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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분량(2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12:3 날짜 2006.05.14
오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의 특징에 대하여 증거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려 순종하는 믿음의 5단계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단계를 지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그 마음에 꼭 맞게만 행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믿음의 5단계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믿음일까요?
믿음의 5단계는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어떠한 일을 명하셔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오직 예와 아멘이요, 자신의 생명을 드려서라도 명하신 것 이상으로 순종해 내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의 4단계만 되어도 하나님을 위해 능히 생명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와 5단계가 겉으로는 똑같이 순종하여 생명을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때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마음에 있지요. 곧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깊이 헤아려 순종하여 드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 직장에 나가는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청소를 해 놓아라" 할 때, 자녀마다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억지로 청소를 하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기쁜 마음으로 정성껏 하는 자녀도 있고, 더 선한 자녀는 '어머니가 직장에서 돌아오시면 피곤하고 힘드실 텐데, 뭔가 더 해 드릴 것이 없을까' 헤아려 청소뿐 아니라 시키지 않은 일까지 찾아서 하지요. 이런 마음씀을 가진 자녀를 볼 때 어머니의 마음은 단순히 사랑스러운 정도를 지나서 심히 대견하게 여기며 기뻐하게 되지요.
하나님과의 관계도 이와 비슷합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는 마음에 죄악이 없고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하시면 무조건 순종해 드리려는 마음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려서 순종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있습니다. 반면에 믿음의 5단계는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런 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보다 넘치도록 순종해 드릴 수 있지요.

2. 온전한 순종을 이루려면 예수님의 사랑과 선이 임해야

4단계와 5단계의 차이를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전에 설명했던 "선의 단계"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상대가 여러분을 미워해서 애매히 핍박하고 악을 행할 때, 일말의 감정이나 불편함이 없이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선 것이지요. 마음에서 죄성을 근본적으로 벗어 버리므로 깨끗하고 성결된 마음이라야 이러한 선의 단계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루면, 상대가 애매히 악을 행할 때에 용서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선한 말과 행함으로 악한 사람도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5단계 초입이나 적어도 믿음의 4단계에서 깊이 들어갔을 때라야 이러한 행함을 나타낼 수가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은 이보다도 더욱 높은 차원의 선입니다. 곧 자신에게 악을 행한 상대라도 사랑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도 희생해 줄 수 있는 사랑과 선을 이루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과 선을 마음에 이룰 때라야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뤄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가 없으셨지요. 그런데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빌 2:6-8). 이때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순종은 믿음의 4단계에서도 할 수 있는 순종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알아 그 마음을 품고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이뤄 드린 것입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너무나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사랑의 마음을 동일하게 품고 생명을 다해 아버지의 뜻을 이뤄 드렸습니다.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자신을 못박는 이들을 위해 오히려 중보의 기도를 올리셨지요.
또한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고난으로 인해 애통하실 아버지의 마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고자 앞으로 구원받을 무수한 영혼들과 아버지께서 받으실 영광에 대해 아뢰며, 감사의 고백으로 올려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런 예수님을 보실 때 얼마나 감동스러우셨겠는지요? 빌립보서 2:9-11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달아 온전히 순종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순종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이뤄야 하지요. 빌립보서 2:5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의 사랑과 선이 임해야 예수님과 같이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열매가 100% 맺힐 때 믿음의 5단계

믿음의 5단계는 깨끗한 마음 그릇 안에 온전한 영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채워진 상태라 했지요. 믿음의 4단계에서도 죄악을 벗어 버린 만큼 깨끗한 마음 그릇이 준비되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 영적인 열매들이 맺힌 한도 안에서만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지요. 만약 충성의 열매는 100%에 가깝게 맺혀 있지만 절제의 열매는 40% 정도 맺혀 있는 영의 사람이 있다면 충성의 분야에서는 넘치도록 충성할 수 있지만, 절제의 분야에서는 40%만큼밖에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서 모든 열매들이 100% 온전히 맺힐 때라야 아버지의 마음 깊은 것까지라도 밝히 깨닫고 온전히 순종할 수가 있지요. 이렇게 영의 열매들이 맺힌 차이에 대해서 좀 더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포도 꽃이 떨어진 자리에 처음에는 작은 알맹이 같은 것이 생기며 열매가 맺히려는 조짐이 보이지요. 이것이 바로 믿음의 3단계입니다. 마음에서 죄악을 벗어 버리는 만큼 미약하기는 하지만 성령의 열매가 맺힐 조짐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여름이 깊어질수록 포도알이 커지고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포도알이 100개라면 100개의 포도알이 동시에 똑같은 크기와 빛깔로 익는 것이 아니지요. 같은 송이에 달린 포도알이라도 익는 속도가 각각 다르고 크기가 다릅니다.
이처럼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는 하지만 그 열매들 중에서도 어떤 것은 더 실하고 어떤 것은 좀 덜한, 그런 상태가 바로 믿음의 4단계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승한데 절제의 열매는 좀 약하다거나 충성의 열매는 승한데 온유는 약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점점 더 많은 날이 지나 비바람을 이겨내고 햇빛을 받아 포도알 하나하나가 완전히 익으면, 모두가 다 잘 익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크고 통통한 알맹이로 꽉 채워집니다. 이런 것처럼 모든 성령의 열매들이 100% 온전히 맺히게 되면 마침내 믿음의 5단계로 들어서는 것이며, 이러한 사람은 모든 분야에 완벽한 조화가 이뤄집니다.
주를 향한 뜨거움과 불같은 열정이 있으면서도 필요한 시점에 정확하게 맺고 끊으므로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범사에 남의 유익을 구하고 상대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지만 사사로운 마음을 전혀 동원하지 않고 정확한 아버지의 공의 가운데 순종해 나갑니다. 100%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밝히 분별하여 온전히 그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닮은 참자녀로 나오는 것이요,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른 것이지요.

4. 아브라함을 통해 살펴본 믿음의 4단계와 5단계의 차이점

아브라함의 경우는 맨 처음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부터 오직 예와 아멘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도 모른 채로 무조건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했고 중심에서 순종하는 믿음을 갖기는 했지만 그렇게 명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본토를 떠나 오랜 연단을 받으면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사귐을 계속 가졌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밝히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시험에 직면했을 때도 온전한 믿음의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험이란 바로 자신의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것이었지요. 이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삭은 오랫동안 상속자를 얻지 못하다가 100세가 되어 얻은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들을 짐승처럼 잡아서 각을 뜨고 불에 태워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삭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씨앗입니다. 이럴 때, 나름대로 믿음이 있다는 사람들이라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삭을 통해 후사를 잇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으면서 왜 아들을 죽이라 하시는가?" 하면서 이런저런 의문을 가지게 되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바로 이 시험을 거뜬히 통과하므로 믿음의 5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곧 히브리서 11:17-19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했지요.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하여 이삭을 바친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도 깨달을 수 있었기에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 해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이며, 그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온전히 순종한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믿음을 인정받은 시점부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지극히 기뻐하시며 "하나님의 벗"이라고까지 불러 주십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생명까지 드릴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깨닫는 아브라함이었기에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여러분도 누구나 하나님의 벗이 될 수 있고 친구와 같이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것마다 즉시 응답하시고, 여러분이 가고 머무는 곳마다 복이 임하게 하십니다.
호세아 6:3 전반절에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신 말씀대로 범사에 하나님의 선하신 마음과 뜻을 헤아리고자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속히 성결된 마음을 이루고 그 안에 아름다운 영의 열매들로 가득 채워 하나님의 마음을 밝히 깨달아 순종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실 때 심히 기뻐하시며 "너는 내 벗이라" 칭해 주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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