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지옥(10)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눅 16:22-26 날짜 2009.08.09
지난 시간에는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춘기 이후의 사람들이 아랫음부에서 받는 네 가지 형벌 중에 두 번째 단계의 형벌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세 번째 단계의 형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아랫음부에 있는 한 영혼의 고백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 중에서는 선한 편에 속합니다. 자신은 뜨거운 불꽃 가운데서 고통받으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형제들을 염려합니다. 그래서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하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알면서도 믿지 않았고, 말씀대로 살지도 않았기에 결국 아랫음부에 떨어졌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6절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한 대로, 주님 곧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 자체가 죄이며 죄 중에서도 아주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감동 속에 아랫음부에 있는 한 영혼의 고백을 들려주신 적이 있는데, 이 영혼은 본문의 부자처럼 아랫음부에서 당하는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그 고백을 들려드릴 때 많은 것을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끌려 다니며, 심히도 많이 끌려 다니며 내가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나이다.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나이다. 더러운 짐승과 벌레가 있고 냄새 나는 이 싫은 곳에서 나의 껍질이 벗겨지고 피 흘릴 때 벌레들이 나와서 살을 먹나이다. 이 벌레를 피하고자 내가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그 자리임이니이다. 계속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와서 나를 물어뜯나이다. 내 살을 뜯어 먹나이다. 내 피를 빨아 먹나이다. 내가 두렵고 떨리나이다. 내가 어찌해야 하나이까. 심히도 두렵고 무섭고 떨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나이다. 달리고 달려서 ‘숨을 곳은 어디 있나, 어디 있나?’ 둘러보아도 캄캄하며, 아무것도 없으며 내 이 몸 하나 피할 곳이 없음이니이다. 나를 뒤에서 긁나이다. 내 팔을 물어뜯나이다. 내 피부를 벗기나이다. 내 힘줄을 먹나이다. 내 피를 빨고 있나이다. 내가 지금 이 고통과 괴로움 중에 있다가 훗날에는 불못에 떨어지나이다. 나는 어떡하나이까. 나는 어떻게 하나이까. 내가 주를 믿지는 않았으나 세상에 있을 때에는 나도 선하게 살아왔다 생각하던 자이니이다. 내가 이곳에 와서야 내 악이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형벌을 받게 되니 내가 얼마나 후회가 되고 후회가 되는지요. 정녕 나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선하다 하고 자기가 하나님 뜻대로 산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이곳에 온 자가 많이 있나이다.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여 여기서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는 자가 많이 있나이다. 내가 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잠시 이 시름을 잊고자 기절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며, 내가 이 시름을 잊고자 잠시 눈을 감아 보아도 그 앞이 훤하여 쉼을 갖지 못하나이다. 눈을 뜨면 끝없이 망망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며 형벌을 피하여서 달리고 달려도 그 자리일 따름이니 어찌하나이까. 이를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정녕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선’에 대한 사람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다릅니다. 이 영혼의 고백을 보면, 나름대로 선하게 살았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많이 지옥에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잘 깨달아 오직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사람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지옥사자들이 직접 고문하는 3단계 형벌

아랫음부에서 당하는 3단계 형벌은 지옥사자들이 직접 고문하는 형태의 형벌입니다. 3, 4단계 형벌은 1, 2단계 형벌을 받는 영혼들보다 죄질이 훨씬 나쁜 영혼들, 심히 악을 행한 영혼들이 받게 됩니다. 예를 들면, 성령을 받고 큰 은혜를 체험하고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한 영혼들, 하나님의 사람을 핍박하고 성령을 훼방하며 온갖 악을 행한 영혼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3단계 형벌을 받는 성경상의 대표적인 인물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다윗을 대적한 사울 왕, 죄 없으신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언도한 빌라도 등이 있는데, 이들이 어떤 고문을 받는지는 이후에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옥사자들이 직접 고문하는 3단계 형벌은 1, 2단계 형벌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지옥사자는 벌레나 짐승 같은 생물과 달리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입고 있으며,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을 능가하는 고도의 사고력과 기술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더 큰 고통을 줄까’ 궁리합니다. 갖가지 고문 방법을 동원하여 가능한 더 잔혹하고 끔찍하게 고문하는 것이 이들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3단계 형벌과 지옥사자들의 잔악함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인류의 역사 속에 실제로 있었던 끔찍한 고문과 고문 방법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3. 중세 시대에 만연했던 고문들

중세 시대에는 지금과 같이 인권의식이 성숙하지도 않았고, 신분 질서도 엄격했습니다. 그래서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강자가 약자를 끔찍한 방법으로 고문하고 처형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난폭한 군주들은 누군가 눈에 조금만 거슬려도 그 사람을 잡아들여 잔인하게 처형했고,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고문 방법과 고문 기구, 처형 기법을 동원했습니다.

예를 들면, 뾰족하게 깎은 나무말뚝에 사람을 꽂은 다음 죽을 때까지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고문을 하나의 오락처럼 즐기던 잔인한 군주들도 있었는데, 이들의 즐거움을 더할 목적으로 두 눈알을 빼는 고문이나 쇠 장화를 벌겋게 달구어서 맨발에 신기고 쇠망치로 내리쳐 뼈를 으스러뜨리는 고문 등이 고안되어 실행되기도 했습니다. 군주들은 이러한 고문으로 고통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즐거워했습니다.

또한 중세 유럽에는 ‘마녀 사냥’이라 불리는 종교재판이 있었습니다. 이 재판의 본래 목적은 기독교 정통교리에서 벗어난 이단 사상을 구별해 내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처형하는 구실로 변질됩니다. 마녀라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무고한 사람에게까지 견디기 어려운 고문을 가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몸에 돌덩이나 쇳덩이를 매달아 물속에 던져 넣고, 물 위로 떠오르면 마녀로 정죄하여 죽이고 가라앉으면 사람으로 간주하고 살려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물속에 던져진 사람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서 떠오르면 마녀로 정죄하여 처형했고, 저항하지 않고 가라앉은 채 그대로 있으면 대부분 물속에서 질식해 죽었습니다.

어떤 귀족들은 타인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죄 없는 사람에게 끔찍한 고문을 가해 거짓으로 자백하게 했습니다. 먼저 눅눅하고 어둠침침한 지하 고문실로 끌고 가는데, 바닥에는 핏자국이 얼룩져 있고 여러 가지 섬뜩한 고문 기구들이 놓여 있습니다. 먼저 끌려와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옵니다. 고문실로 끌려온 사람은 본격적으로 고문받기도 전에 공포에 질리고 마는 것입니다.

당시에 가장 공공연하게 가해진 고문 중에 하나는 금속 조임쇠 고문인데, 딱 맞게 만든 금속 조임쇠에 엄지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집어넣어 으스러질 때까지 조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조이면서 손톱이나 발톱을 하나씩 뽑습니다. 그 다음에는 팔을 뒤로 꺾어서 손목을 묶은 후 공중에 매답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몸이 뒤틀리는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냥 매달아 놓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내리기를 반복합니다. 천천히 하다가 빨리 하면서 고통을 가중시키거나, 매달려 있는 사람의 발목에 무거운 쇳덩이를 매달기도 합니다. 그러면 온몸의 근육과 뼈마디가 벌어지면서 전신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래도 자백하지 않으면, 고문용 의자에 앉힙니다. 이 의자에는 엉덩이가 닿는 부분은 물론 등받이와 팔걸이, 다리를 걸치는 부분까지 송곳이 촘촘하게 박혀 있습니다.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이 의자를 보고 놀라서 발버둥 쳐 보지만, 우락부락하게 생긴 장정들이 꼼짝 못하게 붙들어서 의자에 꽉 눌러 앉힙니다. 이때 몸 곳곳에 뾰족한 송곳이 깊이 박히게 됩니다. 비슷한 원리로 만든 사람 형상의 캐비닛도 있었는데, 그 안과 문짝에는 긴 쇠못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이 안에 사람을 넣고 문을 닫으면, 전신에 쇠못이 박히게 됩니다. 캐비닛 안에는 핏물이 흥건하게 고이고, 이 안에 갇힌 사람은 과다출혈로 서서히 죽어 갑니다.

또 심문할 때는 민감한 겨드랑이나 발바닥을 촛불로 서서히 지지기도 했습니다. 겨드랑이를 태우는 이유는 다른 부분보다 민감하여 통증이 극심하기 때문이고, 발바닥을 태우는 이유는 심한 고통이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간단하면서도 고문의 효과가 크기 때문에 사용한 방법입니다. 이 밖에도 불에 달군 펜치로 살을 잡아 뜯거나 칼로 혀를 도려내고, 불에 달군 인두로 입 안을 지지는 등 고문 기법은 그 수를 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했습니다. 이런 고문을 받은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짓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고 처형당했습니다. 결백을 주장하며 버텨 보지만, 대부분은 더 강도 높은 고문을 받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고문 방법 외에, 마차바퀴처럼 생긴 사형틀에 죄수를 집어 넣고 돌려서 산 채로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는 처형, 사람을 거꾸로 매단 채 다리 사이부터 톱으로 켜서 죽이는 처형 방법도 있었습니다. 납을 녹여서 펄펄 끓는 납물을 귀와 콧구멍 속에 부어서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랫음부 3단계 형벌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아무리 잔인하다고 해도 지옥사자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지옥사자들은 고문당하는 영혼을 동정한다거나 사정을 봐 주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이러한 지옥사자에게 짓밟히고 고문당해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참으로 가치 있는 사람,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사람의 본분을 행해야 합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사람의 본분을 다하심으로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존귀하게 여김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랫글 :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9)
윗글 : 지옥(8)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