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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을 척량하시니(1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겔 47:1-5, 마 5:20 날짜 2012.07.08
지난 시간까지 구원받지 못하는 죄 중에 ‘현저한 육체의 일’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구원받지 못하는 죄 중에 ‘의(義)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한 경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모든 말씀을 골고루 양식 삼아야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에스겔 47장을 보면 몸이 물에 잠긴 정도를 기준으로 믿음을 측정합니다. 이를 통해 신앙에 있어서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는 풍조가 있다고 합니다. 말씀보다는 찬양, 친교, 봉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지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고는 하나 성도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씀은 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십일조, 주일 성수, 죄를 지적하는 말씀 등 성도들이 부담스러워 할 만한 말씀들은 설교 주제에서 가능한 한 제외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말씀들은 오히려 성도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특히 ‘죄’에 대한 말씀은 십자가의 도, 즉 구원의 도를 알려 줌에 있어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핵심’이지요.

따라서 성경 66권 말씀 중 사랑, 축복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죄와 심판에 대해서도 반드시 양식을 삼아야 합니다. 입에 맞는 음식만 편식하면 영양이 결핍되어 건강을 해칩니다. 하나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말씀만 양식 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양식 삼아야 영적으로 강건해지고 영원한 생명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습니다.

2. 의(義)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한 경우

마태복음 5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의(義)란, 하나님 앞에서 옳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행할 때 옳다 하십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 옳다 하시지요. 결론적으로 ‘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말씀, 곧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당대의 유대인들 중에서도 율법 지키기에 단연 으뜸이었지요. 이들은 율법에 어긋나는 일들을 철저히 배척했습니다. 서기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율법을 해석하고 쉽게 풀어 주는 일이나 이와 관련된 공문서들을 기록하는 일을 했으니 율법에 얼마나 정통했겠습니까? 이들은 율법에 비추어볼 때 겉모습만 보아서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성경 곳곳을 보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자 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이들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뿐만 아니라 장로의 유전까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마 15:2). 장로의 유전은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사람이 정한 규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덧붙인 규례들이지요. 바리새인들은 이런 것까지도 철저히 지켰습니다.

특히 안식일에 관하여서는 몹시 까다로운 장로의 유전들을 일일이 지켰습니다. 이런 이들의 눈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번번이 안식일을 어기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신다 하여 예수님을 핍박했지요(요 5:16). 즉 병을 고쳐 주신 선한 일을, 안식일에 해선 안 될 ‘노동’으로 치부한 것입니다. 물론 이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영적인 무지와 악에서 비롯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을 그대로 지키려는 정신만큼은 얼마나 투철했는지를 엿볼 수 있지요. 예수님은 바로 이런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보다 의(義)가 더 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의가 나아야 구원받는다는 말씀의 의미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의가 낫다’고 주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도 그들처럼 장로의 유전까지 일일이 따져가며 율법을 지켜야 할까요? 여러분도 이미 이해하셨겠지만 이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율법을 더 완벽하게 지켜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 아니지요. 외형적으로는 흠이 없었을지 모르나 이들은 대부분 형식과 행위적으로 지켰습니다. 바로 이점이 결과적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켰다고 할 수 없게 만들었지요.

마태복음 5장 19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이처럼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그같이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는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계명 중에서 큰 것을 버리고 또 그렇게 가르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구원받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설령 구원을 받는다고 해도 위태로운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될 뿐임을 알 수 있고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하였습니다. 이들은 율법대로 행한다고 했지만 율법의 핵심은 버리고 껍질만 지켰지요. 그들이 놓친 것은 바로 ‘의’와 ‘인’과 ‘신’, 곧 마음이었습니다(마 23:23).

예수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셨지요. 즉 행위적으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율법을 지킬 때 참으로 잘 지켰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렇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는 죄와 악이 가득 차 있으면서 행위로만 절제했지요. 이에 예수님께 ‘외식하는 자들아, 화 있을진저’ 이런 책망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의(義)가 나아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자기 생각이나 마음에 맞는 것만 취하고 맞지 않는 것은 버리는 사람, 또 지킬 수 있는 것만 지키고 지키기 어려운 것은 버리는 사람, 더 나아가 이같이 가르치는 사람은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

4.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오늘날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에 맞는 말씀은 받고 그렇지 않은 말씀은 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5장 28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간음을 마음에서까지 버릴 수 있느냐?’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버립니다. 성경 말씀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이 지키지 못하면 버리고 또 그렇게 가르치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상식에서 벗어나거나, 세상 지식에 맞지 않는 말씀들을 배척합니다. 한 예로, 성경은 영의 세계에 대해 밝히 알려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어떤 교파나 교회들은 이를 믿지 못합니다. 누군가 천사를 보았다고 하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잘못되었다.’ ‘이단이다.’ 혹은 ‘신비주의다.’며 판단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말씀만을 믿고 인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마지막이 가까웠다’ 가르치면 ‘종말론자’니 하며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을 떠올려볼 때 ‘그날과 때’ 곧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알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성경에 기록된 징조로 세상 끝날이 가까웠음은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지요.

이처럼 자기가 보기에 좋은 것만 골라서 행하고 가르친다면 어떻게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갖기도 어려우며 누구를 가르친다 해도 이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입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 말씀도 저버리지 못합니다. 그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율법을 지키며 살며 선지자들의 가르침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마 5:17). 또 하나님 말씀이라면 오직 순종하였고 ‘의’와 ‘인’과 ‘신’까지 온전히 지키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예수님을 닮으면 어찌하든 모든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자 하지요.

성결의 복음을 들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 그대로 살고자 하십니다.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온전히 지키고자 합니다. “원수도 사랑하라” 하면 어떻게든 마음 중심으로 사랑하려고 합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하면 마음에서 탐심 자체를 버리기 위해 노력하지요. 즉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가고자 힘쓰십니다.

이렇게 행해 나갈 때, 아직은 비록 온전치 못하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로마서 5장 1절에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말씀하신 대로, 우리 주님 까닭에 의인이라 칭함 받아 천국에 이를 수 있게 되었지요. 즉 율법을 행위적으로만 지키는 ‘율법의 의’로서가 아니라, 이 ‘믿음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됨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예수님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다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 말씀을 자신들의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오히려 믿는 사람들을 ‘미련하다’고 판단 정죄한다면, 과연 심판 날에 우리 주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습니까? 어떻게 구원을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제단은 이후로도 이런 하나님 뜻을 담대히 선포할 것입니다. 성경의 선지자들은 물론, 교회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선포했음을 알 수 있지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도 들으셨고, 천국뿐 아니라 지옥에 대해서도 아시지요. 그러나 단지 말씀을 알고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되 부지런히 행해야 합니다(요 6:53). 그럴 때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는 의인의 차원이 아니라 성결한 ‘참 의인’이 되어 능력도, 권능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참 의인이 되셔서 우리 주님께 칭찬받으시고 해처럼 빛나는 영광 가운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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