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육체의 결여(8)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빌 4:8-9 날짜 2012.02.26
육체의 결여 말씀을 통해 주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기 위해서 깨닫고 고쳐야 할 분야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육체의 결여의 구체적인 예들과 결여의 해결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 육체의 결여와 영적 성장과의 관계

사람이 성장하면서 보고 느끼고 행하는 단계에서 정상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므로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지적인 능력, 육체적인 능력이 결여되거나 정서적으로 일반인과 동떨어진 감정 상태를 갖는 것을 통틀어 ‘육체의 결여’라고 합니다.

마음의 악을 버려나가는 만큼 낮은 수준의 육체의 결여는 상당 부분이 해결됩니다. 진리 안에서 주의 교양을 익히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나가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 행해 나가는 만큼 점점 육체의 결여가 없는 모습으로 변화되지요. 또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던 결여를 발견하여 버려 나갈 때 영으로 들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2.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된 경우

정서나 사고 분야의 결여 중에는 먼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된 경우가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많이 해보지 못한 분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일부러 자기 유익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유익을 구해 줄 마음인데도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때가 있지요. 주변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하거나,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해서 주변 사람을 민망하게 만듭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상대도 당연히 좋아하며,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상대도 싫어하리라고 생각하지요.

가령 자신은 생선을 좋아하고 식사량이 많은 편입니다. 상대는 생선을 싫어하고 소식을 하는 편이지요. 그런 사실을 알아도 공감하지 못하면, 함께 식사할 때 계속 생선을 권하면서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요.”라고 합니다. 상대는 자기 식사량에 맞게 충분히 먹었는데 “왜 그렇게 안 먹느냐, 입에 안 맞느냐.” 하고 계속해서 더 먹으라고 하지요. 이런 사람과 식사하면, 아랫사람이거나 접대를 받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남에게 선물 주기 좋아하는데 자신의 취향과 필요에 맞춰 하는 사람도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유용한 물건, 자신이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모양, 이런 기준에 맞춰 선물을 줍니다. 그러면서 상대가 좋아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으면 ‘귀한 것을 주어도 고마운 줄 모른다’며 서운한 마음을 품기도 하지요.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이런 결여 때문에 불필요한 핍박을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전도는 하는데 상대의 마음을 열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을 닫게 만드는 것입니다. 종종 복음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전도를 잘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훼방하고 핍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도자가 좋은 것을 준다 해도 상대는 오히려 죄의 담을 쌓게 되지요. 그래서 마태복음 7장 6절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와 돼지가 진주를 밟듯이 진리를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예 전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가 핍박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게 만들어서 전도를 해야 하지요.

그러려면 선한 지혜를 받고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야 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섬김과 사랑으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지요. 가령 아내가 남편을 전도하고 싶다면 전보다 더 마음을 잘 맞춰 섬기고 진실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편이 무엇을 좋아할까? 어떻게 마음을 감동시킬까?’ 하며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요. 남편이 볼 때 ‘교회 다니니까 아내가 저렇게 변화되는구나, 사랑하는 아내가 간절히 원하는데 나도 교회에 같이 나가야 겠다’ 이런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아내는 감동을 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느라 원래 바쁜데 교회까지 가서 더 분주해졌으니까 남편에게는 좀 소홀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면서 교회 가면 얼마나 좋은지 이런 저런 말로 열심히 전도하지만 남편이 들어주지 않습니다. 또 자신이 은혜 받는다고 해서 교회와 관련된 신문, 책자, 사진 등을 집 안 곳곳에 놓아 두지요. 남편은 가뜩이나 교회에 아내를 빼앗긴 것 같아서 서운한데 이렇게 아내가 늘어놓은 물건들을 보면 더 마음이 상합니다. 오히려 교회 나가는 것을 방해하고 핍박하는 경우도 있지요. 아내는 아내대로 ‘교회 가면 구원받고 행복하니까 진리를 말한 것뿐인데, 좋은 일이니까 권면하는데 왜 남편은 나에게 악하게 대할까?’ 이렇게 자기 입장만 생각하다 보면 서로 간에 불편합니다.

남편과 아내만이 아니라 자녀도, 부모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상대의 마음과 입장을 헤아리고 진리 안에서 선한 지혜로 잘 맞춰 준다면 가정 복음화가 신속히 이뤄질 것입니다. 전도할 때도 내가 은혜 받은 이야기가 아니라 상대가 관심을 가지고 은혜 받을 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하지요.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더 많은 사람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려서 그릇을 넓혀야 합니다.

3. 상대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려 그릇을 넓혀야

예를 들어 세 명의 어린아이들이 함께 놀고 있습니다. 그중에 한 아이는 여러분이 평소에 예뻐하고, 나머지 둘은 잘 모르는 아이입니다. 여러분의 주머니에 마침 사탕이 하나 있어서 예뻐하는 아이의 입에 사탕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이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두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요?

내 편에서는 좋아하는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었을 뿐, 다른 아이들을 상처 주려는 마음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도 온전하다 할 수 없지요. ‘나는 선한 마음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그쳐서는 변화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계속 자기 입장만 고집하면 주변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과는 대화가 안 통한다’며 답답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장로회 모임에 은혜로운 강사님이 오신다고 해서 여 구역장님 한 분이 일찍 가서 앞자리 한가운데 앉아 있다면 어떨까요? 혹은 창립행사 공연에 은혜받기를 사모하여 구역장이나 기관장쯤 되는 일꾼이 새신자석이나 귀빈석에 가서 앉아 있다면 여러 사람들에게 민망하지요.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은혜받으려고 그랬는데 남들이 뭐라 해도 할 수 없다’는 마음이라면 이 또한 결여가 있는 것입니다. 남의 눈치를 보라는 말이 아니지요. 여러 사람이 공감하는 질서를 좇아 시간과 장소에 맞는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불편하지 않게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배 시간에 자리 때문에 참으로 많은 건의가 들어옵니다. 새신자나 초신자 분들이 예배 자리 때문에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고 하시지요. 나름대로 믿음 있고 알만한 분들이 아는 사람들의 자리를 줄줄이 맡아 놓고 남들이 앉지 못하게 지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먼저 와서 앉았는데도 나중에 와서 그 자리를 내놓으라고 큰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 자리는 항상 내가 앉는 자리니까 비키라.”고 얼굴을 붉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시비비를 따지다가 교회에 처음 온 분들이 감정이 상해서 돌아가는 일도 생깁니다.

혹시라도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면 교회와 목자를 민망하게 할 뿐 아니라 부흥을 막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송한 일입니까? 장로님들이 장로 지정석에 앉아 있다가도 낯선 얼굴의 초신자가 와서 앉을 자리를 찾고 있다면 얼른 일어나서 양보해야 도리이지요. 하물며 지정석이 아닌 곳이나 새신자 지정석까지 기존의 성도님들이 앉아서 양보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민망하게 여겨야 합니다. 교회 행사가 있을 때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여러분이 집안에 잔치를 벌여 귀한 손님들을 초청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주인은 식탁 앞의 좋은 의자에 앉고, 손님은 구석진 곳 바닥에 앉으라고 접대하실 분이 있으신지요?

장로님, 권사님은 물론이고 집사, 권찰 이상은 직원헌신 예배를 드리는 교회의 주인입니다. 주인이 되어서 손님을 맞는 입장이지요. 더구나 연세가 지긋하신 권사님들이라면 어머니처럼 모든 성도님들을 희생적으로 돌보고 보살펴 주실 수 있어야 하지요. 내가 본당에서 은혜를 받기보다 다른 분들이 좋은 자리에서 은혜를 더 받게 양보할 수 있어야 하나님 앞에서도 담대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오랫동안 가정 복음화를 놓고 기도하다가 처음으로 가족을 교회에 모시고 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상대가 은혜받도록 좋은 것을 얼마든지 양보해 줄 수 있지요. 항상 상대의 입장을 살피고, 아버지의 나라와 교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 육체의 결여를 해결하는 방법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을 때 ‘아 내가 실수했구나, 상대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구나’ 하고 곧 깨우칠 수 있다면 이런 것을 심각한 결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도 스스로 부족했음을 깨닫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이 권면을 해주는데도 여전히 상대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문제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유달리 공감능력이 부족하구나, 나는 원래 그러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체념해 버릴 수는 없지요. 상대의 마음과 입장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과 지혜를 구해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하나하나 가르쳐 주시고 결여된 부분을 채워 주십니다. 참고로 이런 결여를 채우는 데는 보고 듣고 배운 지식도 중요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더 좋은 방식, 더 좋은 자료를 접할 때마다 수시로 배우고 익히는 습관을 들이면 결여된 부분을 채우는 데 유익합니다. 종종 사회생활에 필요한 경험이 성장과정에서 유달리 결여되어서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격적으로 결여가 있는 것은 아닌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방법을 잘 모르는 것이지요.

윗사람을 대할 때의 예절, 여러 사람과의 만남에서 대화하는 법,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에서의 예절, 심지어는 물건 사는 방법 등 사소한 일들조차 어렵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런 지식의 결여도 결국 끊임없이 기도하며 배우려고 스스로 노력해 나가야 극복할 수 있지요. 주 안에서 사명을 감당할 때도, 열심히 보고 듣고 배우는 노력이 있을 때 지식적인 결여를 채울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합니다.

아랫글 : 육체의 결여(10)
윗글 : 육체의 결여(7)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