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지옥(1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마 12:31-32 날짜 2009.10.25
지난 시간에는 아랫음부 4단계 형벌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오늘은 자살한 가룟 유다가 왜 귀신이 되지 않고 아랫음부에 떨어져 형벌을 받고 있는지 설명하고 성령을 심히 훼방, 모독, 거역한 영혼들이 받는 형벌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가룟 유다가 귀신이 되지 않고 아랫음부에 떨어진 이유

자살한 영혼은 아랫음부에서 형벌 받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되어 이 땅을 떠돕니다. 이들은 천년왕국이 시작될 때 아랫음부에 떨어집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귀신이 되지 않고 이미 아랫음부에 떨어져 형벌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룟 유다에게는 귀신이 되어 이 땅을 떠도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귀신이 되어 이 땅을 떠도는 것도 매우 중한 형벌입니다. 육의 몸을 벗은 영혼이 육의 공간에 머물러 있으면 그 자체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지요. 차라리 형벌을 받더라도 아랫음부에 있는 것이 낫다고 느낄 정도로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아랫음부 4단계에서 받고 있는 형벌의 고통은 귀신이 받는 고통을 초월합니다. 따라서 가룟 유다가 귀신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받는 형벌의 고통이 매우 크기 때문에 자살한 죄에 대한 값을 충분히 치르게 됩니다.

또한 가룟 유다가 자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예외적으로 아랫음부에 떨어진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아랫음부 4단계의 주인’과 같은 인물로 세워진 것이지요. 여기서 ‘주인’이란 ‘소유자’ 또는 ‘통치자’의 개념이 아니라 ‘대표격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아랫음부 4단계 형벌을 받는 무리의 맨 앞에 세워져 끊임없이 형벌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처럼 아랫음부의 형벌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가룟 유다’ 하면 ‘아랫음부 4단계 형벌’이 떠오릅니다. 이처럼 유다는 지옥에 대해 알게 될 후세 사람들이 그의 길을 답습하지 않도록 마치 아랫음부 4단계의 간판과 같이 세워진 것입니다.

2.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자살하면 안 되는 이유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타인의 생명이든 자신의 생명이든 사람이 임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따라서 자살은 감히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큰 죄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3절에 “살인하지 말지니라” 말씀하셨듯이 살인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금하신 것입니다. 이 계명은 십계명 중 하나이지요. 타인을 죽이는 것도 살인이지만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도 명백한 살인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살은 큰 불효이기 때문에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육의 부모에 대한 불효이기도 하지만 우리 영혼과 육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도 너무나 큰 불효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이렇게 귀한 존재로 지음 받은 사람이 자기 생명을 스스로 끊는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또한 꼭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자살하도록 조종하는 존재는 바로 원수 마귀 사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떤 일로 인해 매우 낙담했거나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생각, 우울한 생각을 불어넣습니다. 이때 사단이 주는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히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 곧 자살을 선택하지요. 저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적이 두 번이나 있습니다. 오랜 질병과 가난, 사랑하는 사람들의 외면으로 아무 희망도 없는 절망의 늪에 빠져 있었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를 먼저 찾아주셨습니다. 근본적으로 죄의 결박을 풀어 주신 것이지요. 이제는 절망에 빠진 또 다른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또한 자살의 결말은 자유가 아닙니다. 영원한 슬픔과 더 큰 괴로움이 있는 지옥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사실을 가족, 친척, 이웃에게 속히 전해야 합니다. 물론 겉모습만 보아서는 분명 자살이지만 자살이 아닌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이런 특별한 경우에 대해서는 이후에 악한 영들에 대해 설명할 때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3. 성령을 심히 훼방한 영혼들이 받는 형벌

성령을 훼방한 영혼들이 죽어 아랫음부에 가면 3단계나 4단계 형벌을 받습니다. 그만큼 죄가 무겁기 때문이지요.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는 영원히 사함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성령은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 우리에게 보내 주신 보혜사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인도자이지요. 이런 성령을 부인한다는 것은 스스로 구원의 길을 벗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성령을 체험하고도 이런 성령의 역사를 부인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질병을 치료받아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얻고도 다시 사망의 길로, 세상으로 갑니다.

악한 사람들은 중상모략으로 교회를 훼방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기도 하지요. 영의 일을 분별하지 못하는 불신자가 이런 죄를 지어도 용서받기 어려운데 큰 은혜를 받은 성도가 이런 죄를 짓는다면 그 죄가 어찌 작겠습니까? 이런 성령을 대적하는 행위는 우리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이지요. 그러니 사함 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성령을 심히 훼방한 사람들 중에서 특이하게도 짝이 되어 함께 형벌 받는 어떤 부부의 경우를 소개하겠습니다.

“내가 저와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을 후회하노라. 후회하노라. 내가 저주하고 저주하노라. 내가 어찌 이와 같은 곳에 와 있을꼬. 내가 이와 같은 곳에 어찌하여 오게 되었는고. 저로 인하여서 내가 미혹을 당하였도다. 내가 저로 인하여서 미혹을 당하였도다” 한 여인의 탄식 소리가 아랫음부의 어두운 잿빛 공간에 울려 퍼집니다. 이 여인은 남편에게 미혹받아 남편과 함께 하나님을 대적했지요. 그 결과로 아랫음부에 떨어지자 참혹한 형벌을 받으며 이처럼 남편을 원망하고 저주합니다. 둘 다 악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내는 혼자 성령을 훼방하며 하나님을 대적할 만한 그릇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육적인 정 때문에 남편의 악행에 동조하여 함께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지요.

이들의 형벌은 펄펄 끓는 액체가 담긴 큰 항아리에 번갈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항아리 안에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정체불명의 더러운 액체가 담겨 있습니다. 항아리 밑에 끊임없이 불을 때기 때문에 액체는 펄펄 끓고 있지요. 항아리 안에 들어가 이 액체 속에 잠기면 살갗이 두꺼비의 등살처럼 부르트고 물집이 잡힙니다. 안구가 튀어 나오는 등, 얼굴과 온몸이 흉물스럽게 변하지요. 뜨거움에 몸이 뒤틀리고 역한 냄새에 숨이 막혀옵니다. 어찌하든 그 고통을 면해 보려고 처절하게 허우적거리다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밉니다. 그러면 머리 위에서 커다란 발이 내려와 머리를 사정없이 짓눌러 다시 항아리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 발은 바로 이들 부부를 고문하는 지옥사자의 발입니다. 발바닥에는 쇠꼬챙이 같은 못들이 빽빽하게 박혀 있지요. 이 발에 밟힌 영혼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다시 항아리 속으로, 곧 숨 막히는 뜨거움과 악취 속으로 밀려 들어갑니다. 그러나 잠시 후면 고통을 견디지 못해 다시 수면 밖으로 나오고, 그러면 발에 밟혀서 다시 물속으로 밀려 들어갑니다. 이렇게 하기를 끝도 없이 반복하지요.

그런데 이 형벌은 한 번에 한 사람 씩만 당하기 때문에 남편이 항아리에 들어가면 아내는 밖에서 이 참상을 보고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형벌을 당하면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지켜봅니다. 이 육의 세계에서와 달리 지옥에서는 밖에 있어도 항아리 안이 환히 들여다보이지요. 처음에는 상대가 형벌 받는 모습을 보고 심히 마음 아파합니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부부의 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내 남편이, 내 아내가 저기 있으니 저를 꺼내 달라, 저 고통 가운데서 저를 꺼내 달라, 그 발로 밟지 말고 제발 건져 달라.” 이렇게 소리 지르며 상대를 위해서 애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애원이 싹 사라집니다.

왜 그럴까요? 몇 번 형벌을 받아 보니 상대가 오래 고통 받을수록 자기가 고통 받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부부가 지옥사자에게 애원하는 내용이 달라집니다. 상대가 항아리 속에서 허우적대며 온몸이 터지도록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를 건지지 말고 그 안에 더 있게 하라, 내가 더 쉬겠으니 저를 그대로 두라” 아우성치지요. 항아리 안에서 고통 받는 사람은 이런 배우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상대에 대한 증오를 키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부가 서로를 더욱 원망하며 저주하지요.

육적인 사랑이란 이런 것입니다. 아내는 그래도 남편을 사랑했기에 생명의 주를 배신하기까지 남편과 함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육적인 사랑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함께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 받는 것이지요. 아내가 “너 때문에 내가 이 고통을 당한다.”며 남편을 원망하면 남편도 가만히 듣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아내보다 더 큰 소리로 욕을 합니다. 자기 악행에 동조한 아내를 원망하고 저주를 퍼부어 대지요. 이 땅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을 때는 서로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고통이 극심하니 이제는 나 대신 상대가 고통 받기 원하지요. 이 추악한 모습이 바로 썩어질 육의 실상이요 지옥의 실상입니다.

이렇게 서로가 부부였던 사실을 저주하며 서로 상대방을 항아리 속에 더 오래 두라고 간청할 때 지옥사자들은 매우 기뻐합니다. “저들이 여기까지 와서 서로 저주하는도다. 이 악한 모습이 우리를 심히 기쁘게 하는도다.” 하며 마치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지요. 그리고는 흥을 더 돋우려고 항아리 아래 불을 더 뜨겁게 지핍니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면 이전보다 더 세게 가차 없이 머리를 밟아 버리지요. 항아리 속의 액체가 더 뜨거워져서 부글부글 끓어오를수록 부부는 입으로 더 독한 저주를 쏟아냅니다. 그럴수록 지옥사자들의 웃음소리도 더욱 커지지요. 다음 시간에는 성령을 훼방한 사람들이 받는 또 다른 유형의 형벌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도 어떤 어려움을 만났을 때 세상과 타협하거나 힘들다고 탄식하고 원망, 불평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좋아라고 달려듭니다. 더 큰 시험 환난을 안겨 주지요. 그러므로 영계의 법칙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원망 불평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감사하고 믿음의 고백을 하며 오히려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보여 드립니다. 악한 사람이 아무리 자신을 괴롭혀도 미워하거나 같이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선으로 대합니다(롬 12:21).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선만 행하고 빛 가운데 행하면 그 자체가 악한 영의 세력을 이기는 능력과 권세가 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더 이상 송사할 수 없으므로 모든 시험 환난이 물러갑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오직 진리로 생각하며 믿음으로 행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항상 승리하여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랫글 :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9)
윗글 : 지옥(14)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