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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3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2:7, 요일 3:9 날짜 2010.04.30
창세기 강해 서른두 번째, 생명의 씨 네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영의 차원에서 몸이 조절될 때에 나타나는 세 가지 현상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면 범사에 잘되는 축복도 임함을 제 간증을 통해 말씀드렸지요. 그러면 영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강건함의 축복과 물질의 축복을 받을 수 없을까요? 영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해도 영의 차원에서 임하는 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이 있다 했습니다.

첫째,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란,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있는 진리를 통해 영의 공간을 느끼게 해 주시는 상태입니다. 육이 전혀 없고, 죄가 전혀 없으며 평안과 기쁨과 감사만 있는 영의 공간을 느끼게 해 주시는 것이지요.
비유를 들면 마음을 영으로 10%밖에 일구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마음의 나머지 90%를 성령께서 영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에 육이 전혀 없는 것 같고 오직 영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끼지요. 이 사람이 평소에는 90%를 차지하는 육의 소욕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이 대부분 육에 의해 주관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이제 마음의 주도권을 영의 부분이 갖게 되지요.

비유적으로 10%인 영의 마음을 어린이라 하고, 90%인 육의 마음을 어른이라 하겠습니다. 이 어린이와 어른이 줄다리기를 한다면 당연히 어른이 이기겠지요. 그런데 어린이 편으로 아주 힘이 센 어른이 한 명 더 와서 어린이와 함께 줄을 당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어린이 편이 이깁니다.
바로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에는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의 마음에 힘을 실어 주시지요. 육신의 생각이나 의심도 틈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옵니다. 또한 현실을 보면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늘로부터 기쁨이 임하지요. 감사치 못할 일이 생긴다 해도 마음에서는 감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마음을 영으로, 온 영으로 일궜을 때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는 몸의 조절도 영의 차원에서 이뤄집니다. 마치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면 몸의 모든 기능 조절이 영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요. 성령 충만할 때만큼은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차원에서 몸의 기능이 조절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씨가 깨어난 후, 영이 성장하여 몸의 중심에 있는 세포핵보다 커지면 몸을 조절하는 권한이 완전히 영으로 이양된다 했습니다. 영의 차원에서 몸의 기능이 조절되기에 몸이 더 이상 노화되지 않으며 오히려 젊어질 수 있다 했지요.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상태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의 영의 크기가 몸의 중심이 되는 세포핵의 절반을 덮을 정도라고 합시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성령께서 나머지 절반을 덮어 주십니다. 그 결과 몸의 중심이 되는 세포핵이 영의 지배를 받게 되지요.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잘한 분들이 나이가 들어도 세상 사람에 비해 훨씬 젊고 건강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비록 아직 영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해도 신앙생활을 잘했다면 성령이 충만한 채로 지낸 시간이 많지요. 육의 사람은 그 기간 동안 육의 흐름대로 노화되었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기간만큼은 노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성령 충만할 때에는 육으로 아무리 고된 일을 한다 해도 몸이 피곤한 줄 모릅니다. 제가 예전에 치료받은 후 노동일을 할 때도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철야기도를 하곤 했지요.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했기에 몸은 피곤하고 졸릴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20, 30분 동안만 힘쓰고 애써서 부르짖어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그러면 피곤이 싹 사라지고, 날아갈 듯이 가벼운 몸이 되어 충만하게 몇 시간을 기도할 수 있었지요. 기도원 원장은 먼저 충만하게 찬양을 해서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함도 입게 되어 함께 새벽까지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런 체험을 다니엘철야나 금요철야 때에 많이 하실 것입니다. 육으로 생각하면 피곤한 몸으로 몇 시간 동안 힘쓰고 애쓰며 앉아 있었으니 더 피곤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영의 차원에서 몸이 조절되기에 생기로 충만해집니다. 소위 녹초가 되어 기도하러 왔다 해도 충만하게 찬양하고 기도하면 오히려 쌩쌩해지지요. 피곤하여 무겁던 몸이라도 날아갈 듯이 가벼운 몸이 됩니다.
이렇게 항상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질병 균도 틈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함이 떨어지면 다시 육의 차원이 되기에 피곤함도 느끼고, 질병 균이 틈탈 수 있게 됩니다.

항상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깨어 기도하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지요.
믿음의 1, 2단계에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가도 그 충만함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죄를 지으면 성령의 충만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 말씀처럼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으면 회개의 영이 오지 않기 때문에 죄의 담도 헐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힘쓰고 애쓰며 부르짖어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수가 없지요. 그러니 몸도 육의 흐름대로 늙어 가고 쇠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어떤 질병이 틈타면 그것을 이겨낼 수가 없기에 질병에서 오는 고통을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결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으면 안 되지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지었다 해도 즉시 하나님께 자복하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영육 간에 강건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오기 전에도 영의 차원의 복을 누리는 방법

둘째는, 무안단물과 기도받은 손수건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무안단물과 여러분이 저에게 기도받은 손수건에 창조의 권능의 빛을 담아 주셨습니다. 이 창조의 권능의 빛은 천지창조 역사를 이루었던 바로 그 근본의 빛이지요. 여러분이 믿음으로 사용하시면 그 무안단물과 손수건에 담긴 창조의 권능의 빛이 여러분에게서도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손수건에 기도받기를 청하실 때, 제가 항상 기도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손수건을 얹을 때마다 원수 마귀 사단 어둠이 물러가며 악귀가 떠나고, 믿음과 생명이 주어지고, 통회자복의 역사와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으로 축복해 주시기 원합니다. 기사와 표적이 따르며, 치료의 역사로 영광 받으옵시고, 많은 영혼 구원하며, 지키시고 함께하시고, 축복해 주시기 원합니다. 창조의 근본의 빛으로 둘러 주시고, 창조의 최상의 권능을 불어넣어 주셔서, 믿음으로 행할 때마다 죽어가는 자도 살아나며, 살리게 축복하시며, 영광 받으옵소서."

믿음으로 손수건을 얹고 기도하면 이런 역사가 그대로 나타날 수 있지요. 손수건에 담긴 권능의 빛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영의 차원에서 몸을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권능의 빛에 담긴 하나님의 능력이 죽은 세포를 살려서 정상적인 기능을 하게 하지요. 또한 퇴화된 조직을 재생되게 하는 등 온몸이 정상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나 무안단물과 기도받은 손수건을 통해서 영의 차원에 몸의 조절이 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일시적이고, 한시적으로만 영의 차원에서 몸이 조절됩니다. 영구적이지 않고,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 충만할 때에만, 믿음으로 무안단물을 마실 때에만, 그리고 믿음으로 손수건 기도를 받을 때에만 영의 차원에서 몸이 조절되는 것입니다. 물론 계속 말씀대로 살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면 항상 영의 차원에서 몸이 조절되지요. 소아마비나 사고로 지체장애자가 된 분들 중에서 늘 기도받아도 낫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늘 "영으로 들어오면 된다"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영으로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몸의 조절이 영의 차원에서 이뤄지기에 연약한 부분이 온전해질 수 있지요. 죽었던 신경이 살아나고 퇴화된 조직도 재생될 수 있습니다. 새 힘이 솟아서 혼자서도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치료받는 분들은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권능의 종의 기도를 통해 창조의 권능의 빛이 그 몸에 들어가서 역사한 것입니다. 그 순간에는 창조의 권능의 빛으로 인해 몸이 영의 차원에서 조절된 것이지요.
창세기강해(28) 시간에 창조의 권능의 빛으로 화상이 치료되고, 짧은 다리가 길어지며, 죽은 신경이 살아나는 원리를 말씀드렸습니다.
화상 부위나, 짧은 다리의 세포에서 새로운 세포들을 만들려면 핵 속의 DNA가 가동되어야 합니다. 전기 제품의 전원을 켜듯이, DNA을 가동하는 역할을 창조의 권능의 빛이 한다 했습니다. 창조의 권능의 빛으로 둘린 공간은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도 온전케 되지요.
이러한 창조의 권능의 빛의 역사가 말라기 4장 2절에도 나옵니다. 바로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한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영으로 안 들어갔는데도 치료가 되고, 어떤 사람은 영으로 들어가야만 치료가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공의에 따라 각 사람이 채워야 할 영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영으로 들어가야만 치료가 되는 경우는 공의 가운데 채워야할 분량이 매우 많습니다.
예를 들어 조상 대대로 우상 숭배나 살인 등 심히도 큰 죄악을 쌓아서 질병이 온 경우가 있습니다. 또는 당사자뿐 아니라 영적인 끈으로 연결된 가족에게도 문제의 원인이 있는 경우가 있지요. 이런 경우는 가족이 함께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영으로 들어가야만 치료되는 경우로는 마음에 악이 심히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받으면 잠시 동안은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지요. 그러나 마음에 악이 많으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죄악의 길로 빠지기 쉽고, 그러다가 자칫 구원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육신의 건강보다 영혼의 구원이 중요하기에 이런 사람은 빨리 치료받지 않는 게 오히려 복이 됩니다.

그런데 어떠한 경우라도 영으로 들어가면 육과는 상관이 없어지지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도 사라지고 가족과 묶였던 영적인 끈도 풀어집니다. 영의 차원에서 몸이 조절되기에 온전하고 건강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유전적으로 연약한 형질을 가졌다 해도 영으로 들어온 후부터는 상관이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천식이 나타날 수 있는 유전형질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이 안 좋은 환경에 살다 보면 결국 천식이 나타나게 되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도 영으로 들어오면 몸이 영의 차원에서 조절됩니다.
세포의 천식과 관련 있는 DNA가 영의 차원에서 지배를 받으면 천식이 나타나지 않지요.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의 후손들이 생기의 영향을 받아 몸의 성장과 발달이 가장 좋은 쪽으로만 이뤄지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의 씨는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근본의 빛이라 했습니다. 성령을 받아 생명의 씨가 깨어나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서 영의 성장을 이루면 결국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지요. 따라서 영의 사람과 온 영의 사람에게서 나오는 영적인 빛도 근본 속성은 하나님의 근본의 빛과 같지요. 단 빛의 강도가 차이 납니다.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에게서 나오는 빛은 어둠의 세력을 물리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재창조의 역사를 베풀 수는 없지요. 재창조의 역사는 하나님의 근본의 빛, 곧 창조의 권능의 빛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온 영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불같은 기도를 무수히 쌓아야 권능을 받을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또한 영으로 들어가신 분들도 환자를 위해 기도해 줄 때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 손수건 기도를 해 줄 때에 훨씬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영의 사람에게서 나오는 영적인 빛보다 손수건의 권능의 빛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영의 사람이 환자를 위해 그냥 기도해 줘도 어느 정도의 역사는 따르지요.

야고보서 5장 16절에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렇다 해도 영의 사람의 몸에서 영적인 빛이 나가서 치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의 사람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치료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지요. 그
손수건을 얹고 기도해 주면 손수건에 담긴 권능의 빛이 곧바로 환자의 몸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 빛이 치료와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지금까지 증거 한 생명의 씨에 관한 말씀을 짧게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됐습니다.
생기란 근본의 빛에 담긴 하나님의 능력으로 에덴동산에서는 아담의 후손들에게 자동으로 전달이 됐지요. 영의 공간인 에덴동산에서는 잉태될 때부터 생기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소위 우량아만 태어납니다. 태어난 후에도 영의 차원에서 몸이 조절되어 모두가 가장 멋지고 아름답게 성장하지요. 청년의 때를 조금 더 지나서 성장이 멈추는데 그 후로는 노화되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런 에덴동산에서 살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지어 이 땅으로 쫓겨난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서 생기를 대부분 거둬 버리시고 흔적만 남기셨는데, 이 흔적 같은 것이 바로 생명의 씨라 했지요.

아담과 하와가 이 땅에서 낳은 후손들에게는 생명의 씨가 전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기가 잉태되면 6개월이 됐을 때 생명의 씨를 영 안에 담아서 몸의 중심인 심장의 한 세포핵에 심어 주시지요.
생명의 씨가 담긴 영이 육에 속한 몸 안에 심겨진 상태를 바다의 부표에 비유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몸의 중심에 있는 세포는 계속 바뀌어도 생명의 씨가 심겨진 위치는 고정되어 있지요. 피가 심장으로부터 나와 온몸으로 퍼지듯이 영의 기운도 심장의 한 세포로부터 온몸으로 퍼져서 모든 세포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심겨진 생명의 씨는 마치 딱딱한 껍질에 싸인 씨앗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있지요.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이 임하시면 드디어 생명의 씨가 깨어납니다. 싹을 틔운 씨앗은 물과 햇빛을 공급받아야 잘 자라지요.
이처럼 생명의 씨도 깨어난 후에는 영적인 물과 빛을 공급받아야 영이 자랄 수 있습니다. 곧 영적인 물인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고, 영적인 빛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에 영이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입니다.

영이 성장하여 몸의 중심에 있는 세포핵을 덮을 만큼의 크기가 되면 영의 사람이요, 그보다 더 커지면 온 영의 사람이지요. 여기서 영과 세포핵을 그 크기로 비교한 것은 물리적인 크기보다는 몸을 조절하는 권한이 영에 있느냐, 육에 있느냐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것입니다.
영의 크기가 세포핵을 덮을 만큼 커지면서부터는 몸이 육의 흐름을 타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온 영이 되면, 몸의 기능 조절이 온전히 영의 차원에서 이뤄지지요.
한편 영이 이처럼 몸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면 당연히 혼도 영이 조절할 수 있습니다. 영이 혼을 지배하고 다스리기에 육신의 생각이나 비진리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몸의 기능 조절이 영의 차원에서 이뤄질 때 나타나는 현상을 크게 세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몸의 모든 기관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오장육부 모든 기관과 조직이 최상의 상태를 되찾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을 조금만 잔다 해도, 음식을 최소한으로 먹는다 해도 몸에 이상이 안 생기고 건강하다 했지요. 다니엘과 세 친구 그리고 세례 요한을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둘째로 질병 균과 바이러스가 틈타지 못하며,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게 됩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로 감기도 한 번 걸리지 않은 저의 경우와 독사에 물렸던 사도 바울을 예로 들었지요.
셋째로 노화되지 않으며 오히려 회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몸의 체형도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있지요. 회춘의 사례로 아브라함과 욥을 말씀드렸고, 제가 마음먹은 대로 체형이 조절된 간증을 해 드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영혼이 잘될 때에 임하는 강건한 축복의 분야이고,
영혼이 잘되면 동시에 범사에 잘되는 축복도 임합니다. 욥은 연단을 통해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갔을 때에 연단 받기 전보다 갑절로 부유해졌지요. 저도 하나님을 만난 후 3년 연단을 통해 영으로 들어왔을 때에 놀라운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3년 말씀 준비 후 온 영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영적인 큰 축복인 권능을 받을 수 있었음을 여러분께 간증해 드렸지요.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오기 전에도 영의 차원에서 몸이 조절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했습니다.
첫째,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입니다.
둘째는, 창조의 근본의 빛이 담긴 무안단물과 권능의 손수건을 활용하면 되지요.
그런데 이런 방법은 일시적이고 한시적입니다. 지속적으로 영의 차원에서 몸이 조절되기 위해서는 결국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와야 하지요.
참고로, 영으로 들어와야만 치료되는 경우와 영으로 들어오기 전에도 치료되는 경우를 영적인 공의와 관련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영의 사람에게서 나오는 영적인 빛과 근본의 빛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씀드렸지요. 즉 근본적인 속성은 같지만 강도가 차이난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경작받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씨를 심어 주셨습니다. 스스로는 생명의 씨를 일깨울 수 없는 연약한 인생들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과 성령을 보내 주셨지요. 또한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영적인 물인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해 주셔서 영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간 경작이라는 멀고 험한 길을 떠나는 자녀들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아버지께 돌아올 수 있도록 아버지는 모든 것을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제단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려해 주신 것들이 많지요.

저는 이 제단의 목자로서 양 떼를 바라볼 때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아픈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런 제 소원을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축복의 길을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질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주님 오실 때까지 젊게 살 수 있는 방법도 알려 주셨지요. 이제는 나이가 자꾸 들어가니, 나는 어떡해요? 이렇게 말할 분은 안 계시리라 믿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말씀했습니다. 이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이 말씀처럼 신속히 온 영을 이루고 보전하면서 건강한 몸으로 더 뜨겁게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날에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 앞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윗글 : 창세기 강해(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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