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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갈 5:22-23 날짜 2009.12.27
하나님은 빛이시며 선과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진리 자체이지요.

주님을 믿고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서 진리의 마음을 이뤄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의 마음을 닮으세요, 하나님은 빛이시니 여러분도 빛이 되세요" 이렇게 막연하게만 가르친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닮을 수 있을까요? 나름대로 노력은 하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신지 구체적으로 깨닫고 닮아갈 수 있도록 그 마음을 일일이 분류해 주셨습니다. 곧 팔복이나 사랑장,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등이 바로 그것이지요.

오늘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마지막 시간으로, 절제에 대해 증거합니다. 절제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에 비해 그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열매입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조절하여 안정되게 하고 단단하게 지탱해 주지요. 절제의 열매가 있어야 모든 열매들이 온전해지기에 이것을 가장 마지막에 언급하신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절제의 열매는 물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전부가 여러분 안에 조화롭게 맺힐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전에 보면 절제란 "정도에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 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삶을 어지럽게 만들고 큰 어려움까지 자초하는 것을 봅니다.
쉬운 예를 들어 외동아들이라 해서 부모가 절제하지 못하고 사랑을 과하게 주면 그로 인해 아들의 버릇을 망치게 되지요. 또 도박이나 향락에 빠진 사람들 중에는 끊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절제하지 못하므로 결국 패가망신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딱 한 번만, 마지막으로 이번만 하고 더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그 딱 한 번이 두 번, 세 번 계속 이어지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절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죄를 버리기 위해서도 절제가 반드시 필요하지요. 절제의 힘이 약할수록 죄를 버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이제 육을 취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지만 번번이 세상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의 분야만 봐도 그렇지요.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는 "거룩하고 온전한 입술이 되게 하소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삶 속에서는 기도한 내용을 잊어버리고 구습을 좇아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지요.
어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거나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을 보면 금세 불평불만을 쏟아냅니다. 불평을 하고 나면 금방 후회도 하지만 감정이 요동하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말을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진리의 말, 비진리의 말을 가리지 못하고 해야 할 말, 하면 안 될 말을 가리지 못하니 그 안에서 실수가 많아지지요. 이렇게 입술을 제어하는 분야 하나만 해도 절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에 나오는 절제의 열매는 단순히 죄를 범하지 않고 절제하는 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에 나오는 절제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해지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하지요. 마음에 임한 덕목들이 겉으로 드러날 때 모든 것을 질서와 조화 속에 어우러지게 하는 하나의 중재 기관과 같습니다. 주 안에서 좋은 것을 취할 때도 무조건 많이 취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말도 있지요. 영적으로도 무엇이든 성령의 소욕을 좇아 가장 적당하게 해야 합니다.
가령, 희락의 열매가 맺혔다 해도 아무 때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례식장에서 다른 사람들은 애곡하고 있는데 밝고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면 주변 사람들이 무어라 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보고 "희락의 열매가 맺혀서 은혜롭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구원받은 기쁨이 아무리 충만하다 해도 상황에 맞게 절제도 할 수 있어야 성령의 열매인 희락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충성을 할 때도 절제가 중요합니다. 특히 여러 사명을 맡으면, 시간을 잘 배분하여 이곳에 있어야 할 때는 이곳에 있고 저곳에 있어야 할 때는 저곳에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은혜롭고 충만한 모임이라도 끝내야 할 시간에는 절제해서 끝내야 합니다. 이처럼 온 집에 충성을 하기 위해서도 절제의 열매가 함께 작용하는 것이지요. 사랑도, 자비도, 양선도, 그 밖의 열매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맺힌 성령의 열매가 행함으로 드러날 때 항상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좇아 가장 적절한 선을 지켜야 하지요.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지, 나중에 해야 할지, 앞으로 나가야 할지, 뒤로 물러서야 할지 이러한 분별과 조절이 바로 절제의 열매를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모든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맺혔다는 말은 결국 그가 "범사에 성령의 소욕을 좇아 온전히 행한다"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성령의 소욕을 좇아 온전히 행하려면 반드시 절제의 열매가 맺혀야 하구요. 그래서 이 마지막 열매인 이 절제를 통해 모든 성령의 열매가 온전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절제의 열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절제의 열매가 맺히면 첫째,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합니다.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분별하므로 자신이 나설 때와 나서지 않아야 할 때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알지요. 격에 맞지 않는 일이나 분수에 지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한 선교회의 회장이 총무에게 어떤 일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총무가 열정이 넘치고 더 좋은 의견이 있다고 해서 임의대로 일을 변경해서 행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가 아무리 뜨거운 마음으로 충성했다 해도 결국 절제가 없으므로 질서를 어긴 것이지요.

절제의 열매가 맺히면 둘째로 진리를 행하고 좋은 일을 할 때도 대상과 시기, 장소 등을 고려할 줄을 압니다.
예를 들어,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무 데서나 부르짖어 기도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가 있지요. 전도나 심방을 할 때도 절제하여 대상에 따라 전할 말을 분별해야 합니다. 상대의 믿음의 분량에 맞게 진리를 전해야하지요. 자신이 영적인 말씀을 듣고 깨달은 내용이 너무나 은혜롭고 좋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그 말씀을 전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의 믿음의 분량에 맞지 않는 말을 전하면 오히려 상대는 충만함이 떨어질 수도 있고 판단 정죄하여 실족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바쁜 사람을 붙잡고 장황하게 자신이 말씀을 듣고 깨달은 내용이나 은혜받은 체험을 간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내용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 해도 상황에 맞게 절제하지 못하면 은혜를 입히기가 어렵습니다. 상대가 실례를 범하지 않으려고 듣고 있다 해도 마음이 급하여 초조하게 듣고 있으니 오히려 은혜가 떨어질 수도 있구요.
다른 예를 들어, 한 교구나 단체가 저에게 와서 상담하는 시간에 한 분이 자신의 간증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본인은 은혜와 충만함이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시간이 부족하여 저도 전체를 위해 해야 할 말을 다 못하고 함께 온 많은 분들의 시간을 혼자 다 쓰게 되니 이 또한 절제가 없는 결과이지요. 내 편에서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 해도 상대의 입장이나 여러 가지 상황을 살펴서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절제의 열매가 맺히면 셋째로 조급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합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급하고 경솔합니다. 서두르다 보면 분별력이 흐려져서 중요한 일들을 빠뜨리기도 하지요. 섣불리 판단 정죄하여 다른 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기도 하구요. 특히 말을 들을 때나 대답할 때 성급한 사람은 실수가 많습니다. 조급하게 내용을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서 상대의 말을 잘 파악해야 성급한 오해나 판단, 정죄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그 말을 하는 상대의 의도까지 분별하여 대응할 수가 있지요.
성령을 받기 전의 베드로는 성급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성품이었지요. 예수님 앞에서는 많이 절제하는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그 성품이 드러나는 것을 봅니다.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말씀하시자 이때도 베드로는 곧장 반론을 합니다. 자기는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만약 베드로가 절제의 열매가 맺혔다면 그 순간에 떠오르는 대로 반론하기보다는 바른 대답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정녕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무의미한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안다면 먼저는 그 말씀을 명심해야 하지요.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른 대응을 할 수 있는 분별력이 바로 절제의 열매 속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말과 속마음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을 가리기 위해 상대의 허물을 부각시키기도 합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어떤 것을 구하면서 마치 다른 사람이 원해서 요청하는 것처럼 말하는 경우도 있지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질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유도 심문을 하는 경우도 있구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과 차분히 대화해 보면 결국은 그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을 봅니다.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은 상대의 말을 듣고 쉽게 요동하지 않습니다. 차분하게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고 성령의 역사 속에 진실을 분별할 수가 있지요.
이렇게 절제하고 분별하여 답변한다면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실수가 많이 줄어듭니다. 그런 만큼 그 입의 말에 무게가 실려서 상대에게 권세 있게 전달될 수가 있지요.

그러면 이처럼 중요한 절제의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변개함 없는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거짓이 없고 간사함이 없는 마음, 진실한 마음을 이루면 되지요.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 생각할 때 그대로 행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물론 이런 마음을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은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훈련을 해 나가야 합니다. 한번 마음을 정했다면 자기 유익을 좇아 변개하지 말고 지켜 나가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 결국 정한 마음이 되고 절제의 능력도 생기지요.

다음으로, 범사에 자신이 앞서지 말고 성령의 소욕에 귀 기울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당장 내가 보기에 급한 것 내가 보기에 좋은 것, 이런 것보다 먼저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해 나가야 하지요. 그래서 들은 성령의 음성과 주관대로 순종해서 행해야 하는 것이구요. 늘 성령의 소욕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해 나가는 훈련을 할수록 점점 더 세미한 것까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행할 때 늘 질서 가운데 조화롭게 행할 수가 있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제의 열매를 끝으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한 말씀을 마칩니다. 이제 각각의 성령의 열매가 어떤 것인지 여러분의 마음에 구체적으로 와 닿으시는지요? 이 열매들 하나하나가 다 세상 어떤 보석보다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입니다 여러분이 이 성령의 열매들을 맺으면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습니다. 범사에 형통하고 보장받는 삶을 살 수 있지요. 어둔 세상에서 빛 된 권세와 능력을 행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구요. 들으신 말씀들을 주야로 묵상하며 기도제목 삼아 이뤄 가시기 부탁드립니다. 세상 어떤 보화들보다 이 성령의 열매들을 더욱 사모하여 여러분의 것으로 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장 귀한 보석처럼 소중하게 천국의 영광 중에 이끌어 들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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