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지옥(20)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 20:15, 1-3 날짜 2009.12.20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시면 이 땅에서는 7년 환난이 시작됩니다. 이 7년이 지나면 천년왕국 시대가 오지요. 천년왕국까지 다 끝난 후에는 인간 경작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최후의 대심판’이 거행됩니다.

1. 최후의 대심판과 지옥

먼저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부터, 그중에서도 죄가 중한 영혼들부터 형벌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저울로 무게를 달듯, 각 사람의 일생을 심판대 위에 올리고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의 저울로 측량하십니다. 말과 행실 등 일거수일투족 그 악행에 따라 불못 또는 유황못을 판결하시지요. 아랫음부에서 1단계와 2단계 형벌을 받던 영혼들은 불못으로 떨어지고, 3, 4단계의 형벌을 받던 영혼들은 유황못에 떨어지지요. 그다음에는 구원받은 영혼들이 상급 심판을 받습니다. 믿음의 분량에 따라 낙원부터 1천층, 2천층, 3천층,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요. 또 하나님 앞에 충성한 만큼 상급을 받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 지옥을 보여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본 지옥은 참으로 광활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요. 그리고 온천에서 볼 수 있는 뿌연 수증기 같은 것이 자욱하게 끼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이들이 아랫음부에 있을 때는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는가’ 한탄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벌레와 짐승, 또는 지옥사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리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옥의 불못이나 유황못에 던져지면 이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을 만큼 엄청난 고통에 짓눌립니다. 그저 고통에 반사적으로 펄쩍펄쩍 뛰며 비명을 지르고 이를 북북 가는 것 외에는 어떤 것을 생각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마가복음 9장 47~49절에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말씀하셨지요. 소금은 맛을 내는 데에도 쓰이지만 더러운 것을 정화하는 데에도 쓰입니다. 마치 더러운 것에 소금이 뿌려지듯이 불못에서는 활활 타는 불길이 쉴 새 없이 죄로 더러워진 영혼들을 덮쳐서 몸을 사릅니다. 불못 속의 영혼들은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서 팔짝팔짝 뛰며 몸부림칩니다. 이 땅에서도 사람들이 재미있는 놀이를 하느라 팔짝팔짝 뛰기도 합니다. 유흥업소 같은 곳에서는 밤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와 온몸을 정신없이 흔들며 춤을 추지요. 그러나 아무리 즐겁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너무 힘들어서 뛰기를 멈추고 쉬기 마련입니다. 지옥에서는 즐거워서 뛰는 것이 아니라 고통 때문에 펄펄 뛰는 것인데도 뛰는 것을 멈추지 못하지요.

또한 머릿속이 ‘띵’ 하고 울릴 정도로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댑니다. 눈동자는 시퍼렇게 번뜩이며, 눈의 핏줄이 터져 끔찍하게 핏발이 서지요. 뜨거운 불속에서 벗어나 보려고 서로 짓밟고 밀치며 허우적대지만 그 뜨거움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벌건 불못은 그 어디나 균일하게 뜨겁습니다. 아무리 덜 뜨거운 곳을 찾아보려고 허우적거린들 그런 곳을 찾을 리 만무하지요. 다른 영혼을 딛고 올라선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일하게 뜨겁지요.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옥의 불길은 영원히 꺼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온도가 변함없지요.

대심판이 있기 전까지 아랫음부의 형벌들은 루시퍼의 주관 하에 그의 능력과 권세로 운행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심판 이후의 불과 유황못은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자동으로 운행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불못 전역은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지요. 단 1℃의 오차도 없습니다. 이 불은 영혼에게 고통을 줄 뿐 영혼을 죽어 없어지게 하지는 못합니다. 아랫음부에서 몸이 베이거나 벌레에게 뜯겨도 잠시 후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는 것처럼 지옥에서도 불에 타버린 온몸이 순식간에 재생되지요. 이렇게 몸이 순간에 불타서 사라졌다가 다시 회복되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지요. 이 뜨거운 불에 온몸이 타버리는 고통은 육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화상을 입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가벼운 1도 화상만 입어도 화끈거리고 쓰라려서 견디기 힘듭니다. 그러나 1도 화상의 고통도 3도 화상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지요. 3도 화상의 경우,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해서 미쳐버리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고통이 극심하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하물며 지옥에서 온 피부가 모두 타 없어지고 근육과 신경, 오장육부와 뼈까지 다 타버리는 고통은 오죽하겠는지요? 이 고통은, 단순히 뜨겁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 아랫음부에서 지옥사자에게 찢기고 잘리고, 찔리며, 벌레에게 파먹히는 고통, 이런 모든 고통이 다 느껴지는 복합적인 고통이지요. 더구나 온몸이 불타면 금세 다시 회복됩니다. 그러면 또 타버리고 또 다시 회복되고 이렇게 되기를 무수히 반복합니다. 끝없는 고통이 지긋지긋하고 진저리가 나지만, 또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상황이지만, 기절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일순간조차 안식을 누리지 못한 채 영원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신 후 ‘지옥에 떨어져 형벌 받는 영혼에게도 육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분도 혹 계실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영혼들의 경우, 주님께서 공중에 재림하시면 그 몸이 신령한 부활체로 바뀝니다. 그리고 최후의 대심판 후에는 온전한 영체로 변하지요.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은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부활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최후의 대심판 후 지옥에 들어갈 때 형벌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육이 입혀집니다.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육을 입지요. 그 전까지 아랫음부에서는 육을 입지 않은 영혼의 상태로 고문을 받습니다. 이 고통도 물론 크지만 불과 유황의 지옥에서는 육을 입은 상태로 형벌 받기 때문에 전혀 다른 차원의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불못과 유황못의 차이

불못에는 아랫음부에서 비교적 가벼운 형벌, 곧 1, 2단계 형벌을 받던 영혼들이 들어갑니다. 그 죄가 더 중하여 3,4단계 형벌을 받던 영혼들은 불못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유황 못에 들어갑니다. 이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사람들, 양심에 화인 맞아 마귀의 사주를 직접 받아 하나님을 대적한 영혼들이지요. 그렇다면 불못과 유황못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불못은 전체적으로 붉은빛이 도는 반면에 유황못은 붉은빛보다는 누런 유황빛이 돕니다. 누런 유황빛이 도는 유황못 여기저기서 큼직한 바가지만 한 기포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지요. 불못에는 반신만 잠긴 영혼도 있었지만 유황못에서는 그런 영혼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두가 펄펄 끓는 유황속에 완전히 잠겨 있지요. 불못보다 일곱 배나 뜨거운 유황못 속에 온몸이 잠겨 있으니 그 고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뜨거운 용광로에서 녹인 펄펄 끓는 쇳물을 퍼다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마시게 한다고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단단한 쇠를 물처럼 녹여버리는 열기가 사람의 목구멍을 통해 배 안으로 들어갈 때 그 연한 장기들이 어떻게 되겠는지요? 식도와 위는 물론, 심장, 간 할 것 없이 장기들이 녹아내리고 온몸이 타버릴 것입니다. 유황못에서는 이와 비슷한 느낌의 고통이 끊임없이 지속되지요.

불못에서는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소리도 지릅니다. 그러나 유황 못에서는 가느다란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합니다. 거대한 고통에 짓눌려 무엇을 생각할 수도, 손 하나 까딱 할 수도 없는 곳이 바로 유황못이지요. ‘뜨거움’ ‘고통’ ‘두려움’ ‘끔찍함’ ‘진저리 처지는 상황’, 그 어떤 표현으로도 유황못의 느낌을 제대로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이 영혼들의 입장이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 천 년, 만 년도 아니고 수억 년도 아니고, 영원히 세세토록 이렇게 있어야 한다면 어떻겠는지요? 지금 지옥의 참상을 들으신 여러분 중에는 이런 참담한 상황에 놓이는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3. 무저갱

무저갱(無底坑)은 한자 그대로 풀면 ‘밑바닥이 없는 구덩이’라는 뜻입니다. 지옥에서 가장 깊고 깊은 장소를 나타내는 표현이지요. 무저갱은 아랫음부나 불못, 유황못과 달리 사람의 영혼이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악한 영들이 들어가는 장소이지요. 오늘 본문에 보면 천사가 내려와 악한 영들을 잡아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천 년 동안 가둔다고 했습니다. 이 일은 7년 환난이 끝나는 시점에 일어납니다. 7년 환난 동안은 악한 영들이 이 땅 권세를 완전히 장악합니다. 그래서 3차 세계 대전의 발발을 비롯하여 각종 질병의 창궐, 자연 재해 등 지옥 같은 참상이 벌어지지요.

7년 동안의 대환난이 끝나면 하나님께서는 루시퍼를 비롯한 악한 영들을 무저갱에 가두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땅 위에 재림하시지요. 이때부터 주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리시는 천년왕국이 펼쳐집니다. 구원받은 성도들, 곧 영의 사람들은 물론 휴거되지 못했지만 7년 환난 중에 살아남은 육의 사람들까지 함께 천년왕국에 들어갑니다. 이때는 사망과 고통을 주는 원수 마귀 사단이 모두 무저갱에 갇히고 없기 때문에 마치 에덴동산에서 사는 것처럼 평안과 안식을 누립니다. 그러나 아직은 악한 영들이 심판받아 완전히 무저갱으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0장 3절에 보면 무저갱에 갇히지만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했습니다. 7절에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하고 말씀한 대로, 천년의 시간이 차면 다시 놓이지요. 그리고 이 땅으로 나와 육의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천년왕국 동안 영의 사람들은 이때를 대비해서 육의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일들을 상세히 알려 줍니다. 그리고 결코 사단의 미혹을 받지 말라고 수없이 당부하지요. 그런데도 막상 이 일이 현실로 닥치면 육의 사람들 대부분이 미혹에 넘어가서 영의 사람들이 사는 성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이 육의 사람들은 성령을 받고 거듭났던 것도 아니고 경작을 통해 마음의 악을 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미혹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구원받은 영혼들은 ‘오래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어째서 선악과를 따 먹었는가?’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작하시는가?’ 이런 섭리들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인간 경작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보고 악을 버린 참 자녀들만이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고 영원히 참된 사랑을 나눌 수 있구나.’하고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해하게 되지요.

육의 사람들은 악한 영들의 역사를 따라 성도들을 공격하려 하지만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미혹받은 육의 사람들을 불로 소멸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0장 9절에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이 사건 후 백보좌 대심판이 집행되고 잠깐 놓였던 악한 영들은 다시 무저갱에 갇힙니다. 그 후로는 영원히 무저갱에서 풀려날 수 없지요. 그렇다면 지금 무저갱은 비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루시퍼의 반란 때 타락한 천사들과 그룹들 대다수가 갇혀 있지요. 무저갱은 과연 어떤 고통이 있는 곳일까요?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증거하겠습니다.

아랫글 :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9)
윗글 :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7)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