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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분량(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마11:12,13:31-32 날짜 2005.10.23
오늘은 믿음으로 천국을 침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며, 우리가 침노해야 하는 천국은 과연 어떤 곳인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음의 죄를 버리고 천국을 침노할 수 있게 된 신약 시대

마태복음 11:12을 보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하셨습니다. 천국은 빛이신 하나님의 나라로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할 수도 없는 빛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감히 누가 천국을 침노하며 어떻게 천국을 빼앗을 수 있다는 말씀일까요?

이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며 온전한 믿음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말씀이지요.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나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 사람이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이미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라도 미혹하여 범죄하게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요.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겨서 천국을 빼앗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천국이 침노를 당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고 하는 것일까요?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으로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역을 이루시도록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맡았지요. 이러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요,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먼저 신약 시대와 구약 시대의 구원의 기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구약 시대는 율법의 시대로서 율법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았지요. 율법을 낱낱이 지켜 행해야 했고 지키지 못하여 범죄했을 때는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사함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신약 시대는 성령의 시대, 혹은 은혜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율법대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기 때문이지요. 보혈의 공로와 성령의 능력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오해하여 구약에는 행위적으로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데 신약 시대에는 입술로만 “믿습니다.” 하면 범죄해도 용서받고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지요. 구약에서 “행위적인 구원”이라는 것은, 비록 마음에 악이 있어도 행위로만 범죄하지 않으면 “죄 있다.” 정죄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신약에서는, 행위적으로 범죄하지 않아도 마음에 악을 품은 것 자체가 벌써 죄이며 형제를 미워하면 이미 살인자와도 같습니다. 하물며 행위적으로 범죄하면 더더욱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9-21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육체의 일을 하는 자들” 곧 행함으로 범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경 곳곳에는 행위적으로 범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을 믿음이 있다면, 행위적인 죄는 물론이고 마음의 악까지도 버려야 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 시대보다 신약 시대에 구원받기가 더 어려운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범죄하지 않고 율법을 지켜야 했지만 신약 시대에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는 말씀처럼 마음 중심에 정녕히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율법을 지켜 행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 되심과 예수님께서 내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다고 믿는다면 당연히 죄를 버리고자 노력하게 되지요. 악을 행하던 사람이 선을 행하며 행위적인 범죄뿐만 아니라 마음의 죄성 자체까지 벗어버리며 의롭게 변화돼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가능한 일이며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지요. 예를 들어, 세상 사람들은 담배 하나 끊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하지만 성도님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주님을 영접한 후에 성령의 역사를 받으니 술, 담배를 너무 쉽게 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죄를 버리고자 노력해 나갈 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버릴 수 있게 됩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령을 받지 못했기에 마음의 죄까지는 버릴 수 없었고 천국을 침노하여 들어갈 수가 없었지요. 아브라함이나 모세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장차 오실 주님을 믿고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중심이 좋은 사람들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아 마음의 죄를 버리고 믿음의 분량만큼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할 수 있는 신약 시대의 우리가 더욱 복된 것이지요.

2. 낙원에서 새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여러 처소로 분류되어 있는 천국

우리가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도 여러 단계로 나눠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좋은 곳이 있으므로 사모하여 침노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천국이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는 영의 하늘에 속해 있으며 영의 하늘은 이 육의 하늘과 차원이 다른 영역이지요. 영의 하늘도 다시 여러 하늘로 나눠집니다.

느헤미야 9:6에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말씀하였고, 열왕기상 8:27에도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 하였으며 그 외에도 성경 곳곳에 하늘이 하나가 아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2에는 사도 바울의 영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하늘이 있으면 당연히 첫째, 둘째 하늘이 있고 그 이상의 하늘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여러 영의 하늘 중에서도 바울이 말하는 셋째 하늘이 바로 천국이 있는 하늘로서 셋째 하늘의 천국 중에서도 사도 바울이 본 장소는 낙원이었지요(고후 12:4).

그러면 낙원은 어떤 곳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한 한 편 강도와 같이 간신히 구원받을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가는 처소가 바로 낙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 일도 없으니 상급도 없는 곳으로 천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천국이지요.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사도 요한이 본 천국의 새예루살렘 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 보석이 기초석을 이루고 있는 거룩하고 영화로운 성으로 묘사되어 있지요. 이곳은 천국에서도 가장 영화로운 처소로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곳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며 마음에 이루어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거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새예루살렘과 낙원 사이에는 다시 여러 단계로 구분된 처소 곧 1천층, 2천층, 3천층이 있지요. 여러분이 그중 어느 처소에 들어갈 것인가는 여러분의 믿음에 따라 결정됩니다. 미혹하는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고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버리며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만큼 더 좋은 처소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면 겨자씨만한 믿음이 자라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마태복음 13:31-32을 보면 이처럼 침노해 들어가는 천국에 대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하셨지요.

겨자씨는 씨 중에서도 작은 것으로 흰 종이 위에 펜으로 점을 찍은 크기입니다. 처음 구원받은 성도들의 믿음은 작은 겨자씨만큼 밖에 되지 않지만 그 씨를 자신의 마음 밭에 심고 열심히 가꾸면 울창하여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나무처럼 큰 믿음으로 자라게 되지요. 큰 나무에는 많은 새들이 깃들이고 쉼을 얻는 것처럼 믿음이 큰 사람은 많은 영혼들을 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심어 줄 수 있고 영적인 쉼을 줄 수도 있지요. 이렇게 많은 영혼들을 품을 수 있는 크고 넓은 마음이 되면 천국에서도 그만큼 더 넓고 좋은 처소에 거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좋은 것,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며 행복한 것을 상상한다 해도 천국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천국에서 가장 낮은 낙원이라 해도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보다 훨씬 아름답지요. 더구나 1천층은 낙원과 비교할 수 없고 2천층은 1천층과 비교할 수 없이 더 좋으며, 3천층과 2천층은 천지 차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새예루살렘의 영광은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은 밟고 다니는 길조차 정금으로 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가에는 금모래, 은모래가 깔려 있습니다. 보석처럼 빛나는 맑은 물에는 오색 물고기가 헤엄치며 꽃잎 하나, 풀잎 하나를 보아도 그 청아함과 향기로움이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지요. 오염되는 일도 없고 늙거나 썩거나 죽는 일도 없습니다. 천사들이 여러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수종들며 감미로운 음악과 연주를 들려주기도 하지요.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며 영원히 거하게 되고 특히 새예루살렘에 들어간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에 어떤 권세 있는 황제라 해도 누릴 수 없는 영광과 영화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의 낙원을 한번 보고도 너무나 큰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주님을 위해 무수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기쁨으로 그 길을 갈 수 있었지요.

여러분 또한 천국에 대해 밝히 알게 되면 참으로 이 땅의 것이 헛된 줄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헛된 욕심과 정욕을 다 버리고 오직 말씀대로 자신을 변화시키며 좋은 천국만을 침노하기 위해 달려가게 되지요. 천국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천국 책자 상·하권을 참조하심으로 더욱 소망 중에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장차 거하게 될 천국의 처소는 우리의 경작이 마쳐지는 순간에 결정됩니다. 그러니 아직은 믿음이 작은 사람이라 해도 지금부터 열심히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면 결국은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은 1천층이나 2천층에 들어갈 믿음이라 해도 앞으로 마음의 할례를 게을리 하게 되면 오히려 믿음이 퇴보하여 낙원에 가거나 자칫하면 구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지요.

그러므로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여 신속하게 더 큰 믿음을 이루며 세월을 아껴 부지런히 침노함으로 가장 좋은 천국을 빼앗아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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