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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차 영·혼·육(1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3:5-7 날짜 2004.08.08
지난 시간에 이어 사람의 마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거하기로 하겠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정작 "마음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시피 합니다. 영과 혼, 또 영혼을 구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음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미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혼육의 말씀들을 잘 양식삼으시면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구원의 섭리도 더 밝히 깨달을 수 있으며 더 신속하게 성결되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아담의 영이 마음으로 불리워지게 된 과정

아담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마음은 곧 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시므로 아담에게는 생명의 씨가 있는 영 자체가 만들어졌고 그 안에 영의 지식, 곧 진리의 지식들이 채워짐으로 하나의 영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에 대해 배우며 선과 진리, 빛과 같은 영의 지식을 습득함으로 영으로서의 구실을 온전히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영 안에 영의 지식이 채워진 것이 바로 아담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마음이라는 말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곧 영이기 때문에 영이라고 부르면 되었는데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더 이상 영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영이 죽은 상태가 되었기에 곧 진리의 지식들을 잃어버리고 비진리의 지식들이 채워졌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더 이상 영이 아닌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2. 마음의 크기

마음의 크기에 따라 사람을 대인과 소인으로 나누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은 그 크기가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원래 빛과 소리로써 온 우주에 가득하게 펼쳐져 있었고, 또한 그 마음 안에 모든 우주가 품어져 있었지요. 무궁무진한 지식도, 지혜도, 권능도, 사랑도,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마음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은 그 크기가 어떠할까요? 원래 아담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을 닮게 창조된 영이었기에 그 크기가 무한하게 커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피조물인 아담의 영이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의 지식을 담아 주시는 만큼 한없이 넓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의 영이 죽은 후에는 혼적인 것들이 영을 감싸 버림으로 마음의 크기에 제한이 생겼습니다. 영으로 무엇을 깨닫거나 느끼는 것이 아니라 혼적인 작용을 통해서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혼을 통해 어떤 지식을 얼마나 담아 놓았고 또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그 마음의 크기가 한정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지식, 틀로 생명의 씨를 감싸므로 혼적인 한계 속에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처럼 혼적인 한계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눈앞의 것만을 생각하기 보다는 먼 훗날까지 바라볼 줄 알고, 적은 유익에 연연하기 보다는 더 큰 것을 생각합니다. 또 쉽게 감정이 요동하기보다는 인내하고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도 비교적 마음이 크다 인정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깃들이게 되지만 영이 죽은 사람은 비교적 마음이 크다 해도 혼적인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그 마음에 사랑과 덕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마음 안에 깃들었지만 결국 관우가 죽임을 당하자 당장 원수를 갚으려고 서두르다가 사사로운 정과 욕심을 다스리지 못함으로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육의 사람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마음이 큰 사람은 사랑과 덕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랑이 영적인 사랑이며, 지혜와 명철, 인내와 절제 등도 함께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영적으로 큰 마음을 소유하게 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영적으로 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비진리의 지식을 버리고 진리의 지식 곧 영의 지식이 채워지는 만큼 그 마음이 무한하게 넓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맨 처음 창조되었던 아담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맡기신 천하 만물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뿐 아니라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의 존재인 그룹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원수 마귀 사단이 감히 넘보지 못할 정도의 권세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의 사람이 되어가는 만큼 영이신 아버지의 지혜와 사랑, 또한 능력과 권세 등을 다 소유하게 됩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육의 세계만이 아니라 신령한 영의 세계까지도 그 마음에 품어지기 때문에 육의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며 육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육의 사람들이 볼 때는 이렇게 영의 사람, 마음이 큰 사람들을 볼 때 마치 신(神)과 같이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영의 세계의 크기는 무한하며 영의 사람만이 그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영의 세계에 속한 사람의 마음 또한 영의 사람만이 느끼며 알 수 있지요.
하지만 육에 있는 사람들은 영의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많은 판단이 나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하셨을 때, 혹자는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순종하기가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산에 오르면서도 몇 번이고 되돌아오고 싶었을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육에 있는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높은 차원의 믿음과 순종에 대해 이해할 수 없으며 자기적인 기준에 맞춰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열왕기상 19:4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탄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혹자는 너무 힘든 고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차라리 죽고 싶다" 하는 것처럼 엘리야도 하나님 앞에 그런 원망의 기도를 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자기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 주었는데도 오히려 더 악을 발하는 사람들을 볼 때 너무나 심령이 상해서 이런 애통의 기도가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마음을 가지고 영의 마음을 가지면, 영의 사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육의 사람에 대해서도 어떤 오해나 판단 정죄가 나오지 않습니다. 혼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진리 속에 제한된 육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 생각의 한계 속에서 판단하며 자신의 좁은 마음 이상의 것을 헤아리기가 어렵지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을 만날 때마다 얼굴을 굳히고 눈을 피하면서 급히 지나간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자신에게 감정과 미움, 혈기 등 육이 있는 만큼 상대를 판단하게 됩니다. "나한테 감정이 있나보다" 하면서 자신도 상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되지요. 그런데 영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런 판단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지만, 어렵게 느껴져서 그럴 수도 있고 수줍음이 많아서 어색해 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그 밖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마음에서 정확한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고, 화평을 이룰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이렇게 영의 마음을 이룬 사람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깃들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주의 종이 얼마나 영의 마음, 큰 마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마음 안에 수많은 영혼들이 깃들게 됩니다.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 육적인 양 떼라 해도 다 이해하고 참아 주고 넉넉히 품어 줄 수 있으니 자연히 부흥에 부흥이 더하는 것입니다.
육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터, 일터에서도 여러분이 영으로 이뤄 마음을 넓히는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고 지혜도 능력도 더 커집니다. 더구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니 무엇을 하든지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이지요.

4. 온전히 영의 마음을 이루려면

우리가 온전히 영의 마음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의 구성 성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먼저 선을 좇기 원하는 명백한 진리의 마음이 있고 명백하게 악한 비진리의 마음도 있지요. 사람마다 이 진리와 비진리의 비중이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두 가지의 마음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마음과는 또 다른 하나의 마음이 있는데, 바로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본성 속에는 진리도 있고, 비진리도 섞여 있는데, 본성 속에 있는 비진리를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렇다면, 본성이라는 것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하면 발견하여 버릴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설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자는 교회에 다니면 사람이 좁아지거나 편벽되어진다고 오해를 하지만 영의 마음을 이루면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마음에 품는 대로 이룰 수 있습니다. 육의 사람들과 세상적인 교제를 하지 않고 서로 육의 것들을 주고 받지 않는다 해도 아버지의 지혜를 가지고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으며 지배하고 다스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고후 6:11-13).
또한 영의 마음을 이루면, 곧 주님의 마음을 이룬 것이고 주님과 아버지와 마음이 하나되니(요 17:23)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으므로 그 축복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 앞에서도 하나님께 사랑받는 증거를 보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아 무한한 영의 지식들을 취해 나가심으로 세상 사람들 같이 육의 한계 속에서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던 아담과 같은 넓고 큰 마음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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