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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차 영·혼·육(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갈5:19-21 날짜 2004.11.07
지난 시간에는 육체의 일 중에서 술수와 원수 맺는 것 그리고 분쟁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시기와 분냄, 당 짓는 것과 분리함에 대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가 임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며 뜨겁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눈물로 감사하고 생명을 드리겠다고 다짐하며 실제로 충성하고 헌신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요. 그러나 충성과 열심, 혹은 입술의 고백만으로는 하나님께서 "정녕히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인정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참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해야 합니다(요 14:21, 요일 5:3). 아무리 사랑을 고백하며 눈물로 찬양한다 해도 정작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랑의 고백도 진실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라" 하신 것은 하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않으며,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고 "지키라" 하신 것은 지키는 것이 참된 신앙의 증거입니다. 더구나 육체의 일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니 신속히 벗어버려야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헐어지고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1. 시기

"시기"는 자신보다 남이 낫다고 여길 때, 마음이 요동하여 불편함을 느끼고 상대를 멀리하며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심해지면 투기가 되는데 이런 시기와 투기로 인해 상대를 해롭게 하는 악의에 찬 분냄이 나오기도 하고, 분쟁하고 당 짓는 일도 생기며 살인도 나옵니다. 시기라는 하나의 근본 뿌리에서부터 투기와 그 밖에 여러 가지 육체의 일들이 파생되어 함께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기는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참으로 추한 죄악입니다. 시기하는 사람은 남이 잘되는 것으로 인해 자신의 뼈가 썩는 고통을 받게 되지요(잠 14:30). 성경에 보면 레아와 라헬은 자매 사이인데도 서로 시기하여 다투며 남편인 야곱까지 힘들게 합니다(창 30:1).
이런 다툼이 나중에는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데 다른 열 명의 형들이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요셉을 시기하여 상인들에게 종으로 팔아버리는 사건이 벌어지지요. 한 핏줄인 동생조차도 팔아버리는 무정함이 바로 시기의 뿌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시기의 속성은 상대가 잘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불편한 것입니다. "저 사람은 이런 단점이 있고 부족함이 있는데 왜 저 사람은 잘되고 사랑받는 것일까?" 하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르지요. 더 나아가 상대가 미워지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고 싶고 그 행복을 짓밟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행복을 자신과 비교하며 마음이 상하는 것도 그 근본은 시기에서 비롯됩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인정받는데, 저렇게 행복한데,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하고 절망하거나, 낙심해 버리기도 하지요. 특히 나이나 신앙의 경력이 비슷하거나 비슷한 사명을 갖고 있는 등, 자신과 비슷한 대상에 대해 그러기가 더 쉽습니다.
시기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 칭찬을 받을 때 자기 일처럼 행복하고 기뻐하게 됩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의 자녀를 칭찬해 주었다면 기쁘고 행복하실 것입니다. 비록 내 자녀에게 어떠한 부족함이 있다 해도 사랑받으니 더욱 깊이 감사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대상이 내 자녀일 때 내 가족일 때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감사하는 것이 영의 마음입니다. 또 선교회 안에서 자신의 아래에 있던 사람이 인정받고 사랑받아 오히려 자신보다 머리가 되면 자신이 인정받는 것만큼이나 감사한 일이고 상대를 더 잘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가게를 하는데 옆의 가게가 잘된다 해서 기분 나빠하고 속상해 할 일이 아닙니다. 다른 가게가 잘되는 것도 순수하게 기뻐해 주고 동시에 나도 아버지 앞에 축복받아 잘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선한 마음이지요.
이스라엘의 사울 왕에게는 요나단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이 통하여 서로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았지요. 사실 요나단은 다윗을 원수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 사울의 왕위가 자신에게 계승되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으니 자기 왕위를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오히려 다윗을 도우며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도 다윗을 격려합니다(삼상 23:16-17). 바로 이것이 영의 마음이요 진리의 마음입니다. 남이 좋은 것을 취하면 내 일처럼 기뻐하고 행복하며 남이 고통을 받으면 나도 아프고 안타까운 것이지요.

2. 분냄

혹자는 분을 내면 언성이 높아지고 상대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폭력을 행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상대를 죽이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은 다윗을 심히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는데 반대로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심히 사랑하여 어찌하든 살리고자 애를 썼지요.
하루는 요나단이 사울에게서 다윗을 피신시켰는데 이를 사울이 알게 되자, 사울은 심히 노하여 요나단에게 악을 발합니다(삼상 20:30). 그럼에도 요나단이 다시 다윗을 두둔하는 말을 하자 이번에는 더욱 심한 분을 발하여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치려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만 보아도 사울이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지요.

세상 사람들 중에 혈기가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심히 어렵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온유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혈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속으로 꾹꾹 눌러 참는 것일 때가 많지요. 이렇게 사람마다 혈기의 뿌리가 있다 보니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해도 혈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사소한 짜증을 내고 분을 내었다 해서 그로 인해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록 잠시 혈기를 냈다 해도 중심에서 회개하고 변화되어 나가면 되지요. 그러나 크든 작든, 분냄이라는 죄성이 있으므로 그로 인해 사망으로 가는 큰 육체의 일로 나와질 수 있기에 혈기의 근본 뿌리까지 뽑아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혈기로 인해 무서운 일들이 많이 보도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얼마 전에는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어려서 고아가 된 형제가 있어서 형이 평생 동생을 위해 희생하며 학비도 대주고 결혼할 때까지 보살펴 주었다고 합니다. 그처럼 의가 좋은 형제 사이였는데 사소한 다툼 끝에 동생이 형을 무시하는 말을 하자 순간적으로 형이 동생을 때려 죽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순간 형이 처절하게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지요.
이런 악을 행한 사람들도 평소에는 자신이 이렇게 큰 악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는 잘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죄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사람마다 혈기를 내는 데는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변명을 하지만 결국은 자기 안에 악이 있고 혈기가 있으므로 인해 분이 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악이 없고 온유한 사람은 상대가 원인을 제공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분이 나지는 않지요.
그런데 참고로 주 안에서 의분은 육체의 일인 분냄과 다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에게 두려운 말씀으로 책망하시거나(마 23:33), 하나님의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신 일들이 있지요(마 21:12). 물론 하나님의 공의에서 비롯된 의로운 분냄입니다.
또 부모가 자녀를 책망하고 매를 들 때, 어떤 사람은 분을 이기지 못해 자녀에게 소리를 지르고 때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 아닌 참으로 자녀가 잘못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사랑하지만 짐짓 엄하게 책망하는 것은 육체의 일과는 다릅니다(잠 13:24). 이런 경우는 하나님 앞에서도 합당한 것입니다.

3. 당 짓는 것과 분리함

"당 짓는 것"은 전체와 하나 되어야 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해서 나뉘고 다른 무리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무리에서 나뉜다는 것이 단순히 어떤 사람들끼리 더 친하다거나 자주 만나고 교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견과 입장이 비슷한 사람끼리 더 친해지기 쉽고 자주 만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그러나 당을 짓는 사람들은 자신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거나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대에게 해를 입히므로 육체의 일이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유익을 좇아서 무리를 짓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며 공격하기도 하지요. 수군수군 비방하며 정죄하다가도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며 심히 분쟁하고 배척하는 일들도 생깁니다. 이는 자기 소욕을 좇아 나뉘었기 때문에 지혜를 배척하고 비진리를 좇게 되는 것입니다(잠 18:1).
성경에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자기 유익을 좇아 당을 짓고 분리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하 15). 그러나 이렇게 궤계를 꾸며 당을 짓고 분리한 압살롬은 처음에는 형통한 것 같았지만 전세가 역전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았던 것이지요(삼하 18:9). 하나님께서 그를 외면하시니 아무리 면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해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을 보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성도들 가운데서도 당 짓는 일들이 있습니다. 모든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각 교회마다 주의 종이 있지요. 그런데 그 안에서 머리된 목자와 다른 방침이나 의견을 가진 사람이 사단의 회를 만들어 편을 가르고, 다투다 보면 나중에는 분리하여 나가기도 합니다.
만약 머리된 목자가 진리에 어긋난 방향으로 양 떼를 인도한다면 당연히 바로잡아야 하지만, 목자가 비진리를 행하는 것도 아닌데 자기 주장이나 욕심을 따라서 분리해 나올 때는 여러 가지 악을 행하게 되며,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길로 간다는 사실입니다.
선교회나 기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뽑아서 머리로 세웠다면 그가 조금 부족함이 있고 생각이 다르다 해도 일단은 하나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함께하는 모든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들까지도 사랑과 덕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형수가 사형을 받기 직전,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난 자리에서 "어머니는 왜 내가 어릴 때 처음으로 친구 집에서 장난감을 도적질해 온 것을 보고도 나를 꾸짖지 않고 덮어 두었습니까? 내가 자라면서 점점 더 큰 잘못을 해 나갈 때도 왜 나를 책망하지 않고 놔두셨습니까? 그때 어머니의 책망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 나는 결국 사형수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말을 남기고 형장으로 끌려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귀한 아들을 책망하지 못한 어머니의 육의 사랑이 결국은 아들을 죽음의 길로 인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으로도 단에서 설교자가 죄를 지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며 버리라 하면 마음에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설교자에 대해 율법적이라고 비방하는 경우도 있지요.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범죄한 일에 대해서는 책망함으로, 깨닫고 회개하여 빛으로 나오게 함으로(엡 5:13) 천국에 가게 하는 것이 참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악을 발견할 때마다 더욱 감사하며 신속하게 벗어 버려 빛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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