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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을 척량하시니(2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겔 47:1-5, 요일 5:16 날짜 2013.12.22
신앙의 연륜이 적지 않은 일꾼이 구원받지 못하는 중한 죄를 범하는 경우 그 죄가 사망에 이르는 죄가 됩니다. 이 시간에는 ‘사망에 이르는 죄’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 보이는 경우

히브리서 6장 4~6절을 보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 성령을 힘입어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 놀라운 체험들을 합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며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게 되지요. 성령을 받으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이 믿어집니다. 또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천국과 지옥이 있음도 믿어지지요.


성령을 받음과 동시에 병이 치료되는 체험을 하기도 하며, 영적으로 깊이 있는 말씀들, 곧 선과 사랑에 대한 말씀들을 마음으로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특별한 은혜 가운데 영안이 열려서 천국과 지옥 등 영의 세계를 보기도 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갖가지 문제를 해결 받고 성령의 은사들을 체험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 보이는 것은,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신령한 것들을 맛보고도 다시 세상과 짝하여 타락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열심을 내다가 어느 순간 다시 세상이 마음에 틈탐으로써 세상 사람보다 못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정욕이 동하는 대로 물질, 명예, 쾌락을 좇아 불의와 불법을 행하며 짐승만도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하지요.


물론 초신자들 중에 믿음이 연약하여 잠시 세상에 빠졌다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처럼 회개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종이나 교회 일꾼으로 신앙을 인정받던 이들이 큰 은혜를 입었고,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성령의 역사들을 직접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회개의 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도를 넘어선 악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회개할 수 없기에 죄를 용서받을 수 없고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지요. 가룟 유다도 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았지만 스승인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판 후 회개의 영이 오지 않아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1998년과 1999년 교회적으로 큰 시험이 왔을 때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고 목숨 바쳐 충성한다 하던 이들이 어찌하였습니까? 갖가지 불의를 행하다가 교회를 심히 어렵게 하고 많은 영혼을 사망의 길로 가게 만들었지요. 그러니 우리는 더러운 죄에 물들었던 마음 가죽을 완전히 베어내야 합니다(렘 4:4). 또 다시 구습을 좇아 죄악 중에 산다면 십자가의 보혈이 헛되어지며, 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2.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짓는 경우

히브리서 10장 26~29절에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하셨습니다.


여기서 ‘짐짓 죄를 지어 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는 죄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계속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 이런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옵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호색하고 거짓말로 성도들을 꾀어 사사로이 이익을 취하는 등 온갖 불의를 행했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임의로 변질시키고 구원받지 못할 큰 죄들을 거듭 지어 나갔던 것입니다(벧후 2:10, 14).


이렇게 행하는 자들에게 베드로후서 2장 20~22절에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하셨지요.


우리는 죄악으로 관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이런 죄악을 경계해야 하는데 현실은 어떠하였습니까? 이 제단에도 사망에 이르는 죄를 회개한다 하고도 또 죄를 짓는 이들이 많았기에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30년 이상 성결을 외치고 외치는 동안 정욕을 좇아 음행을 하고 가증한 일을 행하며, 불의한 재물을 취하는 등 온갖 불의를 행하면서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이들이 많았지요. 지금은 하나님께서 여러 번 주신 죄 사함의 기회로 대부분 회개하고 돌이켰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혹자는 사망에 이르는 죄에는 용서가 없다는 말씀에 대해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가르치셨는데 이 말씀과 달리 주님은 죄인을 거듭 용서하지 않는 두려운 분이신가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에 구원받지 못할 중한 죄를 짓고 돌이키지 않은 사람이, 더구나 돌이킬 마음조차 없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은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용서와 구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죄에서 철저히 돌이킨 사람, 또 돌이키고자 죄와 싸우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은혜이지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짐짓 즉 알면서도 거듭 죄를 짓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외면해 버리십니다. 성령이 소멸되고 양심에 화인 맞아 회개할 수 없게 되지요. 결국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져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대신 그 이름이 지옥에 있는 ‘사망의 책’에 새겨집니다(계 20:12).


혹 마음에 할례하지 않으므로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다시 죄악의 늪에 발을 디딘 분이 계십니까? 지금이라도 마음 중심으로 죄에서 돌이켜서 하나님께 용서와 긍휼을 구하십시오. 죄성까지 온전히 벗어 돌이킨 증거를 보이시기 바랍니다.


혹 사망의 책에 이름이 있다 해도 이렇게 함으로써 그 흔적까지도 온전히 지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능력은 심히 적을지라도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는 능히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 성령께서 탄식하며 기도해 주시니 이 사랑을 붙잡고 사력을 다해 사망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로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성령 훼방·거역·모독하는 경우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또 누가복음 12장 10절을 보면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말씀했지요.


마태복음 12장 22~30절을 보면 예수님이 이처럼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있는 한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한 병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주시자 바리새인들은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했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낸 힘의 근원을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밝히십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를 비방하고 방해하는 것’이 성령 훼방입니다. 사전에 나온 ‘훼방(毁謗)’이란 뜻을 보면 ‘남을 헐뜯어 비방함, 남의 일을 방해함’이라고 했지요. 또 성령 거역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사전에 ‘거역’이란 ‘윗사람의 뜻이나 지시 따위를 따르지 않고 거스름’이라고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모독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하거나 반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을 성령의 역사라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욕되게 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진리라고 거짓 증거하거나 참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성령 모독은 쉽게 말하면 ‘성령 명예 훼손죄’와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처럼 성령을 훼방하고 거역하고 모독하였습니다. 성령을 힘입어 하시는 일을 보고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귀신의 왕을 힘입었다며 비방하고 거슬러 말하고 모독했지요. 이렇게 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훼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림으로써 백성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게 했지요.


이처럼 예수님의 행하시는 일이 성령의 역사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증거들을 똑똑히 보고도 훼방하면 사하심이 없고 영원한 사망에 이릅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 분이시기 때문에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를 이단이라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교회를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을 훼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악의를 품고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교회와 목회자를 죽이고자 하는 이들도 있지요. 이는 성령을 거역하고 모독하는 악행입니다.


성경에 비추어 볼 때 명백히 이단인 경우나 성도들에게 진리의 영이 아닌 다른 영을 받게 하는 경우라면 엄히 경계해야 합니다(딛 3:10). 그러나 섣불리 이단이라 정죄하여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큰 죄입니다. 우리는 진리 말씀에 입각하여 또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 영분별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영들을 밝히 분별하지 못하여 성령의 역사가 확실하게 일어나는 교회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일들이 있지요. 이는 그만큼 영적으로 잠들어 있다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이 높아져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즉 그 마음에 선보다는 악이, 사랑보다는 미움이 많다는 것을 나타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여 성령의 역사에 대해 악한 생각을 품거나 의심의 말, 거스르는 말을 내었다면 철저히 마음을 찢으며 회개해야 합니다. 비록 지금까지는 너무 많은 악을 쌓아왔을지라도 간절히 겸비한 자세로 선하신 하나님께 자비와 긍휼을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그 선하심을 깨달을 수 있도록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 누구도 성령 훼방 거역 모독이라는 무서운 죄와는 상관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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