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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기도제목(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살전 5:23 날짜 2014.12.28
매년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년 기도제목을 통해 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영의 흐름을 타고 온 분들이라면, 지난 한 해 동안도 어려웠던 일보다는 행복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입니다. 오늘은 2015년도 전 성도 기도제목 두 번째 ‘열매’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열매는 ‘온 영’

우리는 어떤 열매를 위해 기도해야 할까요? 개인적인 응답의 열매도 있어야 하고, 교회적인 축복의 열매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말씀한 대로 우리 영과 혼과 몸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여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지켜내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열매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인내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이뤄 오신 목적은 바로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이 있어야 했습니다. 죄인들을 대속하고 구원할 길을 열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지요. 또 성령님께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 세상의 죄악이 관영할수록 사람들은 이 십자가의 희생을 기억하지 않으려 합니다. 성령께서 안타깝게 진리를 깨우쳐 주셔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죄로 물들어 양심이 더러워지고 세상의 유혹은 너무나 강해졌기 때문이지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권능의 제단을 세우시고 불같은 성령의 역사로 천하 만민을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또한 간신히 구원받는 자녀만이 아니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룬 참 자녀를 무수히 얻기 원하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한 구원의 섭리를 위해서 예수님의 희생이 필요했던 것처럼, 이 마지막 때의 섭리에도 희생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를 목자로 세우셨고, 33여 년의 세월을 눈물로 보내게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온전히 희생하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 저의 모든 것을 헌신하게 하셨고, 기도와 금식과 철야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럴 때 교통함 속에 영계를 밝히 알려 주셨고, 성결되는 방법을 세세히 풀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큰 권능을 행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셨지요. 그러나 이런 권능을 나타내 보여도, 영의 열매가 쉽게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익기도 전에 떨어져 버린 열매처럼, 뜨겁게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했으면서도 어느새 세상에 빠지는 영혼들이 생겼습니다.
결국 2010년 12월 25일에는 죄 사함의 시간이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후로 수년간, 저는 아버지의 강권하심 속에 특별한 공의를 채우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기를, 더 나아가 구원만 아니라 반석과 영의 열매들로 나올 수 있기를 간구했지요. 그렇게 성도님들이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공의의 분량이 100만큼이라면 그중에 90만큼은 제가 대신 감당해 왔습니다. 그렇게 말로 다 못할 애통으로 보낸 세월 속에 하나 둘, 영의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2014년 3월에는 영의 평준화가 이뤄졌지요. 구원받은 것만도 감사한 상황에서, 반석과 영의 열매가 이렇게 많이 나왔으니 그것만으로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영은 악이 버려진 깨끗한 그릇이지만, 아직 온전한 열매는 아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이 깨끗한 그릇에 신령한 영의 내용물을 가득 채운 온 영의 열매입니다.

2. 목자의 희생으로 이룬 영의 평준화, 온 영의 흐름

영으로 들어왔다 해도 이제 더 깊은 영의 차원으로, 온 영의 단계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영으로 들어오기 전보다 더욱 애써야 하지요.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 어찌하든 자기를 발견하려고 애썼던 것처럼 온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도 그런 노력이 더 간절해져야 합니다.
“그동안 힘써서 영으로 들어왔으니 이제 잠시만 쉬자.” 하거나 “이제 이만큼 이뤘으니 좀 편하게 가고 싶다.” 이런 마음이 순간이라도 틈타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결여와 부족된 분야를 발견하고도 “이건 죄는 아니니까. 그래도 나는 영이니까.” 하면서 덮어 두어서도 안 되지요.
2014년 영의 평준화를 이룬 뒤로도 제가 감당해 온 공의의 무게는 전혀 감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반석으로, 영으로 들어오지 못한 성도들을 제 마음에서 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위에, 영에서 온 영으로 들어와야 하는 공의의 짐까지 더 얹어졌습니다. 온 영을 이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욥과 같은 연단을 통과하여 영으로 들어오는 것도 능히 감당할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엘리야나 모세, 사도 바울과 같은 연단을 통과하여 온 영으로 들어오려면 더더욱 철저히 죽어지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영으로 들어오기 위한 90을 제가 채운 것처럼, 온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 90을 채우는 짐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지워 주셨습니다. 그리고도 나머지 10만큼의 연단조차도 감당하기 힘겨워하는 분들이 있으니 그 10 중에 다시 아홉만큼도 감당하라 하셨지요.
저는 모든 짐을 기꺼이 져 왔습니다. 기가 소진되어 앉아 있을 기운도 없이 밤낮으로 온몸을 긁고 또 긁으면서도, 가능하다면 100만큼을 다 제가 지더라도 모두가 온 영으로 들어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의에 맞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이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몫은 감당해야 온 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2014년은 ‘영의 평준화’라는 흐름을 타고 이제 많은 분들이 영으로 들어왔습니다. 2015년에는 영에서도 결여와 부족을 채워 온 영을 이뤄 가는 본격적인 흐름이 신속히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면 온 영의 흐름이라 해서 영으로 들어간 분들에게만 해당될까요? 아니지요. 온 영의 흐름이 빨라진다면, 오히려 반석으로, 영으로 들어가기 위한 변화의 흐름은 더욱 빨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 흐름을 잘 타고 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셔야 하지요.

3. 온 영의 흐름에 동참하여 온전한 열매로 나오려면

구체적인 방법론은 그동안 너무나 많이 들어오셨을 것입니다. 말씀 무장도 해야 하고 불같은 기도와 금식도 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과 천국 소망도 중요합니다. 아버지와 주님을 사랑해야 하며, 목자를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 시간 당부할 것은 ‘변화를 위한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죄악을 벗고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결여와 부족을 채워 온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진리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꼭 필요합니다. “영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결여와 부족을 채워 온 영을 이루게 하소서.”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면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먼저는 온전하지 못한 내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한 예로, 설교를 들을 때 여러분은 얼마나 사모함으로 들으시는지요? 아직 영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면 “내게 아직 간음이 있는가? 혈기, 욕심, 미움, 시기, 질투, 판단, 정죄, 변개함과 거짓된 마음이 있는가? 세상 사랑하는 마음은 없는가?” 이렇게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려는 것이 말씀을 듣는 기본자세입니다.
영으로 들어온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선과 사랑으로 행할 수 있었는데, 더 온전히 행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주님은, 목자님은 어찌 하셨을까?” 하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 말과 행동을 더 세세하게 점검해 보아야 하지요.
“설교를 통해 은혜받았다.” 하는 고백은 이렇게 “내 부족함을 발견했다.” 하는 뜻입니다. 발견하고 깨달았으면, 그다음은 어찌해야 할까요? 발견한 죄와 악을 버려야 하고, 선과 사랑과 진리를 채우는 행함이 있어야 하지요.
야고보서 1장 23~25절에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했지요. 발견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거울을 보니 얼굴에 오물이 묻었구나.” 하고 오물을 씻지 않는다거나 “화장을 하다가 한쪽 눈썹이 삐뚤어졌구나.” 하고 그대로 둔다면 거울을 보았다 해도 달라진 점이 없지요.
어떤 분들은, 은혜는 잘 받는데 행함이 부족하여 믿음의 성장이 없습니다. “오늘 설교 말씀이 딱 제 말씀이었습니다. 이러이러한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하면서 눈물로 기도하고 금식도 합니다. 이렇게 깨닫고 발견하고 기도도 했는데 돌아서면 옛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에 안 맞으면 판단 정죄하고 악을 발합니다. 여전히 미워하고, 짜증내고 화평을 깹니다. 마음을 더 넓게 쓰지 못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변화되려고 기도하고 있으니까 금식까지 하고 있으니까 “나는 성결을 사모한다.” 하지요. 진리의 말씀을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내가 잘 아는 말씀이다.” 하면서 잡념과 졸음 속으로 빠져들기도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먼저는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간절한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또 진리를 듣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행함과 진실함으로 이루어 왔는지 스스로를 정확히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노력만으로 변화되는 것도 아니지만, 노력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하고 기도했으면 마음을 굳게 정하고 자기가 실제 행하는 행함이 있어야 하지요. 그래야 온 영의 흐름을 잘 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영을 이루나? 나는 반석만도 족하다.” 혹은 “구원만 받아도 족하다.” 하시는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겸손하고 욕심이 없는 말처럼 여겨지지만 영적으로는 전혀 선하지 않은 말입니다. 겸비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는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그 참혹한 고통을 받으신 목적이 그저 적당히 구원만 받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오랜 세월 눈물로 경작해 오신 간절함을 안다면 “나는 이 정도만 하고 편하게 살겠습니다.” 말할 수는 없지요. 제가 여러분을 새 예루살렘으로 들이기 위해 하루하루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지켜볼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못하겠다.’ 하거나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을까, 포기하고 싶다.’ 생각할 분은 없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온전한 영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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