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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3년 기도제목(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 11:41-44 날짜 2012.12.31
이 시간 먼저 지금까지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2012년 한 해 동안도 영육 간에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을 신속하게 성장시켜 오셨고, 이와 더불어 영혼이 잘됨같이 분야 분야에 은혜를 더해 주셨지요.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이 시간에 함께하신 성도님들과 전국 및 전 세계에서도 GCN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는 참으로 복된 분들입니다.

잠 16:3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말씀하셨지요. 이 말씀처럼 성도님들은 2013년 새해도 아버지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드리는 마음으로 이 시간 예배에 나오셨을 것입니다. 이 시간 아버지 하나님께서 믿음과 감사로 예배드리는 성도님들의 모든 새해 소원을 이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은 2013년 신년 기도 제목 네 번째 ‘권능’에 대한 말씀을 증거합니다. 이 제단에 펼쳐지는 권능에 대한 제목은 대성전에 관한 기도 제목과 더불어 거의 매년 주시는 기도의 제목입니다. 권능의 역사가 멈추지 않고 나타날 뿐 아니라 해마다 더 깊은 차원의 권능이 펼쳐지도록 구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동안 여러분은 권능의 깊은 차원들에 대해 많은 말씀들을 들어오셨고, 기도해 오셨습니다. 또한 그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여러분 자신이 치료받고 문제 해결 받으며 응답과 축복받는 체험들을 해 오셨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제단에 큰 권능을 나타내시는 이유는 개인의 치료나 축복을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물론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개인들의 응답과 축복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자녀들에게 항상 더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목적은 모든 영혼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올해는 과연 어떤 권능을 구해야 할지 지금부터 설명을 하겠습니다. 말씀을 잘 양식 삼아 한 해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권능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본 제단의 사역 속에 귀한 역할을 감당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본 교회의 개척 이후 끊임없이 권능의 역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이미 개척 당시부터 대부분 나타내 주셨지요.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이 무한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권능도 끝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해마다 새로운 차원으로, 더 깊은 차원으로, 권능을 구하게 하셨지요.
최근 몇 년 간의 기도제목들을 보면 2009년에는 ‘복합적인 권능의 역사’를, 2010년에는 ‘멈추지 않는 권능’을, 2011년에는 ‘폭발적인 권능’을 구하게 하셨습니다.

폭발적인 권능이란, 마음에 선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역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권능입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의 근본의 빛을 주시고 영안이 열리지 않은 성도들도 체험할 수 있도록 오로라 빛의 형상들이 찍히게 하셨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근본의 빛으로 여러분은 전보다 쉽게 육의 모습을 발견하고 죄를 벗어 버릴 능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1년에는 많은 분들이 영으로 들어왔고, 온 영으로도 들어오는 열매를 맺었지요.

이 근본의 빛 가운데 시작한 2012년에는 ‘크고 놀라운 권능’을 제목으로 주셨습니다. 이때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권능을 구하라 하셨지요. 사람이 아무리 많은 권능을 보아도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결국 그 신앙이 변질됩니다. 그러므로 영혼들이 이 제단의 권능을 체험할 때 마음까지 변화되도록 구하게 하셨지요.

이제 2013년 기도제목 ‘권능’에 담긴 의미는 사람의 자유의지까지 꺾는 권능입니다. 이 제단의 권능을 체험하는 이들이 스스로 자유의지를 움직여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게 하는 권능이지요.

각 사람의 구원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을 주셔도 이를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는 각 사람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지요. 세상이 죄와 악에 물들어 갈수록, 아무리 큰 기사와 표적을 보아도 믿기를 거부하는 강퍅한 영혼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이런 강퍅한 사람들까지 한 번이라도 더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케 하고 자유의지를 움직이도록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동안 이 제단에 펼쳐진 권능의 역사들은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님을 여러분도 아십니다. 이미 개척 전부터 무수한 금식과 기도를 쌓아 합당한 공의의 값을 치렀지요.

그런데 2003년 무렵부터는 예전과 전혀 다른 차원의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영의 공부라는 것을 시작하게 하시고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영계의 일들을 알려 주셨지요.

이론적으로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단계별로 실습하도록 훈련까지 시키셨고요. 영의 이탈, 영의 분리, 영의 이동, 차원적응 훈련, 한 단계를 마치고 ‘이제는 다 끝났을까’ 하면 쉴 틈도 없이 새로운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훈련들을 하나하나 거치면서 그때마다 훈련받은 결과를 보여 주셨지요. 각종 무지개나 구름의 출몰, 별의 이동, 잠자리의 출현, 기온의 조절 등 여러분이 그동안 체험하신 역사들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하실 수 있다고 보여 주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각의 훈련 단계에 맞추어서 영의 공간이 존재함을 보여 주거나 영의 공간을 활용하는 법을 보여 주는 하나님의 방법이셨지요.

영을 분리하고 이동할 때도 여러분은 그 증거를 함께 체험하셨습니다. 영의 분리를 통한 역사를 꿈으로, 혹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게 많은 분들이 체험하고 간증하셨지요.

이런 훈련의 과정들은 제 몸과 마음을 심히도 소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저는 그 훈련 자체에만 편히 집중할 수도 없었지요. 성도들이 혹여라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거나 믿음이 연약해지지 않도록, 저는 어찌하든 더 큰 권능을 나타내 보여서 성도들을 지켜내야 했습니다. 일꾼들의 믿음을 성장시켜야 했고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세계 각국을 돌며, 한 해에도 두세 차례의 해외 성회들을 인도했지요.

그것만으로도 진액이 다할 지경인데 그 와중에 2010년부터는 엄청난 회개 편지들이 쏟아졌습니다.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저는 하나님 앞에 비통하게 매달려야 했지요. 그러면서 성전 건축은 계속 추진해야 했습니다. 시시각각 밀려오는 재정의 부담도 당회장으로서 어찌하든 책임을 져야 했고요.

더구나 이런 훈련 가운데 저는 개척 당시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야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영적인 믿음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 법칙입니다. 이 법칙에 따라 제 믿음으로 얼마든지 이룰 수 있고 실제로 이뤄 왔던 일들이 훈련을 받는 동안에는 때때로 생각과는 전혀 다른 열매로 맺히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제가 이전에 이룬 온 영의 믿음과 모든 영의 지식들을 무(無)로 돌리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근본의 마음을 깨우쳐 영의 공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나타나는 권능의 역사가 줄어들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사와 표적의 열매들은 분명히 날로 더 커지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낯선 상황 속에 애통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최근의 과정에 대해 한 가지 예를 들어드리지요. 제가 매주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께서 숙제를 주시듯 어떤 것을 명하시면 저는 그 숙제를 풀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그러면서 한 주가 지나면 그에 대한 답을 얻게 되고, 그러면 또 다른 숙제를 주시고, 이렇게 한 단계씩 영의 훈련들을 거쳐 왔지요.

그런데 때로는 어떤 숙제를 주셨을 때 한 주가 지나도록 전혀 답이 안 보이는 것 같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전의 훈련과 경험을 보아서는 제가 아는 방법대로 하면 반드시 답이 나와야 하는데 전혀 결과가 나지 않는 것이지요.

몇 주를 지나도록 그런 상황에서 막막해할 때, 하나님께서는 제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한 가지 비유를 들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훈련을 거듭하여 날아가는 새를 화살로 백 프로 맞추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사람에게 눈을 감고도 새의 움직임을 느껴서 맞추게 훈련을 시킵니다. 이에 훈련을 거듭해서 눈을 감고도 정확하게 새를 맞추게 되었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그 사람을 방 안에 두고, 방 밖의 날아가는 새를 맞추라 합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요? 새의 움직임을 영감으로 정확히 감지한다 해도 화살이 방 밖으로 뚫고 갈 수가 없지요. 화살을 아무리 쏘아도 벽에 부딪혀 떨어지니 지금 바르게 조준을 했는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새를 활로 쏴서 잡으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기 때문에 밤낮으로 화살을 쏘고 또 쏘고 있다면 그 심정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이런 비유만으로 그 고뇌를 다 이해할 수는 없으시겠지만 제가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관을 받아 일을 이루라 하시는데, 아무리 제가 주관받는 대로 해 봐도 원하는 열매가 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분명히 된다’ 하고 느꼈는데 결과는 제 생각과 전혀 반대로만 나타났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몇 주, 몇 달을 동일한 과제만 주시고 계속 그렇게 하라고만 하십니다.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기 위해 애절하게 몸부림쳐 기도하고 금식해 보지만 왜 열매가 손에 쥐어지지 않는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적으로 제가 책임져야 할 일들은 쌓여만 갔고요. 너무나 막막하고 애절했습니다. 한동안 피를 말리는 듯한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이 필요했던 이유는 이러이러한 공의를 채우기 위해서였다고 조금씩 설명을 해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숙제를 주시지요. 저는 묵묵히 또 풀어 갈 뿐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큰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실 것이기에 끝까지 믿고 순종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훈련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본 제단의 사명을 완수하려면 하나님의 근본의 마음과 온전히 일치되게 권능을 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할 때마다 일일이 하나님께 여쭤보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근본의 마음 자체를 깨우침으로 스스로 주관을 받아 행해야 하지요.

우리 예수님께서 바로 그렇게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은 이 땅의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과정과 결과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것과, 언제, 어떻게 지실 것을 다 아셨지요. 그래서 이 땅에서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십자가를 지고 구원의 도를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이 하나의 목표에 온전히 집중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달리 다른 선지자나 제자들은 처음부터 아버지의 섭리를 다 알고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모세가 백성들을 출애굽시킬 때도 출애굽의 과정이나 결과를 다 알 수는 없었지요.

때에 따라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하나하나 순종해 갔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순종을 통해 열 재앙도 내리시고, 홍해도 가르시며 권능으로 섭리를 완성해 가셨지요.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이미 처음부터 앞으로 이뤄질 하나님의 섭리를 아셨습니다.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 무슨 일을 할지, 매번 하나님께 여쭈어 순종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오는 대로 가야 할 곳에 가고 해야 할 일을 행하셨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주체적으로 이루신 사역이면서,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온전히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한 사역이기도 합니다. 그 모든 사역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큰 테두리 안에 그대로 일치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사로가 갑자기 병이 들어 위중하자 그 누이들이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청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했지요.

요 11:4에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그 후 이틀이나 지체하시다가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죽었다 하시고는 그제서야 길을 떠나셨습니다.

나사로의 집에 도착해 보니 나사로는 장사된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셨고,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명하십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분명히 나흘 전에 죽었고, 썩는 냄새까지 났는데 그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 나왔지요. 이 사건은, 그 자리에서 있던 군중들을 통해 급속히 전파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기 전에 미리 찾아가셔서 치료해 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는데 한시라도 빨리 고통을 덜어 주고 싶으셨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나사로의 치료 한 가지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일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셨습니다. 이제 곧 십자가를 지실 시점이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필요한 작업을 해 나가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었을까요? 먼저, 이 기적을 통해 백성들 사이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불길처럼 번져 나갑니다. 그러자 전부터 예수님을 경계하며 주시하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우지요. 더 이상 예수님을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와 그 가족의 행함이 이런 역사를 체험하기에 합당하다는 사실도 공의 가운데 이미 고려하실 수 있었지요. 더불어 십자가 처형을 눈앞에 두고 제자들에게는 다시 한 번 부활의 소망과 믿음을 심어 주려는 뜻도 있으셨구요.

곧 예수님께서는 한 번의 권능을 행하심으로 정확한 시점에 십자가의 섭리가 이뤄지도록 모든 상황을 복합적으로 엮어 가신 것입니다. 마치, 퍼즐 조각들 하나하나를 제자리에 맞추어 완전한 한 장의 그림을 만드는 것처럼 그때그때 필요한 권능을 행하며 사역을 이루신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제단이 앞으로 이룰 사역이 바로 이렇게 이뤄져야 합니다. 긴 세월 동안 진행하신 인간 경작의 대장정을 마감하시는 이 시점에 그 경작의 섭리를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권능이지요.

어떤 기사나 표적을 단편적으로 보이거나 몇몇 사람의 구원에만 그치는 권능이 아닙니다. 좁은 일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차원이 아니라 전 세계를 복음화시킬 권능이지요. 죽은 사람을 살릴 뿐 아니라 사람의 자유의지까지 바꾸는 권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움직이는 열왕들까지도 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 나아온다 하셨습니다. 태풍이나 지진, 전쟁, 전염병 같은 큰 문제라도 공의에 합당하게 머리 된 사람들이 구하면 응답받을 것이라 하셨고요.

그러나 이런 일들은 세계의 정치와 경제 흐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따라서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맞아야 합니다. 사람의 자유의지를 꺾는다 해도 아무나 자유의지를 주관해 무조건 구원받게 하는 것이 아니지요. 무조건 권능을 나타낸다고 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공의에 맞는 사람을, 공의에 합당한 때에, 합당한 방법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매순간 세계 정치, 경제적인 흐름 속에 복합적인 모든 조건들을 고려해야 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를 완성해야 하고, 결국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대로 경작의 대단원을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근본의 마음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처음 본 교회를 세우시고 마지막 때 이룰 사명을 주신 이래로 저는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죽음과 같은 고난이 와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걸어 온 30년의 세월이었습니다.

새로운 해를 맞은 이 순간에도, 이제는 나도 좀 쉬어 보고 싶다거나 지금까지 이룬 것이 족하니 편안한 길로 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온 세상에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되고, 대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까지 결코 쉴 수가 없지요.

합 2:14에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하신 예언이 성취되기까지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해도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대로 전진할 뿐입니다.

이제까지 함께해 주신 사랑하는 성도님들도 동일한 마음이신 줄로 믿습니다. 2013년 한 해 동안도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뤄드릴 수 있도록 더욱 불같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 각자가 속히 영과 온 영으로 나와 이 권능을 함께 나타낼 수 있는 귀한 도구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모든 경작의 날들이 끝나고 하나님을 뵈올 때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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