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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온 영(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히 10:22 날짜 2013.08.09
지난 기관장 교육 때 마치지 못한 교육 내용을 계속해서 증거합니다. 모든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서 이번 기회에 반드시 믿음의 반석으로, 영으로 또 온 영으로 침노해 들어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테스트를 통과하여 믿음의 반석에 선 경우

이분은 어떤 것이 목자를 위하는 일이라고 여기면 자신의 생각이 너무 옳고 좋다고만 생각하여 고집하곤 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도 않고 목자를 위하는 것도 아니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면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좋은 것이다. 이것이 목자를 돕는 것이다.” 하면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불순종을 낳으면서도 나는 목자를 사랑해서 이렇게 행한다고만 생각했지요. 자기 편에서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 해도 상대가 원치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기 중심의 사랑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분이 달라지셨지요. 테스트의 상황을 맞았을 때 자신의 원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도 ‘뭔가 뜻이 있으시겠지.’ 생각했다 하십니다.

이제야 자기 보기에 좋은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목자의 의중에 맞추는 것이 사랑임을 깨우쳤고, 이렇게 깨우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변화된 모습이 나왔지요. ‘내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아직 남아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떤 것을 행하기 전에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보시고 반석에 들어섰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곧 자신이 옳다고 고집하기보다 한번 물러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했기에 이것이 테스트를 통과하는 행함이 되었다 하시지요. 특히 주의 종들의 경우는 이런 분야를 철저히 테스트하신다 하십니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며 목자와 영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면서 목자를 위한다 하는 것인지 잘 분별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한 분을 테스트하셨는데 자기 유익에 맞춰서 행동하는 분야를 점검하셨다 하십니다. 이분은 겉으로는 겸비한 모습이었지만 중심의 겸비함이 아니므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시지요. 진실로 낮아진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낮아진 모습으로 행동하는 것이 더 유익된다는 생각 속에 겸비한 것처럼 행동했다 하십니다. 이처럼 자기 유익을 좇아가는 마음을 버리고 참으로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을 중심에서 택할 때 반석이라는 분량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분은 오랫동안 신앙이 침체되어 있던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의 계기를 얻었습니다. 이제 목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했으므로 충만하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진정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행함이 어떻게 나와야 할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분야의 테스트를 순간순간 만나게 될 때 계속 통과해 나간다면 능히 반석에 설 수 있다 하십니다.



2. 아직 믿음의 반석에 들어오지 못한 이유

기관장 교육 때도 설명했지만 이제 믿음의 반석 이상으로 들어온 분들은 그 수가 수백 명에 이릅니다. 그중에 한 분은 우리 교회에 등록한 지 1년 반 정도 만에 반석에 들어오셨는데, 그 이유는 변개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 옳다고 마음에서 인정되면 그것을 향해 변개함 없이 나가기 때문이라 하시지요. 변개함 하나만 없어도 하나님 말씀에 변함없이 순종하다 보면 얼마든지 짧은 시간에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믿음의 반석에 가깝기는 한데 막상 반석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분들의 경우를 좀 더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 오랫동안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로 인한 경우
자기 보기에 한번 옳다 하면 바꾸지 않는 것, 자기 생각에 진리라 하면 바꾸지 않는 것, 이런 틀이 있다 하십니다. 열 명 중에 아홉은 아니라 하는데 자기 혼자 옳다 하면서 그것을 꺾지 않는 강한 틀이 있다 하시지요. 그래서 혼자 옳다 하면서 그것을 꺾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개하지 않는 중심과는 분명히 구분해야 됩니다. 변개하지 않는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리 안에서 변개하지 않는 것이지요. 자기 보기에 옳다 하며 자기 주장하는 바를 굽히지 않는 것은 변개하지 않는 중심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이며,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고집이요 답답함이지요.

2) 핑계대거나 변명하려는 마음으로 인한 경우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말씀에 비춰 자신의 모습도 발견되고 옳고 그름을 어느 정도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핑계나 변명이 있으면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많은 말씀을 들어도 변화되는 속도가 너무 느린 것을 봅니다. ‘이때는 이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고 저때는 저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며 항상 자신을 정당화하고 옹호하지요.

예를 들어, 믿음 있는 일꾼인데도 자주 지각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지각할 때마다 항상 변명을 합니다. “이번에는 길이 막혀서 늦었고 다음에는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고” 이렇게 변명하는 사람은 매번 늦을 일이 생깁니다. 명확하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제 늦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고 다음부터는 늦지 않도록 명심해서 노력하면 결국 변화될 수 있지요.

지각하는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아예 약속 시간보다 30분쯤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면 됩니다. 길이 막힐 수도 있고, 다른 사유가 갑자기 생길 수도 있으니 아예 일찍부터 서두르면 되지요. 매번 핑계를 대면서도 약속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움직인다면 결국 지각하는 습관을 고칠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책망이나 권면을 들었다면 이 핑계 저 핑계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즉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지요. 또한 앞으로 어떻게 하면 변화될 수 있을지, 깊이 마음에 새기고 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이상 같은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더 믿음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3. 지적을 받으면 마음 중심에서 잘못을 인정해야

사울 왕은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족속을 공격하여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 모두 멸하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의 왕을 포로로 잡아와서 자기 영광을 드러내려 했고 짐승들 중에서 좋은 것은 죽이기가 아까워서 끌고 왔습니다. 이에 대해 선지자가 책망해도 핑계만 대며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불순종한 것이 아니다. 순종해서 다 죽였는데 극히 일부만 살려서 끌고 왔다. 그것도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그런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변명을 했던 것이지요. 자신의 욕심 때문에 불순종했으면서도 백성들을 핑계 대지요. 이런 습성 때문에 결국 사울은 변화되지 못하고 악에 악을 더하여 마침내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은 지적을 받아도 잘못을 중심에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핑계를 대고 변명합니다. 가령 기도 시간에 자주 졸고 있는 성도님을 보고 기관장님이 권면을 합니다. “김 집사님, 왜 다니엘철야 때마다 졸음 속에 기도하십니까? 졸릴 때는 일어서서 기도하세요.” 했지요. 이런 권면을 받으면 “네, 감사합니다. 불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명심하고 변화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내가 언제 다니엘철야 때마다 졸았습니까? 가끔 피곤할 때만 좀 그랬지요.” 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발끈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매번 졸았느냐, 가끔 졸았느냐’가 아닙니다. 단 한 번이라도 내가 졸았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이제는 절대로 졸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엉뚱하게 말꼬리를 잡으며 핑계를 대니 변화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는 지적을 받았을 때 서운해하며 핑계를 대는 사람도 있지요. “나는 졸고 싶어서 조는 줄 아십니까? 직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힘들어도 기도 쉬지 않으려고 나왔는데 기관장님은 집에서 편히 쉬시다 왔으면서 남의 사정은 알지도 못하고 민망하게 사람을 찌르시네요.” 이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매번 졸면서도 매번 다른 변명을 하기도 하지요. “오늘은 제가 좀 피곤해서 그랬어요. 오늘은 제가 밤에 잠을 설쳐서 그랬어요. 제가 체력이 약한데 쉬지 못해서 그래요. 오늘은 커피를 안 마시고 왔더니 그래요.” 이렇게 매번 다른 변명을 합니다. 항상 이유를 대기만 하니 중심에서 깨달아 돌이키지를 못하지요. 번번이 핑계거리가 생기고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졸고 있는 것입니다.

설령 자기 생각에는 졸지 않은 것 같아도 주변에서 ‘졸지 말라.’는 말을 해 주었으면 그것을 기분 나쁘게 받을 것이 아니라 한번 더 자신을 돌아보면 은혜가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졸지 않은 것 같은데 남 보기에는 조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그러면 혹시 내가 깜빡 졸았나? 앞으로는 더 불같이 기도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자신에게 유익이지요.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분이 선교회 행사를 준비하는데 뜨거운 마음으로 진행했지만 자기 생각에 따라 주지 않는 사람들과 그만 화평이 깨어지고 큰소리가 났습니다. 이를 보고 지도교사님이 권면을 했습니다. “절대로 화평을 깨면 안 됩니다. 집사님은 혈기를 버리셔야 합니다.” 이런 권면을 들을 때 자기 입장만 생각하면 핑계와 변명이 나옵니다. “나는 화평하려고 했는데 저 사람이 먼저 화평을 깼습니다. 급한 일은 많은데 저분이 도와주지도 않고 순종도 안 해 주니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한다거나, “나는 혈기를 낸 것이 아니고, 상대가 깨우칠 수 있도록 좀 강하게 말한 것뿐입니다.” 하기 때문에 변화가 더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외에도 변명과 핑계 때문에 자신이 변화되지 않는 경우는 참 많습니다. 남의 탓, 상황 탓, 환경 탓, 조건 탓을 하고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정당화시키는 등 다양하지요. 이러한 핑계와 변명은 성결되는 데에 결코 유익되지 않습니다. 권면을 들으면 일단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자신의 모습이 보이면서 결국 변화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는 나보다 얼마나 더 잘 하나, 꼭 사람들 있는 데서 내 잘못을 드러내서 이렇게 무안을 주어야 하나.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 노력은 알아주지 않고 잘못만 지적하나.’ 이러한 육신의 생각과 자존심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 신속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여 빛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엡 5:1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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