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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온 영(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히 10:22 날짜 2013.08.02
전국 기관장 교육을 통해 온 영의 증거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 둘째는 하나님의 선, 셋째는 영적인 충성이라 했습니다. 오늘은 전국 기관장 교육 이후 믿음의 테스트를 통과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를 통해 믿음의 테스트가 왜 필요한지, 그것이 응답과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의 분량을 알려 주시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전국 기관장 교육 이후에 영으로 들어온 분과 반석으로 들어온 분들의 사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전까지는 비슷한 믿음의 분량에 있었는데 교육을 통해 왜 누구는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왜 누구는 그러지 못했는지를 설명해 드릴 때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양식 삼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을 알려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의 분량을 안 것으로 만족하며 있으라고 주시는 은혜가 아닙니다. “나는 영이니까, 나는 반석에 섰으니까, 나는 반석에 어느 정도 가까우니까” 하면서 방심해서는 안 되지요. 하나님께 믿음의 분량에 합당한 열매를 내어 보장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영으로 들어온 분들을 설명하면서 아직 영이라 인정하기에는 미흡한 분야가 있는 분들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목자의 간구를 통해 영이라 인정해 주셨고 앞으로 부족한 분야들을 채워 온전히 영으로 이끌어 가신다 했습니다. 만약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분들이 교육 이후에 이제 “나도 영이다.” 하며 간절한 사모함과 노력 없이 지낸다면 믿음의 성장이 지체될 수밖에 없지요. 물론 영으로 들어온 분들이 그러지는 않겠지만 예를 들면 그럴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분은 아직 자기 생각의 틀이 있어서 그 틀 속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면도 있다 했습니다. 어떤 경우는 성격의 틀이 너무 강해서 영으로 들어오기까지 오래 걸렸다 하셨지요. 그 틀을 완전히 벗어 버리지 않으면 비록 영으로 들어왔다고는 해도 발전이 더딜 것이라 하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충만과 열정은 있으되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있어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분은 더욱 기도와 말씀에 힘씀으로 자신의 마음을 더 깊이 있게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들어왔다 해도 ‘나는 이제 영이니까’ 하고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의와 틀, 결여된 부분 등을 온전히 해결하기 위해 더욱 기도와 말씀무장에 힘써야 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반석에 선 사람답게 더 근신하고 절제하며 영적인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 등을 맺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체되지 않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며 영으로도 신속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테스트의 필요성

하나님께서는 전국 기관장 교육 이후 많은 분들을 “테스트해 보셨다.” 하셨습니다. 전국 기관장 교육 이후 새롭게 영으로 들어온 분들이 있는가 하면,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이분들보다 더 영에 가까운 믿음의 분량을 가진 분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짧은 기간 동안 누구는 변화되어 영으로 들어왔는데 더 앞서 있던 분들이 왜 아직 못 들어 온 것일까요?

학생들이 공부할 때도 테스트의 시간이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다 해도, 시험지에 정확한 답을 쓸 수 있어야 그 공부가 제대로 된 공부였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학생들은 대부분 시험을 좋아하지 않지만 사실 자기 실력을 확인하는 시험 과정이 없이 그냥 계속 배우기만 하면 성취감도 없고 지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테스트를 통해 자기 실력을 확인해 나가면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여 채울 수 있고 결국 실력을 더 향상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 믿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배웁니다. 그러나 많이 배우기만 한다고 해서 그만큼 믿음의 분량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요. 얼마나 마음을 진리로 이루었는지, 실제 진리대로 얼마나 행하고 있는지, 정말 믿음을 내보여야 할 순간에 어떻게 행하는지 증거로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믿음의 분량이 정해지지요.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수시로 크고 작은 테스트를 통해 믿음을 증명해 보이는 과정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시험에 대해 설명합니다. 야고보서 1장 2~3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했고, 야고보서 1장 12절에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했지요.

베드로전서 4장 12~13절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신앙생활이란 잔잔한 바다로 항해하는 것처럼 늘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진리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항상 형통함과 축복의 길로 인도받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에덴동산에 두고 경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환경 속에 두고 경작하십니다. 험한 파도와 풍랑을 만나 표류하는 것같이 때로는 연단 중에 위태로운 때도 있지요. 이때도 믿음을 내보이고 그 테스트를 통과하는 과정들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믿음이 성장하고 더 큰 축복의 길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볼 때 항상 형통하고 축복의 길로 간다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늘 진리 안에 거했기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도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했습니다.
모세도,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권능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지만 때로는 보통 사람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큰 고난과 역경을 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순간 믿음으로 통과했기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 영의 열매들로 나온 것이지요.

또 아브라함은 어떠했습니까? 이삭을 바치게 하신 시험은 하나님께서 그가 능히 통과할 것을 아시므로 큰 축복을 위해 허락하신 시험이었지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독자 이삭까지 바침으로 믿음의 조상이란 축복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저도 지금까지 이런 시험들을 수없이 통과해 왔지요. 세 딸들이 교통사고나 뇌진탕 등으로 크게 다쳐서 생사가 위태로울 때도 저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딸들이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음 앞에 이른 적도 있었습니다. 이미 살아날 소망이 없었기에 천국에 보내야 할 줄 알았지요. 이때도 감사의 기도만 드렸습니다. 목사 파직을 당하는 엄청난 일이 있어도, 방송 사건으로 죽음 같은 연단을 받을 때도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렸고 오직 선으로, 사랑으로 승리했습니다.



3. 응답과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것’만이 아닙니다. 만약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만 믿는다면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응답이 오지 않을 때는 그 신뢰가 흔들리고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참 신뢰는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실 뿐 아니라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상황을 허락하시든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신 뜻을 믿어드리고 그 믿음이 변치 않는 것이 신뢰이지요. 그렇다 해서 나도 ‘이삭을 바치는 것 같은 큰 시험이나 연단을 통과해야 하나’라고 미리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나 축복을 위해 시험을 허락하실 때는 믿음의 분량에 따라 이길 만한 시험을 주시고 또 피할 길도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함으로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경우는 다릅니다.

야고보서 1장 13~14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했지요.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사람이 욕심 가운데 범죄하도록 사단이 미혹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미혹에 넘어가 범죄하면 그 결과로 시험 환난이 오는데 이것은 큰 재앙이나 징계로 오기도 하지요.

반면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험은 이렇게 죄로 인한 재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의에 비추어 합당한 믿음인지를 확인하여 그에 따른 응답과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 시험을 잘 통과할 수 있는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답도 알려 주시고 답대로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요.

이런 시험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수시로 있을 수 있습니다. 학교 시험에도 상급학교 입시 같은 큰 시험이 있고 중간 고사, 기말 고사가 있는가 하면 수시로 보는 쪽지 시험도 있는 것과 같지요.

가령, 설교 말씀 중에 은혜 받은 성도님이 “내일부터는 기도를 쉬지 말아야겠다.” 하고 결단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음 날 기도할 시간이 되자 가기 싫은 마음이 듭니다. “어제 잠을 잘 못 잤는데 오늘 일도 너무 바빴으니 좀 쉬고 싶다.” 하거나 갑자기 직장 동료들이 맛있는 음식점에서 회식을 하자고 합니다. 이럴 때도 마음을 지켜 기도하러 온다면 이것은 시험을 통과한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이기고 또 이기다 보면 차츰 기도하러 오는 것이 어렵지 않고 결국 기도 쉬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또 초신자 성도님이 이제 술을 끊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거절하기 어려운 윗분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계속 술을 권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도 “이번만은 어쩔 수 없지.”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정중하게 사양해서 안 마셨습니다. 이것도 시험을 일단 한 번 통과한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은 한 번 통과했다 해도 다음에 또 다시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도 다시 한 번 더 기뻐하고 감사하며 믿음으로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통과하여 완전히 믿음으로 승리했다는 인정을 받으면 그때부터 아버지 하나님께서 믿음대로 역사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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