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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분량(18)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12:3 날짜 2006.04.23
오늘은 중심이 다른 믿음의 3단계와 4단계에 대해 살펴보고 단순히 악이 없는 믿음의 4단계 초입보다 더 온전한 선의 열매가 마음에 맺힌 경우들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중심이 전혀 다른 믿음의 3단계와 4단계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단계요, 마음의 죄악까지 다 벗어 버리고 영혼이 잘되어 범사에 축복받는 단계라 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은 "깨끗한 그릇이 준비되었다"는 말과 같은데 깨끗한 마음의 그릇은 준비되었지만 그 안에 들어가야 할 영적인 내용물이 아직 다 채워진 것은 아니지요.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마음에 남은 죄악은 없지만 '육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육의 흔적까지도 벗어 버리고 진리의 열매들을 온전히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사람들이 볼 때는 믿음의 4단계 초입과 믿음의 3단계가 서로 비슷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믿음의 3단계 말엽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고 매사에 자신의 뜻대로 주관하고자 강요하는 것은 대체로 자신의 악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상대가 힘들거나 불편하게 느낀다 해도 자신의 유익에 맞는 것,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믿음의 4단계에서는 이런 악한 마음이 없습니다. 설령 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기고도 자꾸 간섭하며 상대를 강권적으로 주관하려 한다 해도 사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지요. 자기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이루기 위해서 진리대로 행하기 원하는 것뿐입니다.
이럴 때 만약 아랫사람들이 불편해하고 불순종한다 해도 상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은 있지만 그로 인해 사람에 대해 감정을 갖거나 악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은 아니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믿음의 3단계 말엽에 있는 사람이 자기 의와 사심으로 다른 사람을 주관하려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두 사람의 중심이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마음과 행함이 다 악하다고 하시지만, 후자는 아직 온전하지 못할 뿐 악하다고 정죄하지는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악한 의도가 없었다고는 해도 자신이 더 넓게 보지 못하고 덕스럽게 행하지 못한 분야에 대해서는 반드시 깨달아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2. 단순히 악이 없는 4단계 초입보다 더 온전한 선의 열매가 마음에 맺힌 경우들

저는 어떤 일을 한번 맡겨 놓았을 때, 전폭적으로 담당자에게 맡기고 믿어 줍니다. 제가 원하는 방식을 강요하지도 않으며 제 마음에 맞는 방법으로 하지 않는다 해서 도중에 그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 준 적도 없습니다. 제가 직접 간섭하면 결과가 훨씬 좋을 수도 있고 시행착오도 나오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일꾼을 키울 수가 없지요. 일꾼들이 자신의 역량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때로는 실수를 통해서도 배워나가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을 깨닫게 되고 목자와 하나 되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도록 최선을 다해 배려해 주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일꾼들로 인해 실수가 나오면 그 결과는 제가 책임져야 하지요.
이렇게 일꾼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도 마음에 악이 없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 온유, 화평, 양선, 오래 참음, 절제 이런 영적인 열매들이 풍성히 맺혀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마음의 악을 다 버리지도 못했고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자기적인 의로 행하면서도 "나는 내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런 것이다" 하면서 자신의 악을 가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을 철저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정녕 다른 사람의 마음과 입장을 고려하여 편안하게 섬겨 주는가? 범사에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하려는 마음인가?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에 요동함이나 감정이 없고 설령 악으로 대하는 상대에 대해서도 온유함과 사랑으로 대해 줄 수 있는가? 깊은 마음에서부터 진리와 함께 기뻐하므로 나보다 남이 잘되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항상 "아멘"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때로 그렇다"거나 "은혜가 충만할 때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러하다"고 대답할 수 있으신지요? 그럴 수 있다면 여러분의 믿음이 4단계에 있다고 인정해 주시며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를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서 깨끗한 마음 그릇을 준비했다 해도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그 안에 영의 내용물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영의 내용물이 채워져 나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조카 롯도 아브라함으로 인해 복을 누린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이 심히 많아지니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풀과 물을 놓고 다투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화평을 이룰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롯은 아브라함의 제안에 따라 아브라함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아브라함이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이었다면 롯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짐으로 시비를 가리고자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3단계 말엽쯤 된다면 진리를 잘 알기에, 마음에는 불편함이 있어도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겠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어떨까요? 이때는 근본적으로 마음에서 감정 자체가 없습니다. 다만 그 상황에서 제일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 서로 갈라지자고 제안은 할 수 있지만, 마음에 악이 없으니 상대에 대해 불편해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요.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것을 보니, 우리가 화평하기 위해서는 갈라져야 하겠다, 나는 이쪽으로 갈 테니 너는 저쪽으로 가라" 하면서 아브라함 편에서 갈 바를 정해 줄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능히 먼저 선택할 권한이 있고 그는 이미 영으로 들어간 사람이므로 먼저 선택한다 해도 자기 유익을 구할 리는 없지요.
그런데 육의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볼 때 자칫하면 판단 정죄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감정이 생겨서 롯을 떠나 보내는구나" "자기 욕심을 따라 좋은 것을 택하고 상대에게 따르도록 요구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3단계 말엽의 사람이나 4단계 초입의 사람을 드러난 행위로만 볼 때는 서로 비슷한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육에 있는 사람이 남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고 더구나 영의 사람의 마음에 있는 깊은 것은 육의 사람이 알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15에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자신이 영으로 들어와서 신령한 자가 되어야 성령의 역사 속에서 옳고 그름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상대의 행함만을 보고 육의 한계 속에서 선악을 판단하기 보다는 먼저 자신의 마음에서 악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단순히 감정이나 서운함이 없는 정도를 넘어서서 더욱 선한 마음으로 롯을 섬겼습니다.
창세기 13:8-9에 보면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말했지요. 서로 화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면서도 롯의 마음이 편안하기를 원하며 롯이 좋은 땅을 먼저 골라서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아브라함은 이미 마음에 영적인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감정을 갖지 않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선으로 악을 갚을 수 있는 마음이지요. 믿음의 4단계에서도 영적인 열매들로 더 많이 채워진 만큼 입술의 말과 행동이 더 덕스럽고 감동적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영의 내용물이 50%, 80% 채워지고 마침내 100% 채워질 때, 온전히 진리로 채워진 온 영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에 진리가 채워지는 만큼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하여 둘 다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면 믿음의 4단계라 해도 아직 초입에 있을 때는 별다른 생각 없이, 자신이 원하는 쪽을 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열매들이 마음에 채워지는 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게 되므로 자신에게 좋은 것을 택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편을 택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후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고자 오랜 세월을 쫓아다녔기 때문에 늘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윗에게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지요. 다윗이 숨어 있는 장소에 사울이 들어와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24:4을 보면 다윗의 부하들이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면서 당장 사울을 죽이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죽이는 것이 악이 아니라고 해도 다윗은 그보다 더 온전한 선을 택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섬기던 왕이요, 한때 하나님 앞에서 기름부음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울이 아무리 악인이며 그로 인해 자신이 해를 당한다 해도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해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맡기는 편을 택한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4단계 안에서도 마음에 영적인 내용물이 얼마나 채워졌는지에 따라 단지 악이 없는 차원에서부터 온전한 선의 차원으로 점점 근접하게 됩니다. 물론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도 사람마다 더 많이 채워진 분야는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과 온유함이 승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온유의 열매는 적게 맺혔으나 희생과 섬김, 충성이 승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몇 가지 열매들만 실하게 맺혀 있거나 때때로 온 영에 가깝게 행한다고 해서 믿음의 5단계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믿음의 4단계도 연단을 통해 모든 분야에서 온전하게 주님을 닮을 수 있도록 계속 변화되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장의 사랑과 팔복의 열매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빛의 열매 등 진리의 열매들이 온전하게 맺혀서 풍성해질 때 비로소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서 온 영의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7:24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말씀하신 대로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공의로 판단해야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영으로 들어가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교통하므로 무엇을 보거나 들어도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으며, 범사에 오직 선으로 바라보니 오해할 것도 없고 판단할 것도 없으며 항상 마음이 평안하고 위로부터 임하는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오직 선으로 바라보며 신속하게 영의 마음을 이루어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비밀한 것들까지도 나눌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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