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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2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2:7, 요일 3:9 날짜 2010.04.09
창세기 강해 스물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어 주신 생명의 씨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내용은 원래 사람을 창조하신 부분에서 설명이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성도님들이 실생활에 적용하시면 참으로 유익한 점이 많기에 순서를 당겨서 먼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항상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며 범사에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신 장면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 과정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각 부분을 빚으시는 대로 흙덩이에서 인체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흙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에서 근본의 빛이 계속 나갔기 때문입니다.
흙으로 머리를 빚으시면 머리 부분은 흙이 아니요 온전한 사람의 머리가 됐지요. 또 몸통을 빚으시면 빚으시는 대로 온전한 사람의 몸통이 되었습니다. 다른 신체 부위들도 마찬가지이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기 전에 아담은 이미 온전한 사람의 형체를 갖췄지요. 단 생명이 없을 뿐이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면 영혼이 빠져나가고 몸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아담의 코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생령이 되었던 것입니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피가 돌았으며 몸의 모든 세포들이 살아서 작동했지요. 뇌도 활동을 시작하여 보고 들을 수 있으며 손과 발을 움직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란 과연 무엇일까요?
에스겔 37장에도 이 생기의 작용이 나옵니다. 이는 비록 환상으로 본 것이지만 영적인 원리는 동일하지요.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들에게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으셨습니다. 그리고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게 하자 그들이 살아 일어났지요.
7년 환난 중에 순교당한 두 증인이 살아날 때도 생기가 들어가서 역사합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1절에 "(죽은 지)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했지요. 이처럼 생기는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근본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이 생기란 무엇일까요? 근본의 하나님은 소리를 머금은 빛의 형태로 근본의 우주에 널리 퍼져 계셨다 했습니다. 인간 경작을 위해 영계의 정점에 응집하셨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하셨지요. 하나의 근본의 빛에서 두 개의 빛이 나와서 총 세 개의 빛이 되었고 각각 형상을 입었습니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형상을 입으셨다 해도 그 근본은 소리를 머금은 근본의 빛이지요. 그런데 근본의 빛에는 무한한 능력과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근본의 빛에 담긴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생기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모든 유전정보를 세포핵의 DNA에 담아두셨다 했습니다. 세포핵의 DNA를 자동화된 생산 라인에 비유했지요. 자동화 생산 라인에서는 전원 스위치만 올리면 자동으로 생산품이 만들어져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빚으신 상태는 인체라는 공장의 자동화 설비를 완성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의미는 전원 스위치를 올린 것과 같지요. 기계에 생명을 주는 것이 전기라면 인체에 생명을 주는 것은 생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으신 아담의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에 하나님의 근본된 능력인 생기가 들어가자 아담은 살아 움직이기 시작을 했습니다. 생기가 들어간 아담을 하나님께서는 생령이라 하셨지요. 흙으로 지어진 육의 몸을 지녔지만 생기 곧 하나님의 근본된 능력이 담겨 있기에 죽지 않을 수 있는 영적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령인 아담을 영에 속한 둘째 하늘의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에덴동산에서 생육하고 번성했습니다. 즉 많은 자녀를 낳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불어넣으신 생기는 에덴동산에서 낳은 아담의 후손들에게도 자동적으로 전달이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의 후손들은 이처럼 생령의 존재이기에 잉태되고 성장하는 모든 과정에서 생기의 영향을 받습니다.
신체 각 부분이 발달하고 성장할 때도 몸의 각 부위를 생성하는 세포핵이 생기로 인해 가장 좋은 결과물만 만든 것입니다. 세포 분열이 잘못되거나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는 일도 없지요.

에덴동산에서는 기형아나 선천적으로 연약한 아기는 태어나지 않고 소위 우량아만 태어납니다. 또한 태어난 아이들이 성장할 때도 생기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모두들 키도 잘 자라고 건강하지요. 그래서 에덴동산의 사람들은 모두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멋있게 잘 생겼습니다.
남자는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데 키는 모두 최소 175센티 이상이 됩니다. 여자의 키는 남자보다 조금 작습니다. 피부는 남자, 여자 모두 뽀얀 우유 빛을 띠며 머리카락은 황금빛의 금발을 하고 있지요. 남자의 머리카락 길이는 목선 끝부분에 닿을 정도까지 자라며, 여자는 그 두 배까지 자랍니다. 머리카락도 이 정도까지 자라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지요.
남자들은 수염이 나지 않습니다. 피부나 머리카락에서는 윤기가 나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모두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개인차는 조금씩 있지만 모든 사람이 최상의 형질을 갖지요.
에덴동산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청년의 때를 조금 더 지날 때까지 성장합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성장이 멈추는데 그 후로는 몸이 노화되지도 않으며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살게 됩니다. 이는 생기 곧 하나님의 근본된 능력이 몸을 근본적으로 조절하는 세포핵을 지배하고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서 생기를 대부분 거둬버리시고, 첫째 하늘에 속한 이 땅으로 내어보내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아담과 하와가 이 땅에 왔을 때는 생기가 아주 조금, 흔적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것은 작은 씨앗과 같은 형태로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 안에 남게 되었지요.
이것이 바로 생명의 씨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그나마 생명의 씨가 있었기에 에덴동산의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하나님을 찾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육의 흐름을 따라 점차 노화가 되었지요. 이 땅에 내려와서 930년 동안 살다가 육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에덴동산에 살았더라면 생기로 충만하여 늙지도 않았을 것이고, 죽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기의 대부분이 거둬지고 육의 공간에서 육의 흐름을 따라 살게 되니 점차 노화되다가 결국은 죽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930세를 살았다는 것은 오늘날과 비교하면 굉장히 오래 산 것이지요.

노아 홍수 전까지는 대체로 인간의 수명이 매우 길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 첫째 날에 지구를 두르게 하신 근본의 빛이 노아 홍수 전까지는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 경작의 초기에는 악이 관영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마음도 비교적 선했지요. 따라서 당시는 노화가 된다 해도 그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느렸다는 사실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에게 생기가 자연히 전달됐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아담과 하와가 낳은 후손들은, 부모에게서 생명의 씨를 전달받지를 못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이가 잉태되면 6개월째 되었을 때에 영을 주십니다. 영 안에 생명의 씨를 담아서 태아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 안에 심어 주시지요.
영안이 열려 보면 이 생명의 씨 안에서 푸른빛이 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했습니다.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했는데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심어 주신 생명의 씨의 작용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명의 씨가 담긴 영을 받았기에 짐승과 달리 내세가 있음을 어렴풋하게 느낍니다. 절대적인 존재인 신(神)을 찾으며 하늘을 동경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생명의 씨는 그냥 씨에 불과하기에 어떤 생명의 역사를 이루지 못합니다.
육으로도 어떤 곡물이나 과일이나 꽃의 씨들도 싹을 틔우지 못하면 그냥 죽은 것처럼 씨인 상태로 있습니다. 수년, 수십 년이 되어도 환경이 되지 않으면 그냥 죽은 것처럼 씨로 있지요. 심지어는 수천 년 동안 씨앗으로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환경이 적절하게 갖춰지면 씨앗은 싹을 틔우고 자랍니다.
모든 씨가 싹을 틔우는 것은 아니지요. 씨도 종류에 따라서 수명이 다르고, 그 기간이 지나면 죽는 것입니다. 또한 아직 씨의 수명이 다하지 않았다 해도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생명력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씨들은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도 싹이 트지 않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볍씨를 많이 물에 담가 두어도 전부가 싹을 내는 것이 아니지요. 보통 벼의 종자 수명은 2~3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4년, 5년이 된 볍씨를 물에 담근다면 거의 싹이 트지 않을 것입니다. 볍씨가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분과 온도, 산소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어 주신 생명의 씨가 싹을 틔우기 위해서도 적절한 영적인 환경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생명의 씨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싹을 틔우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사람도 있고, 어느 땐가 싹을 틔우는 사람도 있지요.
또한 싹이 트긴 했지만 조금 자라다 멈춘 사람, 계속 자라서 온전한 분량까지 이른 사람 등 사람마다 처한 영적인 환경과 자신의 노력에 따라서 다양합니다.

생명의 씨가 싹을 틔우기에 좋은 환경이란 무엇일까요?

생명의 씨는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근본의 빛을 조금 떼어서 심어 주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씨의 근본 속성은 영이요, 선이요, 진리요, 빛이지요. 따라서 사람의 마음이 선할수록 생명의 씨가 싹을 틔우기에 좋은 환경이 됩니다. 생명의 씨가 싹이 튼다는 것은 결국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아야 하지요. 마음이 선할수록 복음을 들으면 더 쉽게 믿고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섭리 자체가 선과 사랑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인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심에도 저주받은 자처럼 나무에 달렸고 보혈을 아낌없이 흘려 주셨지요. 진정 마음에 선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신 예수님의 선과 사랑에 감동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지요. 이러한 사람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렇게 임한 성령께서 바로 생명의 씨의 싹을 틔워 주십니다.
그동안은 딱딱한 껍질에 싸여서 마치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었던 생명의 씨가 이제 생명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 3장 6절에서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씀하셨지요.

성령이 오시기 전인 구약 시대에는 어떻게 생명의 씨가 깨어날 수 있었을까요?

구약 시대에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위적으로 지키면 의롭다 인정받는 시대였지요. 이처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이를 의롭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생명의 씨를 깨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에녹, 엘리야, 모세, 아브라함 등은 구약 시대의 사람이지만 온 영에까지 이를 수 있었지요.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될 수 있었기에 성령께서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들어오신 성령께서 생명의 씨를 깨워 주셨지요.

반대로 구약 시대에는 율법의 행함으로 의롭다 인정받은 사람의 생명의 씨를 하나님께서 외부에서 일깨워 주셨던 것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해서, 양심 심판을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런 사람들은 그 양심이 매우 선합니다. 선한 양심이 영의 마음은 아니지만, 이들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서 주신 영이 활동할 수 있는 좋은 바탕이 되지요. 신약이든, 구약이든, 어느 시대를 무론하고 결국 생명의 씨가 담긴 영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마음 바탕에 선과 진리가 많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선도 있고, 악도 있으며 부모로부터 전해진 본질적인 분야 등 사람마다 마음의 구성 성분이 다르지요.
모든 사람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선한 것을 보고 듣고 입력시키면 선한 마음 바탕이 될 수가 있고, 악한 것을 보고 듣고 입력시키면 그만큼 마음 바탕이 악해지지요. 따라서 어느 누구도 "나는 마음 바탕이 좋지 못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라고 변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의 씨가 틔워진 다음에는 반드시 자라가야 합니다. 식물은 싹이 트면 물과 햇빛을 계속 공급해 줘야 자라지요. 이처럼 생명의 씨도 성령으로 싹튼 다음에는 영적인 물과 빛을 계속 공급받아야 자랍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영으로 양식 삼아야 그 사람의 영이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씨를 영 안에 담아서 사람 몸의 중심 되는 핵 속에 심어 주셨다 했지요. 그래서 생명의 씨가 깨어나서 생명 활동을 시작하면 생명의 씨를 감싸고 있는 영이 성장합니다.
식물의 씨가 싹을 틔웠다 해도 물을 주지 않으면 죽고 말지요? 이처럼 생명의 씨도 싹을 틔운 후에 영적인 물을 공급받지 못하면 성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 5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거예요.

영적으로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적인 물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영적인 물과 빛이 마음에 임하면 마음에 있는 영이 성장하게 됩니다.
본문 말씀 요한일서 3장 9절 전반절에 보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은 사람들은 죄를 지어서는 안 됨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생명의 씨가 깨어난 후에는 영적인 물인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공급해 줘야 그 생명이 유지됩니다. 그런데 또다시 죄를 범하고 사함 받을 수 없는 죄까지 짓는다면 이는 싹 튼 씨앗을 다시 죽이는 것과 같지요.

예를 들어 잘 자라던 화초를 어느 날부터 빛이 없는 캄캄한 곳에 방치해 두고 물도 주지 않는다면 결국 죽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여러분이 한번 성령을 받았다 해도 만일 짐짓 죄를 범해 나간다면 결국 생명을 다시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셨지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하겠습니다.

아랫글 : 창세기 강해(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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