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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분량(2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12:3,민12:7 날짜 2006.06.11
믿음의 5단계는 첫 번째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생명까지 드릴 수 있는 믿음이며 두 번째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단계라 했습니다. 믿음의 5단계의 특징 세 번째는 "온 집에 충성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믿음의 5단계의 특징 중에서 세 번째인 '온 집에 충성'에 대하여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온 집에 충성을 이루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충성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 이상을 해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일꾼으로 불러서 급료를 주며 일을 맡겼을 때 그 일만을 잘 감당했다고 해서 '충성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대가를 받은 만큼 감당한 것이기에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 "충성했다"고 칭찬받지는 못하지요. 그러나 삯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라 해도 중심에서 '넘치게 감당해야겠다'는 마음이 우러나와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아끼지 않고 주어진 일을 감당해 나갈 때는 "충성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삯을 받든지 안 받든지, 적게 받든지 많이 받든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도리를 넘치게 감당하는 경우에 충신이라고 인정받았던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 같은 경우는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을 때도 왕을 원망하지 않았고 관직을 다 빼앗긴 채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을 때도 아무런 불만 없이 생명 다해 싸웠으며 마침내는 치열한 전투 중에 전사하기까지 성실과 헌신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세상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충성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충성했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맡은 사명 이상을 감당해 냄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영적으로 충성한다 인정받을 수가 있습니다. 성결되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 있다 했으니 충성의 열매도 당연히 맺혀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충성이 "온 집에 충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의 5단계에 들어와 모든 성령의 열매들이 백프로 맺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충성이 좋은 결실을 맺기까지는 반드시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요. 영적인 사랑이 없이는 희생하고 헌신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다면 한쪽에서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다른 분야에는 좀 소홀하게 될 수도 있지요. "화평"의 열매가 온전히 맺혀 있지 않으면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딪힘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화평이 깨어진 충성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상급으로 쌓일 수가 없지요. 그러니 영적인 충성을 하되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으려면, 충성의 분야만 승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성령의 열매들이 다 함께 맺혀 있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믿음의 5단계에 들어와 온 집에 충성한다는 의미

온 집에 충성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되, 맡겨진 직무와 주어진 대가 이상을 모든 분야에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주 안에서 여러 가지 사명을 맡게 되지요. 그 사명들을 충성되이 감당하되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해 감당하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사명들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명도 있고, 좀 덜 중요해 보이거나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명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사람이 보기에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므로 똑같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당합니다.
그런데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는 사명이 서너 가지만 되어도 잘 감당하기 위해 노력해 보겠는데, 사명이 많고 너무 바쁘다 보니 모든 분야에 마음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어떤 사명은 크고 급히 감당해야 하지만 어떤 사명은 긴급하지는 않기 때문에 뒤로 미루다 보면 결국 소홀히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아무리 많은 사명을 갖고 있어도 능히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낼 수 있지요. 바로 온전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은 무한한 공간이며 아무리 많은 것도 능히 품으실 수가 있지요. 인류 역사의 모든 과정도 무수한 영혼들의 삶도 하나님께서는 마치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마음에 다 담고 주관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5단계,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물론 하나님과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서 아무리 많은 영혼도, 아무리 많은 일들도 능히 마음에 품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영혼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지요. 그 간절한 사랑으로 마음에 품고 간구하므로 자신이 맡은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끌어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분야를 똑같이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모든 사명에 똑같은 시간을 할애하고 똑같이 긴급하게 여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히 급한 것이 있고 나중에 할 것이 있으며,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 있지요. 그러나 충성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사람은 수많은 사명 중에 어떤 사명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며, 수많은 양 떼 중에 어떤 한 영혼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시간을 적게 들이든 많이 들이든, 어떤 분야에 있어서도 마음 자세 자체가 정성과 성실을 다하여 임하게 되는 것이지요.

3. 온 집에 충성하는 비결은 영으로 품어 열매를 내는 것

사도 바울의 경우는 많은 교회들을 개척하고 다니면서 수많은 영혼들을 항상 마음에 품었고 아버지 앞에 아뢰었습니다. 골로새서 1:9 전반절에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했다"고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1:2에는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한다" 했지요. 그밖에도 수많은 교회들과 다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는 것을 성경 곳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백만 가량이나 되는 수많은 영혼들을 모세가 일일이 만나고 그들의 문제를 상담할 수는 없었지요. 그러나 모세는 모든 백성들을 영으로 품고 있었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 대해 이르시기를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으로 들어간 만큼 많은 것을 영으로 품을 수가 있고 그럴 때는 아무리 많은 사명도 능히 감당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맡은 양 떼가 오백 명이라면 전부를 매주마다 심방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양 떼나 급한 문제가 있는 양 떼는 자주 돌아보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심방하는 양 떼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녕히 충성된 마음을 가졌다면 자주 보든, 자주 보지 못하든 맡겨 주신 모든 양 떼를 항상 영으로 품어 마음에 담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몇 달 동안 심방예배 한번 드리지 못한 영혼이라 해도 마음에는 늘 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필요할 때는 마음에 주관해 주셔서 특별히 기도를 하도록 하시거나 심방하게 하시기도 하며 단 한번을 짧게 만난다 해도 좋은 열매로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자신이 게을러서 심방하지 않으면서 "그 대신 기도하고 있으니까" 하고 변명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생명 다해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하지만 "제가 직접 돌보지 못한 분야까지도 아버지께서 돌보아 주옵소서" 기도하는 심정이 얼마나 안타깝고 애절하겠습니까? 그러한 중심의 향을 받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들을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명에서도 다 마찬가지이지요. 모든 분야에 대해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며, 영으로 품어 열매를 내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많은 사명을 맡으면 다 잘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차라리 한두 가지만 맡아서 정성을 다한다면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자체가 충성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자 사명을 사모하는 마음이 뜨거울 것이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열정이 뜨거우니 어찌하든 사명을 사모하게 되지요. 그러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한두 가지만 감당하겠다는 말 자체가 이미 온 집에 충성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반드시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은 사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충성되이 행하여 열매를 내고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는데 가정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거나 학교나 직장에서는 불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면 "저 사람은 참으로 충성된 일꾼"이라고 칭찬할 수 있겠는지요?
충성된 사람은 마음 자체가 이미 성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든 곳에서 성실하게 행하게 되지요. 그렇다 해서 꼭 1등을 해야 하고 실적이 제일 좋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는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선후를 따질 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과 사명이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이 먼저이지요. 그러나 그렇다 해서 하나님의 일만 열심히 하고 다른 분야에서는 불성실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때는 하나님 앞에서도 정녕히 충성된 마음에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육적인 충성이거나 일시적인 뜨거움에서 열심 내는 것이기 쉽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자신에게 맡겨준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해 희생하며 섬겨 나가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악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그 악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영으로 온 영으로 신속하게 들어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01:6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말씀하신 대로 완전한 길로 행하며 충성된 자로 인정받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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