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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도(1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19:23-24,사53:5-6 날짜 2005.06.19
오늘은 십자가의 처형을 앞두고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신 예수님의 옷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와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박히신 이유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죄인들의 수치를 대속하기 위해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심으로 온 얼굴과 몸에 피가 낭자하였고 이번에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셔야 했습니다. 못박히실 십자가를 친히 짊어지고 처형장소인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셨지요. 마침내 언덕 위에 도착하자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겉옷과 속옷을 다 빼앗기고 완전히 벗기운 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미천한 피조물인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수치를 당하신 까닭은 우리가 받아야 하는 수치와 부끄러움을 대신 감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죄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조롱과 멸시 천대를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이지요.

만약 여러분의 몸에 더러운 오물이 묻어 심한 악취가 난다면 즉시 씻어낼 것입니다. 이러한 오물보다 더 추하고 부끄러운 것이 바로 죄인데 사람들은 죄 가운데 살다보니, 점점 더 죄에 대해 무감각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빛이 비취면 더러운 것이 다 드러나듯이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비춰 보면, 자기 안에 있는 부끄러운 죄들이 밝히 드러납니다. 세상의 더러움에 젖어서 죄악 가운데 살던 사람들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너무나 큰 수치를 당하게 되지요. 자신의 더러운 마음과 행실이 낱낱이 드러나므로 감히 고개를 들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수치와 능욕을 대신 감당하셨으므로 이를 믿는 우리는 죄인이 당하게 될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요. 따라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부끄러움을 당하신 주님의 사랑에 중심에서 감사하며 신속히 온전한 성결을 이룸으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주님을 맞이하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뽑은 섭리

요한복음 19:23-24을 보면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했지요.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을 벗긴 군병들은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눠서 네 사람이 각각 나눠가졌습니다. 그리고 속옷은 재단을 하지 않고 위로부터 통으로 짠 옷이므로 한 사람이 제비를 뽑아 가졌습니다. 이는 구약 성경 시편 22:18에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예언이 응한 것이지요. 이처럼 예수님의 옷에 대해 성경이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옷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겉옷에 담긴 섭리를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님의 겉옷은 영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요, 그 백성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옷을 네 깃으로 나누었으니 옷의 형체가 없어지고 옷을 만든 재료, 곧 천 조각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는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망하여 그 형체가 없어지게 되며, 옷의 천 조각만 남은 것처럼 이스라엘 족속이라는 이름만 남게 됨을 의미합니다.

로마 군병들이 옷을 나눈 것은 이스라엘이 로마군에 의해 멸망당할 것을, 겉옷이 네 깃으로 나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사방, 곧 동서남북 세계 각처로 뿔뿔이 흩어질 것을 나타내고 있지요. 이후의 역사는 분명히 그렇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9:43-44을 보면 예루살렘 성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이 나옵니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셨지요.

이러한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은 주후 70년 디도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대에 의해 완전히 훼파되고 말았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으리라’ 하신 대로 로마 군병들은 성전을 이룬 돌들까지도 다 흩어버렸지요. 예루살렘 함락 과정에서 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살해당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도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이방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아야 했지요.

고난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가장 처참한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에 의한 학살입니다. 6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했으며, 더구나 벌거벗긴 채 죽임을 당한 것이지요.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벗긴 채 죽임당한 것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였으므로 그 후손에게 임한 저주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처형을 요구하자 유대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하심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사형을 요구하자 빌라도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했지요. 이에 유대인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 27:25) 외쳤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고백한 그대로 보응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고백대로 혹독한 고난의 역사를 살아왔는데 그 고난의 역사가 바로 예수님의 겉옷을 넷으로 찢은 사건 안에 예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곧 여러 개의 천을 바느질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속옷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님의 속옷은 이스라엘 후손들의 마음을 의미하며,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나타내지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시조는 야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시고 그에게서 난 열두 아들들로부터 이스라엘 나라의 열두 지파를 형성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긴 세월 동안 다른 민족과 통혼하지 않고 단일 민족으로 이어졌으며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섬겨왔지요. 그런데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내분이 일어나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북이스라엘은 이방인들과 통혼하여 단일 민족으로서의 순수성을 잃어버렸지요. 남유다만이 참 이스라엘의 후손으로서 이방인과 섞이지 않은 단일 민족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유다 사람, 곧 유대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지요.

예수님의 속옷이 위로부터 하나로 짜내려온 것처럼, 유대인들은 머리인 야곱으로부터 계속하여, 순수한 단일 민족으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또한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속옷을 찢지 않았습니다. 위로부터 짜 내려온 옷을 찢으면 올이 풀려서 아무 쓸모가 없게 되기 때문에 제비를 뽑아서 한 사람이 가져갔지요. 속옷을 찢지 않은 것은 영적으로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 중심을 결코 사람이 나누거나 없애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로마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멸망시켰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까지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 이후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진 유대인들은 그처럼 오랜 세월 고난을 당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지요. 끝까지 자신들의 민족과 신앙을 고수하다가 마침내 1948년 5월 14일,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가 독립국가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는 성경 에스겔서 38:8-12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말년에, 세계 곳곳에서 백성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 나라를 회복할 것이 예언되어 있지요. 세상 어느 민족이 나라의 형체가 없어진지 2천여 년이 지나도록 더구나 심한 핍박과 고난을 받으면서까지 그 민족성과 고유한 신앙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또한 멸망한지 2천여 년 만에 그 나라를 회복할 수 있는 민족이 또 있을까요? 이는 조상인 야곱으로부터 물려받은 유대인들의 마음 중심과 신앙이 그만큼 굳건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위로부터 짠 예수님의 속옷이 그대로 보존된 것이 바로 이러한 역사를 미리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박히신 이유

예수님께서는 옷을 벗기우신 채 십자가에 손발을 못박히셨습니다. 일반적인 사형 방법들은 육체적 고통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끝이 나지만 십자가의 처형은 오랜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주는 사형 방법입니다. 먼저 나무로 큰 십자가 형틀을 만들어 그 십자가 위에 양손과 양발을 못박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세우면, 체중이 아래로 쏠리면서 손발의 못박힌 자리에 더욱 심한 고통이 가해집니다. 급소를 피해서 못을 박기 때문에 빨리 죽을 수도 없으며 계속 피를 흘리면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극심한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박히셔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바로 사람이 손과 발로 지은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한 섭리였습니다. 마가복음 9:43-45에 보면, 예수님께서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손과 발이 있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며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서 범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는 범죄하지 않기 위해 손과 발을 잘라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자녀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손발을 자르지 않아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양손과 양발에 못박혀 피 흘리심으로 손발로 범하는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지옥 불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을 친히 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주를 믿는다 하고 입술로는 회개한다고 하면서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회개는 거짓말이라 하십니다. 요한일서 1:6을 보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했고 갈라디아서 5:19-21에는 육체의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했습니다. 그러니 구원받아 천국에 가려면 이런 죄들을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손과 발에 못박혀 고통받으셨음을 정녕 믿는 사람은 다시 죄를 범할 수가 없습니다. 또 범죄한 것을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을 수가 없지요. 죄를 버리지 않고 예전 모습 그대로 사는 사람은 참 믿음이 있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며 구원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아직 믿음이 약할 때는 거듭 범죄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럴 때는 중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죄를 버리기 위해 노력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십니다. 다시 은혜를 주시고 죄를 버릴 능력을 주시지요. 죄를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이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가능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죄를 버리고 거룩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의 함락이나 유대인들의 고난, 이스라엘의 멸망과 재건 등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로서 그중 하나가 바로 멀지 않은 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6:15을 보면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잠에 빠지지 말고 깨어 기도할 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여 하루 빨리 신부단장을 마치고 재림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때 모두 들림받아 혼인잔치에 참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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