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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4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21:10-14 날짜 2008.03.30
새 예루살렘은 천국의 다른 처소와 달리 요한계시록 21장, 22장에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 2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의 영안을 열어 새 예루살렘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부터 사도 요한이 본 대로 새 예루살렘을 증거하면서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벽옥과 수정같이 맑은 새 예루살렘 성

11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했습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마치 파란색 공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고 하는데, 사도 요한도 멀리서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이처럼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말씀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나오는 빛이 얼마나 위엄 있고 현란한지를 나타냅니다.

여러분도 장차 새 예루살렘 성을 보면 탄성이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이 땅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웅장하기 때문에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새 예루살렘 성을 처음 보고 영광스러움에 감탄하여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새 예루살렘 성의 전체적인 느낌을 빛나는 보석 중에서도 벽옥과 수정에 비유한 이유는 그 빛이 벽옥과 수정처럼 지극히 맑고 푸른색을 띠었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벽은 벽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천국의 벽옥은 이 땅의 것과 전혀 다릅니다. 천국의 벽옥은 매우 아름답고 깨끗하여 마치 맑은 물 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의 푸른빛이 감돕니다. 이 땅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긴 어렵지만, 최대한 가까운 것으로 비유하자면 맑은 물결에 햇살이 반사되어 나올 때의 눈부신 푸른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 전체적으로 벽옥의 맑고 푸른빛이 감도는 것은 천국을 예비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청아하고 산뜻함, 곧 티가 없이 맑고 정직한 ‘의로움’을 나타냅니다.

수정은 ‘크리스털’이라고도 불리며 종류가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물처럼 맑고 깨끗하며 무색투명하고 단단한 돌을 말합니다. 수정은 예로부터 장식품으로 널리 사용되었는데, 색이 맑고 투명하며 빛을 받을 때 광채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땅의 수정도 빛을 비추면 무지개같이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데,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영광의 광택을 입혀 놓은 천국의 보석들은 이 땅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맑고 아름다운 빛이 납니다. 그래도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내는 것이 보석이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 성의 빛을 보석에 비유한 것입니다.

2.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

새 예루살렘 성은 영롱하고 찬란한 빛을 내는 높은 성벽으로 둘려 있는데, 이는 3천층 내의 다른 처소와 새 예루살렘을 가르는 경계선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6절에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같은데, 각각의 길이는 12,000 Stadium(스다디온)입니다. Stadium(스다디온)은 거리의 단위로서, 12,000 Stadium은 대략 1,500마일과 같으며, 이는 2,400㎞에 해당합니다. 이를 우리나라의 길이 단위인 “리”로 환산하면 6천 리가 되는데, 이처럼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가 가로 6천 리, 세로 6천 리, 높이 6천 리인 것에는 중요한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인간 경작 6천 년 동안의 가장 좋은 열매를 담은 그릇이 새 예루살렘 성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새 예루살렘 성벽의 두께는 요한계시록 21장 17절에 144규빗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1규빗은 약 45㎝이므로, 성벽의 두께는 약 65m가 됩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은 두께 65m의 성벽이 가로 6천 리, 세로 6천 리로 네모반듯하게 놓여 있고, 성벽의 높이도 6천 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중국의 만리장성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만리장성의 지도상 총연장은 약 2,700㎞이며, 갈라진 가지들을 모두 일렬로 연결하면 약 6,500㎞라고 합니다. 또한 높이는 약 8.5m이고, 성벽의 두께는 아래쪽으로 갈수록 더 두꺼워지지만 평균 약 6m라고 합니다. 반면, 새 예루살렘은 4면 중 한 면의 길이만 해도 6천 리(약 2,400㎞)이니 총연장은 2만 4천 리(약 9,600㎞)이며, 성벽의 두께도 65m나 됩니다. 물론 천국의 측량 기준이 이 땅의 기준과 다를 수도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수치를 통해 새 예루살렘 성의 규모를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넓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영혼의 수는 구원받은 모든 영혼의 수에 비하면 매우 적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사람을 구약 4천 년 동안에만 꼽아보면,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다윗, 사무엘, 다니엘과 세 친구, 에스더, 룻 등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신약 시대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구약 시대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들어가지만, 그렇다 해도 구원받은 영혼 전체에 비하면 그 수는 지극히 적습니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 안에서 개인이 받게 되는 땅의 면적은 이 땅의 그 어떤 대저택보다 넓습니다.

예를 들어 새 예루살렘에서는 한 영혼에게 서울의 여의도만 한 땅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한 영혼에게 이렇게 넓은 땅이 주어진다면 그 안에 있는 집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다양한 시설이 갖춰질지 상상만 해도 즐거울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가장 하나님을 기쁘게 한 온 영의 참 자녀들이 들어가는 곳이므로, 하나님께서도 결코 협소하거나 초라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은 바닥에 붙은 평지뿐만 아니라, 6천 리 높이까지의 모든 공간이 활용됩니다.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인류의 새로운 터전을 우주 공간에 건설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공간을 멀리서 보면 공중에 떠 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땅 위에 사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높이가 6천 리라는 것도 이처럼 수직적인 개념의 공간까지 활용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나 천국은 어떤 장치를 통해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모든 것이 운영되는 영의 공간이므로, 사람의 측량으로 계산되는 면적보다 훨씬 더 넓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열두 문과 열두 기초석의 의미

12-14절을 보면 새 예루살렘 성벽에 열두 개의 문과 열두 기초석이 있다고 했습니다. 열두 문은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 배치되어 있으므로, 성벽을 따라 2천 리(약 800㎞)마다 하나씩 있는 셈입니다. 이 문들은 당당하고 위엄 있는 큰 천사가 서서 지키고 있으며, 각 문 위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 문들 위에 기록된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영적으로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을 상징합니다. 육으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만이 정식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말씀하신 대로 영으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새 예루살렘을 침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지파마다 각각의 성향이 다릅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영혼들도 성향에 따라서 들어가는 문이 달라지는데, 이는 영광의 크기가 다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빛깔과 향이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벽에는 기초석도 열두 개가 있습니다. ‘기초석’이란 건축물의 기둥을 받쳐 주는 돌인데 ‘주춧돌’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벽에는 열두 개의 기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각 기둥을 받치는 기초석에는 어린 양, 즉 주님의 열두 제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열두 제자’는 ‘성결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드리기까지 온전히 충성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이름은 열두 기초석 중에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장 15-26절에는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사도의 직무를 감당할 사람을 보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제비 뽑는데, ‘맛디아’가 새로이 뽑힌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림을 의미합니다. 둘째로는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 오늘날에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시고 쓰시는 종들’도 모두 ‘주님의 제자 중 한 사람’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열두 문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열두 기초석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성결되어 생명을 다해 온전히 충성하면 누구라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4. 12(열둘)의 의미

지금까지 12(열둘)이라는 숫자가 여러 번 나왔습니다. 성문도 열두 개, 기초석도 열두 개, 이스라엘 민족도 열두 지파, 주님의 제자도 열두 명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중요한 섭리를 설명할 때에는 꼭 12라는 숫자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12가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장 9절에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했습니다. 여기서 ‘낮 열두 시’는 영적으로 어둠이 조금도 없는 온전한 빛을 뜻합니다. 또한 빛은 어둠이 전혀 없으며 영원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12’는 빛의 수로서 완전함과 온전함을 나타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12라는 숫자를 가장 복된 약속의 증표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새 예루살렘 성의 전체적인 빛과 크기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문을 지나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열쇠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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