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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온 영(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히 10:22 날짜 2013.08.04
지난 시간에는 근본의 악에 대한 테스트를 통과함으로 영으로 들어오게 된 경우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영의 단계에 가까이 온 분들이 왜 아직 영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 영의 단계에 가까운 분들이 영으로 들어오지 못한 이유

1) 성격의 틀이 강함으로 인한 경우
성격의 틀이 강함으로 인해 부족한 분야를 아직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장 배경과 자라온 환경 속에서 강한 틀이 만들어져서 그것을 깨트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요. 이로 인해 열심히 달려간다 하지만 자기 틀에 맞지 않는 상황에서는 아직 조금이나마 불편함이 보이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관없이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리 걸리고 저리 걸려서 불편해하는 것이 없어야 하지요. 그런 것은 다 악에 속한 마음입니다. 자신의 강함을 깨트리고 철저히 낮아진 바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아직 다듬어야 할 분야가 있고 더 선을 이루어야 하는 경우
아직은 다듬어야 할 분야가 있고, 마음과 생각 속에서 더 선을 이루어야 할 분야가 있습니다. 즉 아직은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선을 쌓음으로 하나님 편에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커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내가 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시다.”는 것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겨드릴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들어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친히 만나고 체험하는 하나님을 통해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마음에서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3) 남아 있는 간사함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이 있는 경우
아직 육신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선한 뜻을 제대로 찾지 못하며 남아 있는 간사함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마음에 주관을 받아 행해야 할 때도 옆에서 누가 다른 말을 하면 금세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렇다고 남의 의견을 듣지 말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할 때도 있지만, 자기 주관대로 진실하게 행해야 할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기도하면서 ‘이렇게 해야겠다.’ 해놓고 이 사람이 다른 말을 하면 거기에 휩쓸리고 저 사람이 다른 말을 하면 또 거기에 따라 요동합니다. 그렇게 요동하다 보니 결국 테스트를 받는 상황이 되면 근본의 악 속에 진실치 못한 모습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버리고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같은 기도 속에 깊이 감추어진 악의 모양이라도 다 벗어내고 범사에 성령의 주관을 받아 행해 나가야 합니다. 아울러 소속되었던 직원들에 대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전히 자기 육신의 생각 속에 있고 자기 공으로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또 하나님 앞에 내어서는 안 될 말들을 낸 것 등이 걸려 있으므로, 믿음의 반석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하십니다. 설령 반석에 섰다 해도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하시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알려 줬지만 일을 진행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각과 뜻대로 자신의 계획대로 했던 것입니다.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고 시간을 허비했지만 그래도 저는 열심히 노력한다고 했기 때문에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담을 헐어야 반석도 영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에도 어떤 직원은 영으로 들어왔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자 늘 노력했고 ‘어찌하면 하나님 앞에 진실할 수 있을까’ 늘 노력했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4) 더욱 낮아져 섬기며 교만의 틀까지도 온전히 깨뜨려야 하는 경우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의 분량이 크게 성장해 올 수 있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목자가 품고 계심으로 인해 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볼 때는 반석이나 영에 설 수 없지만 목자께 순종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달려왔을 때 이런 열매를 얻을 수 있었지요.
원래 성격으로는 쉽지 않은 일들도 오직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격의 틀을 깨트려 나왔기에 지금의 분량에 신속히 이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제 더욱 낮아져서 섬기며, 교만의 틀까지도 온전히 깨트려야 영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5)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더 쌓여야 하는 경우
많은 날들을 하나님과 주님과 목자를 사랑함으로 나아왔다 하나,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더 쌓여야 합니다. 내가 더 아량을 베풀고 더 섬기고, 낮아지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내가 높다’ 하지 말고 상대를 높여 주는 마음으로 변한다면 영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혹여 ‘나는 잘 섬기고, 낮아지고, 열심히 했는데’ 이런 생각이 1%라도 들면 안 됩니다. 무조건 “아멘” 하고 기도하면서 찾아서 더 쌓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같은 기도도 함께 쌓아야 하지요.

6) 옳다고 믿는 것이 정말 옳은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경우
하나님께서는 이분에게 본인이 옳다고 믿는 것이 정말로 옳은지를 생각해 보라 하십니다. 목자의 옮음과 비교해 볼 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깨우쳐 보라 하시지요. 이런 것이 참으로 문제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오랫동안 영의 침체가 옵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옳다고 생각한 것도 정말 옳은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저는 누가 틀리다고 하면 그냥 수그러듭니다. 그리고 확인해 보고나서 맞고 틀리고를 결정하지요. 제가 틀렸으면 감사의 표를 하고 제가 옳았으면 “이거 찾아보니까 내가 말한 게 옳더라.” 이렇게 해서 상대도 고쳐 주지요.

7) 아직 자신에 관한 분야가 버려지지 않고 분명치 못한 분야가 있는 경우
개척 멤버로 오랜 세월 함께 하면서 목자가 나를 어떻게 이끌어왔는지 그 사랑과 은혜를 알고 겸비함과 낮아짐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테스트를 통과했다면 단숨에 99프로까지도 넘어설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십니다. 아직 내 것, 내 생각,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 내가 갖고자 하는 것, 이런 분야가 버려지지 않았고 분명하지 못한 분야가 있다고 하십니다.

8) 육적인 정과 육적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을 깨뜨려야 하는 경우
육적인 정과 육적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일굴 수 있지요. 남아 있는 육적인 정 때문에 기관들이 약하고 자주 몸이 아픈 것입니다. 기도해서 발견해야 합니다. 육이 있으니 위로받고 싶어 하는 것이고 영적인 성장이 안 됩니다. 아무도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존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야 건강도 찾고 영으로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2. 육적인 정과 욕심을 버리고 영적인 사랑을 소유해야

육적인 정과 욕심에 대해 좀 더 보충해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육적인 정을 버리라.” 하는 말씀을 오해하면 “정을 끊어야 한다니, 너무 차갑고 냉랭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마음 아프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육의 정을 끊는다 해서 서먹서먹하고 차가운 관계가 되거나 무관심한 관계로 변하는 것이 아니지요.

영적인 정과 사랑은 육적인 정과 사랑보다 훨씬 깊고 진합니다. 제가 가족들에 대한 육적인 정을 끊었다 해서 예전보다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사랑하는 마음은 더 진해집니다. 더욱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고 더욱 서로를 위해 희생합니다. 직접 만날 때면 훨씬 더 행복하고 못 볼 때도 너무나 보고 싶지만 그렇다 해서 서운하거나 슬픈 것이 아닙니다. 보든 못 보든, 주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행복하고 성실하게 신앙생활하지요. 이렇게 해서 함께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며 더 많은 상급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육적인 정을 끊는다 해서 마땅히 할 도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로서 혹은 자녀로서, 마땅히 도리를 하여 온 집에 충성을 이루어야 하지요. 그러나 자기 육의 가족은 아주 사랑하면서 주 안에서의 형제자매는 그만큼 사랑하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한다면 이것은 육의 사랑이고 육의 정입니다. 자기 가족이 연단 받을 때는 마음 아파하며 눈물로 기도하면서 성도들의 문제는 무관심한 것이 육의 정이지요.
또 육적인 정은 서로 유익에 맞을 때는 참으로 끈끈하고 진한 것같이 보여도 서로 유익에 맞지 않을 때는 순간 원수처럼 변질되기도 합니다. 육의 정 안에는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있어서 서운함, 원망, 대가를 바라는 모습 등이 나와 결국은 서로를 힘들게 하지요. 반면에 영의 사랑으로 바꾸어 가면 힘들게 하는 육의 요소는 다 사라지고 서로에게 힘이 되므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육적인 정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분야가 또 있습니다. 육적인 정, 육적인 사랑을 버려야 한다고 하면 육의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만을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가족이나 지인들과도 육의 정과 사랑은 끊어야 하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양 떼나 주 안에서 형제자매들도 육적인 정과 사랑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함께 만나서 단순히 육적인 대화를 나누며 친하게 즐기며 지내는 것은 성도 간의 교제가 아니지요. 그것은 주의 이름을 빙자한 육의 모임입니다. 성도들끼리의 만남은 항상 진리 안에서의 교제가 되어야 하고, 서로 믿음을 심어 주고 성장시켜 주는 영적인 교제가 되어야 하지요.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주의 종이나 일꾼 된 분들이 양 떼를 맡아 사랑으로 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양 떼에게 정성을 다하고 사랑으로 대했는데도 양 떼가 그만큼 사랑을 돌려 주지 않거나 자신을 붙좇지 않으면 서운해합니다. 또 나보다 다른 주의 종이나 일꾼들을 더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 같으면 불편해하지요. 이런 마음도 결국 영적인 사랑으로 그 양 떼를 섬기며 돌본 것이 아니라 육적인 사랑과 육의 정으로 한 것임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기회에 육적인 정과 영적인 정이 무엇인지 알아서 육적인 정은 끊고 영적인 정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1단계, 2단계나 반석에 들어오지 못한 분들은 아직 믿음이 안 되기 때문에 육의 정을 끊으라고 하면 오해가 될 수 있지만, 영으로 들어올 분들이라면 이 말씀을 꼭 명심하여 행하시기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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