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육체의 결여(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빌 4:8-9 날짜 2011.12.18
여러 시간에 걸쳐 일상생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결여된 모습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보고 듣고 배운 지식이나 느낌, 경험, 실제 행해 보는 체험 등이 부족할 때 육체의 결여가 생길 수 있다 했지요. 이 육체의 결여 말씀 중에는 교양이나 예절에 관한 말씀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하나하나를 잘 양식 삼으면 여러분의 성결에 큰 능력이 됩니다.

1. 육체의 결여와 성결과의 관계

주님을 영접하고 어느 정도 믿음이 생기면 명백한 비진리부터 버려 나갑니다. 혈기, 미움, 간음, 시기, 질투, 탐심, 이런 속성들이 드러날 때마다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하여 변화되지요. 이렇게 드러나는 것을 많이 버렸는데, 어느 정도 믿음이 성장하고 나면 영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여 신앙이 정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하나는 부모나 가까운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변화되기 전의 모습 가운데 변개함이 많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쉽게 남의 탓을 하거나 남의 허물을 잘 전달하는 편이라면 자신은 그러지 않는지 점검해 보면 됩니다. 성령의 깨우침을 구하면서 기도하다 보면 거울을 보듯 자신이 보일 수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는 가족들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자신도 모르게 남의 말을 전하거나 변개하는 속성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지요. 형제들 가운데 유독 혈기가 많다거나 자기가 가진 재물이나 지식, 인맥 등을 자랑하기 좋아하는 형제가 있다면 자신에게도 깊은 본성 속에 혈기와 들렘이 있지 않은가 점검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성결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쉬운 방법은, 사소한 허물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체의 결여와 연관되는 분야이지요. 작은 흠과 티라 해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 뿌리가 되는 육의 속성을 깨우치면 영으로 들어가기가 더 쉽습니다.

예를 들어 정리정돈의 분야를 점검할 때, ‘나는 좀 주변을 어지럽히는 편이지만 너무 심하지만 않으면 상관없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청결하고 정리된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변을 정리정돈 합니다. 주변 환경을 어수선하게 두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마음이나 생각도 잘 정리되지 않고 육신의 생각이 많거나 생활에도 절도가 없을 가능성이 많지요.

반면, 어떤 사람은 정리정돈을 잘하는데 자기가 정리해 놓은 것을 다른 사람이 어지럽힌다 해서 짜증을 냅니다. 혹은 ‘저 사람은 가정교육을 잘못 받은 사람이구나.’ 하고 상대를 무시하지요. 이 또한 주님의 마음은 아닙니다. 권면하고 가르칠 수도 있고 상대를 대신해서 정리해 줄 수도 있습니다. 자기 틀과 의 속에서 혈기나 정죄함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사랑으로 포용해 줄 수 있어야지요.

다른 예를 들어, 식사할 때 좋아하는 것만 편식하는 것도 성결과 상관이 있습니다. 편식하는 분들은 반찬만이 아니라 범사에 편벽됨이라는 육의 속성이 자기 안에 없는지 점검해 보시면 됩니다.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은 좋아하고 맞지 않는 사람은 배척하거나 피하려고 하는 속성은 없을까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이것도 저것도 가한 화평의 마음이나 언행에 편벽됨이 없는 마음을 이루었는지요?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먼저 먹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지, 내가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한다 해도 진심으로 상대에게 좋은 것을 주려는 희생과 섬김의 마음을 이루었는지 이런 분야도 점검할 수 있습니다. 마치 작은 실밥 하나를 끌어당기면 줄줄이 실이 풀려 나오듯이 작은 결여를 통해 깊은 육의 속성까지 발견하여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구체적인 사례들

1) 공공장소에서의 예절
길이나 공공장소에 자기가 쓴 물건이나 쓰레기를 버리는 것, 화장실이나 수돗가에 더러운 흔적을 남기는 것도 주님의 신부다운 모습은 아니지요.

이렇게 결여가 있는 사람들은 성전에 나올 때나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결여된 행동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성전 화장실이나 식당을 지저분하게 사용하기도 하고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먹던 음식물 쓰레기, 심지어 기저귀를 예배실 안에서 갈고 그대로 버려두고 오기도 하지요.

세상에서도 산이나 유원지에 갈 때는 쓰레기를 집에 가져가는 캠페인을 벌입니다. 하물며 성전 건물이나 더구나 예배실 안에서라면 남이 버린 쓰레기까지라도 주워서 나가야 하지 않겠는지요? 하나님께 일부러 무례를 행할 마음이 아니라 해도 바른 행실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을 때는 민망한 행동을 하면서 깨닫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 명이 골목길이나 인도를 지날 때 일렬로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이나 차가 지나가는 데 불편하게 하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지나갈 공간을 만들면서 보행하게 되지요. 좁은 길을 가면서 조심하지 않아서 몸을 부딪치고도 사과의 말 한마디 없거나 바쁜 일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밀쳐내면서 뛰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닙니다.

또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고 남의 집이나 직장에 불쑥 찾아가는 것도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초대받아 집에 방문했을 때에도 주인의 허락 없이 닫힌 방문을 열어 보거나 마음대로 곳곳을 둘러보며 구경하는 것도 매너에 어긋나지요.

종종 외부에서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보면 일행들끼리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누구누구 집사님” 이렇게 큰소리로 부르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교회 다니는 분들이구나.’ 금방 알게 되지요. 그렇게 알려지게 해 놓고 나서 그 이후에는 은혜롭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민망한 일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진리 안에 못 살아도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에게는 더 아름다운 모습이기를 기대합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주셔야 하지요. 여러분의 언행이 세상 사람의 눈에도 “참으로 기품 있다. 뭔가 다르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주차, 약속시간 예절
약속 시간이 급하다고 길거리에 주차를 하고 교통이 막히게 만드는 것도 성결과는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이중 주차를 해 놓고 연락처를 남기지 않거나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급히 차를 이동 주차해 달라는 연락을 받아도 자신의 용무를 다 본 후, 천천히 나와서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요. 그러면 상대가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습니까?

선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이럴 수는 없지요. 더구나 우리 성도님들이 기억하실 점은 교회 주변이나 사택 주변에서는 여러분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이미지에 직결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방인에게도 무례히 행하지 말아야 하지요. 선을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산, 옷, 가방 등의 소지품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해야 할 일이나 상대와의 약속도 수시로 잊어버리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다음에는 이렇게 할게요.” 기도해 놓고 깜박깜박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신뢰하실 수가 없지요. 명심하지 못하는 것도 기억력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노력하면 바뀔 수 있습니다. 일이 많고 바쁜 상황이라 해도 마음은 항상 잔잔하여 중요한 것을 깨우쳐 주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약속을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잘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어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 날 전에 약속하여 상대는 스케줄을 비우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직전에 연락해서 취소합니다. “오늘은 내가 몸이 좀 안 좋으니까, 더 급한 다른 일이 생겼으니까, 내가 마음이 안 내키니까” 하면서 사소한 이유로 “다음으로 미루자” 하지요.

심지어 약속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못 가서 미안하다” 연락하기도 합니다. 물론 부득이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요. 그러나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이런 일이 빈번한 사람은 결국 주변의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저 분과 약속한 것은 언제 바뀔지 몰라” 이러면서 그의 말 자체를 가볍게 여기고 또 상대도 그 사람에게 한 약속은 상황에 따라 쉽게 변개할 수가 있습니다.

3) 정리정돈은 잘하고 있나요?
혹시 지금 주일예배가 끝나자마자 제가 여러분의 집을 방문하겠다고 하면 반갑게 맞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당회장님, 지금 당장은 안 되고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 들어가서 급히 청소하느라 분주하지는 않으시겠는지요? 자신의 방은 물론 책상 위나 화장대 위, 책장이나 옷장, 서랍 속을 떠올려 보면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그동안 수많은 설교들을 통해 정리정돈 하는 습관에 대해 권면을 들으셨으니 이제쯤이면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셨겠지요?

어떤 사람들은 음료수를 마시고 나면 음료수 병과 컵이 식탁에 그대로 있습니다. 밥을 차려 먹고 나면 몇 시간이 지나도록 뚜껑도 안 덮은 반찬 그릇이 식탁에 그대로 있고 설거지거리가 쌓이기도 하지요. 서랍이나 수납장 문을 똑바로 닫지 않아서 곳곳에 조금씩 열려 있습니다.
세수를 하고 나면 세면대 주변은 물론, 욕실 곳곳에 물이 흥건하고 머리를 감고 나면 바닥에 머리카락들이 곳곳에 눈에 띄지요. 쓰고 난 수건, 갈아입은 속옷, 어제 벗은 외출복, 이런 것이 침대나 의자 위, 바닥에 쌓여 있고요. 옷장에는 계절별로 용도별로 옷이 걸려 있지 않고 사계절 의복이 뒤엉켜 있어서 상의와 하의의 짝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집 안은 이렇게 어지럽힌 채로 어떻게 마음의 방을 깨끗하게 정돈할 수 있겠습니까? “영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성결을 이루게 하소서.” 기도하면서도 뭔가 개운치 못한 느낌이 들게 되지요.

지금 설명하는 분야들은 주의 교양이나 신앙에 관련된 내용이기보다는 일반적인 공중도덕이나 매너에 해당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주의 교양과 육의 교양은 별개가 아닙니다. 온전하고 흠 없는 주님의 신부라면 육의 교양도 갖추고 있어야 하지요. 매너나 에티켓, 공중도덕 등의 기본 바탕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예의범절의 세세한 방식들은 달라질 수 있지만 항상 변함없는 핵심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자세이지요.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혐오감을 주지 않으며 더 나아가 먼저 배려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는 마음입니다. 영과 온 영을 사모하는 성도들이라면 이런 교양적인 면에서도 당연히 갖춰져야 하겠습니다.

아랫글 : 육체의 결여(10)
윗글 : 육체의 결여(5)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