’도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죄’는 철저히 회개하면 사함 받고 구원받을 수 있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는 회개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죄입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진리를 몰라서 혹은 알아도 믿음이 연약하여 구원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 제단에서 신앙생활 하는 분들 중에 아직도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기에 이처럼 구원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 다시금 증거하는 것이지요.

2. 현저한 육체의 일을 행한 사울 왕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육체의 일’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하지요. 그중에서도 현저한 육체의 일은 일반적으로도 악하고 추하다고 느껴지는 행위들을 말합니다. 이 중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에 대해서는 앞서 자세히 설명해 드렸으므로 나머지 항목들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영적인 살인’ 곧 ‘미움’에서 비롯되는 것들을 사울 왕과 압살롬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지요.

‘원수를 맺는 것’은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고 그를 파멸로 몰아가는 행위를 말합니다. 악한 감정을 품는 데에서 더 나아가 상대를 중상 모략하는 등 죽이려고 하는 것이지요. 상대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여 원한을 품기도 하고 무고한 사람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미움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큰 악입니다. 더구나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것은 더욱 큰 악이지요.

사울 왕은 다윗을 상대로 원수를 맺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사람이었고 사울의 충신이자 사위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악신으로 인해 괴로워할 때면 수금을 타서 물리쳐 주었습니다. 또 주변국과 전쟁이 있을 때면 생명을 걸고 싸워, 승리를 안겨 주기도 했지요. 이처럼 무고한 다윗을 사울 왕은 마치 반역 죄인처럼 취급하며 수천의 군사를 이끌고 뒤쫓곤 하였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고 했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지요.

‘이는 성경에 나오는 사울 같은 악한 자나 행하는 죄지’ 하고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됩니다. 미움을 뿌리 뽑지 않는 한은 이런 죄가 자라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 어린 중학생들이 연약한 학생을 심하게 괴롭혀서 자살에 이르게 한 사건입니다. 원수도 아닌 사람을 원수처럼 증오하면서도 그 마음을 제어하지 않으면 이런 끔찍한 죄를 낳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 대상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이는 하나님과 원수를 맺는 일이니 어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십자가 희생으로 극악한 죄인들에게까지 온전한 관용을 베푸셨지요. 여러분 모두 이런 사랑의 주님을 닮아서 훗날 주님께 칭찬받기를 바랍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원수처럼 여기게 된 결정적 요인은 ‘시기’였습니다. 미움에서 비롯된 ‘시기’도 갈라디아서 5장에 현저한 육체의 일이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8장 7절에 보면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했지요. 사울은 이 말을 듣고 불쾌하여 심히 노하였다고 했는데 분냄 또한 현저한 육체의 일에 속합니다.

‘시기’란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볼 때 마음이 불편하여 그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상대를 파멸시키고 ‘상대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고 싶다’는 악한 마음을 품기도 하지요. 이 ‘시기’가 지나치면 ‘투기’로 발전합니다. ‘투기’란 시기 질투가 상대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로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사울 왕은 여러 번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다윗만 없애면 자신의 왕위가 굳건히 서고 자신이 사랑받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늘 지켜 주셨고 오히려 사울이 심한 ‘투기’로 인해 명예와 권세를 다 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권세와 명예를 거두어서 다윗에게 주셨으며, 결국 사울은 구원받지 못했지요.

인류역사를 보면 왕궁의 여인들이 왕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심히 투기한 일들이 많습니다. 거짓 소문을 퍼뜨려 누명을 씌우거나 복술 등으로 저주하기도 합니다. 결국 어느 한쪽 또는 양쪽 모두 사단이 나고 무고한 주변 사람들까지 죽음에 이르지요. ‘시기’라는 죄성을 마음에 품고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악하다 하실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이 이런 악을 행한다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시기의 모양도 없는 선한 마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분냄’이란 마음의 혈기가 표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심한 상해를 입히거나 생명까지 위협하는 매우 폭력적인 언행이 이에 해당하지요. 예를 들어 사울 왕은 악신이 힘 있게 내리자 순간 다윗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대로하며 단창을 던져 치려고 했습니다. 또 아히멜렉이라는 제사장이 다윗을 도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제사장 족속이 거하는 성읍을 멸절시켰지요. 이처럼 분냄은 심한 언쟁이나 물리적인 폭력으로 표출됩니다.

따라서 마음에서 ‘혈기’라는 죄성 자체를 근본 뿌리까지 뽑아야 합니다. 또한 분을 내는 사람은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조종을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3. 술수를 행하고 분쟁을 일으킨 압살롬

‘술수’는 ‘술법’ 또는 ‘술책’을 말합니다. 술법의 대표적인 예로 갖가지 무속 신앙과 점(占)치는 복술을 들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상 숭배’의 죄에 대해 설명한 내용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술수’의 또 다른 의미인 ‘술책’은 ‘교묘한 거짓으로 상대를 꾀는 일’입니다. 악한 계교를 써서 남의 것을 가로채거나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일 등이 이에 속하지요.

성경의 인물 중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반역을 일으키기에 앞서서 악한 꾀로 다윗을 향한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 일찍 성문 길 곁에 서 있다가 백성이 다윗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오면 거짓말로 다윗 왕을 깎아내렸습니다(삼하 15:3). 그런 다음 만약 자신에게 재판을 청하면 공의를 베풀어 주겠다고 감언이설로 꾀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성이 감격하여 자신에게 절을 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를 붙들고 입을 맞추며 친근하게 대했지요.

그러나 압살롬의 마음에는 다윗에 대한 불만과, 권력에 대한 욕심이 가득하였고 끝내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다윗 왕의 모사였던 아히도벨까지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악한 계교로 다윗 왕과 그를 따르는 신복들을 제거하려 했지요. 결과적으로는 다윗 편 모사의 덫에 걸려들어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도 이런 술수들이 넘쳐납니다. 악한 꾀로 경쟁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런 간악한 꾀로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결코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일을 경계하고 정도를 걸음으로써 구원의 대로로만 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압살롬의 반역 행위는 ‘분쟁’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분쟁’이란 부, 명예, 권세 등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투는 일을 말합니다. 분쟁은 미움과 탐심에서 비롯되지요. 대표적인 예로 나라나 민족 또는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이나 격렬한 다툼을 일으키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또 가정에서 부부가 심하게 다투다가 이혼하거나 형제들끼리 유산 분배를 놓고 서로 송사하는 일들도 분쟁에 속합니다. 분쟁은 단순히 화평을 깰 뿐만 아니라 살상과 파괴까지 불러옵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어찌하든 화평하려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는 이들도 있습니다. 분쟁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교회는 부흥이 멈추고 더 나아가 교회가 훼파되지요. 분쟁은 주님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이런 죄를 범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지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세상 법정에 서로를 송사한 일에 대해 하나님의 유업을 얻지 못할 불의라고 경계합니다(고전 6:6~7). 여러분은 ‘믿음의 형제와 분쟁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형제로 불의를 행하게 할 바에야 내가 손해를 보는 편이 낫다’ 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는 물론 가정이나 직장, 일터에서도 늘 진리 안에서 상대의 유익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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