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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육체의 결여(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빌 4:8-9 날짜 2011.10.16
사람이 보고 느끼고 행하는 단계에서 정상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함으로 인해 사람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지적인 능력, 육체적인 능력이 결여되거나 정서적으로 일반인과 동떨어진 감정 상태를 갖는 것을 통틀어 육체의 결여라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육체의 결여가 생기는 상황에 대해 증거합니다.

1. 육체의 결여가 생기는 환경적인 요인을 알아야

사람이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배운 지식이나 느낌, 경험, 체험 등이 부족해서 육체의 결여가 생깁니다.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는 것은 필요한 단계를 건너뛰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장 단계를 비정상적으로 거침으로써 결여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하나하나 발견해서 버려 나가야 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지체 없이 들어갈 수 있지요.
어떤 단계에서 결여가 생겼는지에 따라 지식적인 분야의 결여도 있고, 정서적인 분야의 결여, 행동 능력의 결여 등 여러 분야에 육체의 결여가 생기지요. 발달 단계에 따라 요구되는 적절한 체험과 느낌과 행함이 없는 만큼 육체의 결여가 생깁니다. 그러나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고 해서 ‘나는 그래서 할 수 없었던 것이구나’ 하며 영으로 못 들어간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영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체념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길을 찾아야 하지요. 환경적으로 결여가 생길 수 있는 요인을 알면 자신이 만들어진 과정을 상고해 보면서 어떤 문제가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지요.

2. 육체의 결여가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상황

따뜻한 가정에서 바른 교육을 받고 자라면 사회성이 길러지고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거나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결여가 생기지요.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사랑을 주고받는 데 서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잘 느끼지 못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깨우치지 못하니 영적인 성장이 더딘 것입니다.
아이를 사랑한다 해서 너무 응석을 받아 주고 키운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육체의 결여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장난감이든 옷이든 사달라는 대로 사 주고, 어려운 일은 부모가 대신 처리해 줍니다. 버릇없게 구는 행동도 받아 주고 잘못을 해도 징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이기적이 되어서 남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하고, 양보하거나 섬기는 데 인색하게 되지요.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 조그만 핑계거리만 있어도 쉽게 지각과 결석을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신이 도전해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남에게 의존하려 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자기가 관심 있는 일, 즐거운 일, 쉬운 일만 하려고 하지요. 자신의 욕구를 절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유달리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 안에 들어와도 변함없이 진리를 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단을 받으면 쉽게 낙심하며 육을 취하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지요. 마음의 악을 버리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주변 사람의 형편을 잘 살피지 못하거나 덕과 사랑으로 품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받기만 했고 자신이나 자기 가족만 생각하며 자랐기에 마음의 크기가 제한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덕과 사랑이 결여되어 영으로 들어가는 데 지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3. 자녀를 양육할 때 점검할 항목

‘나는 내 자녀에게 혹시 육체의 결여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점검해 보시면 자녀 양육은 물론 자신의 성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녀가 없는 성도님들도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적용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먼저, 어린아이가 친구를 때렸다든지, 욕을 한다든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부모나 교사는 ‘아이가 왜 그랬는지’ 아이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친구가 너를 화나게 해서 친구를 때렸구나, 네 마음은 알겠지만 너한테 맞은 친구가 얼마나 아팠겠니? 그럴 때는 때리는 것이 아니라 “친구야 그러지 마” 이렇게 말로 하는 거야,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이런 식으로 차분히 대화하면서 스스로 깨우치게 해 줘야 합니다.
어떤 부모는 혈기와 짜증 속에 무조건 아이를 윽박지르고 야단칩니다. 사소한 잘못을 했을 때도 “그러면 지옥 간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널 싫어하신다” 이런 말을 쉽게 하지요. 엄마가 화났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아이를 외면하고 대화하지 않으며 모른 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짜증과 감정으로 아이를 대하면서도 ‘아이가 잘못하니까 바로잡으려고 한다’고만 생각하여 자신의 악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요. 사랑의 하나님을 느끼게 해 주고 더 잘하려는 마음을 심어 줘야 하는데 오히려 무서운 하나님, 외면하시는 하나님으로 느끼게 만들어서 하나님과 교회에서 멀어지게 만들지요.

에베소서 6장 4절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했습니다. 자기 마음과 형편을 알아주지 않고 위협하고 정죄하는 부모를 볼 때 아이가 어떤 마음을 갖겠습니까? 잘못을 저지르면 일단 위축되어 거짓말을 해서라도 숨기고 변명하려 합니다. 상처를 입지 않으려고 반항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요.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법과 너그러운 마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을 정죄하는 법을 배웁니다.
또 “옆집의 누구는 잘하는데 넌 왜 그러니?” 이렇게 비교하는 부모는 아이들에게 열등감과 시기 질투를 심어 줍니다. 부모가 기대한 대로 아이가 이루지 못했을 때 “그래, 너 또 그럴 줄 알았다. 넌 그것밖에 안 되지?” 이렇게 반응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낙심하는 마음을 심어 줍니다. ‘나는 어차피 이것밖에 안 되는걸 뭐, 엄마도 나한테 기대를 안 하는데 누가 나한테 기대하겠어’ 이러면서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는 사람이 되지요.
부모가 아이들에게 사소한 거짓말을 자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가 어른을 따라 나가려고 할 때 “신발을 가져 와서 같이 가자” 해놓고 아이가 신발을 가지러 들어간 동안 어른이 먼저 가버리거나, “착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선물 사 올게” 해놓고 사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니까 금방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도 분명히 거짓말이고, 아이들은 약속을 뚜렷이 기억하므로 부모로부터 상처와 충격을 받습니다. 거짓말을 일삼는 부모의 자녀들은 자신도 거짓말을 하게 될 뿐 아니라 약속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 속에 안정되지 못하고 거친 심성을 가지지요. 반면에 약속을 지키는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는 정직과 신뢰를 배우고, 인내심과 절제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피곤하고 바쁘다고 해서 아이들을 대할 때 짜증 섞인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자기 기분이 좋을 때는 너무 잘해 주다가 기분 나쁠 때는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고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부모도 있지요.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구나’ 하고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게 됩니다. 부모의 짜증과 혈기를 따라 하기도 하지요.
또 부모님들이 예배나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자녀들을 성전 마당에 방치하는 것도 자녀들의 결여를 만듭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본이 되어 예배나 기도할 때의 자세를 가르치고 하나님의 전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자세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아이들을 방치해 두면 성전 마당에서 뛰어다니거나 장난치고 자칫하면 다투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시간을 성전에서 지냈는데도 성전을 귀히 여기는 마음과 예배나 기도의 중요성을 배우지 못합니다. 성장해서도 바르게 신앙생활 할 줄을 모르지요. 심할 때는 성전 안에서 범죄하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아무리 주일학교에서 진리를 가르친다 해도 부모님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아이들에게 진리로 양육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4. 육체의 결여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지요. “우리 아이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할 때도 대부분의 원인은 부모 자신에게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자녀를 진리로 양육할 수 있을지” 기도해 보시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학생 여러분은 “말씀을 들어보니 내 경우와 같구나, 부모님과 환경 때문에 나는 결여될 수밖에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하시지는 않겠지요? 성장 배경이 불우했다 해서 반드시 육체의 결여가 생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마음과 중심에 따라, 또 자신의 노력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지요.
좋은 가정에서 자랐다고 육체의 결여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존경받는 인물이 된 경우도 많지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생각과 선한 마음으로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나갔기 때문입니다.

가령 아버지가 늘 술에 취해서 혈기를 내신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런 가정에 태어난 것이 너무 싫다. 짜증난다, 힘들다. 될 대로 되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아버지도 저러고 싶지 않으실 텐데 마음이 얼마나 힘들면 저러실까, 내가 더 잘 섬겨드려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요?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옳은 길을 제시해 주는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선을 택해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육체의 결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려움을 통해 더 크고 넓은 마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예전에 환경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이 결여되었는지 깨달아서 채우면 되지요. 그리고 이렇게 깨닫게 하시고 변화될 수 있는 은혜와 능력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면 됩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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