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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을 척량하시니(1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겔 47:1-5, 갈 5:19-21 날짜 2012.06.24
지난 시간에는 구원받지 못하는 현저한 육체의 일들 가운데에서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도 현저한 육체의 일들 중에 “술 취함과 방탕함”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영혼을 살리는 영적인 물과 빛

시들어서 힘없이 늘어진 식물에게 물과 양분을 공급해 주고 햇빛을 비춰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금 싱그럽게 피어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구원받지 못하는 죄를 짓고 파리하게 죽어가던 영혼들이 이렇게 살아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영적인 물과 양분 그리고 햇빛, 즉 하나님 말씀과 눈물의 기도, 사랑을 공급하자 회개하고 다시금 영적인 생기가 돌았지요.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여 소망이 끊어진 영혼들도 다시금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시간에도 지난 시간에 이어 구원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 설명합니다. 혹시 아직도 구원받지 못하는 죄 가운데 거하므로 두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 말씀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공급하시는 영적인 물과 빛임을 믿고 잘 흡수하시기 바랍니다.

이 진리, 곧 말씀 자체도 빛이지만 이 제단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오로라 빛, 곧 근본의 빛이 끊임없이 비취고 있습니다. 이 근본의 빛은 하나님의 사랑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온전히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어 다시금 생기로 충만한 사랑스러운 자녀로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

2. ‘술 취함’을 금하는 이유와 사례

‘술 취함’도 현저한 육체의 일 중 하나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술에 취하면 판단력, 절제력이 약해집니다. 잠언 20장 1절을 보면 이에 대해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당대의 의인이라 칭함 받은 노아조차도 포도주에 취해서 실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곧 낮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잠들었지요. 노아의 둘째 아들은 이 모습을 형제들에게 전했고 이 사실을 안 노아는 그 아들을 저주하고 말았습니다. 술에 취하면 이처럼 언행에 허물이 생기고 더 나아가 걷잡을 수 없이 난폭해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술을 마시고 술기운을 의지해 폭행, 살인 같은 큰 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또 술에 취하면 번번이 폭력을 휘둘러서 가족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이들도 많지요. 또 생각을 절제하지 못합니다. 비진리의 생각을 동원하게 되지요.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성경 곳곳에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포도주를 마신 기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에서는 물이 귀하기에 하나님께서 포도즙 같은 것을 음료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 앞에 구별하여 드린 나실인에게는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셨습니다. 또한 아론과 그의 자손 곧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도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셨지요.

여러분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벧전 2:9).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사명을 맡은 분들이지요. 이런 여러분이 술 취하여 거룩하지 못한 행실과 악한 행실로 오히려 영광을 가린다면 어찌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겠는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술 취하지 말라 하셨으니 취하지 않을 정도만 마시면 괜찮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술을 취하지 않을 만큼만 마시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술을 마시는 목적 자체가 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소량을 마셔도 그만큼은 술에 취한 것이지요. 그러니 애초에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23장 31절에는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했습니다. 즉 마음을 지키지 못할 바에는 아예 보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거룩하게 구별된 나실인들에게는 포도주를 금하시되 아예 포도나무에서 나는 모든 것, 씨나 껍질도 먹지 말라고 명하셨지요. 이처럼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타협지 않고 말씀 그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에 대한 간증을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통영 만민교회 조재우 집사님의 실제 체험담입니다. 조 집사님은 음주 분야에 있어서 타협하는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술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남겨두고 급사하였다가 저의 기도를 받고 극적으로 살아나셨지요.

집사님은 2002년 ‘2주 연속 특별부흥성회’ 때 저의 기도를 받고 시력이 회복되는 체험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때부터인가 술 마시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면서 술을 마셔도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 괜찮다고 자신을 합리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징계를 통해 이에 대해 여러 차례 깨달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무릎이나 머리에 큰 부상을 입기도 하고 자녀에게 ‘틱(tic) 장애’가 나타나기도 했지요. (*참고로, 틱은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나 목, 어깨, 몸통 등의 신체 일부분을 아주 빠르게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만 회개할 뿐 다시 세상과 타협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급기야 급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승진 기념으로 술을 마시고 귀가했는데 방에 누운 지 얼마 안 되어 그만 호흡이 멎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에 아내 집사님은 저의 자동응답서비스 환자 기도를 받게 해 주고 남편 대신 울부짖으며 회개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금요철야 예배 참석차 본 교회에 와 계시던 담임 목사님을 통해 저에게 기도 요청을 하셨지요. 이에 저는 금요철야 예배에 올라가기 전 간절히 기도하며 “심장아 깨어나라” 명하였습니다. 아내 집사님에 의하면 바로 그즈음 오후 10시 53분경, 놀랍게도 조 집사님이 “헉!”하는 소리와 함께 살아났다고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조재우 집사님은 타협하는 신앙에서 돌이키셨지요.

하나님은 이처럼 살아 계셔서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십니다. 자녀들이 타협하는 신앙이 아니라 오직 말씀을 좇아 빛 가운데 거하기를 간절히 바라시지요. 또한 그렇게 살고자 할 때 반드시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늘 근신함으로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온전하심을 나타내 보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또한 범사에 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술에 취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참 기쁨과 희열 속에 사시기 바랍니다.

3. 방탕한 행실을 벗고 새사람이 되어야

‘방탕함’ 또한 현저한 육체의 일 중 하나입니다. 방탕한 행실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술이나 도박에 빠져서 가장(家長)의 역할이나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학생이 게임에 빠져서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 또한 방탕한 일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성적 쾌락을 추구하며 음란한 생활을 하는 것, 능력이 있음에도 게을러서 일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주변에 피해를 주며 사는 것도 방탕한 행실에 속하지요. 사치가 심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다가 범죄하거나 자살하는 경우도 탐심을 좇아 방탕하게 산 결과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전에 이렇게 방탕에 젖어 살아왔을지라도 이제는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습을 벗고 주님을 닮은 거룩한 자녀가 되기 위해 애쓰고 힘써 나가야 하지요. 거룩하지 않은 습관은 사소한 것이라도 불같이 기도하며, 꾸준히 벗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현저한 육체의 일을 열거한 후 마지막에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하십니다. 이는 이 외에도 육체의 일이 많이 있음을 뜻합니다. 혹여 이 외에도 더 있다면 ‘그 많은 죄를 어떻게 다 버릴 수 있을까?’ 지레 포기하려는 분이 계신지요? 여러분이 변화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면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힘을 주십니다(막 10:27). 이런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비록 지금은 온전치 않아도 얼마나 간절히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노력하는지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자신의 믿음의 분량 안에서 최선을 다해 육체의 일을 벗어 나간다면 아직 버리지 못한 분야가 남아 있다 해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알면서도 세상 사람과 똑같이 마음 가는 대로 죄악을 행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우실까요? 갈라디아서 5장 21절 후반절에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말씀하신 대로 구원받을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다리심을 마음에 새기고 신속히, 쉽게 죄를 버려나가시기 바랍니다(벧후 3:11~12).

주님은 꼭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훗날 여러분을 아름다운 천국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것입니다. 천국에는 이 땅에서 그토록 원하지만 누릴 수 없는 참 안식과 즐거움과 풍족함이 있습니다. 이런 천국을 바라보십시오. 또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처럼 좋은 천국을 예비하신 사랑을 믿으십시오.

육체의 일들을 벗고 경건하게 살고자 힘쓰면 주님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세상이 줄 수 없는, 죄악은 결코 줄 수 없는 희락을 주십니다. 마치 농부가 편안하게 쉴 겨울을 앞두고 곳간에 실한 과일과 곡식을 가득히 저장해 놓은 듯한 평안과 기쁨을 마음 가득 채워 주시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은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 속에 기록하여 갈라디아 지역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 중 일부입니다. 이를 통해 그는 성도들에게 거듭 죄에 대해 경계하고 경계했음을 알 수 있지요. 즉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물가에 내어 놓은 어린아이를 염려하듯 성도들이 혹 범죄하여 구원에서 멀어질까 하여 늘 마음에 품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구원을 온전히 이루도록 끊임없이 죄에 대해 경계하고 경계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포기하지 않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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