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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일3:21-23 날짜 2005.02.13
오늘은 지역장, 조장, 구역장 헌신예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온전한 선(善)을 이루려면


누가복음 18:19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절대적인 선(善)은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만이 선의 기준이 될 수 있지요. 우리가 온전한 선을 이루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어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에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에 온전한 선이 임한 사람은 어떠한 상대를 만나도 마음에 불편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며 자신의 의와 틀에 맞지 아니한 말이나 행동을 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지요. 어떤 사람은 상대가 자신과 다른 의견만 내어도 금세 불편함을 느끼는데,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질서상 아랫사람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온전한 선이 임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상대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이므로 속단하거나 상대의 의견을 묵살하지도 않습니다. 누가복음 6:45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낸다’ 하셨듯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선한 생각과 말이 나옵니다. 마치 뜨거운 용광로에서는 무엇이든지 다 녹아져 버리듯이, 마음에 악이 없고 선으로만 가득하다면 어떤 것을 보고 들어도 선으로 이해가 되므로 항상 선으로만 반응하게 되지요.
그러나 마음이 온전히 선으로 채워지지 않은 만큼 자기적인 생각과 의와 틀이 있어서 그것에 맞지 않는 것이 들어올 때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마음에 악이 많을수록 단순히 불편함을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이나 행함으로 보이기도 하지요. 누가복음 6:45 후반절에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은 다른 사람에 대해 “저가 나를 늘 공격하며 심히도 불편하게 한다” 말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표현한 것이지만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말이 나온 이유는 ‘나는 그다지 잘못한 것이 없는데’라는 자기적인 의가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 덧붙여서 상대가 자신을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판단하기까지 한 것이니 선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과 맞지 아니한 상대를 만났을 때 어떠하셨는지요? 선으로 이해가 되므로 마음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는지, 혹 심히 불편함을 느끼므로 상대를 멀리하지는 않았는지, 더 나아가 자기 생각 속에서 상대를 판단함으로 좋지 않은 말을 전하지는 않았는지를 말씀에 비춰 보시면 자신이 얼마나 온전한 선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먼저 상대의 유익을 구해 준다는 것은 영적인 사랑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만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되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보기에 좋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녕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에 맞추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은 상대의 유익을 구해 준다 하면서 오히려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는 원치 않는데 자기 보기에 좋으니 강권하거나 어떤 것을 떠맡기듯이 주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것은 자기만족에 그칠 뿐 진정으로 상대를 위하는 것은 못 되며 오히려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었을 때는 상대가 내 마음에 깃들이게 됩니다. 또한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는 선한 행함 하나하나가 덕으로 쌓이게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평안과 충만함을 끼치게 되지요. 그러면 화평이 깨어질 리도 없으며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원수를 만들 일도 없지만 혹여 자신을 미워하던 사람과도 화목할 수 있게 되지요.
또한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면, 설령 상대가 악으로 나왔다 해도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다 이해되고 용서되며 더 나아가 상대를 선대하면 내 마음의 진실이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키므로 결국 화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잠 16:7).

3)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섬김이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출 뿐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요, 상대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서 자신은 형체를 잃을지언정 온전히 녹아지듯이, 참된 섬김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상대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3:11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말씀하셨으니 질서상 머리가 될수록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려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으면 서로 불편함이 생기게 되고 화평도 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시되 먼저 섬김의 본을 보이셨던 예수님처럼 서로 먼저 섬김의 본을 보인다면 초신자라 할지라도 섬김을 배우게 됩니다.
어찌하면 상대를 짓밟고라도 ‘내가 더 먼저가 될까.’ 하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서로 서로 섬겨 주고 높여 주는 여러분의 모습에서 참으로 천국을 느낄 수 있게 되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참으로 아름답게 여기시니 더 많은 영혼들을 맡겨 주시게 되지요.

2. 막달라 마리아의 온전한 선(善)과 축복
믿음의 선진들 중에서 부활의 주님을 가장 처음 대면하는 축복을 받은 막달라 마리아의 선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몇 년 전, 깊은 기도 중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의 선(善)을 알려 주셔서 수시간에 걸쳐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심한 우상 숭배로 인해 영적으로 어두운 가정에서 연약하게 태어나 가족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지요. 병약하여 외모도 보기 흉한 모습으로 변해 가는 마리아에 대해 가족들은 ‘차라리 저 애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저 애로 인해 우리가 너무 힘들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에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애매히 마리아에게 모든 탓을 돌리며 심히도 힘들게 했지요.
그럼에도 마리아는 가족들을 원망하거나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했고, 자신이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것을 민망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 길이 무엇일까? 나 때문에 가족들이 받는 부담을 어떻게 하면 덜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요.


그리하여 한 남자를 만나 의지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는 병약한 마리아에게 노름을 하기 위한 돈을 구해 오라고 하거나 자신이 나쁜 일을 저지르고 당하는 곤욕을 마리아에게 전가시키곤 했습니다. 마리아는 이처럼 불행한 삶을 살면서도 그 남자를 원망하지 않았으며 미워하지도 않았지요. ‘나같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만나서 저 사람이 고생한다.’ 생각했고, 그가 원하는 대로 더 맞춰 주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미안하게 여겼습니다.
이처럼 지극히 선한 마음을 가진 마리아였기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으며 강건함도 얻을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지요. 그 후 마리아는 예수님을 공궤하며 붙좇았고, 뜨겁게 사랑하며 온전한 선을 이루었기에 결국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이 땅에서 가장 먼저 만나 뵈올 수 있는 영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3. 온전한 선(善)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사례


그러면 우리가 온전한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상대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거나 자신이 계획한 대로 따라 주지 않을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어떤 사람들은 상대를 심히 불편하게 여기고 멀리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음에는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일을 이룰 때 실제로 그 사람을 제외시켜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불편한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내 생각만 옳다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상대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하려 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려는 마음이지요. 상대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주고 선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질서상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항상 동일하지요. 설령 자신이 더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다 해도 상대의 말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귀의 입을 열어서라도 발람 선지자를 깨우쳐 주실 수 있었던 것처럼 아무리 소자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의 말이 진리라 한다면 겸손히 들을 줄 알고 마음에 새기며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어떤 일에 있어서 자기보다 못한 상대가 칭찬을 받을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사람은 심히도 마음이 불편하여 상대의 결점을 드러내기도 하고 시험에 들거나 낙심하기도 합니다. 칭찬받은 상대에게 불편할 뿐만 아니라 칭찬하는 사람에게까지 서운한 감정을 품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이러한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마음에 선이 부족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영적인 사랑도 결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온전한 선을 이룬 사람은 이런 경우 어떠한 마음과 행함이 나올까요? 자신은 아홉 개를 잘했는데도 칭찬받지 못했고 상대는 한 가지 잘한 것으로 칭찬을 받는다 해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합니다. 그리고 상대가 칭찬받는 한 가지를 궁구하며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의 마음이요, 영의 마음이지요. 영의 마음은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해 주는 마음입니다. 내가 잘되기보다는 남이 더 잘되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영의 마음인 것입니다.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선으로 가득 찬 선 자체이십니다. 그러니 자녀된 우리도 선의 마음으로 가득한 영의 자녀가 되어야 하지요. 이렇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먼저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중심에서 섬김으로 더욱 신속하게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요한일서 3:21-22을 보면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 받을 수 있다’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을 수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는 비결은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온전한 선을 간절히 사모하며 매사에 선의 마음으로 행하여 하나님의 은총과 예비하신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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