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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육체의 결여(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빌 4:8-9 날짜 2012.03.04
지난 시간에는 육체의 결여 중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된 경우와 그 해결 방안을 말씀드렸습니다. 육체의 결여를 발견하여 온전한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도록 오늘은 지식적인 분야의 결여와 그 외 다양한 결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다양한 육체의 결여

‘육체의 결여’란 사람이 보고 느끼고 행하는 단계에서 정상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함으로 인해, 사람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지적인 능력, 또 육체적인 능력이 결여되거나 정서적으로 일반인과 동떨어진 감정 상태를 갖는 것을 통틀어 말한다 했습니다.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면 육체적인 능력도 아울러 결여가 나타납니다. 간혹 지적인 능력은 좀 떨어져도 부모님께 교육을 잘 받아 육체적인 능력은 결여가 적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두 가지가 다 결여된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보고 느끼고 행하는 단계에서 정상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는 것은 필요한 단계를 건너뛰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장 단계를 비정상적으로 거침으로써 결여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식적인 분야의 결여도 있고, 정서적인 분야의 결여, 행동 능력의 결여 등 결여의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

일상적인 교양의 분야를 비롯하여 타인의 마음과 감정에 대한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정서적으로 일반인과 동떨어진 감정 상태를 지닌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얼굴 표정만 보고 행동을 합니다. 또한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없는 경우, 악한 것을 보고도 선하다고 생각하거나, 선한 것을 보고도 악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정확하게 분별하려면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4단계를 정복하여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선의 4단계에 들어가지 못하면 대충 선악을 분별하지만 정말 선한 것도 악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의지력과 절제력, 마음먹은 것을 실행하는 능력 등에서 남보다 부족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하나하나 발견해서 버려나가야 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시간에 걸쳐 육체의 결여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다양한 결여의 예들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대화나 식사할 때의 실례되는 모습, 자세, 몸가짐의 결여였지요. 즉 대화할 때에 침이 튀긴다거나 조용히 말로 해야 할 것도 손발을 움직이거나 삿대질을 하여 상대를 불쾌하게 합니다. 또한 윗사람 앞에서는 공손하게 바른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다리를 꼬고 앉아서 불손한 태도로 대화합니다. 복장도 윗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고, 집 안에서의 복장, 외출해서의 복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렇게 복장을 한 상태로 윗사람을 대하는 것이지요.

이 외에 정리정돈하지 못하는 것, 준비성이나 계획성이 부족한 것, 명심하지 못하고 약속 어기는 것,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 마음을 넓게 쓰지 못하는 것 등 여러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면 화평을 깨지 않고 말의 실수도 나오지 않으며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을 넓게 쓰면 화평을 이루며 웬만한 것은 다 포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될 수 있지요.

그동안 육체의 결여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부분이 여러분 자신에게도 해당되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대로 마음에 명심하고 노력한 분들은 지금쯤 큰 변화가 있었겠지요. 반면 ‘이런 것쯤이야 뭐 커다란 죄도 아닌데’ 하면서 넘겨 버렸다면 여전히 육체의 결여 속에 살고 있을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지만 작은 것에 불의한 사람은 큰 것에도 불의합니다. 따라서 설교를 통해 들은 말씀을 사소한 것이라 여기지 말고 명심하여 온전히 진리 가운데 변화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육체의 결여를 발견하여 신속히 버려야 주님의 신부답게 사랑스럽고 당당히 빛 가운데 행하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2. 지식적인 분야의 결여

주 안에서 사명을 감당할 때도, 열심히 보고 듣고 배우는 노력이 있을 때 지식적인 결여를 채울 수 있습니다. 기관장 교육 때 이런 예를 들어 드렸지요. 어떤 사람이 행사에 쓸 소품을 만드는데 자기 지식과 한계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상을 배합했습니다. 그런데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사람이 보면 그보다 훨씬 아름다운 색상의 배합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요. 이런 것을 모르고 자기 한계 속에서 자기 것만 최고라고 고집하는 것도 지식적인 분야의 결여 때문입니다.

내가 배운 지식과 경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좋은 색깔을 배합했으니 내가 옳다며 최고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남의 의견도 수용할 줄 알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육적인 비유를 들어, 주부들이 오랫동안 살림을 해왔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집 안을 살펴보면 배울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음료수 한 잔을 접대할 때도 쓰던 컵에 담아 투박하게 건네줄 수도 있고, 예쁜 컵에 꽃잎이나 과일조각으로 장식을 해서 쟁반에 받쳐 대접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다른 집에서 접대를 받을 때나 음식점이나 혹은 책에서 본 아이디어를 흘려버리지 않고 활용하면 얼마나 유용합니까? 음식을 담아도 어떤 그릇에 어느 정도 담아야 적당한지 보고 들은 것이 없으면 결여된 모습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떠한 사람을 접대하느냐에 따라서 접대 방법도 달라집니다. 친구 사이라면 평범한 잔에다 커피를 대접하면 되지만 품위 있는 윗분을 접대할 때는 접시받침을 해서 드리기도 하고 더 윗분일 때는 그만큼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접대를 해야 합니다. 컵을 드릴 때에도 윗분이 컵의 손잡이를 잡도록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쳐서 드려야 하지요. 한 손으로 자신이 손잡이를 잡은 채 드린다면 결여가 되는 것입니다. 접대를 한 후 물러날 때에도 뒤돌아서 나올 때가 있고 어떤 윗분들 앞에는 뒤를 안 보이고 뒷걸음으로 나오기도 하는 등 다 다릅니다.

이런 것은 지식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행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행동하면서 무례한지도 모릅니다. 가령, 귀한 손님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는데 설탕을 크고 고급스러운 대접에 가득 담아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고 합시다. 이렇게 설탕을 갖다놓은 사람의 의도는 손님들을 배려하려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먹을 분량이고, 또 달게 먹는 분이 설탕을 더 달라고 요청하는 불편함을 덜어드리려고 많이 내놓는 것이지요.

아무리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고 비록 고급스러운 대접이라 해도 커피 설탕을 대접 한가득 내놓는다면 아무래도 어색하지요? 용도에 맞는 그릇으로, 차라리 개인별로 각각 설탕을 주고 여분을 좀더 넉넉히 준다거나, 이렇게 격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더 열심히 배우려 하고 더 궁구할 때 발전이 있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고 걸으며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는지 계속 배우면서 좋은 것은 내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걸음걸이도 예쁘고 바르게 걷는 사람이 있다면 유념해 봤다가 따라서 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이것은 꼭 이런 방법으로 해야만 한다’ 하는 틀을 만들라는 말이 아닙니다. 남들이 그런 방식으로 행하지 않을 때에 ‘저 사람은 매너도 없구나’ 하고 무시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더더욱 안 되지요.

때와 장소에 따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편적인 방법인지, 더 좋고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 있는지, 이렇게 다양한 자료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를 다 알면서 자신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조정할 수는 있지만 보고 듣고 배우지 못해서 부족한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일꾼으로서 민망한 일이지요.

3.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는 마음도 육체의 결여

만일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는 마음이 있다면 육체의 결여에서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태도가 배어 있어서 어려움이 생기면 피하려 하고 처음부터 포기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나는 할 수 있다.” 하고 어떻게 잘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나? 나는 도저히 감당 못할 것 같다.’ 하며 그냥 주저앉아 버리지요. 이걸 해보다가 잘 안 되면 금세 포기하고 저걸 하고, 저걸 해보다가 잘 안되면 얼른 포기하고 또 다른 걸 해 봅니다. 그러면서 점점 ‘나는 뭘 해도 잘 안 된다’ 하는 부정적인 사고가 더 쌓여갑니다.

의지력, 인내심, 절제력, 집중력 등의 결여도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채워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설명했지만 어릴 때 잘 훈련이 되지 않으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결단하거나 절제하고 인내하는 힘이 결여되지요. 흔히 세상 사람들도 이런 능력이 결여되어서 금주, 금연, 다이어트 등을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몇 년 동안 변함없이 다이어트를 목표로 삼습니다. 한 번 결단했으면 끝내 버려야 하는데도 계속 실패하므로 해마다 같은 목표를 세우는 것이지요. 내가 먹는 양을 조금 줄이면 되는데 그걸 못하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하겠다’ 결심해 놓고도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그만 폭식을 합니다. ‘오늘부터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도 영화를 보고 싶고, 게임을 하고 싶으면 결심이 흐트러집니다. ‘일단 오늘은 포기하고 내일부터 하자’ 생각하지만 내일이 되면 또 그다음 날로 미루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도 긍정적인 사고, 절제력, 결단력, 집중력, 이런 능력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잘 갖춰져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결여가 없는 만큼 사람 사이에도 인정받고 사랑받게 됩니다.

학생들도 육체의 결여가 없으면 왕따를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므로 세상 것을 안 접하고, 친구와 대화도 안 하며 같이 어울리지도 않으니까 왕따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으로 들어간 학생들은 오히려 사랑을 받습니다. 육체의 결여가 없는 만큼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여가 많기 때문에 신용을 얻지 못하며 신뢰를 받지 못하지요. 회사나 직장,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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