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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차 영·혼·육(7)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고후10:3-6 날짜 2004.03.14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비진리에 대한 혼의 작용들에 대해 계속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영으로 들어가는 길을 밝히 제시하는 영혼육 말씀

우리 눈에 보이는 몸, 곧 육은 껍질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 자신의 알맹이는 육 안에 들어있는 영과 혼입니다. 이 중에서도 더 중요한 것은 영인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을 지배해야 합니다.
요한삼서 1:2을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했는데, 여기서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바로 영이 혼과 육을 지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영으로 들어가면 영혼이 잘되어 영이 혼과 육을 지배함으로 마음의 소원이 응답되며 만사형통의 축복과 강건한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혼이 잘되는 것 즉 영이 혼과 육을 지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면 먼저 영과 혼과 육 각각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의 본질은 무엇이며, 자신의 영혼육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알아야 영혼이 더 잘되어 신속하게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며, 마침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혼의 작용에 의한 육의 생각들

혼이란 사람의 두뇌에 있는 기억장치와 그 안에 저장된 기억 내용들, 그리고 이 내용들을 재생해서 활용하는 생각을 다 포함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혼의 작용 즉 생각을 '진리로 하느냐, 비진리로 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 알면, 혼의 작용들을 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으로 바꿔 나갈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에는 1)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품지 못하는 것이 있다 했습니다. 자신의 틀과 생각에 맞지 않는 사람을 보면 품지 못하니 비진리의 생각이 동원되어 상대를 힘들게 할 수 있지만 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 신앙의 틀을 강요하지 않으니 화평을 좇게 됩니다. 상대의 입장을 선으로 이해해주며 진리 안에서는 이것도 저것도 가하므로 그 누구도 품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에는 2) 판단과 3) 정죄가 있다 했습니다. 상대의 언행을 볼 때 자신의 경험과 마음에 맞춰 결론을 내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의 중심을 알고 판단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신령한 자 곧 마음을 영으로 일구어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밝히 받는 사람이라면 사람의 중심과 의도까지 알 수 있습니다(고전 2:15). 이는 바로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께서 모든 것을 알려주시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판단 정죄는 하지 않더라도 어떤 상황 속에서 사실을 분별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지혜는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장소에서 한 여자 분이 지갑을 놓고 자리를 비웠는데 잠시 후, 어떤 남자 분이 와서 그 지갑을 집어 들고 급히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분명히 자기 지갑이 아닌데 급히 들고 나가는 걸 보니 도둑인가보다' 생각하면 판단과 정죄가 됩니다. 실제로 도둑일 수도 있지만 지갑 주인이 부탁해서 갖다 주려는 수도 있고, 아는 사람의 지갑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 경찰이 이를 보고 선하게 진리로 생각한다 해서 '판단하지 말자,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고 가만히 있으면 어찌 경찰 본연의 임무를 감당하겠습니까? 도둑이라고 정죄는 하지 않아도 상황을 살펴보아 만약의 경우에 대처할 수는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4) 말을 잘못 전달하는 것
우리 주위에 말을 잘못 전달하므로 문제가 발생되어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여러 사람을 거치는 과정에서 각자의 생각이 들어가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주변이 시끄럽고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원래 내용과 다르게 듣고 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는, 내용을 잘 들었는데도 들은 내용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섞어 내용을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사실 들은 내용을 문자 그대로 전달한다고 해도 표정과 소리의 크기 등으로 인해 전해지는 의미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야" 하고 상대를 불렀다 해도 작고 친근한 목소리로 "야" 하는 것과 거칠고 성난 목소리로 "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르지요. 하물며 상대의 말이나 표현을 그대로 옮기지 못하고 자신의 표현으로 바꾸어 전하면 원래의 의미와 달라져 버리게 됩니다.
성경에도 이런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앞으로 순교할 것을 알려주십니다. 이때 베드로가 요한에 대해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지요. 곧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요한이 죽지 않는다 해도 베드로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말씀인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가 죽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데도 "그가 죽지 않겠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고 엉뚱하게 전하는 것입니다(요 21:23).
이런 예들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래의 내용에서 과장하거나 축소하기도 하고, 심할 때는 전혀 엉뚱한 말로 바꾸어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게 아닐까?" 하는 말이 "그렇다더라"로, "그럴 수도 있다, 그럴 예정이다" 하는 말이 "그렇게 정해졌다"라고 전달되기도 합니다. 또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다"는 말이 전해져서 "크게 싸웠다"라고 변하거나 "재정이 어렵다"라는 말이 "파산했다"고 전해지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제가 "앞으로 적당한 때에 하겠습니다" 말했는데 "당회장님께서 곧 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하거나 때로는 말한 적도 없는 몇 년, 몇 월, 몇 일까지 제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것이지요. "마지막 때가 심히 가깝습니다. 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말하면 "당회장님은 주님께서 몇 날 몇 시에 오시는지 알고 있다고 하셨다"라고 전달하는 사람도 있으며, "어느 분이 매운탕을 주셔서 먹었습니다" 말하면, "당회장님께서 매운탕을 좋아하신다더라"는 말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과일 중에서는 단맛 나는 과일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당회장님은 단 것을 좋아하신다"고 전달되어서 이 말을 들은 분들이 저에게 사탕이나 초콜릿을 선물한 경우도 있었지요.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일을 추진하고 있는 분이 저에게 와서 "일을 이렇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보고를 하면 저는 "예"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시겠다니 제 편에서는 "그러시군요" 하는 의미였는데 돌아가서는 "이것이 당회장님의 뜻이다"라고 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혹은 지나다가 뭔가가 바뀐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어보면 "당회장님께서 원래대로 해 놓으라고 하셨다"고 전달하는 사람도 있지요. 저는 왜 바꾸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뿐인데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으며 또 말을 잘못 전했다 해도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은 단순히 말을 잘못 전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순간 마음에 있는 어떤 비진리와 관련되어서 잘못된 혼의 작용 즉 비진리의 생각이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진실을 이루면 자기 생각에 의해 사실을 왜곡하지 않습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마음, 조급하게 판단하는 마음이나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마음들이 없어질수록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을 잘못 전달하는 일이 나에게는 얼마나 있는가?" 돌아보는 것이 결국 "나는 얼마나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을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5) 감 정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 중, 마지막으로 설명할 것은 '감정'입니다. 서운해하고 섭섭해하며 자존심 상하거나 낙심하고 시기하며 분내는 것 등 육적인 감정으로 인해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반응이 달라집니다. 윗사람이 부하직원들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일을 잘 좀 할 수 없어요?" 하고 한 마디 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더 잘하겠습니다." 하고 웃으며 넘어가지만 평소에 상사에게 좀 불만이 있었던 사람은 그 즉시 감정이 생기면서 '말을 꼭 그렇게 기분 나쁘게 해야 하나, 자기는 얼마나 잘 하길래, 상사답게 행동을 하지도 못하면서' 하고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는 것입니다.
또 자신이 열심히 해놓은 일에 대해 "이 부분은 이렇게 고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권면을 받으면 어떤 사람은 "그것도 좋은 의견이네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의견을 참조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자존심이 상하여 '내가 이걸 이루기 위해 얼마나 수고했는데 저렇게 쉽게 말을 하는가', '그렇게 잘 알면 직접 자기가 하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결국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악한 감정을 가지면 생각도, 행동도 악해지는 반면, 선한 감정을 가지면 생각도, 행동도 선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감정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길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지요. 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책망을 들은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마 14:31, 마 16:23),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서운해 하거나 어떤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데는 항상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믿었기에 한 점 감정 없이 동일하게 예수님을 섬겼고 변함없이 존경과 사랑으로 붙좇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영으로 생각해 나간 베드로는 결국 권능을 행하는 큰 사도가 되었지요.
반면에 가룟 유다는 어떠합니까? 마태복음 26장에 베다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릴 때 예수님께서는 돈의 욕심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척 했던 가룟 유다의 편을 들어주시지 않고 영적인 섭리 가운데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하는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네가 틀렸다, 왜 영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느냐" 책망하신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나 개인적으로나 "너는 왜 나를 속이고 도적질하느냐" 책망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자신의 말을 인정해 주시지 않는 예수님에 대해 불만과 감정을 품게 되었는데 이런 감정들이 쌓이다 보니 사단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배신할 계획을 짜게 되었고, 결국 예수님을 팔게 되는 엄청난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마 26:14-15). 한때 예수님의 제자였던 그가 이렇게까지 멸망의 길로 가게 된 것은, 그만큼 평소에도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따라 악한 생각을 쌓아 왔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 중 대표적인 다섯 가지를 살펴보았는데 이 모두가 근본적으로는 마음의 악과 연결이 되며 이러한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들은 육신의 생각이기 때문에 결국 사망을 낳게 되며 또 마음에도 평안이 임하지를 못합니다(롬 8:6).
따라서 자신을 잘 점검하여 비진리의 생각들은 신속하게 버리고 진리로 보고 듣고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여 온전한 차원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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