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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을 척량하시니(2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겔 47:1-5 날짜 2013.06.30
지난 시간에 구원받지 못하는 죄 중의 하나인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구원받지 못하는 죄, 열세 번째 ‘처음 행위를 잃고 찾지 못한 경우’와 열네 번째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경우’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영의 마음을 이루어야 영생을 온전히 취할 수 있어

성전은 성전 건물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령의 전’인 우리 자신을 뜻합니다. 성전 곧 몸과 마음을 더럽힘으로 인해 성령께서 떠나 버리면 하나님의 자녀 된 지위를 박탈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통해 구원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루어가는 것임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경주에 비유한다면 구원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때라야 얻을 수 있지요. 즉 처음에는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린다 해도 중간에 멈추거나 경로에서 이탈하면 구원을 이루지 못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살펴볼 성경 말씀들도 이에 대해 분명히 깨우쳐 주십니다.
디모데전서 6장 12절 전반절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하신대로 영생을 온전히 취하십시오. 영의 마음만 이루어도 이 영생을 확실히 취하게 됩니다. 영의 마음은 죄악이나 변개함 같은 육의 속성이 없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중간에 영생의 길에서 이탈할 일이 없지요. 이 영의 마음을 속히 이루어 이 땅에서도 마치 천국에 사는 듯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처음 행위를 잃고 찾지 못한 경우

요한계시록 2장 5절에 보면 그 말씀이 기록되던 당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하나였던 에베소 교회를 향한 책망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말씀하셨지요.

여기서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신다’는 말씀에는 성령을 거두어 가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주님을 영접했다가 첫사랑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변개하여 다시금 세상 어둠과 짝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이지요.
에베소 교회가 처음에는 주의 이름을 위해 열심히 수고하였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기를 사모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지요. 설령 어떤 시험이 와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 이 첫사랑이 식어버렸습니다. 진리 안에 살기를 힘쓰지 않고 세상 가운데 빠져 들어갔습니다.

칭찬을 들었던 에베소 교회였지만 처음 사랑을 버리고 처음 행위를 잃어버리자 두려운 책망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네 촛대를 옮기겠다’ 즉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엄한 경고의 말씀을 들었지요. 처음 행위를 잃은 것 자체도 회개할 일이지만 나아가 다시금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것은 철저히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이는 사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성령이 소멸되지요.
그런데 이처럼 성경에 분명히 적혀 있는데도 “한번 성령을 받으면 이후에 어떻게 살든지 구원받습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이 소멸될 수도 있고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흐려질 수도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 하셨지요. 요한계시록 3장 5절에는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죄와의 싸움에서 지면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흐려져서 결국 없어질 수도 있음을 의미하지요. 구약 성경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모세가 어떻게 중보기도 했습니까? 저들을 용서하지 않으시려거든 주의 기록하신 책, 곧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 달라고 생명을 담보로 용서를 구했지요(출 32:32). 이를 통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번 구원받은 사람도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엄히 경계하신 것입니다.



3.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경우

요한계시록 3장 16절을 보면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말씀합니다. 이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책망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교훈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 어느 때인가부터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는데도 초신자처럼 신앙생활 하는 경우가 있지요. 마음의 할례도 하지 않고 충성하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교회에 왔다 갔다 하기는 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지식으로나마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들은 말씀을 대부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기 때문에 5년, 10년이 지나도 신앙에 발전이 없습니다. 성령과의 교통도 없고 말씀을 들어도 영적으로 깨우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리도 없지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 즐거움과 짝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향해 ‘토하여 내치리라’ 경고하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19절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하시지요. 그러므로 혹시 이 말씀이 마음에 찔림이 되는 분이 계시다면 참 회개하시고 열심을 내십시오. 이전보다 더 뜨겁게 진실한 사랑을 드림으로써 주님께 큰 위로와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두루마기를 빨지 않는 경우, 성전 곧 자신의 몸과 마음을 죄악으로 더럽히는 경우, 처음 행위를 잃어버리는 경우,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성령이 소멸된다는 것이지요. 성령이 소멸된 사람은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소멸치 않기 위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늘 깨어 기도하며 성령 충만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비유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 비유’가 그중 하나이지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였기에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갔습니다. 반면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기름을 사러 나갔다가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혼인집 문이 굳게 닫히는 바람에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지요.

여기서 ‘등불’을 ‘영적인 생명’에 비유한다면 ‘기름’은 ‘성령’ 또는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연료가 떨어지면 불은 꺼져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기도가 끊기고 성령 충만함을 잃으면 결국 영적인 생명이 꺼지고 말씀대로 살 능력도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세상을 바라보고 미지근한 신앙에 머물다가 결국 성령이 소멸됩니다.
그러므로 등불, 곧 영적인 생명이 꺼지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며 성령 충만한 신앙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3절에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말씀한 대로 신랑 되신 주님께서 언제 우리를 데리러 오실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신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 가서 준비하려고 해도 때는 이미 늦었지요.
지금까지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들 중에서 대표적인 열네 가지 경우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열거해 보겠습니다.

우상숭배, 안식일을 범하는 죄,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죄,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는 죄, 간음을 비롯한 갖가지 음행, 현저한 육체의 일들, 의(義)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한 경우, 사명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 받은바 은혜를 저버리고 자신의 유익을 좇아 배신하는 경우, 주의 종을 속이고 성령을 속이는 죄, 두루마기를 빨지 않는 경우,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죄, 처음 행위를 잃고 찾지 못한 경우,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경우였지요.
성경은 바로 이런 어둠 가운데 행할 때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철저하게 경계하실 뿐 아니라 이런 어둠 가운데 거하게 하는 마음의 죄성을 온전히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혹 이런 죄를 범한 분이 계십니까?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시 103:12). 온전히 용서하시며 과거의 죄를 기억지도 않으시지요. 그런데 문제는 회개하지도 않고 또 무엇이 어둠이며 진리인지 알면서도 거듭 거듭 어둠 가운데 행해 나가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그 죄가 ‘구원받지 못하는 죄’를 넘어 ‘사망에 이르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죄’는 혹 지었어도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이키면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구원에 이를 수 있지요.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는 회개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죄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참 성도와 거짓 성도를 심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32~33절에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하셨지요.

양 곧 구원받은 자녀들에게는 34절 후반절에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하고 상급 심판을 하십니다. 또 염소 곧 거짓 성도들에게는 41절에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하십니다. 그 다음 내용을 보면 이처럼 거짓 성도들이 구원받지 못한 이유를 한마디로 ‘진리를 행치 않았기 때문’이라 요약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힘써 진리를 행하셔서 염소가 아닌 양의 무리에 속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진리를 행하기 위해서는 죄와 싸워야 하므로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이 선한 싸움은 고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뒤따르지요(고후 1:5). 그러므로 이 선한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훗날 주님께 칭찬과 상급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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